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멈춘 궁예의 숲에서 마법 같은 하룻밤을…

불당계곡~도성고개~민둥산~국망봉~신로령~ 국망봉자연휴양림 16km 야영 종주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아카시와 산딸기 가시가 촘촘하게 방어막을 쳤고, 벌을 닮은 등에 무리가 융단폭격을 했다. 간간이 마주치는 뱀은, 빽빽한 수풀 속에 지뢰처럼 도사리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의 신음 소리는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다. 아직 궁예의 나라 잃은 원망이 능선에 서린 것마냥 국망봉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국망봉에 온 것을 후회하는 이는 없었다. 전날 밤, 도성고개 야영이 너무나 달콤했으므로.
시끄러운 알림 소리가 폰에서 울렸다. 폭염주의보를 발령하니 낮 동안 야외 활동을 자제해 달라는 행정안전부의 문자 메시지였다.
대형 배낭을 꾸리며 입산 채비를 하는 사내들의 얼굴에선 웃음이 흘렀다. 야영의 힘이란 그런 것이다. 도시 소음 없는 깊은 산 속에서 좋은 사람들과 하룻밤, 경험하지 않은 이들에겐 설명하기 어려운 날것의 무언가가 있다.
만만찮은 야영산행에 동참한 이는 두 명의 백패킹 전문가와 한 명의 숲 전문가다. 슬로 아웃도어 팩토리 이재승 대표와 백패킹 장비 전문가 이용찬씨, 숲해설가 박병일씨다.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는 오르막을, 우격다짐으로 꿀꺽꿀꺽 받아 삼키며 올라서자 도성고개다. 사거리 공터에 텐트를 치려다 주변을 둘러본다. 능선 너머는 고요한 잣나무숲. 포천에서 가평으로 넘어온 것뿐인데 국경을 넘은 듯 숲의 언어가 다르다.
배낭을 풀고 텐트를 치며, 아름다운 숲에 동화될 준비를 한다. 야영 전문가들답게 자연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며 저녁을 차린다. 맛있는 음식과, 상쾌한 공기, 우아하게 쏟아지는 달빛으로 저녁상을 꾸민다. 가난한 상차림이지만 호텔 식사와도 바꾸고 싶지 않을 만큼 감미롭다.
피톤치드 덕분에 달디 단 잠을 잔 아침, 폭염이 다시 한 번 결전을 예고한다. 출발선에 선 마라톤 선수처럼 다시 도성고개에 선다. 도성고개란 이름은 가평의 옛 이름인 ‘토성’으로 가는 토성고개가 변했다는 설과 궁예 부인 강씨가 세운 ‘도성道城’에서 유래한다는 설이 있다.
푸른 카리스마 뿜어내는 한북정맥 줄기 포천과 가평 경계인 한북정맥 능선은 산불이 번지는 걸 막기 위해 방화선을 만들어 놓았다. 능선의 나무를 잘라 불이 번지지 않도록 한 것이다. 가을엔 방화선이 억새밭으로 변해 보기 좋지만, 한여름엔 날카로운 가시와 칼날 같은 잎으로 무장한 밀림이 된다. 등산객도 거의 없는지 초반엔 길을 구분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스틱이 아니라 낫을 가져왔어야 했다.
긴 옷을 입었지만 복병처럼 덮치는 가시의 공격을 막을 순 없다. 게다가 햇살은 폭압적이고, 풀은 젖어 있고, 오르막은 끝없다. 젖은 풀을 헤치고 가는 동안 바지가 푹 젖었다. 다들 우중 산행을 한 것처럼 산행 두 시간 만에 양말까지 흠뻑 젖고 말았다. 오르막의 정점, 민둥산 꼭대기에 서자 비로소 속 시원한 경치와 너른 터가 한 숨 돌릴 기회를 준다. 때마침 귀한 바람이 분다. 피부는 물론 영혼까지 어루만져 주는 것처럼 시원하다. 김영선 사진기자의 카메라에 습기가 서려, 한동안 카메라를 말려야 한단다. 어찌나 고마운지 다들 카메라에 감사하며 등산화를 벗어 젖은 발을 말린다. 견치봉 가는 길, 오르막이 한결 부드러워진 탓에 꽃들이 눈에 든다. 파란 꽃을 피운 닭의장풀, 흰꽃의 으아리, 노란꽃의 원추리, 분홍꽃의 참싸리, 주황색의 동자꽃까지 저마다 번식을 위해 최대치의 에너지를 끌어내 예쁜 빛깔을 그려냈다. 능선엔 잣나무는 사라지고 붉나무와 층층나무, 떡갈과 신갈나무가 피 튀기는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다. 포천에서 보았을 때 개 이빨을 닮았다고 해서 견치봉이라 불리는 봉우리에 올라서자, 벌을 닮은 등에 무리가 덮친다. 붓지는 않지만 쏘일 때 따끔 거리며 상당히 아프다. 도망치듯 국망봉을 향해 빠르게 걷는다.
서쪽 아래엔 포천 이동면 시가지가 그림처럼 가만히 멈춰 있다. 사진을 찍고 찍어도 더 찍어야 할 것 같은 압도적인 전망대다.
한동안 잠잠하던 가시덤불이 1113m봉부터 다시 텃세를 부린다. 발 디딜 곳이 안 보일 정도로 빽빽해, 간간이 마주치는 뱀을 피하느라 산행 속도가 더뎌진다. 러셀하듯 선두를 바꿔가며 정글 같은 능선을 치고 간다. 하산 갈림길인 신로령이 반갑다. 가파른 돌계단이 고속도로처럼 편안하다.
임도를 만나는 국망봉자연휴양림에 내려서자, 계곡을 따라 텐트 친 바캉스족들이 우리를 쳐다본다.
“이 더운 날에 무거운 배낭 메고 미련하게 산행을?”
이 소리를 얼핏 들었지만, 우리가 보냈던 감미로운 밤을 설명할 수 없었다. 바람이 불어와 다 안다며 와락 껴안는다.
산행길잡이
불당골은 내비게이션에 구담사를 찾아서 도로 끝까지 올라와야 한다. 큰 길이 지나는 제비울상회에서 산쪽으로 꺾어들어 2.3km 가면 구담사를 지나 ‘불당계곡’이라 적은 표석이 있고, 초록색 페인트를 칠한 철난간이 있는 다리를 만나는 곳에 차량 2대를 세울 터가 있다. 여기서 산행을 시작해 340m 올라가면 우측의 좁은 오르막 등산로가 나타난다. 갈림길에 표지기가 여럿 달려 있어 찾기 쉽다.
대부분 외길이며 능선길이 많아 길찾기는 쉽다. 불당고개에서 도성고개 지나 민둥산까지는 가파른 오르막이 길게 이어져 힘든 구간이다. 산행 초반 땀 흘릴 각오를 해야 한다. 능선에 가시식물이 많으므로 긴팔 옷을 입어야 한다.
민둥산과 견치봉에서 가평 용수동 방면으로 하산하는 산길이 있다. 견치봉에서 500m 더 가면 포천 방면으로 하산하는 산길이 있다. 여의치 않은 경우 시간과 체력에 맞게 중간 하산 코스를 택하면 된다. 국망봉 자락에서 물을 구할 수 있는 야영터는 도성고개가 유일하다. 도성고개에서 가평 방면으로 임도를 따라 내려가면 계곡을 만난다. 멀리 내려갈수록 물줄기는 더 커지지만, 식수만 구하자면 100m 정도 내려가면 임도 좌우측에서 물줄기를 발견할 수 있다.
국망봉자연휴양림은 개인이 운영하는 휴양림으로 입구에서 입장료 2,000원, 주차료 5,000원을 받는다.
교통
구리포천고속도로가 개통하며 접근 시간이 짧아졌다. 고속도로 종점인 신북나들목을 나와 직진하다 일동 방면으로 가다 일동사거리에서 이동 방면으로 좌회전한다. 이어 수입교차로에서 우회전해 860m 직진 후 운담교차로에서 이동 방면으로 좌회전해 5km 직진하면 구담사 안내판이 있는 불당계곡 입구다.
138-7번 버스가 의정부역을 출발해 포천시내를 거쳐 구담사 입구까지 80~100분 간격(06:40~22:40)으로 운행한다. 연곡4리에서 하차한다.
숙박(지역번호 031)
국망봉자연휴양림(532-0014)은 시설이 노후화되고 비싼 편이라 숙박은 권하기 어렵다. 다만 계곡이 맑고 시원해 오토캠핑장으로 인기 있다. 전기 사용 가능하며 사이트당 하룻밤에 3만5,000원의 이용료를 받는다. 통나무집은 4인실 10만 원, 6인실 15만 원.
인근의 숙소는 백운계곡 입구에 밀집해 있다. 로뎀하우스펜션식당(535-9636), 솔솔바람펜션(010-2204-3598) 등이 있다.
이동면은 이동갈비로 유명하지만, 갈비가 부담스럽다면 불당계곡 인근의 짬뽕전문점 경복궁(533-1661)이 권할 만하다. 해물홍합짬뽕, 갈비짬뽕, 어묵짬뽕 등 다양한 종류의 짬뽕이 푸짐하게 나오며, 찹쌀 탕수육도 별미다. 원조이동할머니갈비(531-2600), 이동정원갈비(533-0616), 송영선할머니갈비(532-456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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