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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한국산서회와 함께하는 인문산행 | 영남알프스

by 白馬 2017. 11. 20.

영남알프스 자락에서 산과 인간의 관계를 숙고하다


제2회 울주세계산악영화제와 함께한 울주 인문산행

한국산서회의 9월 인문산행은 울주세계산악영화제가 열리는 영남알프스 신불산 자락과  울주군 일원에서 진행되었다. 인문산행팀은 9월 23일 서울을 출발해서, 먼저 삼남면 교동리에 있는 작괘천과 작천정을 둘러본 후, 영화제가 진행되는 상북면 소재 복합웰컴센터에 도착했다. 대회장 안 신불산야영장에 영지를 구축하고, 영화제의 각종 전시 및 행사에 참여했다. 다음날 오전 신불산 산행을 실시했고, 오후에는 인근 두동면 반구대 주변에 있는 여러 곳을 둘러보았다. 이제껏 수도권에서만 진행하다가, 장소를 연장해 먼 지방에서 실시했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었다.

산악영화제가 열린 울주군은, 일단 울산광역시를 구성하는 1개 군과 4개 구 중, 전자 1개 군에 해당한다. 국가적 산업단지로 특화된 동부 4개 구에 비해 아직 울주군은 산업화가 미진하다. 울주군의 북서쪽 경계를 이루는 영남알프스는, 울주군이 경주, 밀양, 청도, 양산 등 인접한 시군과 접경을 이루는 해발 1,000m 이상의 산 9개를 연결하는 흐름이다. 유럽의 알프스와 견줄 만한 웅장함·강렬함에다 수려한 풍광을 겸했다. 9개 산은, 고헌산(1,034m), 가지산(1,241m), 간월산(1,069m), 신불산(1,159m), 영축산(1,081m), 천황산(1,189m), 재약산(1,119m)에 운문산(1,195m)과 문복산(1,015m)이 포함된다.

영남알프스는 전체면적이 약 255㎢로, 가을이면 곳곳의 평원에 나부끼는 순백의 억새가 가히 환상적이다. 전국 등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대표적인 이유다. 신불산 공룡능선을 포함하는 영남알프스의 몇몇 기암절벽들은 매우 준급함을 자랑한다. 이로써 억새평원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1 신불산 야영장 부지 내에 꾸며진 한국산서회 회원들의 야영사이트. 2 산서회 본부를 방문한 릭 리지웨이는 최중기 회장(왼쪽)으로부터 <山書> 제26호를 선물 받고 한국산서회에 회원으로 가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오른쪽은 김영도 고문. 3 산서전 전시장을 찾아온 산악문화대상 수상자 릭 리지웨이(앞줄 가운데)와 함께한 한국산서회 회원들과 인문산행 참가자들. 4 울산암각화박물관 전시실에서 해설사의 설명을 집중해서 듣고 있는 인문산행 참가자들.

울주세계산악문화상 첫 수상자 릭 리지웨이

산악문화의 정수를 걸러 주는 세계 유수의 산악영화제들이 있다. 캐나다 밴프산악영화제나 이탈리아 토렌토산악영화제 같은 것이 예이다. 이러한 영화제의 권위와 명성을 부러워하면서 우리나라 몇몇 지방이 산악영화제를 운영하려고 시도했었다. 그러나 산악영화제의 성공은 녹록한 것이 아니다. 예산과 행정력·기획력 등이 골고루 구비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울주국제산악영화제는 작년도 제1회 대회와 올해 두 번째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러냄으로써, 안정세에 접어들었다 하겠다.

울주세계산악영화제는 경쟁·비경쟁 부문을 망라해 영화제가 행사의 중심을 이룬 것이 사실이지만, 그 못지않게 전시, 강연회, 공연 등 부대행사들도 다양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이번 행사에서 가장 부각된 대상은 울주산악문화제 산악문화상 수상자 릭 리지웨이였다.

릭 리지웨이는 우리나라 나이로 금년 70세인 미국인이다. 1978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인 K2(8,611m)를 무산소로 등정했다. 1985년 7대륙 최고봉 등정을 세계 최초로 달성했으며, 1998년 ‘뉴욕 타임스 선정 10대 베스트셀러’에 오른 <킬리만자로의 그늘>을 저술했다. 문제의식을 지닌 인기작가, 또는 영상제작자로도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파괴에 직면하고 있는 뛰어난 자연경관들을 시민운동을 통한 모금으로 매입하고, 이를 다시 해당국가에 공원화 조건으로 무상 기부하는 활동도 하고 있다. 더불어 세계적인 친환경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의 사회공헌 담당 부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인수봉에 암벽코스 취나드 길을 낸 이본 취나드, 그리고 재미교포 선우중옥 등과도 절친한 관계다. 선우중옥은 그의 대표저서 중 하나인 <Below Another Sky>를 우리말로 번역해서 출판한 바 있다(처음에는 ‘아버지의 산’으로 나왔는데, 지금은 ‘그들은 왜 히말라야로 갔는가’로 개제).

리지웨이는 강연회나 팬 사인회 등을 통해서 연예인 같은 인기를 과시했다. 특히 한국산서회 영지로 직접 찾아와 회원들과 장시간 담소를 나누는가 하면, 우리 산서전을 꼼꼼히 둘러보기도 했다. 그는 이번에 한국산서회에 특별회원으로 가입했다.

한국산서회에서 담당한 산서 전시는 크게 세 가지 테마로 구성되었다. 첫째, 한국의 대표적 산서 저술가인 김영도 님의 저서 및 번역서 36종과 육필원고 등이 전시되었다. 둘째, ‘산서란 이런 것이다’를 보여줄 수 있는, 한국어로 간행된 대표 명산서 30권이 전시되었다. 셋째는, 부산, 울산, 경남 지방과 관련된 산악 및 산악활동 관련 방대한 자료들인데, 안일수 산서회 부회장, 마산과 밀양의 산악인 최재일, 정규호 님이 수집한 자료들이었다.

신불산 공룡능선으로 오르는 초반 길목에 위치한 홍류폭포. 떨어지는 물의 양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으나, 전체적인 분위기는 훌륭했다.
작괘천 및 작천정 인문산행

서울에서 울주로 장거리를 이동하며 진행되는 인문산행인지라, 준비에 제약이 있었다. 대상지가 워낙 먼 곳이라서 사전 답사가 어려웠고, 또 대부분 처음 접하는 것들이었다. 한국산서회원들이 울주의 자연과 처음 교감한 것은, 작괘천酌掛川과 작천정酌川亭이었다. 언양읍 서북방으로 위치한 간월산·신불산 등에서 모인 물이, 동남방으로 흘러서 언양읍 남서쪽 삼남면 교동리를 지날 때 만들어낸 기묘한 경치다.

개울가 오른쪽으로 난 도로에서 하차한 다음, 노송 사이로 뚫린 길을 따라 작괘천 개울로 내려갔다. 길 왼쪽 개울바닥을 이루는 암반 위에 4개의 기둥을 내린 준수한 작천정이 자리하고, 더 낮게 패인 암반 바닥으로 작괘천 물이 조용히 흘러내린다.

작괘천의 암반이 참 신기하다. 어쩌면 저렇게 하얗고 매끄러운지…. 다양한 크기와 형태로 패여 깜찍한 술잔 모양을 이루고 있는 것은 또 어떤가. 깊지도 않은 시냇물은 또 어쩌면 저렇게 오목한 모양 속으로 모여들었다가 부드럽고 잽싸게 빠져나가는가. ‘작괘천’이란 냇물 이름의 뜻을 풀어보면, ‘술잔을 걸어놓은 시내’ 또는 ‘술잔을 늘어놓은 시내’란 뜻이다.

잠시 눈길을 돌리니 이제 드넓은 암반과 독립된 큰 바위들 표면에 새겨진 무수한 각자刻字들이 눈에 들어온다. 필체나 크기가 다 제각각인데, 그렇게 흩어져 널린 각자들이 묘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요즘 같으면 자연파괴니 뭐니 비난깨나 들었을 흔적들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이 각자들은 여기 작천정의 건립과 유지에 기여한 이 지역 명사들의 명단이다.

작천정은 1900년대 초에 만들어졌지만, 울주의 문화를 선도한 중심으로 역할해 왔다. 작천정 정자 안에는 상량문 1편, 기문 5편, 시 18수가 새겨진 현판이 걸려 있다. 정자 내외부에는 현판의 번역도 안내판으로 설치해 놓았다.

필자는 작천정 주변 암면에 새겨진 많은 각자 중에서 두 인명을 특히 인상적으로 기억한다. 구소九簫 이호경李頀卿과 추전秋田 김홍조金弘祚다. 두 사람은 한때 부부관계를 이루기도 했었다. 공식적이거나 정상적인 것은 물론 아니었을 것이다. 이호경은 김홍조 이전에도 이후에도 다른 남자와 부부관계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이호경은 작천정을 대표하는 뛰어난 시인이다. 김홍조도 역시 조명할 가치가 충분한 인물인 것 같다. 일제하 경상도를 대표하는 갑부였던 그는, 당시 일어난 굵직한 민족적 사건마다 여러 번 뒷돈을 대주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작천정 앞에서 작괘천 및 작천정에 관련된 인문학적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산서회원들.(사진 위) ‘술잔이 널린 혹은 걸린 시내’라는 뜻인 작괘천 이름의 유래가 되었음직한, 오묘한 형상의 개울 바닥 모습.
홍류폭포-신불산 공룡능선-정상-간월재 인문산행

울주행 2일차 아침이 밝았다. 야영지에서 일찍 아침을 먹고, 아침 8시에 산행을 시작했다. 야영지 동쪽 클라이밍센터가 등산 시작점이었다. 참가자 21명이 함께 호기롭게 산행에 나섰다.

산행 시작 얼마 후에 만난 홍류폭포는 폭포의 자격 수준은 충분히 지녔으되 수량이 흡족치 못했다. 이름이나 규모로는 옛 선비들이 남긴 시문 몇 편쯤 훈장으로 간직하고 있을 법한데, 수량이 부족해 시원한 낙차로 떨어지는 매력을 즐길 수 없었다.

홍류폭포를 통과해 조금 더 오르자 가파른 암릉이 나타났다. 유명한 ‘신불산 공룡능선’이다. 시간이 촉박해 신불산과 간월산 사이 간월재 주변에 형성된 억새평원을 즐기지는 못했지만, 멋진 산행이었다.

대곡리 집청정 앞 도로에서 대곡천 너머 아래로 보이는 반구대 하단. ‘盤龜’ 각자가 보인다.

반구대 및 대곡리암각화 등 대곡리 인문산행

점심을 먹고 영지를 정리한 뒤 두동면 대곡리 반구대로 갔다. 대곡리에는 울산암각화박물관과 국보 제285호인 대곡리 암각화가 있으며, 반구대와 집청정, 반구서원 등이 있다.

먼저 해설사의 친절한 설명을 곁들인 암각화박물관 견학을 마치고 나와, S자로 휘어지는 대곡천변 포장로를 따라 대곡리암각화 쪽으로 이동한다. 그 길은 집청정集淸亭과 반구서원盤龜書院과 모은정慕隱亭 등을 지나간다.

집청정은 오랫동안 이 주변에 세거해온 경주 최씨 문중에서 1700년대에 세운 정자다. ‘반구정盤龜亭’으로 불리기도 했던 이 정자는 정자의 원형을 잘 갖추고 있다고 한다. 대략 갑오경장 때까지 이 지역 문인학자들이 모여서 학술과 문화를 교류하던 중심장소로 기능했다. 2016년 대곡박물관에서 여기서 모아진 한시집 <작천정 시집>을 역주 간행한 바 있다.

반구서원은 포은 정몽주와 회재 이언적, 한강 정구를 배향한 서원이다. 원래는 사연댐 건설로 수몰된 아랫마을에 있었는데, 1967년에 여기로 옮겼다고 한다. 모은정은 1920년대 청안 이씨 문중에서 세운 정자다. 반구대를 즐겨 찾았던 포은 정몽주를 사모하는 뜻을 살려 이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집청정 앞쪽, 물 건너 깎아지른 절벽 면에는 크게 쓴 ‘盤龜’와 학, 작은 글씨로 사람 이름들이 새겨져 있는데, 큰 글씨 ‘盤龜’만 육안으로 보인다. 이 절벽과, 남동쪽으로 이어지는 반구서원의 전신이었던 반고서원盤皐書院 유허비각이 있는 봉우리를 합치면 ‘웅크리고 있는 거북’ 형상이 완성된다. 그래서 ‘반구대’인 것이다. 고려말 포은 정몽주가 언양읍 주변 요도蓼島라는 곳에 유배 와 있을 때, 자주 이곳에 올라 시름을 달랬다고 한다.

반구대는 조선시대 울주 지역에 있었던 세 곳 구곡원림 중 하나인 반계구곡磻溪九曲의 제5곡에 해당한다. 언양 출신의 선비 송찬규泉史 宋璨奎(1838-1910)가 이 반계구곡을 경영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이 반계구곡을 구성한 다음에 ‘반계구곡음’ 10수를 짓기도 했다.

박물관에서부터 2.4km 떨어진 위치에 있는 대곡리암각화는 통상 반구대암각화로 불린다. 그러나 반구대와 암각화는 1km가 넘게 떨어져 있다. ‘반구대’와 ‘암각화’가 하나의 이름으로 조합되기에는 필연성 타당성이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된다. 차라리 상류에 있는 천전리각석의 명명을 참고해, 대곡리암각화라 수정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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