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탄생한 양구 용소빙장, 부지런한 클라이머 이명희·박희용이 찍다
박희용이 양구 용소빙폭의 중앙 믹스루트를 오르고 있다. 그는 아이스클라이밍 공식 세계 1위 자리에 여러 차례 올랐다. 게다가 해외 원정 등반 경험도 풍부하다. 한마디로 그는 노련했다
오늘은 날씨가 포근하다. 전날까지만 해도 매서운 영하의 날씨가 계속 이어졌다. 설악산 빙폭에 가려다가 계획을 바꿔 강원도 양구 용소빙벽장을 찾았다. 공교롭게도 이날 날씨가 포근해서 설악산 소승폭은 얼음이 무너졌다고 한다.
빙벽은 계절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는다. 날씨가 매서울 때 빙벽은 그야말로 강력한 싸움꾼 같다. 아이스바일이 꽂히지 않을 정도로 단단해서 그 앞에 서면 몸이 쉽게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기온이 올라가면 그 기세등등했던 청빙들은 비실비실 힘을 못 쓰고 얌전해진다. 그래도 대부분의 아이스클라이머들은 단단한 빙벽을 좋아한다. 그래서 물러지기 전에 부지런히 이곳 저곳 다니느라 클라이머들은 겨울에 더 바쁘다.
양구 용소폭 전경. 코스가 따로 나눠져 있지 않다. 크게 가운데 중앙벽을 중심으로 좌벽, 우벽으로 불린다. 클라이머들을 위한 빙장은 작년부터 오픈됐다.
오늘은 이명희(노스페이스클라이밍팀)와 박희용(노스페이스클라이밍팀)이 함께 줄을 묶는다. 미리 빙벽장 앞에서 박희용이 기다리고 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장비를 착용했다. 지금 그는 국가대표 스포츠클라이밍팀 코치를 맡고 있고, 실내암장도 운영하고 있다. 여러 가지 일들을 수행하느라 바쁘다. 장비를 착용한 박희용이 대뜸 말을 꺼낸다.
“형 오늘 빨리 마치죠.”
“그래 바쁜 몸이니 그러자”라고 했는데, 혹시 오늘 다른 일정이 있는가 싶어 물어보니 “밤낚시 가야 해요! 어둡기 전에 밑밥도 만들어야 하고, 낚시할 채비를 해야 해서요”라고 말한다. 나는 그저 웃기만 했다.
중앙벽 얼음 구간을 오르는 박희용. 그는 이날 바빴다. 촬영을 마치고 밤낚시를 가야 한다며 등반을 서둘렀다
낚시 갈 마음에 조급한 모양인지 그는 재빨리 로프를 설치하고 이곳 저곳을 찍자며 촬영감독 역할을 자처한다. 그러다 보니 나도 거기에 휘말려 분주하게 촬영을 시작한다. 선수시절이나 지금이나 폴짝 폴짝 뛰는 성격은 여전하다. 선수 때 그는 작은 신장에도 불구하고 영리한 경기 운영으로 아이스클라이밍 세계 랭킹 1위 자리에 오랫동안 머물렀다. 그는 스포츠클라이밍 말고도 등반의 여러 분야를 골고루 섭렵한 등반가다. 유럽 알프스 북벽 등반을 비롯해 히말라야 벽등반 경험도 많다. 나이에 비해 두터운 기량을 지녔다.
등반만 하기도 바쁠 것 같은데 낚시까지 한다니! 그는 이것마저 대충하지 않는다. 제법 먼 바다에 배타고 나가 큰 고기를 들어올리는 준프로급 낚시 마니아다. 그는 지금 밤낚시를 가기 위해 얼음 위에 열심히 스크루를 돌려 박고 있다.
“팍!” 얼음에 바일을 꽂고 있는 이명희. 최근 그녀가 기뻤던 때는 몇 십년 전 함께 산에 다녔던 선배를 다시 만난 순간이었다.
용소빙장이 본격적으로 빙벽 동호인들에게 문을 연 때는 작년이다. 올해로 2년째인데, 토지소유주인 김종우(광치령주유소 대표)씨는 13년 전 당시 속초와 서울을 오가는 여행객들이나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자 사비를 들여 얼음을 얼렸고, 이것이 점차 규모가 커지면서 많은 관광객들이 몰렸다. 작년에 이것을 본 클라이머들이 힘을 보탰다. SCS지우알파인클럽과 인천 산악구조대, 한국산악회 등 많은 등반 동호인들이 빙장 조성에 동참, 지금의 용소빙장으로 재탄생했다.
김종우씨는 “등반을 즐기는 데 첫째 조건은 안전입니다. 안전 수칙을 어기는 행위가 보이면 즉각 조치를 취합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또 “확보자는 본인 확보에 먼저 신경을 쓰고 등반자는 초반에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며 확보물 4개를 기본으로 설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빙벽장 주변 또한 늘 깔끔해야 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얼음판 위에서 살금살금 등반 준비를 하고 있는 이명희. / 이날 얼음은 무른 상태였다. 그럼에도 거침없이 등반 중인 박희용.
빙장은 폭이 200여 m, 좌측 벽은 높이 50m 정도, 중앙벽은 40여 m, 우측 벽은 30여 m 된다. 등반 난이도가 다양해 빙벽등반을 즐기기에 제격이다.
이명희가 중앙벽을 오르기 시작한다. 오버행으로 이루어진 바위는 거대한 얼음기둥을 만들어 멋진 형상을 만들어낸다. 가뿐하게 첫 피치를 끝내고 내려온 이명희는 얼음이 물러서 등반보다 확보물 설치가 더 어렵다고 한다. 강빙도 확보물 설치가 어렵지만 물렁한 얼음 역시 그렇다.
이명희는 벽 앞에 있을 때 눈빛이 가장 빛난다.
“내가 요즘 등반하면서 가장 기쁜 게 뭐냐 하면, 몇 십년 전 산에서 함께 등반했던 선배들을 지금 다시 만났을 때야.”
이명희도 선배들처럼 오랫동안 산에 다니고 싶다는 뜻일 것이다. 두 등반가는 등반을 마무리 하고 장비를 챙긴다. 둘 중 박희용의 속도가 더 빠르다. 밤 낚시하러 양양에 가야 한단다.
“누나, 잘 보고 있죠?” “그래, 조심해야 해. 잘 살피고!” 고수들은 벽을 가리지 않고 늘 신중하다.
Info
용소빙벽장
내비게이션 주소 강원 양구군 국토정중앙면 가오작리 1092-2
등반 가이드 제한적인 등반예약제로 운영하며 다음카페 ‘SCS지우알파일인클럽 (http://cafe.dum.net/jiwoorock)’ 국토정중앙면 용소빙장 예약방 이용한다.
빙벽등반 예약신청·빙벽장 이용 면책동의각서 서약- 허가·빙벽장 이용
(광치령주유소 대표 김종우 010-5361-3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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