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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명승·사적·도립공원이 주흘산 ‘한 곳에’

by 白馬 2021. 8. 26.

한국의 명승명산 문경 주흘산 문경새재·토끼비리
문경새재, 가장 걷기 좋은 길로도 선정… 옛길 토끼비리는 왕건 스토리 간직

 

명승이자 사적지이면서 도립공원인 문경새재 제1 관문인 주흘관 양 옆으로 성곽이 길게 조성돼 있다. 성곽 오른쪽이 주흘산이고 왼쪽은 조령 자락이다.

 

<고려사 지리지> 문경현편에 ‘현의 북쪽에 주흘산主屹山(1,108.4m)이 있다. 험한 곳이 세 곳인데, 초점草岾(고을의 서쪽에 있다), 이화현伊火峴(고을의 서쪽에 있다), 곶(혹은 관)갑천串岬遷(고을의 남쪽에 있다)이 그것이다’라고 나온다.

 

현재의 지명으로 초점은 조령, 이화현은 이화령, 곶갑천은 토끼비리를 말한다. 초점이 조령으로 변한 것은 의미와 상관없이 한자의 음만 빌려서 사용한 대표적인 사례에 속한다. 초점은 ‘띠나 억새와 같은 풀이 많은 고갯길’이란 의미다. 풀은 고어로는 ‘새’로 표시됐다. 그래서 조선 초기엔 곧잘 ‘새재’로 불렸다. 그런데 이 새가 한자로 표기되면서 전혀 다른 뜻을 지닌 새 ‘조鳥’로 바뀌고, 고개를 뜻하는 재는 ‘령嶺’으로 변화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흔히 부르는 ‘새가 넘기 힘든 고개’란 의미의 조령이 생겨났다. 원래 의미와는 아무 상관없는 음운변화의 결과인 셈이다. 고어에는 뜻과 상관없이 음만 차음해 온 이런 류의 단어들이 많다. 그래서 현대 언어로 파악하기 힘든 단어들이 있는 것이다.

 

이화현은 지금 이화령과 별 의미차이가 없고, 곶갑천은 토끼비리로 전혀 다른 의미를 나타낸다. 이와 관련 <신증동국여지승람> 문경현편에 자세히 등장한다. ‘형승’편에 ‘벼랑에 의지하여 사다릿길棧道을 만들었다’고 나오고, ‘산천’편에 ‘관(여기서는 곶이 아닌 관으로 나온다)갑천串岬遷은 용연의 동쪽 언덕이고, 토천兔遷이라고도 한다. 돌을 파서 사다리 길을 만들었는데, 구불구불 거의 6~7리나 된다. 세상에서 전하기를 “고려 태조가 남하하여 이곳에 이르렀을 때 길이 없었는데, 토끼가 벼랑을 따라 달아나면서 길을 열어 주어 갈 수 있었으므로 토천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 북쪽의 깎아지른 봉우리에 옛날에 지키던 돌 성터가 있다’는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초점은 새재가 되고 조령으로 바뀌면서 지금 문경새재로 명승, 사적지로 지정돼 있고, 곶갑천은 토끼비리로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으며, 인근 고모산성과 석현산성과 더불어 명승 및 사적지로 지정돼 있다. 문화재청에서는 문경새재와 토끼비리를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으로 지정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문경 토끼비리는 석현성 진남문에서 오정산과 영강으로 이어지는 산 경사면에 개설된 천도遷道(하천변의 절벽을 파내고 건설한 길)로 영남대로 옛길 중 가장 험난한 길로 알려져 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고려 태조 왕건이 남쪽으로 진군 시 이곳에 이르러 길이 없어졌는데 마침 토끼가 벼랑을 따라 달아나면서 길을 열어 주어 토천이라 부른 데서 유래한다고 전한다. 비리란 벼루의 사투리로 강이나 바닷가의 위험한 낭떠러지를 말하며, 이곳 토끼비리는 문경 가은에서 내려오는 영강이 문경새재에서 내려오는 조령천과 합류하는 곳에서부터 산간협곡을 S자 모양으로 파고 흐르면서 동쪽 산지를 침식하여 만든 벼랑에 형성된 길이다. 돌 벼랑을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파서 만든 구불구불한 길이 6, 7리 나있는데 겨우 한 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좁고 험하다. 토끼비리는 길에서 내려다보이는 영강과 절벽부, 맞은편 마을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조망 경관을 형성하고 있으며, 옛길의 중간중간에 주막거리와 성황당, 2그루의 당나무 등이 남아 있어 다양한 옛길 문화를 보여 주고 있다.’

 

주흘산의 명물 여궁폭포 혹은 여심폭포.

 

문경새재에 문화·역사유적 수두룩

‘문경새재는 조선 태종 14년(1414) 개통된 관도 벼슬길로 영남과 기호지방을 잇는 영남대로 중 가장 유명하며, 조선시대 옛길을 대표한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초점으로, 〈동국여지승람〉에는 조령鳥嶺으로 기록된 길로 조선시대 영남도로에서 충청도(한강유역권)와 경상도(낙동강유역권)를 가르는 백두대간을 넘는 주도로서의 역할을 했다. 문경새재는 제1 관문 주흘관, 제2 관문 조곡관, 제3 관문 조령관 등 3개의 관문과 원院 터 등 주요 관방시설과 정자와 주막 터, 성황당과 각종 비석 등이 옛길을 따라 잘 남아 있고, 경상도 선비들의 과거길로서 수많은 설화가 내려오고 있는 등 역사적, 민속적 가치가 큰 옛길이다. 주흘산, 조령산의 다양하고 아름다운 식생 경관과 옛길 주변의 계곡과 폭포, 숲길 등 경관가치가 뛰어나며, 옛길 걷기체험, 과거길 재현 등 옛길과 관련한 다양한 체험행사가 매년 개최되고 있어, 현대인들이 조선시대 옛길 문화 및 선비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훌륭한 옛길 자원이다.’

 

이와 같이 옛길 문화를 고스란히 체험할 수 있는 문화유적지이자 명승지가 바로 문경 토끼비리와 도립공원 문경새재이다. 문경새재에는 국내 유일의 순수 한글비석인 ‘산불됴심’, 조선시대 경상감사 업무 인수인계 장소인 ‘교귀정’, 고려·조선시대 출장 온 관리들에게 숙식을 제공했던 조령원 터 등도 유심히 볼 문화유적이다. 이러한 문경새재를 안고 있는 산이 바로 문경의 진산 주흘산主屹山이다. <고려사>에 나오는 내용이 문경을 가장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명산이자 진산인 주흘산, 이화령과 조령, 토끼비리는 문경의 대표적인 문화유적이자 유산이다. 특히 주흘산은 역사적 기록 내내 등장한다.

 

<세종실록지리지> 문경현편에 ‘명산은 주흘산이고, 매년 춘추로 향과 축문을 내려 제사를 행한다. 소사小祀이다’라고 소개한다. <동국여지지> 명산대천단편에도 ‘명산은 동쪽에 원주 치악산, 남쪽 공주 계룡산, 단양 죽령산, 울산 우불산, 문경 주흘산, 나주 금성산이 있고, 중앙은 목멱산이다. 서쪽은 장단 오관산, 해주 우이산, 북쪽은 적성 감악산, 회양 의관산이다’라고 전국의 명산 중의 하나로 꼽는다. <택지리>에는 ‘백두대간이 태백산에서 갈리어 왼쪽으로 나온 큰 지맥은 동해를 따라 내려오다가 동해 바닷가에서 그쳤고, 오른쪽으로 나온 하나의 큰 지맥은 소백산, 작성산, 주흘산, 희양산, 청화산, 속리산, 황악산, 덕유산, 지리산이 된 다음 남해 바닷가에서 그쳤다’고 나온다. 그 외에 <연려실기술> 지리전고편, <임하일기> 같은 개인문집 등에도 주흘산은 백두대간 중의 명산 또는 문경의 진산으로 빠짐없이 소개할 정도로 문경의 대표적인 명산이다.

 

조선시대 경상감사가 어명으로 업무를 주고받던 교귀정이 문경새재 과거길 바로 옆에 운치 있는 노송과 함께 자리하고 있다. 교귀정 뒤로 보이는 산이 주흘산이다.

 

주흘산은 육산, 조령산은 악산에 가까워

반면 맞은편 조령은 산으로서보다는 한양으로 가는 고갯길로서 옛날부터 이름을 알렸다. 고지도와 옛문헌에도 조령이란 고개로만 나온다. 조령산이란 지명 자체가 없었다. 산으로 등장한 건 현대 들어서부터라고 짐작된다. 왜냐하면 1900년대 초 일제가 한반도 지명을 일제히 정리한 <조선지지자료>의 ‘산’ 항목에는 조령이 없고,  ‘영치현명嶺峙峴名’ 항목에 조령이 소개되기 때문이다. 당시까지 고지도와 옛문헌에 산으로 표시된 명칭은 오로지 ‘山’뿐이었고, <조선지지자료>에 와서야 산으로 표시된 명칭은 ‘山’이 절대적이고 가끔 ‘嶝’이 등장하고, 그 외 ‘谷’ ‘峰’ 등이 지극히 일부 나온다. 따라서 ‘臺’와 ‘嶺’, ‘峙’, ‘峴’을 산의 개념으로 파악한 건 현대 들어서라고 판단된다.

 

주흘산이 오랫동안 문경의 진산으로 자리 잡아 온 배경은 그 지명유래와 무관치 않은 듯하다. 주흘산은 한자 그대로 ‘우뚝 솟은(屹) 주인 같은 산’으로 평가받아온 것으로 보인다. 문경시 홈페이지에서도 주흘산을 ‘우두머리 의연한 산’으로 소개하고 있다. 왕건이 견훤에 쫓겨 주흘산과 토끼비리로 퇴각한 스토리를 간직하고 있기에 <고려사>에는 당연히 주흘산이란 지명이 등장한다. 문헌상 최초의 주흘산이다. 그 이전에는 어느 문헌에서도 지명 자체를 찾을 수 없다. 주흘산이란 지명은 처음부터 한 번도 바뀌지 않고 지금까지 그대로 사용한 듯하다. 따라서 지명유래는 문경에서 우뚝 솟은 대표적인 산에서 명명됐다고 봐도 별로 틀리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영남대로 중에 가장 잘 보존된 옛길로 평가받는 토끼비리.

 

마주보는 조령산과는 다소 다른 분위기를 보여 준다. 주흘산이 약간 악산을 모습을 보여 주기는 하지만 그래도 숲이 굉장히 깊고 물도 매우 많다. 새재계곡과 여궁(심)폭포, 팔왕폭포 골짜기마다 풍부한 물을 자랑하는 계곡을 끼고 있다. 반면 조령산은 전형적인 악산의 모습이다. 리지를 즐기는 산꾼들이 즐겨 찾는 산이다. 겨울에는 조심해야 한다.

 

주흘산 등산로는 문경새재 3개 관문 어디서나 접근 가능하다. 가장 많이 이용하는 코스는 ▲제1 관문(주흘관)을 지나 여궁폭포를 지나 혜국사를 거쳐 정상(총 5km)에 올라 조곡골을 거쳐 제2 관문 조곡관(총 5km)으로 하산하는 방법이다. 제1 관문으로 원점회귀하려면 총 13km 남짓 된다. 소요시간 5시간 내외. ▲제1 관문에서 주흘산 주봉을 거쳐 1.3km(40분 내외 소요) 떨어진 영봉으로 간 뒤 제2 관문으로 하산하는 방법도 있다. 제1 관문으로 원점회귀까지 총 13km에 5시간 30분 내외 소요. ▲종주코스는 제1 관문으로 올라가 주봉~영봉~부봉을 거쳐 제3 관문으로 하산하는 방법이다. 총 12.5km로 제1 관문으로 원점회귀하려면 8km를 내려와야 한다. 20km 정도로 하루 종일 잡아야 한다.

 

문경새재 제2 관문인 조곡관을 지나 많은 방문객들이 한국의 걷기 좋은 길을 맨발로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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