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공단·환경단체 VS 산림청·산악단체·지역주민… 의견 조율 주체 없어
남한 내 백두대간의 북쪽 끝, 진부령. 사진은 백두대간 에코트레일로 구간 종주를 마친 월간<山> 취재팀.
백두대간이 세상에 다시 드러난 지 40여 년이 지났다. 이 기간 동안 수많은 산꾼들이 백두대간을 지났고, 백두대간에 관한 논의도 활발하게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백두대간의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 ‘백두대간 보호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산꾼들은 불만이다. 그동안 개방을 요청했던 비개방구간, 즉 백두대간 중 비법정탐방로 구간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전면 개방이 아니더라도 우회할 수 있는 적당한 대체 노선도, 탐방예약제 역시 도입되지 못했다. 이번 기사에서는 백두대간이 다시 세상에 알려진 후 40년간의 역사를 개방 논의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지난 2018년 6월 15일 국립공원공단 회의실에서 백두대간 종주 개방과 관련 공단 직원이 경과를 설명하고 있다.
백두대간이란?
먼저 백두대간에 대해 알아둘 필요가 있다.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지리산 천왕봉까지 이어지는 도상거리 1,625km의 산줄기다. 산림청에 따르면 백두대간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문헌은 이중환의 <택리지>(1751년)며 이후 1760년 이익의 <성호사설>에서는 백두정간이라는 용어도 나타나며 산맥 상황을 나름대로 제시했다고 한다.
백두대간을 체계화한 것은 1770년경의 일이다. 여암 신경준은 <산경표>에서 백두대간이라는 용어뿐만 아니라 1대간(백두대간), 1정간, 13정맥으로 산자분수령의 원리에 입각해 조선의 산맥체계를 정리했다.
일제강점기 등을 거치며 백두대간이라는 개념은 잠시 잊혀졌다가 1980년대 <산경표>를 수집한 고故 이우형 선생에 의해 재발견된다. 이후 산악단체와 산악전문지를 중심으로 백두대간이 알음알음 알려지기 시작했고, 산악인들 사이에서 백두대간 종주붐이 일기 시작했다. 1990년대 초 본격화된 백두대간 종주는 2000년대 들어서 정점에 이른다. 백두대간 지도집 및 보고서들이 불티나게 팔렸고, 등산장비와 야영장비도 발전했다. (김병준 전 대한산악연맹 전무이사)
구룡령 고갯길. 오대산국립공원 내 백두대간 비개방구간을 우회하려면 구룡령으로 내려선 뒤 만월봉까지 올라섰다가 다시 내려오는 비효율적인 동선을 감수해야 한다.
백두대간 보호 법률이 만들어지다
백두대간이 일반시민들에게도 낯선 개념이 아니게 되면서 백두대간의 지형적, 문화적, 생태적 가치도 재조명됐다. 특히 한반도의 중심 생태축이자 다양한 야생동식물의 서식처이므로 보호해야 한다는 지적이 대두됐다.
녹색연합은 1996년부터 백두대간보전운동을 펼치면서 백두대간을 한반도 자연생태계보전의 핵심영역이라고 강조했다. 녹색연합은 이듬해인 1997년 여러 차례 종주와 답사를 통해 ‘백두대간환경대탐사’와 ‘백두대간보고서’를 간행해 훼손 정도를 파악했다.
당시 보고서에 따르면 백두대간 구역은 해마다 산림면적이 감소되고 있었다고 한다. 특히 광산, 댐, 도로, 위락시설, 농경지, 송전선로, 공원묘지, 군사시설 등으로 인해 산림생태계 훼손과 잠식이 심각했다.
이에 2002년 민주당 이정일 의원이 백두대간보전·관리 법안을 발의한다. 다만 소관 부처를 놓고 관할 부처 간 이견을 좁히지 못하다가 국무조정실을 통해 기본원칙과 기준은 환경부가 마련하고, 정책 집행은 산림청이 주관하게 됐다. 그렇게 등장한 것이 2005년 ‘백두대간 보호에 관한 법률’이다. (장윤선 <한국의 환경운동과 환경거버넌스 형성에 관한 연구·백두대간 보호에 관한 법률의 제정과정을 중심으로)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다양한 백두대간 관련 서적이 잇달아 출판됐다. 사진은 민병준씨의 <백두대간 가는 길>.
백두대간 보호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던 2005년부터 백두대간 종주문화가 급격히 확산된다. 특히 백두대간 전 구간 종주 욕구가 급증해 비개방구간에 대한 개방압력이 높아졌다. 비개방구간은 대부분 국립공원에 속해 있었다.
이러한 양상은 백두대간을 보호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단체와 탐방과 종주, 이용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단체 간의 갈등으로 이어졌다.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공단을 필두로 환경단체들은 백두대간을 자연자원과 경관으로 보존 및 보호하자고 목소리를 냈고, 종주를 열망하는 산악단체들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원하는 지역주민은 개방을 요구했다. 산림청 또한 국가숲길 1호로 백두대간을 사업화하려는 복안을 갖고 있었다. 당시 각 주체별 백두대간 종주에 대한 인식은 이러했다.
‘환경부, 국립공원공단, 환경단체 및 전문가들은 백두대간이 한반도의 핵심 생태축이며 생태통로의 기능을 하고 있어 종주코스가 아니어야 하며, 훼손을 막기 위해 개인적 성취와 만족을 위한 종주산행은 제한돼야 한다고 봤다.
산림청, 산악단체, 지자체 및 지역주민은 백두대간 종주가 국민의 정당한 권리이자 욕구로서 인정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또한 백두대간의 훼손은 종주가 아닌 도로건설, 송전선탑, 풍력발전기 등이 원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또한 무리한 백두대간 마루금 통제가 샛길을 만들고 야간산행을 발생시켜 생태계를 훼손한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한편 주민들은 백두대간을 고랭지 농업, 관광위락사업, 산야채 채취 등 경제적 삶의 터전으로 여겼다.
반면 일부 환경단체와 전문가들은 백두대간 종주산행이 국민의 기본권으로 인정할 필요가 있으며 무조건 통제하기보다 올바른 종주문화를 형성해 백두대간을 교육의 장으로 만들어 고유의 생태 및 환경가치를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 이선우, 김광구 <백두대간 이용과 보전에 관한 갈등사례연구>
백두대간 종주 관련 기사 검색량 추이. 2009년을 정점으로 지속적으로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다. 자료 박경이 <백두대간 마루금 등산로 이용행태 및 효과성 연구>.
보호와 개방의 대립이 고조되자 각 이해당사자들로 구성된 갈등해소 협의체가 등장한다. 2011년 8월부터 11월까지 열린 ‘국립공원 내 백두대간 보전과 이용에 관한 갈등조정위원회’다. 이 위원회의 합의안에 따라 2012년 3월부터 11월까지 ‘백두대간 보전과 지속가능한 이용을 위한 시범사업 TF’가 구성돼 활동했다.
이 협의체에선 백두대간이 왜 보존의 대상이고 어떻게 이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인 실증적 조사를 바탕으로 최종 결정하기로 합의하는 성과가 있었다. 또한 가장 먼저 국립공원 출입금지지역 불법 이용자들의 산행 자제를 촉구하는 공동캠페인 등의 노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시범사업 TF에서 실태조사를 토대로 도출한 결론은 당시 비개방구간이었던 구간 중 4개 구간에 탐방예약제를 시범 적용해 보자는 것이었다. 지리산 성삼재~정령치, 설악산 단목령~점봉산, 미시령~대간령, 속리산 월령대~대야산 구간이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이 사업은 실행되지 못했다. 이선우, 김광구 교수는 당시 회의를 이렇게 분석했다.
‘그러나 시범사업 5차 본회의에서 한 환경단체 대표는 갑자기 설악산 미시령~대간령 구간의 시범사업은 미시령 구도로의 폐쇄를 전제조건으로 할 것을 요구했다. …(중략) 실태조사를 담당한 전문가조차도 구도로와 연계되어 논의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환경단체는 미시령 구도로 논의가 전제되어야 하고, 현 단계에서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결론을 내릴 수 없다고 했다. 이로써 2년여에 걸친 백두대간 보존과 지속가능한 이용을 위한 사회적 합의는 도출되지 못했다.
… (중략) 합의를 반대한 환경단체의 편협한 시각이 우리나라 환경보호의 획기적인 진전을 가로막았다고 할 수 있다. 현재와 같이 무분별한 등산문화로 백두대간이 훼손되어 가는 현실을 외면한 처사였다고 할 수 있다.’
비개방구간을 포함해 백두대간의 일부 구간은 별도의 이정표가 설치돼 있지 않고 산악회 리본이 길잡이 역할을 한다. 사진 성예진
2020년 결성된 ‘공대협’이 산악계 대변
2년 동안의 갈등조정이 흐지부지된 이후로 현재까지 백두대간 개방 논의는 10여 년간 소모적인 공방으로만 전개되고 있다. 그나마 국립공원공단이 2008년부터 2016년까지 5개 공원의 6개 비개방구간을 개방했지만, 종주 편의를 크게 개선해 주진 못했다. 이따금 산악계와 국립공원공단, 환경부가 한 자리에 모여 백두대간 개방을 논의하지만 늘 평행선을 긋고 별다른 대책을 도출해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인 산양. 산양의 보전을 위해 백두대간 보호가 필요하다는 것이 국립공원공단의 입장이다
이해단체의 사정에 정통한 전문가들은 여러 가지 이유를 꼽고 있다. 먼저 과거에 비해 자연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진 것, 국립공원공단의 완강한 태도로 인해 개방요구 주체들의 피로도가 누적됐다는 것, 준법의식의 상승 등이다.
또한 백두대간 종주의 인기 자체가 과거에 비해 줄어들어 개방 동력이 상실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설득력이 있다. 백두대간을 종주할 정도의 구력을 갖춘 산꾼들은 이미 대부분 종주를 완료해서 개방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며, 새롭게 종주하려는 사람들 수는 많지 않다는 것. 신규 종주자가 나타나도 이들은 온라인에 만연한 ‘완벽히 음성화된 백두대간 종주 정보’를 습득해 국립공원공단의 단속망을 피해 종주한다는 분석이다.
한국등산트레킹지원센터의 설문조사결과 전체 응답자의 75.0%가 백두대간 마루금 등산로를 타인에게 추천할 의사를 보였으며, 부정적 응답은 3.7%로 나타났다. 자료 박경이 <백두대간 마루금 등산로 이용행태 및 효과성 연구>.
등산 트렌드의 변화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 접근부터 산행까지 1박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백두대간 종주보다는 100명산 위주의 당일산행이나 둘레길 등으로 보편화됐다. 또한 장거리 트레킹 욕구는 해외 트레킹으로 옮겼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9년 내국인 해외출국자 수는 880만 명에 불과한데 10년 후인 2019년은 2,890만 명에 달할 정도로 해외여행이 일반화됐다는 점에 근거한 주장이다.
2022년 현재, 백두대간 개방 논의는 다시 시작되고 있다. 합법적인 탐방로만 준수하는 종주자들은 단 2km의 비개방구간 때문에 40km를 우회해야 하는 불편이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이에 국내 6개 대표산악단체들이 모여 결성한 국립공원 공원계획 대책협의회에서 지속적으로 산악계의 목소리를 공단에 전달하고 있다. 전면적인 개방 요구가 아니라 해당 구간에 대한 과학적인 모니터링 후, 탐방예약제 도입을 건의하고 있다. 과연 산악계의 목소리는 이번에도 공염불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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