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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한국의 명승 명산] 천하 명당에 경관 빼어난 백암산

by 白馬 2022. 3. 1.

장성 백암산 백학봉 일대
백양의 전설과 백학 봉우리, 마침 눈 내려 ‘3백의 미’ 갖춰 황홀경

 

백암산 백학봉 정상 부근에서 내려다본 백양사와 첩첩산중 능선들이 매우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조선 초기 명망가 정도전 등의 자취와 한반도 내륙에서 유일한 천연기념물 비자나무 군락지, 또 다른 천연기념물 백양사 고불매, 그리고 고생창연한 누각 쌍계루, 흰 학과 같은 백학봉이 조화를 이룬 절경 단풍과 설경…. 어느 하나 놓칠 수 없는 장면들이다. ‘대한 8경’에 포함될 뿐만 아니라 한국 최고의 명당 터에 자리 잡은 운문암과 신비의 샘물 영천수도 이곳에 있다. 역사적 자취와 자연경관 모두 어디 내놔도 손색없다. 이 모든 걸 아우르는 산이 장성 백암산白巖山(722m)이다.

 

백암산 들어가는 초입, 백제시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백양사 입구에 있는 누각 쌍계루雙溪樓가 방문객을 맞는다. 모두들 여기서부터 발길을 뗄 줄 모른다. 연못에 비친 쌍계루는 한 폭의 그림이 아니라 실화다. 이보다 아름다울 수 없는 자연경관이다. 출사가들의 주요 출사지이다. 이 장소의 숱한 사진들이 여기저기 떠돈다. 그 누각의 족보를 알면 정말 예사롭지 않다는 걸 느낄 수 있다. 1370년 무너져 1377년 복구했으며, 고려 말 충신 정도전·이색이 기문을 남겼다. 고려 수도는 개성이다. 개성에 있던 인물이, 아니 관리가 오죽 유명했으면 이곳에 왔을까. 그리고 기문과 기록까지 남겼을까. 그 인물 자체가 충신으로 한국에 상징적으로 남아 있는 인물 아닌가. 뿐만 아니라 남한에 목은과 포은이 동시에 기록을 남긴 장소가 몇이나 될까.

 

백양사 전경과 경내에 있는 연못과 어울린 백학봉이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

 
목은·포은·정도전 자취도 고스란히 전해

이색의 <백암산정토사쌍계루기>에 ‘쌍계루는 두 계곡의 물이 합쳐진다고 해서 명명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정토사淨土寺는 중건 당시 명칭이며, 조선시대 들어 백양사로 바뀌었다. 631년(무왕 32) 승려 여환이 창건 당시에는 백암사라고 불렀다. 고려시대 들어 중연中延이 중창한 1034년(덕종 3) 정토사라 개칭했다. 이어 조선시대 환양선사가 절에 머물면서 설법과 염불을 하자 흰 양들이 몰려오는 일이 자주 발생해 이를 보고 사찰 이름을 백양사로 부르게 됐다고 전한다. 흰 양을 구했다는 유래가 절 이름을 바꾸게 했다는 것이다. 백암사→정토사→백양사로 바뀌었다. 그때가 1574년(선조 7). 이후 백양사로 굳어져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목은과 포은은 기문과 더불어 빼어난 경관을 감상한 내용의 시도 남겼다. 조선시대 문신 이민서의 시문집 <서하집>에 ‘백암산 정토사에서 벽에 걸린 포은의 시를 차운하다. 白巖山淨土寺次壁上圃隱韻’가 전한다.

‘산수를 좋아하고 중도 좋아하는데/ 두루두루 유람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로세./ 다리 힘 해마다 줄어들어 탄식하건만/ 그윽한 정은 가는 곳마다 더해짐을 깨닫누나./ 돌구멍의 신령한 샘물 천고의 명승이요/ 찬 연못의 조각달 한 곳에 맑구나./ 훗날 혹시 은거할 계획 실현한다면/ 아침저녁으로 이 누에 뜻을 다해 오르리라.’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정도전의 자취가 서린 쌍계루.

 
이민서가 포은을 떠올리며 쓴 시이다. 정몽주가 쓴 시는 <포은집>에 나오며, 쌍계루 옆 안내판에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시 부탁하는 백암사 중을 지금 만나/ 붓 잡고 끙끙대며 짓지 못해 부끄럽네./ 청수가 누대 세워 명성 비로소 무거워졌고/ 목옹(목은 이색 지칭)이 기문 지어 값이 또 더해졌도다./ 아지랑이 아스라하고 저무는 산은 붉은데/ 달빛이 흘러 돌아 가을 물은 맑아라./ 세속에서 오래도록 시달렸는데/ 옷 털고 그대와 함께 오를 날 언제일까.’

 

기문으로 1,000여 년 전에 가까운 목은과 포은을 동시에 만날 수 있다. 더욱이 이색의 기문에는 조선 개국 공신 정도전이 등장한다. 빼어난 경관을 통한 정적政敵 이전의 만남이다.

 

‘(전략) 나에게 그 누각에 이름 지어줄 것을 청하면서 삼봉三峯 정씨鄭氏(정도전 지칭)의 기문도 함께 보여 주었다. 절의 내력은 상세하나, 시내가 어떤지 누각이 어떤지는 모두 생략하고 쓰지 않았으므로 그 이름을 짓기가 어려웠다. 이에 절간에게 물으니, 절이 두 시냇물 사이에 있는데, 물이 절의 남쪽에서 합치며, 물의 근원은 동쪽이 가깝고 서쪽이 멀기 때문에 크고 작음이 있는데, 합쳐서 못이 된 뒤에 산을 나와서 흐른다고 한다. (중략) 그 청을 어기기 어려워서 골짜기에서 들은 말을 따라 쌍계루라고 이름 지었다. (후략)’

 

백양사의 유래를 낳게 한 벽화가 약사암 벽에 그려져 있다.

 

쌍계루라는 명칭은 목은 이색이 작명한 사실을 밝히고 있다. 쌍계루에서 백양사계곡을 끼고 조금 올라가면 청련암이 나온다. 이어 ‘백양白羊의 진원지’ 약사암으로 향하는 방향에 비자나무 군락이 있고, 명승 백학봉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백학봉 입구 초입이 바로 한반도 내륙의 유일한 천연기념물 비자나무숲 군락지이다. 남한에 이만한 군락지도 없다. 내장산과 백양산이 비자나무 북방한계선이다. 지금은 지구온난화로 위도가 조금 올라간 상태로 알려져 있다.

 

약사암이 바로 환양선사가 설법을 전할 때 흰 양들이 몰려왔다고 전하는 절이다. 약사암 벽에 벽화로 관련 사연을 보여 주고 있다. 약사암 위에 신비의 샘이 흘러나오는 영천수가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영천굴은 정토사 북쪽 바위 중턱에 작은 암자를 지었는데 샘이 있다. 굴 북쪽 작은 틈에서 솟아나오는데 비가 오나 가무나 한결 같다’고 기록하고 있다. 영천암 영천수를 마시기 위해 많은 사람이 찾는다. 또한 기도발도 좋다고 한다. 영천암 안쪽 바위 안에 들어가 고시공부 해서 합격한 사람도 여럿 있다고 전한다. 약사암 주변은 남한의 3대 기운처 중의 한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약사암은 암벽 바위 속에 끼인 형국이다. 기운이 넘치는 듯하다. 도를 닦는 사람들은 기운을 받기 위해 자발적으로 이런 곳에서 수도한다고 한다.

 

그 꼭대기 봉우리가 흰 학이 날아가는 형상의 백학봉이다. 정상에 도착하면 멀리서 바라보는 백학봉의 명성에 비해서 실망할 수밖에 없다. 백학은 온데간데없고 정상 비석만 덩그러니 있다. 학인지 돌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의 일반 봉우리에 불과하다.

 

백학봉 아래 영천굴 안에 있는 관음전. 

 

명당에 인촌 김성수 어머니 묘 안장

하지만 천하의 명당 터가 백학봉 인근에 있다. 운문암 가기 직전에 인촌 김성수 선생의 어머니 묘가 있다. ‘어떻게 이 높은 고도에 묘지를 정했을까’ 하는 의구심과 함께 절묘한 위치라는 생각이 동시에 떠오른다. 고도계를 보니 630m를 가리킨다. 해발 600~700m가 인간이 살기 가장 좋은 고도라고 한다. 기압골이 바뀌는 완충고도로 매우 안정적인 높이로 알려져 있다. 그 절묘한 높이 못지않게 앞 봉우리가 더 절묘하게 다가온다. 기운이 빠져 나가지 않을 눈높이보다 조금 더 높은 봉우리가 앞을 가로막고 있다. 그 복은 자식들에게 오롯이 전달된다고 알려져 있다. 발복의 기운이다. 그래서 이곳이 명당으로 알려져 있는가 싶다.

 

인촌 김성수 어머니의 묘지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호남 3대 명당으로 꼽히는 백암산 운문암이 자리잡고 있다. 대둔산 태고사와 변산반도 월명암과 함께 남한의 3대 영지처靈地處로 꼽히기도 한다.

백양사와 백학봉, 그리고 천하의 명당. 그날따라 눈이 내려 아름다운 설경과 어울린 ‘3백의 미美’는 한마디로 황홀경이다. 일반적으로 정신세계의 고수들은 흰옷을 입는다. 기독교에서는 마리아가 흰옷을 입고 있고, 불교에서는 백의관음이라고 한다. 백양과 백학, 그리고 백설, 3백의 세계를 겨울 백암산이 보여 준다. 정말 다른 차원의 정신세계를 보는 듯하다. 겨울 산행의 백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백학봉 아래 영천굴 안에 있는 신비의 샘물 영천수.

 

이 아름다운 경관이 국가문화재 명승으로 지정되는 건 당연하다. 문화재청이 2008년 명승으로 지정하면서 밝힌 이유는 다음과 같다.

 

‘장성 백암산 백양사와 백학봉 일대는 암벽과 숲 경관이 매우 아름다워 예로부터 대한 8경의 하나로 꼽혀 왔다. 전라남도와 전라북도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백암산은 내장산국립공원에 포함된 산으로서 내장산과 더불어 단풍이 특히 유명하며, 천연기념물 장성 백양사 비자나무숲을 비롯하여 1,500여 종의 다양하고 풍요로운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백양사는 대한불교 조계종의 제18교구 본사로 원오국사(1215~1286)와 각진국사(1270~1355) 등 고승들이 머물렀던 유래가 깊은 사찰이다. 백양사의 창건유래가 담긴 정도전의 <정토사교류기>와 이색, 정몽주, 김인후, 박순, 송순 등 유명인들이 탐방하고 백학봉과 쌍계루의 풍광을 읊은 시와 기문을 볼 때 이곳은 자연경관으로 유명한 명승이다. 지금도 백양사 대웅전 기와지붕과 어우러진 백학봉, 연못에 비치는 쌍계루와 백학봉의 자태는 탄성이 절로 나올 정도이며, 많은 사진작가들이 찾고 있다.’

 

고지도와 옛문헌에도 국립공원 내장산과 함께 백암산이 그대로 기록돼 있다. 16세기 <동람도>에 내장산과 백암산이 나란히 표시돼 있다. 이후 다양한 기록에도 빠짐없이 등장하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장성현편에 백암산의 형승을 ‘산은 둘러 있고 물은 굽이쳐 흐르니 하늘이 이룬 것이라네’라고 기록하고 있다.

등산로는 백암산의 장성권역과 내장산의 정읍권역을 넘나드는 내장산국립공원으로 매우 다양하다. 하지만 백양사와 내장사 기준으로 정하면 몇 코스로 선별된다. ▲백양사에서 약사암을 지나 백학봉~정상 상왕봉~사자봉을 거쳐 가인마을로 하산하는 코스는 약 8.5km에 5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백학봉 정상 올라가는 코스가 백암산 등산로 중에 가장 난코스로 꼽힌다. ▲전남대수련원에서 몽계폭포를 지나 한국의 명당 운문암으로 올라가는 코스도 있다. 백양사까지 6.5km에 약 3시간 30분 걸린다. ▲백양사에서 내장사 종주코스도 있다. 백양사에서 약사암을 거쳐 백학봉~상왕봉~순창새재~소둥근재~까치봉을 지나 내장사로 하산하는 코스다. 12km 남짓 되는 거리에 7시간 이상 소요된다. 

 

백암산 백학봉 비석.

 

백양사 입구에 있는 쌍계루와 어울린 연못, 그리고 백학봉도 여느 경관 못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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