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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불빛의 정체를 찾아서…깜깜한 산속을 헤맸다

by 白馬 2022. 2. 19.

등산시렁  불빛을 따라서
산에 가서 등산만 하고 오는 건 싫은 남자의 등산 중 딴짓

 

집 뒤쪽에서 바라본 밤의 수락산. 정상부 능선 아래에서 늘 불빛이 하얗게 빛난다. 불빛은 용굴암에서 켜 놓은 가로등이다.

 

얼마 전 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산에서 길을 찾기 위해 한참을 헤맸다. 사실 이것은 비유다. 당시 나는 처리해야 할 회사 업무(이것을 답변해야 할 문제가 적힌 서류로 본다면 쌓인 종이 뭉치가 사무실을 출발해 20km 정도 늘어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고속도로 톨게이트 매표소 직원이 갑자기 떠오르는데, 그 직원이 하는 일보다 내가 했던 일이 훨씬 복잡하고 까다로웠다고 확신한다) 때문에 매일 새벽에 퇴근했다.

 

아주 괴로웠던 그때를 누군가에게 설명해야 할 때마다 나는 ‘깜깜한 곳에서 한참 헤맸다’고 하소연했다. 이 방법이 그다지 효과적이지는 않았던 모양인지 듣는 사람들은 죄다 ‘으응, 그래?’라면서 시큰둥해 했다. 그래서 나는 깜깜한 곳에서 목적지도 모른 채 헤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여러 사람에게 더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이번 산행을 기획했다. 내가 겪은 일상의 쓴맛을 맛보라고 강요하는 건 아니다. 나는 단지 이럴 때 이런 비유가 과연 적절한 것인지, 알아보고 싶었다.

아이디어를 제공한 사람은 아내다. 집 뒤쪽에 수락산이 있는데, 밤이 되면 산 중턱에서 불빛이 반짝인다. 그걸 볼 때마다 아내는 “저기에 왜 불이 켜져 있지? 설마 저런 곳에서 사람이 살까?”라고 물었다.

 

사실 나는 산 중턱에 뭐가 있는지 대충 알고 있었다. 용굴암, 혹은 도암사라고 하는 절에서 켜둔 가로등일 것이라고 답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런데 어느 날 저 불빛을 향한 욕구가 샘솟았다.

 

깜깜한 밤에 산길을 헤매면서 흙먼지를 흠뻑 뒤집어쓰고 극한에 이르고 싶은 욕망!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미래, 도무지 예측이 안 되는 결말,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 모르는 당혹감! 사무실에서 느꼈던 불안하고 불온한 감정이 산에서도 똑같이 살아날까 싶었던 것이다. 그러려면 극한의 상황을 마련해야지. 일부러 한파가 정점을 이룬다는 날을 디데이로 삼았다.

 

불빛을 향해 가는 중. 사람이 많이 다니는 산이라지만 밤에 가면 길을 잃기 쉽다. 저 불빛은 희망이었다기보다 ‘목적’에 가까웠다. 꼭 가야 할 지점! 그것이 춥고 어두운 산길을 헤치는 데 도움이 되긴 했다.

 

가장 추운 날에 헤매자!

내가 가진 것 중 접지력이 가장 좋은 트레일 러닝화와 두꺼운 타이즈, 외투를 준비했다. 배낭에는 뜨거운 물 500ml를 담은 보온병, 초코파이 2개만 챙겼고, 헤드랜턴도 머리에 썼다. 기온은 영하 11℃, 바깥으로 나서자 코끝이 싸했다. 아내는 조심하라는 뜻으로 이렇게 말했다.

 “오밤중에 어딜 나가? 아주 그냥 나가서 살아!”

초반에는 불암산 둘레길을 통했다. 여기는 내가 자주 다녔던 길이라 익숙했다. 게다가 공원을 새로 정비한 모양인지 곳곳에 가로등이 설치돼 헤드랜턴 없이도 길이 훤했다. ‘풉, 뭐야 이거 너무 싱겁잖아!’ 이 정도 가지고선 극한이라고 할 수 없지! 나는 속도를 냈다. 일부러 바위를 박차 높이 점프도 하면서 흥분한 마음에 화답했다.

 

덕릉고개에 이르자 사방이 어두워졌다. 고개를 넘어다니는 자동차 소리도 곧 없어졌다. ‘여기엔 나 혼자뿐이다’라는 생각이 들자 슬슬 긴장됐다. 공기가 꽤 차가웠지만 춥다는 생각보다 간질간질대는 배꼽에 신경이 몰렸다. 속도를 줄이고 살금살금 등산로를 따라 올라갔다. ‘자, 불빛은 어디 있지?’ 올라가는 중에 자주 발걸음을 멈추고 두리번거렸다. 그렇게 30분쯤 가자 주변이 확 트인 갈림길이 나왔는데, 나는 여기서 정상인 도솔봉 방향이 아니라 산기슭 쪽으로 몸을 돌렸다. 너무 순탄했다.  ‘이대로 끝나면 안 되는데!’

 

당연히 순탄하게 산행이 마무리될 리 없었다. 나는 넋 놓고 정해진 등산로를 따라갔다. 20분쯤 지났을까? 갑자기 산길이 끝나고 마을이 나오는 게 아닌가? 마을 위쪽으로는 고가도로가 보였고 차들이 쌩쌩 지나다녀 꽤 시끄러웠다. 마침내 길을 잃은 것이다.

 

이번 산행의 목적이 무엇이었던가? 길 잃고 헤매기가 아니었던가? 이런 상황이 생기길 고대했지만 막상 닥치니 분했다. 좀 지치기도 했다. 그대로 멈춰 서서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 그냥 집으로 갈까? 몸이 지치면 쓸데없고 어리석은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걸 이번 산행을 계획하기 전에 깨달았어야 했는데 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여기서 후회만 하고 있기엔 너무 추웠다. 움직이지 않으면 몸이 딱딱하게 굳어버릴 것 같았다. 나는 길을 되돌아 올라갔다. 가다 보니 왼쪽으로 희미한 샛길이 보였다. 길 없는 길로 가기가 콘셉트였으니 뭐가 무서우랴? 다시 나는 거침없이 산을 탔다.

“죽어도 야간 산행은 못 해! 누가 돈 500만 원을 준다고 해도 절대 안 해!”

 

아내가 야간 산행을 계획하는 나에게 한 말이다. 이렇게 질색한 이유는 산에서 귀신을 볼까봐서다. 귀신이 자신을 괴롭힐 것 같다는 것이다. 한참을 걸어도 결국 돌고 돌아 같은 장소에 도착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용굴암 도착. 경내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가로등만 빛났다.

 

뱅뱅 돌아 원점…귀신의 장난인가

지금까지 나는 산에서 귀신을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아내가 말한 귀신이 장난을 친 것인지 나는 30분 후 아까와 같은 장소에 도착했다. 마을 위로 고가도로가 보이는 풍경과 마주하자 소름이 돋았다. 스마트폰을 꺼내 보니 추위 때문에 방전된 듯 전원이 나가 있었다. 이런 공포 상황은 계획에 없었기 때문에 당황했다. 한편으론 약이 오르기도 했다. ‘귀신아 싸우자!’하면서 산길로 되돌아 갔다. ‘영광은 활기차게 덤벼드는 자의 것’이라는 어느 작가의 말이 도움이 됐다.

 

이번에는 길을 제대로 찾았다. 깨진 시멘트로 덮인 가파른 길을 따라 올라가자 ‘수암사’라는 절이 나왔다. 스님은 일찍 잠자리에 든 모양인지 절에서 새어 나오는 빛은 일절 없었다. 나는 다시 ‘불빛’을 찾아 나섰다. 불빛이 어디쯤에 있는지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찾으러 간다는 말인가? 살짝 막막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나는 집에서 본 풍경을 떠올리면서 대충 야경을 바라보고 오른쪽, 그러니까 남동쪽을 향해 난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려운 산행은 아니었지만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내가 찾기로 한 불빛이 말하자면 삶의 희망 혹은 목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 불빛을 찾은 뒤 나는 그걸로 뭘 할 수 있을까? 끝없이 입김을 내뿜으면서, 가파른 비탈의 흙 속에 발 끝을 콱 박은 채 버티고 서서 나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이때 어떤 목소리가 내게 말하는 걸 들었다.

‘너 도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야?’

나는 약 두 시간 동안 산길을 헤맸다. 계획대로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채(실제로 돌부리 걸려 뒹굴기도 했다) 용굴암의 환한 불빛 앞에 섰다. 기쁘지는 않았다. 해냈다는 성취감도 없었다. 그저 할 일을 했으니 집에 가서 쉬자는 안도감만 밀려왔다. 그렇다면 실제(회사 생활)와 비유는 비슷했을까? 뭐, 대충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인생의 쓴맛이 도대체 어떤 맛인지 알고 싶다면 나처럼 해도 되겠다. 단, 알아서 적당히, 사고가 나지 않게 준비를 철저히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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