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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Pitch by Pitch] 인수봉 정상에 자판기는 없었다

by 白馬 2022. 2. 24.

98년생, 80년대 암벽화 신고 좌충우돌 도전
성균관대 산악부 인수봉 등정기

 

 

‘Pitch by Pitch’는 한 피치 한 피치 앳된 오름짓을 이어가는 대학산악부원들의 진솔하고 톡톡 튀는 목소리를 담은 연재다. 이번 호에서는 등반 중 암벽화가 찢어지는 어려움을 겪었던 성균관대 산악부 조윤서씨의 좌충우돌 인수봉 등정기를 다룬다.- 편집자 주

 

잼을 바른 빵을 떨어뜨리면 하필 잼 바른 면이 바닥에 닿는다고 했던가. 그날은 그런 빵을 수 십 개는 떨어뜨린 듯한 하루였다.

개강 직후 설레는 마음으로 가을학기 신입부원과 함께 북한산 인수봉으로 향했다. 신입부원에게는 백운대 슬랩 이후 두 번째 교육이자 첫 멀티피치 등반이 될 터였다. 나를 포함해 초보 산악인에게 인수봉을 오른다는 것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정규 루트만 80여 개에 달하는 인수봉은 그야말로 우리나라 암벽등반의 성지이므로 이곳을 등반하는 것은 비로소 암벽등반의 세계에 본격적으로 입문했다는 걸 의미한다. 이제 막 튜토리얼을 끝낸 초보 게이머가 되는 셈이다.

나도 지난 여름 취나드B 루트로 인수봉을 완등하고 축하를 받았었다. 정상에 올라 냅다 들이켰던 파워에이드의 맛은 아직까지 생생하다. 나를 끊임없이 헷갈리게 했던 인수봉 정상에 유명한 자판기가 있다는 풍문의 진위도 시원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

 

밑창이 터진 암벽화를 클라이밍 테이프로 임시 수선했다.

 

이번엔 패기 가득한 신입생 둘, 독기 가득한 재학생 셋으로 이루어진 팀이다. 각 부원들의 등반역량을 고려하면 취나드B 1피치를 통해서 오아시스로 간 다음 인수A 변형 루트를 타는 게 가장 적절했다. 이마저도 3피치로 끊어 빠르게 치고 올라갈 요량으로 자일을 4동 챙기기로 했다. 완벽한 계획이었다.

그러나 영화 <기생충>에서 송강호가 그랬다. 인생은 절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신입생 한 명이 깜빡 하고 자일을 챙기지 않았다. 하필이면 이를 하루재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사람은 다섯, 자일은 세 동. 신입생이 자일을 미처 챙기지 못한 것도, 재학생들이 출발 전 그걸 확인하지 않은 것도 모두 어쩔 수 없는 실수인 건 알았지만, 아무튼 쉽지 않은 하루가 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어프로치를 끝내고 보니 원래 가려던 길에 이미 사람들이 붙어 있어 갈 곳마저 없어지고 말았다. 우리와 함께 출발해 다른 길로 가던 중원이네 팀은 안정적으로 1피치 등반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자 마음이 조금 조급해졌다. 호준이와 유진이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빈데길(비어 있는 길을 뜻하는 속어)을 찾아 표류하던 우리는 궁여지책으로 대슬랩에서 인수b로 올라가 아미동길로 빠지는 루트를 선택했다. 아미동길은 처음 올라보는 길이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나도 아직 6개월차 신입부원이라 가을학기 신입생들을 돌보기는커녕 내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 때문에 등반이 지체되는 일은 없어야 했다.

이러나저러나 등반은 시작되었다. 하네스와 헬멧을 착용하고, 암벽화를 신고, 생일선물로 받은 귀여운 초크백을 차고, 급하게 김밥 두세 알을 입에 쑤셔 넣으며 준비를 끝냈다. 대슬랩 등반을 앞두고 저 멀리 우리의 목적지 주변을 맴도는 새들을 보며 함께 되뇌었다. 안전하고 즐겁게 등반하자고!

 

아미동길 초입에서 확보줄에 매달려 세 번째 등반자 신입생 강민석을 기다린다. 선등자 김호준은 조금 더 올라가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곳에서 강민석이 자일 연동을 하지 않은 것을 알게 되었다

 

나, 98년생! 암벽화? 80년대생!

동화였다면 우리 모두 안전하고 즐겁게 등반을 했어야 됐지만, 현실은 달랐다. 산악부실에서 챙겨온 나의 라 스포르티바 암벽화 오른쪽 밑창이 2피치 등반 중 심하게 터지고 말았다. 앞코가 너덜너덜해 처음부터 살짝 불안하긴 했는데 기어코 속살을 드러내고 말았다. 크랙에서 재밍하며 발을 험하게 썼던 게 화근이었다. 남은 피치는 적어도 대여섯 개. 발이 네 개여도 모자랄 판에 한 쪽 발을 못 쓰게 되다니! 나는 순식간에 총 없이 전쟁터에 던져진 군인 신세로 전락했다. 그때 옆 볼트에 확보하고 있던 다른 등반자 선배의 말이 들렸다. 

“이야. 그 암벽화 최소 1980년대에 출시된 것 같은데?” 

1998년생인 나는 그 사실을 알 리가 만무했다. 스무 살을 훌쩍 넘긴 반쪽짜리 암벽화를 신고 확보줄에 매달려 올려다본 하늘은 더럽게도 맑았다. 괜히 서러웠다.

“음. 차라리 맨발로 등반을 시도하는 게 낫지 않을까?” 

정신 나간 생각을 입 밖으로 뱉기 시작할 때였다. 손 놓고 허탈하게 웃고 있던 호준이가 급하게 가방을 뒤지더니 무언가를 꺼냈다. 클라이밍 테이프였다. 그러고는 내 발이 아플 만큼 힘을 주어 테이핑하기 시작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고, 허술하기 짝이 없는 모양새였지만 안 한 것보단 나을 거라고 믿어야 했다. 나는 이제 단검과 함께 전쟁터에 던져진 군인으로 한 단계 신분 상승했다.

 

 

오후 4시경, 중도하강 결정 이후 하강을 하고 있는 안유진, 최재혁(신입생), 강민석(신입생). 유진이가 하강 시스템을 설명하고 있다. 호준이는 가장 먼저 내려갔고 나는 마지막에 내려갔다.

 

클라이밍 테이프는 역시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효과도 있었다. 등반을 하는 건지 엎어져 자는 건지 분간할 수 없는 나의 꼴사나운 몸짓이 대체 무엇 때문인지 유심히 살피던 주변 분들께서 암벽화에 감은 클라이밍 테이프로 사태를 파악하시고 “힘내라”며 응원을 해주기 시작했던 것이다. 갑작스레 쏟아지는 관심에 마치 명절 큰집에서 걸음마를 시도하는 아기라도 된 듯 민망해졌다. 하지만 부끄러움도 잠시 나는 응원에 힘입어 정신을 가다듬었고, 무게중심을 최대한 왼쪽으로 옮긴 다음 재빠르게 크럭스를 통과할 수 있었다.

“너 자일 연동 안 했어?”

아미동길로 들어선 순간 산 중턱에 호준이의 고함이 울려 퍼졌다. 사건인즉, 내 뒤를 이어 등반하던 신입생이 원래부터 자신의 몸 앞에 묶여 있던 자일만 유지한 채, 뒷 자일을 연동하지 않고 등반을 시작해 버린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호준, 나, 신입생 세 명과 남은 등반자 두 명을 이어줄 자일이 없기 때문에 팀이 두 개로 완전히 분리되어 정상적인 시스템 등반이 불가능해진다. 왼쪽으로 쭉 뻗은 트레버스 지형은 상황을 더욱 까다롭게 만들었다. 그 상태에서 신입생을 하강시켜 다시 자일을 묶고 오게 할 수도 없고, 뒤이어 오던 유진이를 갑자기 선등시킬 수도 없었다.

생각지도 못한 사고였다. 정신이 멍해졌다. 휴식을 취하던 호준이 얼굴에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시스템 등반에서는 언제나 전체적인 상황을 인지하고 있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나 또한 계속 뒷사람을 챙기고 상태를 살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순간 두 번째 등반자로서, 그리고 한 학기 먼저 산악부에 들어온 사람으로서 이 사태에 책임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너무나 미안했다.

 

 

밑창 터진 암벽화를 급히 테이핑해 주고 등반을 시작하려는 김호준, 당황스럽지만 애써 웃어보려는 필자. 왼쪽부터 김호준, 조윤서, 강민석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마지막 후등자였던 신입생 재혁이가 인수b 1피치에서 볼트 위로 추락하며 팔에 상처를 입고 말았다. 재혁이는 큰 일 아니라는 듯 금세 옷을 털고 일어났지만 여러 모로 더 이상의 등반은 불가능해 보였다. 결국 호준이는 거기서 팀원 전원의 중도 하강을 결정했다. 우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새들은 야속하게도 하강하는 우리 머리 위를 계속해서 날아다녔다. 돌아와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당시 인수봉 멀티피치 교육을 진행했던 4팀 중 우리 팀만 완등하지 못했다고 한다. 잊어버린 자일 한 동에서 시작된 고된 하루는 그렇게 아쉽게 마무리 되었다.

 
암벽등반은 희열 노다지!

지금 돌이켜보면 아픈 순간의 연속이다. 암벽화가 찢어져 고통스러웠고, 사람들 시선에 민망했고, 사고 위험성에 아찔했다. 친구들에게 이 에피소드를 털어놓자 돌아오는 말은 “그런데 왜 계속 암벽등반을 해?”였다.

왜 암벽등반이 좋을까? 사실 특별하다면 특별하지만 별 거 없다면 별 거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남들이 보기엔 오히려 사서 하는 고생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가장 원초적인 본능을 일깨우는 활동이다. 위험하고 급박한 상황일수록 이를 이겨냈을 때 더 짜릿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상황과 현실에 깊게 몰입할 수 있어 더욱 살아 있음을 실감나게 해준다. 차가운 암벽 위로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느껴지는 무게는 오롯이 나의 몫이다. 그러므로 나에게 암벽등반은 희열이라는 금맥이 잔뜩 들어 있는 노다지인 셈이다. 그래서 나는 바위 한가운데서 암벽화가 터져도 결국 웃을 수 있었다.

 

인수B 길고 커다란 크랙에서 몸재잉하여 등반 중인 강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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