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등반] 이탈리아 돌로미티 콜포스코 빙벽 등반
동굴 안 두 번째 확보지점으로 향하는 베네데타. 4~5m 간격으로 확보물을 설치하는 모습이 능숙하다.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은…예수님께서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사건’을 연상시키면서 나다나엘 역시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목격’하게 될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2009년을 ‘하늘이 열린 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김수환 추기경은 2009년 2월 16일에 돌아가셨고, 노무현 대통령은 5월 23일에, 우리의 ‘영원한 여동생’ 고미영은 7월 12일 낭가파르바트 등정 후 하산하다 실족해 사망했다. 또한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 수영 선수는 8월 4일, 한국인 최초의 노별 평화상 수상자이신 김대중 대통령은 8월 18일,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은 6월 26일 사망했다.
2022년을 맞이하자마자 10여 일간 빙벽등반 사고가 연이어 일어났다. 1월 1일 판대아이스파크에서 30m 추락 사고를 시작으로, 2일에는 내촌 빙벽장에서, 7일에는 봉화 창량산 얼음달폭포에서, 8일에는 판대아이스파크에서 다시 추락 사망사고가 일어났다. 9일 양구 광치령 용소빙벽장에서 추락사망 사고가 일어나면서 잠시 쉴 틈도 없이 빙벽등반 사고가 일어났고, 판대를 비롯한 여러 빙장이 폐쇄되는 초유의 사건이 일어났다.
지구 온난화로 빙벽등반 시즌은 해가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몇몇 등반자의 사소한 실수로 빙벽 등반 시즌을 통째로 날릴 법한 위기에 몰렸다.
가래비빙장에서는 링 카라비너에 로프를 연결하고 톱 로핑 등반 중 추락 사고가 빈번하게 생겼다. 두꺼운 겨울 장갑을 끼고 8자 매듭을 벨트에 고정하는 게 귀찮아 링 카라비너로 로프를 고정하고 등반하는데, 이때 링 잠금 장치를 제대로 안 한 탓에 등반하다가 추락하면서 로프가 빠져나가는 사고가 생기는 것이다. 이에 가래비빙장에서는 링 카라비너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초단의 조치를 취했다.
필자의 장비 사이로 보이는 오스트리아팀의 후등자가 혼신을 다해 등반을 하고 있다.
필자가 한국에서 빙벽 등반을 했던 1970~1980년대에 비하면 현대 장비나 기술이 훨씬 많이 발전했지만 선등자가 자신의 등반실력을 과시하려고 확보물을 제대로 설치하지 않고 등반하는 사고는 여전히 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등반을 잘하는 선등자들은 ‘자아도취형’ 등반을 하기보다는 남들이 보고 있으니 더욱 모범적인 등반을 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빙벽등반 인구에 비해 빙장이 모자라 세계에서 인공빙장을 가장 많이, 잘 만드는 것은 자랑할 만하지만 휴일에 낚시터처럼 옆으로 줄줄이 서서 등반하는 것을 보면 아찔하기만 하다. 수없이 떨어지는 낙빙과 추락 장비들은 포화가 터지는 전쟁터 같다.
유럽의 경우, 암벽등반뿐만 아니라 빙벽등반을 할 때에도 더블 로프를 사용한다. 예전에는 8mm 이상 굵기의 로프 두 동을 사용했는데, 요즘은 로프 제작기술이 발전해 6.5~7.5mm 로프를 사용하기도 한다.
가장 큰 문제는 확보물 설치이다. 유럽에서는 선등자가 평균 5m 거리마다 확보물을 설치한다. 암ㆍ빙벽 모두 같다. 빙벽이 암벽보다 쉽게 느껴지지만 위험도는 몇 배나 더 크다. 5m 간격으로 확보물을 설치했더라도 추락하면 보통 12m 정도는 떨어진다. 물론 확보자가 확보를 제대로 보았을 때 이야기다. 위로 5m, 아래로 5m에 로프의 신축성과 확보자가 얼마나 느슨하게 확보를 보는가에 따라 다르다. 빙벽에서 12m 추락은 위험하다. 로프가 얼어 있다면 절단의 위험까지 있다. 금년 초에 일어난 사고에서는 5m 추락으로 사망한 일도 있었다.
두 번째 마디 확보점으로 올라서는 필자 뒤로 눈 속에 파묻힌 동화 같은 코르바라 마을이 보인다.
매너 좋은 유럽의 젊은 클라이머들
콜포스코Colfosco는 돌로미티 파소 가르데나Passo Gardena와 알타 바디아Alta Badia 사이 협곡에 있는 빙벽들이다. 스키장을 30~40분 정도 걸으면 바로 등반을 할 수 있어 많은 초ㆍ중급 아이스 클라이머들이 찾는다. 몇 년 전 콜포스코의 거의 모든 빙벽을 등반했었다. 올해 첫 등반은 베네데타와 함께했다.
슬로프를 가로질러 협곡의 급한 경사를 오르니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앞선 클라이머들이 러셀을 해두어 그나마 쉽게 빙벽 아래에 도착했다. 다행히 제일 먼저 도착해서 바로 등반을 시작했다.
첫 피치 30m는 쿨와르couloir(산의 사면이 패어 험하고 가파르게 드리워진 협곡)의 눈과 빙벽이 혼합된 지역이라 쉽게 올라 볼트 2개에 확보를 했다. 베네데타가 날렵하게 중단 30m의 직벽을 오르며 약 5m 간격으로 스크루를 설치했다.
두 번째 마디 확보점은 볼트 2개와 체인이 있어 여러 명이 확보를 할 수 있다. 필자의 툴을 걸어두고 선등자 확보를 했다.
제2피치에 거의 가깝게 올라 밑에서 등반 시작을 기다리고 있던 오스트리아 팀에게 우리 루트 오른편으로 올라도 된다고 하자 그들은 몇 번이고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비교적 폭이 넓은 빙벽이었지만 앞선 팀이 등반하고 있으면 허락 받기 전에는 아래에서 기다리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 유럽의 등반 스타일이다.
내가 있는 확보점에는 볼트가 2개 있어 체인과 로프를 설치해 여러 사람이 매달려 있을 수 있지만 오스트리아 팀 선등자는 나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오른편으로 더 올라가서 스크루 2개를 설치하고 확보점을 만들고 있었다.
젊은 친구들 하는 행동이 귀여워 칭찬을 해주니 얼굴이 붉어지며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여러 질문을 한다. “한국에서 왔고, 이탈리아 돌로미티에서 36년간 살고 있고, 등반을 근 50년간 하고 있다”고 하니 머리를 90도로 숙이며 동양식 절을 한다.
내 막내아들보다 더 어린 10대 후반의 청년들이 보고 있어 나름대로 내 스타일로 가볍게 2피치를 등반했다. 한 손으로 피켈을 박고 3~4번을 뛰어 오르는 식으로 등반하니 동영상을 찍어도 되냐고 물어본다. 이들도 거의 5m에 확보물 하나씩을 꼭 설치하며 조심스럽게 등반하는 모습을 보니 귀엽고 흐뭇해 계속 칭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굴을 벗어나 3번째 마디를 올라가는 베네데타.
산에서는 늘 긴장할 것
올해 호랑이해가 혹시 산악인들에게는 ‘하늘이 열린 해’일지 모른다. 이런 해에는 더욱 더 조심해야 한다. 안전의 가장 중요한 점은 기초를 지키고 기본을 존중하는 것이다. 같이 등반하는 팀의 선등자가 확보물을 설치하지 않고 오르면 굳이 크게 소리 질러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칠 필요가 없다. 이런 경우 확보자가 로프를 살짝 한두 번 당겨 신호를 보내면 선등자가 ‘아차!’ 하고 확보물을 설치한다.
선등을 하다 보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올라가서 확보하지 뭐’ 하다가 사고가 난다. 사고는 어려운 루트에서는 잘 나지 않는다. 늘 긴장하고 집중력을 높이기 때문이다. 사고는 아주 쉬운 루트에서, 기본과 기초를 무시했을 때 크게 난다. 난이도에 상관없이 늘 몸이 긴장하도록 훈련을 해야 한다. 부디 금년 한 해 우리 산악인들에게는 하늘이 안 열리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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