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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4월의 섬-돌산도] 동백꽃 떨어지는 0.1초, 목숨 건 사랑의 아름다움

by 白馬 2022. 4. 21.

 

돌산도 금오산과 봉황산 10km 산행 그리고 여수 갯가길

 

 

돌산도 대율항 방파제를 걷는 김지윤·권지혜씨. 섬 동쪽 해안선을 이은 여수 갯가길은 걷기길치곤 까다로운 편이지만 다양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사랑을 믿나요?’ 

동백은 늘 이런 식이다. 칼바람 성성한데, 홀로 낭만에 취해 있다. 작은 송이 안에 깃든 붉은 궤적은 한번 말려들면 돌이킬 수 없다. 투명한 물속에 떨어진 붉은 잉크 한 방울, 그 번져나감이 때론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진달래 앙상한데, 붉은 드레스 입고 절절한 노래를 부르는 동백. 겨울나기 팍팍한데 무슨 청승이냐 구박해도 붉은 속내를 숨기지 않는다. 사랑을 두려워하지 않는 매혹적인 첫 꽃을 보러갔다.

 

율림치에서 봉황산 방면으로 올라서면 전망터가 되는 바위를 만난다. 뒤로 율림치주차장과 금오산 정상이 드러난다.

 

향일암에서 만난 붉은 절명

해를 향한 암자, 향일암으로 갔다. 돌산도에서 가장 남쪽, 최대한 먼 곳에 닿으면 확진자 수가 아닌 다른 소식이 있을 것 같았다. 살랑살랑 고양이 꼬리 같은 바람을 기대했으나 삭풍이 사나웠다. 

우리나라 4대 관음성지 중 하나로 꼽히는 암자는 기묘했다. 좁은 바위틈인 해탈문을 빠져나오자 동백꽃이 “툭” 떨어졌다. 목이 부러져 떨어지는 꽃의 들릴락 말락 한 소리가 천둥 같았다. ‘왜 이제야 왔냐’며 추락하는 허공 속에서 눈 마주치는 0.1초의 찰나. 붉은 절명은 아름다웠다. 처음 내게 떨어진 꽃이었다. 

 

매혹적인 향일암 동백꽃. 다른 나무들이 신록을 내기도 전에 용감하게 꽃을 피웠다.

 

다시 좁은 바위 틈 사이를 돌아들자 대웅전 격인 원통보전 마당이다. 시리도록 파란 바다가 넓은 품으로 ‘다 괜찮다’며 와락 안아주었다. 천수관음전 가는 길, 압도적 팽나무가 걸음을 세웠다. 바닷바람 앞에서 대서사시 같은 생을 살았음을 생김새로 말하고 있었다. 곁에는 동백이 붉은 꽃을 피우고 있었다. 꽃 아래 서서 나무의 시선을 따라가 보았다. 침묵하는 바다를 향한 동백의 마음이 눈에 들었다. 

유명 기도터인 천수관음전 난간에는 방문객들의 소망을 적은 황금색 코팅지가 빽빽이 걸려 있었다. 누군가 ‘돈 권력 여자’라고 큼직하게 적은 글귀가 보였다. 천수관음상 표정이 조금 심란해 보였고, 바다는 관심 없다는 듯 평온했다. 

 

향일암 종각 곁에 솟은 웅장한 팽나무. 배경처럼 동백나무가 초록을 이뤘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 이정표가 이제 그만 둘러보고 산에 들자고 한다. 김지윤·권지혜(이대산악부)씨가 스틱을 꺼내들어 곧장 오르막에 접속한다. 향일암을 품은 돌산도 최남단 봉우리 금오산 산행에 나선다. 

여수의 명소 상당수는 돌산도突山島 풍경이다. 1980년대 초에 연륙교가 생기며 육지화되었으나, 우리나라에서 10번째로 큰 섬으로 해안선 길이만 104km에 이른다. 돌이 많은 산이라 ‘돌산도’라 불린다는 건 오해다. 바위와는 전혀 상관없는 ‘갑자기 돌突’자를 쓰는데, 섬에 큰 산 8개가 있다고 하여 산山자, 팔八자, 대大자를 합해서 생겨난 이름이다.

 

봉황산을 오르는 이대산악부 권지혜씨(앞)와 김지윤씨.

 

돌산도 최고봉은 봉황산(460m)이지만, 인기는 금오산(323m)이 더 높다. 풍수가들은 금거북이 바다 속으로 기어 들어가는 형상이라 하여 산 이름에 쇠 금金과 바다거북 오鰲 자를 썼다고 한다. 넘어가는 해가 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산행의 맛을 보려고 걸음을 서두른다. 섬산답게 급하게 고도를 올린다. 밀려오는 계단은 잡념을 비우기에 제격이다. 마음속엔 늘 이리 버릴 것 한 가득인지, 쓸데없는 상념들 서어나무 곁에 툭툭 떨궈 놓고 간단명료한 산길에 집중한다. 

마음 비우길 30분, 247m봉이 바다와 섬이 버무려진 경치를 한 가득 내어놓는다. 금거북 머리답게 수평선 끝까지 펼쳐진다. 거친 바위가 솟았으나 친절한 데크 덕분에 편히 경치를 즐긴다. 데크 계단을 따라 전망대 다음 전망대, 친절하게 다도해 구석구석을 보여 주더니, 꼭대기는 자연친화적인 마당바위를 그대로 살린 전망 터다. 

 

금오산 정상 직전의 경치 좋은 암릉 지대.

 

화태도, 대두라도, 개도, 금오도가 하나의 섬처럼 길게 뻗었다. 가쁜 호흡을 슬그머니 어루만지는 평화로운 바다의 향연, 늦은 시간이지만 역시 산에 오르길 잘했다. 향일암의 번잡함과 달리 세상 고요하다. 바람이 가만히 다가와 얼굴을 매만진다. 멍하니 있으니 10분이 찰나마냥 지나간다. 마음이 풍경을 닮는 걸까. 세상의 모든 모난 것과 작별하는 기분이다.

정상은 의외로 육산이다. 평범한 숲 한가운데, 오히려 과하지 않아 좋다. 평범한 된장국과 쌀밥이 메인 요리를 더 맛깔스럽게 받쳐준다. 율림치의 텅 빈 주차장에서 오늘 산행을 마무리한다.

 

돌산도 여행의 백미인 금오산 247m봉 일대. 데크가 깔려 있어 초보자도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파란 하늘이 있는 아침, 죽포리에서 봉황산에 든다. 아늑한 편백나무 숲을 지나 고즈넉한 산길이 이어진다. 산중 임도를 가로지르자 경계를 넘어선 것마냥 급한 오르막이 덮친다. 멀리서 산세를 보았을 때부터, 한 성질 할 줄 알고 있었기에 어려움 없이 받아 삼킨다 싶었으나, 자비 없는 오르막이 세다. 

해발 270m를 수직 상승하듯 높이자, 표지석이 있는 정상(460m)이다. 시야가 막혔으나 50m 더 가자 전망데크가 나온다. 맞은편 금오도가 육지마냥 거대하게 솟아 시원한 맛은 부족하다. 경치는 어제 갔던 금오산이 한수 위다. 

봉황산은 화려함보다 덕스럽다. 발 디딤 편한 구수한 흙길과 너른 산길로 뭍에서 온 이들을 어루만진다. 마지막에서야 짧은 바위맛을 보여 주고 다시 율림치 주차장이다. 돌산도 여행의 마무리는 여수 갯가길이다. 돌산도 해안선을 잇는 걷기길을 맛보러 바닷가로 갔다.

 

돌산도 유일의 모래해변인 방죽포해수욕장. 작지만 조용하고 소나무 방풍림이 아늑하다.

 

산길에 피가 묻어 있다

돌산도에서 가장 감미로운 해변, 방죽포해수욕장은 아직 여름을 추억하는지 철 지난 안내문이 걸려 있다. 정장을 차려 입은 노신사 같은 소나무숲이 고풍스럽게 맞아 주었다. 정오의 햇살이 쏟아지는 해변은 아무도 없었다. 솔향과 갯내음 섞인 이곳에서 걷기 시작하려 했으나, 여기서 멈추고 싶었다. 소나무숲에 해먹 치고 누워, 숫자로 보도되는 매일의 비극이 지나갈 때까지 머무르고 싶었다. 

 

방파제를 아기자기한 사진 명소로 꾸민 죽포항.

 

걷기길이라 방심했다간 다칠 수 있다고, 비탈진 숲길이 경고했다. 걷기길이 산행보다 쉽다는 편견을 무너뜨리며 해안선 따라 한 굽이 두 굽이 돌아 넘었다. 이 마을, 저 마을, 작업이 한창인 어촌을 지날 땐 괜스레 팔자 좋은 도시인으로 비칠까봐 걸음이 빨라졌다.   

어둑할 정도로 짙은 동백숲 터널, 피가 묻어 있다. 가만 보니 목을 꺾고 떨어진 꽃이다. 동백은 파도소리를 삼키는 걸까. 붉디붉은 적막이 감미롭다. ‘목메어 울어본 적 있느냐’고 동백이 묻는 사이, 늙은 겨울이 짐을 싸고 있다.

 

돌산도 최고봉인 봉황산 정상에 선 김지윤·권지혜씨. 정상 표지석과 근처의 전망 데크가 BAC 인증지점이다. 둘 중 한 곳에서 인증하면 된다.

 

●돌산도 가이드

BAC 인증지점은 봉황산 정상이지만, 산행의 즐거움은 금오산이 크다. 금오산은 돌산도 최고의 명소인 향일암을 끼고 있어, 봉황산과 금오산 연계산행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죽포리에서 산행을 시작해 봉황산을 거쳐 주차장이 있는 율림치까지 6km이며, 여기서 금오산을 지나 향일암까지 4km이다. 볼거리와 식당이 많은 향일암에서 산행을 마치는 것도 좋지만, 향일암에서 금오산 방향으로 가면 오르막이 적어 더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다. 

봉황산 죽포리 입구는 이정표가 없어 찾기가 까다롭다. ‘돌산읍 죽포리 1263번지’를 지나면 ‘상수원 보호’ 알림판이 있고, 여기서 20m 올라서면 왼쪽에 차를 세울 수 있는 비포장 공터가 있다. 이후로는 외길에 가까운 코스라 길 찾기는 쉽다. 봉황산 꼭대기의 전망데크와 정상 표지석이 50m 정도 떨어져 있는데, 모두 BAC 인증지점이므로 한 곳만 골라 사진 찍으면 된다.

핵심 경관만 즐기고자 한다면, 향일암 입구에서 능선삼거리로 올라 247m봉을 거쳐 향일암으로 내려오는 원점회귀가 알짜배기다.

 

봉황산 정상에서 율림치로 이어진 능선은 완만하고 편한 산길이다.

 

교통
여수시내에서 111번 버스를 타면 종점인 향일암 입구의 임포에 닿는다. 여수엑스포역에서 향일암까지 25km 거리이므로 렌트카를 이용하는 것도 효율적이다. 서울역에서 여수엑스포행 KTX가 하루 5회(07:05, 09:48, 12:40, 16:38, 17:38) 운행한다. 12시 40분 열차는 주말에만 운행.   

 

 

돌산대교 야경, 방죽포해변, 경치 좋은 카페와 가성비 맛집

 

돌산공원에서 본 돌산대교 야경. 여수 필수 관광 코스로 꼽히는 야경 명소다.

 

돌산도는 크다. 돌산대교에서 끄트머리인 향일암까지 찻길로 23km이다. 구불구불한 커브가 많은 걸 감안하면 정체가 없어도 40분은 걸린다. 효율적인 동선을 짜야 여행이 쾌적하다. 콜택시는 돌산도 깊숙한 곳까지 들어오길 꺼리는 경우가 많아 하산 후 택시를 호출할 경우 주의해야 한다. 

 

향일암(입장료 2,500원)은 해돋이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남쪽 끝 향일암 구경을 시작으로 여수시내 방면으로 올라오면서 순차적으로 구경하는 것이 알맞다. 향일암 입구에 공영주차장 건물이 있다. 주차료는 1시간 초과부터 10분당 200원이며, 하루 최대 요금은 5,000이다. 이곳에 주차하고 600m 정도 가파른 오르막을 걸으면 향일암에 닿는다. 대웅전격인 원통보전부터 천수관음전까지 이어진 길이 모두 바다 전망대다. 기묘한 바위 틈 사이로 길이 나 있는 것도 향일암만의 독특한 볼거리다. 

 

정담식당의 수육정식(1만1,000원)과 주물럭정식(1만1,000원).

 

방죽포해수욕장은 모래사장이 150m에 불과한 작은 해변이지만, 아름드리 소나무 방풍림이 운치 있다. 상업시설이 휴가철 아니면 거의 없어 한적한 편이다. 여기서 해안선을 따라 향일암까지 이어진 걷기길이 여수 갯가길 3코스다. 방죽포에서 백포, 기포, 대율, 소율을 거쳐 향일암으로 연결되는 8km의 걷기길이다. 해안 바위지대와 비탈진 사면 숲길, 마을길을 번갈아 지난다. 숲길은 사람 한 명 겨우 지날 수 있을 정도로 좁고 가파르고 길찾기도 까다러워 주의해야 한다. 

봉황산자연휴양림은 여수시에서 운영하는 여수 유일의 자연휴양림으로 2012년 개장했다. 봉황산 남서쪽 기슭인 신복리에 자리잡고 있으며, 산림문화휴양관, 숲속의 집, 야영장, 카라반, 편백숲 산책로, 산림치유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치유센터에서는 무료로 숲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문의 061-643-9180

 

카페 라베이의 아인슈페너와 과일스무디.

 

시간을 잘 맞추면 무슬목 억새밭 해넘이를 볼 수 있다. 평사리와 우두리를 잇는 잘록한 곳을 무슬목이라 하는데 오른쪽은 해수욕장이며, 왼쪽은 매립한 거대한 억새밭이다. 운이 좋으면 이곳에서 드넓은 억새밭 너머로 황홀한 해넘이를 볼 수 있다. 

히트곡 ‘여수밤바다’의 현실 여행지로 더 유명한 곳이 돌산대교 앞 돌산공원이다. 공원 내 돌산대교준공 기념탑 앞의 전망대에서 본 돌산대교 야경이 SNS 촬영 명소로 인기 있다. 돌산대교 야경을 비롯해 여수 야경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 공원에서 여수해상케이블카를 타면 500여 m의 바다를 건너 자산공원으로 연결된다. 왕복 1만5,000원. 

 

거북이수제바게트의 바게트버거와 쑥아이스크림.

 

섬보다 더 유명한 것이 ‘돌산 갓김치’다. 여승란갓김치(010-2448-3456)는 돌산도 토박이인 여승란 사장이 직접 재배한 유기농 갓과 국내산 멸치젓·새우젓·고춧가루·마늘을 사용해 담아 신선하다. 갓 특유의 알싸하면서도 아삭하고 시원한 식감이 일품이다. 갓김치 1kg 1만 원. 

돌산도는 관광지라 무작정 들어가면, 비싸고 맛없는 음식에 실망할 수도 있다. 우두리의 정담식당(0507-1301-3899)은 농림축산식품부 지정 안심식당으로 수육정식(1만1,000원)이 가성비 음식으로 손꼽히며 친절하다.   

돌산도 해안가에는 경치 좋은 카페가 수두룩하다. 라베이LA BAIE(0507-1367-4184)는 죽포항의 숨은 카페로, 조용히 바다를 보며 여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아인슈페너(7,500원), 아메리카노(5,500원), 뉴욕치즈케이크(6,000원) 등이 대표메뉴. 

 

직접 농사 지은 갓으로 김치를 담는 여승란 대표.

 

무슬목해변의 까페드몽돌(0507-1460-7848)도 경치 좋은 카페로 꼽힌다. 여수 동백꽃 향을 입힌 동백라떼(6,000원)와 돌산갓김치리조또(19,500원), 갓을 첨가한 갓모히또(8,000원), 심해에이드(7,000원) 등 독특한 메뉴가 많다. 

거북이수제바게트(061-644-6449)의 야채와 고기로 속을 채운 바게트버거(4,000원)와 쑥을 첨가한 쑥아이스크림(3,000원), 임실치즈로 만든 구스토아이스크림(4,000원), 슈크림과 햄이 든 황금돼지빵(12개 5,000원)은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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