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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한가위 보름달맞이 산행 | 원적산

by 白馬 2016. 9. 6.

둥근 고요가 넘치는 원적의 감미로운 밤을 위하여


낙수제~원적봉~천덕봉~정개산~넉고개 10.5km

만주로 밀려난 홍건적은 원나라 군대에게 쫓기었다. 퇴로는 한반도였다. 1361년 10만에 이르는 대군이 쳐들어왔다. 고려군이 곳곳에서 맞섰으나 중과부적으로 패했다. 공민왕은 남쪽으로 피란했고 이때 머문 곳 중 하나가 원적산이었다. 때문에 원적산 최고봉인 천덕봉은 공민봉이라 불렸으며, 이때 쌓은 토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 산기슭에는 여지수라는 못이 있는데 수도인 개경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궁녀들이 이곳에 몸을 던져 죽은 곳이란 얘기가 전한다. 공민왕의 산으로 간다.

낮으나 낮지 않고 부드러우면서 웅장하다. 원적산은 경기도 이천, 광주, 여주에 걸쳐 있다. 너른 평야에 홀로 솟은 영웅처럼 눈에 띄는 산이다. 때문에 632.7m는 낮은 높이가 아니며, 둥글둥글한 산세는 벽처럼 한 세상을 거뜬히 막아내고 있다. 왕이 피신 올 이유는 충분했던 산인 게다.

700여 년이 지난 현재 다시 원적산의 전성기가 찾아왔다. 원적산 산행의 대표 기점인 이천시 백사면 경사리에는 봄이면 산수유가 노란 바다를 이뤄 관광객이 줄을 서고, 능선 초원은 경치가 탁월해 주말이면 등산객과 야영객으로 붐빈다. 특히 수도권에서 유일하게 초원산행이 가능한 곳이라 갈수록 찾는 등산객이 늘고 있다. 9월 한가위를 맞아 초원능선 보름달 아래에서 야영하는 낭만을 소개하기 위해 원적산에 든다.

원적봉으로 이어진 최단코스인 경사리가 들머리다. 산에 가는 것이 직업이라지만, 압도적인 폭염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편이다. 야외 활동을 자제하라는 폭염경보 문자메시지가 울리는 상황에서, 80리터가 넘는 커다란 배낭을 메고 그늘 없는 초원 산행에 나서는 건 무모하다.

그 무모함에 도전하기로 했다. 편한 도시를 두고 산을 오르는 행동 자체가 무모한 것 아닌가. 무모하고 위험하지만 한걸음씩 나아감으로써, 더 큰 무언가를 만날 수 있음을 산꾼들은 알고 있다.

원적봉에서 정상으로 이어진 초원능선. 산행의 하이라이트 구간이며 수도권 최고의 야영명소로 꼽히는 야영터가 군데군데 있다.
원적봉에서 정상으로 이어진 초원능선. 산행의 하이라이트 구간이며 수도권 최고의 야영명소로 꼽히는 야영터가 군데군데 있다.
원적산에서 본 신비로운 해돋이.
원적산에서 본 신비로운 해돋이.
함께한 이는 김영숙(54)씨와 이용두(40)씨다. 김영숙씨는 동대문 장비점에서 12년을 일한 등산장비 전문가이며, 마라톤 시작 1년 만에 풀코스를 두 번이나 완주한 러너다.

이용두씨는 건설업에 종사하고 있으면서 주말에는 서울 5대 궁궐에서 문화해설사로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역사에 흥미가 있었던 그는 자녀들에게 궁궐 설명을 해준 것을 계기로 문화해설사가 되었다. 현재 숲해설사 전문가 과정을 밟으며 자연에 대한 이해의 폭을 더욱 넓히고 있다.

정상 부근 능선에서 텐트 치고 야영할 계획으로 입산한다. 무더위에 이틀 동안 마실 물을 메고 오르는 것이 관건, 편하겠다고 요령 피우는 이는 없다. 고통 분담을 통해 서로를 배려하는 것이 야영산행의 과정이다. 등산안내도 곁에는 밤나무가 산지기처럼 서서 배웅한다. 모기떼의 격한 환영인사로 산행이 시작된다.

임도를 따라 잠깐 오르자 물기 묻은 직벽이다. ‘낙수제’라 불리는 폭포인데 갈수기라 흔적만 남아 있다. 낙수제를 지나자 급격히 길이 가팔라진다. 최단 코스에 걸맞은 땀값을 하라고 몰아붙인다.

시작부터 고전이다. 땀은 비 오듯 쏟아지고, 모기떼는 따라오고, 더위 탓에 산행이 평소보다 힘겹다. 정리되지 않은 몸이 거친 숨을 토해내지만, 풀어지기 시작하면 고통의 시간만 길어질 뿐이다.

느리게 꾸역꾸역 오르막을 삼키자, 깜짝 선물 같은 봉우리가 나타난다. 원적봉(559.2m), 정상은 아니지만 이천 평야  앞에 솟은 등대 같은 봉우리라 압권의 경치가 한 편의 영화를 압축시켜 놓은 듯 펼쳐진다. 원적봉 헬기장에 배낭을 풀고 퍼질러 앉아 땀 흘린 보람을 누린다.

 1 원적봉에서 천덕봉으로 이어진 능선은 시야가 트여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2 범바위약수터에서 넉고개로 이어진 임도. 이천시에서 걷기길로 조성했다.
1 원적봉에서 천덕봉으로 이어진 능선은 시야가 트여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2 범바위약수터에서 넉고개로 이어진 임도. 이천시에서 걷기길로 조성했다.
원적산 정상 천덕봉. 정상 역시 너른 터라 주말이면 여러 동의 텐트가 들어선다.
원적산 정상 천덕봉. 정상 역시 너른 터라 주말이면 여러 동의 텐트가 들어선다.
원적봉 뒤로는 대서사시다. 천덕봉에서 정개산으로 뻗은 앵자지맥이, 예측할 수 없는 실루엣을 이루며 흡입력 있게 산줄기를 풀어놓았다. 원덕봉에서 정상까지 이어진 초원지대는 바라보기만 해도 설렐 정도로 부드럽고 기품 넘쳐, 산꾼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원적산 정상부가 초원이 된 건, 사격장 덕분이다. 천덕봉과 원적봉 사이에는 남쪽의 큰 골짜기가 있는데 이곳 사면이 사격장으로 쓰이면서 시야 확보를 위해 능선의 나무를 간벌했다. 때문에 평일 낮 사격이 있을 때 이곳을 찾으면 원적봉까지는 오를 수 있지만, 천덕봉으로 이어진 능선은 사병들이 지키고 서서 출입을 통제한다. 사격이 없을 때는 능선 종주가 가능하다.

산행의 피로를 날려버리는 범바위약수터

주말이면 능선의 평평한 터마다 알록달록한 색깔의 텐트로 들어차는 백패킹 명소지만, 폭염 덕분인지 아무도 없다. 시야가 열린 고요한 능선은 ‘둥글 원(圓)’자와 ‘고요할 적(寂)’자가 잘 어울린다. 원적(圓寂)은 불교에서 모든 덕이 원만하고, 모든 악이 적멸한다는 의미, 열반의 경지를 뜻한다. 원래는 무지와 사견을 버리고 깨달았다는 뜻이지만, 현재에는 승려의 죽음을 뜻하는 말로 변했다. 죽는다는 것은, 모든 것이 원만한 고요로움일 수도 있다.

노을이 걸린 원적의 시간을 즐기며, 천덕봉 못미처 너른 터에 배낭을 푼다. 600m대 산이지만 의외로 능선에 모기가 없어 쾌적하다. 텐트를 치고 준비한 음식을 꺼내 고요한 파티를 준비한다. 파티 소식을 듣고, 손님들이 찾아왔다. 이천의 보석 같은 불빛과 상쾌함을 전해 주는 기분 좋은 바람, 밤하늘의 주인공 달님이다. 귀한 손님들 덕분에 원적의 밤은 더 없이 감미롭다. 한없이 둥근 고요함이 온 몸을 휘감는다.  

한낮의 폭염을 피하기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 일출을 맞고, 텐트를 정리한다. 찰나에 울컥 떠오르는 여의주 같은 태양에 산꾼들은 소망을 빈다. 하늘의 덕이 내린 천덕봉답게 정상 경치는 화끈하다. 경기도 광주와 이천의 경계지만, 이천의 산으로 인식되는 것은 산행 내내 이천 평야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정상 또한 남쪽 이천으로 열려 있다. 워낙 너른 터라 금세 뙤약볕이 점령한다.

정개산을 지나 넉고개까지 종주하는 앵자지맥 구간에 접어들었다. 산행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전체적으로 고도를 내린다지만 벌떡 선 봉우리들이 겹겹이 늘어서 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전에 최대한 빨리 가야 한다.

천덕봉에서 정개산으로 이어진 능선길에 쓰러진 나무를 지난다.
천덕봉에서 정개산으로 이어진 능선길에 쓰러진 나무를 지난다.
원적봉에서 본 이천 평야지대. 원적봉은 이천과 가장 가깝게 솟은 봉우리로 이천 평야가 한눈에 드는 조망명당이다.
원적봉에서 본 이천 평야지대. 원적봉은 이천과 가장 가깝게 솟은 봉우리로 이천 평야가 한눈에 드는 조망명당이다.
열린 경치는 시원하지만 그늘이 없어 피부가 따가울 정도다. 정상에서 능선을 타고 540m를 이동하자 숲 그늘이다. 소나무와 신갈나무가 많은 숲길은 길도 좋고, 이정표가 많아 길찾기도 수월하다.

잔치는 끝났다. 이후의 앵자지맥 줄기는 수수하지만 순수한 매력이 있는 산길이다. 시원한 경치는 없어도 소소한 자연미와 야생화를 즐기며 능선을 오르내린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흘러내리는데, 큰 배낭을 메고 산을 오르내리는 것이 쉬울 리 없다.

홍건적에게 쫓기는 공민왕의 심정으로 태양을 피해 산줄기를 몰아쳐 간다. 안부마다 마을로 내려서는 갈림길이 있는데, 마주칠 때마다 능선을 버리고 하산하고픈 욕구가 치밀어 오르는 걸 무시하고 오르막에 고개를 콱 밀어 넣는다. 

정개산(소당산)에 이르자 모처럼 바위 위에서 이천 쪽으로 경치가 터진다. 주릉2봉을 넘어 주릉1봉에 닿자 능선 등산로는 폐쇄되었으니 우회하라는 이정표가 서 있다. 여기를 내려서면 범바위약수터다.

더위는 무자비할 정도라 준비한 물은 이미 탈탈 털어 마셨다. 가파른 계단을 내려서서 약수터에 닿자마자 배낭을 내던지고 머리를 디밀어 넣는다. 과열된 자동차 엔진이 쏴하며 식는 순간이다. 석간수라 무척 차가워 고생한 보람이 있는 고마운 샘터다.

임도는 이천시에서 만든 ‘걷고 싶은 둘레길’이다. 물로 배를 채우고 둘레길을 걷는다. 감미로웠던 원적의 밤이 그리워질 것을, 우린 알고 있다. 

원적산 개념도
원적산
산행 길잡이

경사리 낙수제폭포에서 정상으로 가는 코스가 원적봉으로 이어진 최단 코스다. 문제는 들머리 찾기다. 등산로 입구까지의 임도가 지도에 표기되어 있지 않아 찾아가기가 모호하다. 낙수제는 저수지가 아닌 폭포이므로 내비게이션에 나오지 않는다.

입구의 두메산골식당(백사면 원적로 743)에서 산쪽 골목으로 방향을 틀어 육괴정 직전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틀어 가면 비포장 갈림길이 나오고, 다시 좌측으로 가면 ‘낙수제’ 이정표를 만난다. 낙수제 방향으로 260m 올라가면 차단기와 등산안내도가 있는 등산로 입구에 닿는다. 승용차로는 가기 힘든 비포장길이며 두메산골식당에서 들머리까지 1.1km 거리다.  

낙수제부터 원적봉까지는 가파른 오르막이라 전체 산행 중 가장 힘든 구간이다. 원적봉부터 정상까지는 산행의 하이라이트 구간으로 원적봉과 천덕봉을 비롯해 중간에 야영하기 좋은 헬기장이 한 곳 더 있다. 때문에 원적봉이 텐트로 다 찼을 경우에는 정상을 향해 가면서 적당한 터에 짐을 풀어야 한다.

천덕봉에서 넉고개로 이어진 능선은 이정표가 잘되어 있고 주능선이 뚜렷해 길찾기 어려운 곳은 없다. 다만 주릉3봉 직전 왼쪽으로 꺾이는 갈림길이 있는데, 봉우리를 우회하는 길로 착각하고 가선 안 된다. 쓰러진 나무들이 길을 막고 있어 더 고생스런 산행이 되므로 직등해서 주릉3봉을 넘어서는 것이 편한 산행법이다.

주릉1봉에는 능선 등산로가 폐쇄되었다는 안내판이 있고, 여기서 범바위약수터(식수 가능)로 내려서야 한다. 여기서 임도 걷기길을 따라 30분쯤 가면 넉고개에 닿는다. 원적산 정상 부근에는 샘터가 없으므로 물을 지고 올라야 한다.

교통

대중교통 이용 시 이천터미널에서 23-8번 버스를 타고 회차 기점인 ‘도립리(육괴정)’에서 하차한다.

이천터미널에서 하루 2회(11:20, 14:50) 출발하며, 도립리에서 회차(12:00, 15:30)해 터미널로 나간다. 넉고개에서는 도로를 따라 동원대학교로 넘어가면 서울 잠실역과 강변역, 남부터미널로 가는 500-1, 500-2, 1113-1번 좌석버스가 2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숙식(지역번호 031)

들머리와 날머리에는 별다른 숙소가 없으므로 이천시내의 숙소를 이용해야 한다. 낙수제 입구의 두메산골식당은 두부전골과 김치찌개, 버섯불고기전골이 주메뉴다. 숲속의흙나라(632-7333)는 낙수제 입구의 오리요리 전문집이다. 날머리인 넉고개 부근에는 식당이 여럿 있다. 이천쌀밥 한정식 전문점 덕제궁(634-4811), 안식피순대국(634-0066) 등이 있으며, 가까이 신둔초교 부근에 식당이 많다.

오늘의 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