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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등산시렁] 1호선 전철 타고 '마운틴 갤러리' 감상

by 白馬 2022. 3. 18.

산 따라 전철 따라
산에 가서 등산만 하고 오는 건 싫다고 하는 남자의 등산 중 딴짓

 

전철(지하철)을 사람이라고 치면 이 사람은 꽤 고지식하다. 약속을 칼같이 지킨다. 다른 길로 가지 않는다. 오로지 같은 길만 왔다 갔다 한다. 좀 느리면서 재미가 없다. 세상이 전철 같은 사람으로 넘쳐난다면 무미건조하겠지만 그런대로 평온하겠다. 이런 의미에서 도시의 전철은 꽤 믿음직하다. 이상하고 괴상한 도시인들 틈에서 그 고지식함은 분명 보석처럼 빛난다. 

전철을 만든 수많은 기술자들과 지금의 교통 시스템을 갖추기까지 노력한 많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갑자기 왜 전철 찬양일까? 그 편리함을 실로 오랜만에 다시 깨달았을 뿐 아니라 등산이 싫으면서도 산을 좋아하는 나에게 ‘이런 것도 등산이지!’라는 새로운 트레킹 방식을 알게 해줬다. 그러니까 전철이 온 도시를 누비는 ‘좋은 세상’에 살고 있다고 나는 이번 ‘등산시렁’ 글을 쓰면서 비로소 느끼고 있다.  

요새 전철은 멀리까지 간다. 북쪽으로는 강원도 춘천을 비롯해 남쪽으로 충남 아산까지 간다. 4,000원 정도만 챙기면 교통 체증 걱정 없이, 졸음 운전의 부담 없이 낯선 도시를 여행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이 편리함을 가장 크게 누릴 때가 바로 명절 즈음이다. 나의 ‘큰집’은 충남 아산에 있다. 1호선 온양온천역 근처다. 친척들이 모이는 명절 때면 그래서 전철 덕을 꽤 봤다. 남들과 달리 느긋하게, 느릿느릿 연휴를 보냈다. 이번에도 역시 그랬지만 이번만은 달랐다.

 
금정역부터 갤러리 시작
 

나는 주로 서울 지하철 4호선을 이용한다. 온양온천역으로 가려면 4호선 금정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집에서 온양온천역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3시간, 너무 오래 걸리는 게 아니냐고 할 텐데, 천만의 말씀! 가면서 책 보다가, 졸다가, 스마트폰 들여다보다가, 음악 듣다가 하다 보면 시간은 금세 간다. 이 여정의 하이라이트는 금정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면서 시작된다. 여기부터 전철은 지하세계를 벗어나 지상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금정역까지는 책을 읽으면서 가기에 딱 좋다. 차창 밖으로 볼 게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초반에 책을 꺼내 읽다가 깜빡 졸았다. 1호선으로 갈아탄 뒤에야 정신을 차렸다. 

이때부터는 객차에 사람도 줄어 비교적 여유롭다. 그래서 차창 밖 풍경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1호선과 4호선의 다른 점이 있다. 바로 창의 모양이다. 4호선은 오래된 열차라 창이 4개로 나뉘어 있다. 1호선은 통창이다. 이 통창이 금정역을 지나면서 일종의 액자 혹은 TV 화면 역할을 한다. 열차 바깥 풍경이 걸리적거림 없이 그대로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나는 이 사실을 군포역으로 가는 도중 깨달았다. 열차가 금정역을 벗어난 다음, 차창 밖으로 보이는 방음벽이 사라지고 각종 건물과 아파트들이 열차에서 멀어지면서부터다. 멍하니 경치를 구경하는데, 창의 검은 테두리가 마치 액자처럼 보였다. 시시각각 풍경이 변하는 최첨단 디지털 액자! 이럴 수가! 여긴 갤러리가 아닌가? 

 
1 군포역 도착하기 전의 뾰족산
 

군포역 도착 직전 차창 밖으로 보이는 뾰족한 산은 모락산(385.8m)이다. 조선시대 임영대군이 수양대군을 피해 여기로 피했다는 전설이 있다. 그때만 해도 여긴 까마득한 산중이었나 본데, 지금은 산 앞에 아파트들이 빼곡하다. 지금도 산을 둘러싼 수많은 건물들 사이에 숨어 있으면 평생 들키지 않고 살 수 있겠다. 

 
2 진위역을 거쳐 송탄역으로 가면서 보이는 펑퍼짐한 산
 

오산역을 지나 진위역에 닿기 전, 낮으면서도 평평한 산이 쭈욱 이어진다. 마등산, 개락산, 송장산, 목골뿌리산, 달박산, 무봉산, 봉배산, 각골산, 오리골산 등의 작은 산들이 어깨를 맞대고 있다. 오산시청을 넘어가면 바로 용인시가 나오는데, 여기 주변은 온통 산으로 덮여 있다. 하지만 산이 낮은 덕분인지 골프장이 수십 개다.

*아래부터는 전철을 타고 가면서 본 산이다. 차창 밖으로 산이 보일 때마다 곧바로 인터넷 지도를 켜고 산 이름을 확인했다. 나는 전철 객실 오른쪽 좌석에 앉아 동쪽(전철 진행 방향으로 왼쪽)을 바라봤다.

 
3 성환역 도착 전 울퉁불퉁한 능선
 

성환역 도착 전 평야가 펼쳐진다. 그러다가 차창 오른쪽으로 꽤 높은 산이 보이는데, 서운산(548m)이다. 능선이 낮게 이어지다가 왜 이 산만 유독 솟아 있는 건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서운산의 능선은 송탄역에서 본 낮은 능선들과 이어져 있다. 서운산을 넘어가면 국가대표 훈련소로 유명한 진천군이 나온다.

 
4 직산역으로 가는 중간에 본 야산
 

차창 앞으로 작게 솟은 야산은 성산(176.1m)이다. 우리 동네 뒷산보다 규모가 약 5배 작지만 여기에는 충청남도 기념물 제104호 직산 사산성蛇山城이 있다. 산성에서 5~6세기 백제와 고구려 관련 유적이 출토됐다. 성산 뒤로 빼꼼 보이는 산은 서운산이다. 

 
5 두정역으로 가는 중 덩치가 꽤 큰 산
 

천안에 이르면서 멀리 덩치가 꽤 큰 능선이 보이는데, 위례산(523m), 성거산(579m)이 나란한 모습이다. 이 산을 만만히 보면 안 된다. 이천시와 진천군을 감싸는 능선 중 하나로, 엄밀하게 따지면 이천 평야에서 나오는 질 좋은 쌀의 원천이라고 할 수도 있다. 

나만의 전철 ‘마운틴 갤러리’는 여기까지다. 이후부터는 사람이 많아 좀 복잡했다. 이렇게 차창을 액자라고 생각한 다음 뒤에 나오는 풍경을 감상하면서 오니 시간이 금방 흘렀다. 눈에 띄는 산과 스마트폰 지도에서 확인한 산을 대조하는 것도 꽤 재미있었다(책이나 영화를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전철을 타고 멀리 가야 할 일이 있다면 나처럼 해보길 권한다. 이것도 분명히 등산이다. 눈으로 읽고 타는 산! 

 
전철 ‘마운틴 갤러리’ 감상팁
 

❶  1호선 천안행 혹은 신창행 열차를 탈 것.

❷ 전철 진행 방향 오른쪽(동쪽을 향해)에 앉으면 더 많은 산을 볼 수 있다.

❸ 좌석의 정 가운데 앉으면 마치 극장에 와있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❹ 급행을 타면 지나치는 역이 많아 스마트폰에 나오는 지도와 대조하기 어려울 수 있다.

❺ 마음에 드는 산이 있다면 바로 다음 역에서 내려 역 주변을 둘러보거나 아니면 산으로 직접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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