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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산사와 명풍경 | 구미 금오산 약사암

by 白馬 2016. 5. 24.

 

약사암 연등은 바람을 재우고 대혜폭포 물소리는 신록으로 움트네

 

 

꽃들의 향기는 말을 아낀 결과다. 말은 할수록 몸피가 커진다. 뜯어보면 포장만 요란한 질소과자다. 나무들은 침묵으로 제 귀를 열어놓고, 인간은 어떻게든 이 말 저 말 다 해서 제 귀를 막는다. 꼭 할 말을 하지 못해 일을 그르친다. 

바야흐로 여왕의 계절이다. 조금만 고개를 돌려보자. 여기도 꽃이고 저기도 꽃이다. 이 나무도 움트고 저 나무도 움튼다. 모두 눈에 티가 없는 나무들이다. 나무들은 사람들이 쉽게 선택하는 입 대신에 눈과 귀를 선택한다. 먼저 보고 먼저 듣는다. 마지막까지 생각하고 가장 빠르게 생각을 내민다. 그 생각이 녹음이 되고 그늘이 된다.

하늘의 고요가 들리는 도선굴과 명금의 대혜폭포

멀리서도 우뚝하다. 금오산에 대한 첫인상이다. 그 인상은 이 고장의 인물들과도 무관하지 않다. 먼저 채미정(採薇亭)에 든다. 채미, 굶어죽을 각오로 지킨 절의가 아닌가.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먹다가 끝내 굶어죽은 백이와 숙제의 고사를 상기시킨다. 채미정은 야은(冶隱) 길재(吉再) 선생을 기리기 위해 지은 정자다. 명승 제52호다.

정문인 흥기문(興起門)을 들어선다. 수백 년 된 거목의 팽나무는 선생의 풍모요, 우뚝한 금오산은 드높은 절의다. 절의는 옳음이다. 그 옳음을 끝까지 지키는 이가 얼마나 되는가. 지키면 저리 높고, 높아서 숭앙된다. 경모각에는 숙종의 어필오언구가 걸려 있다. 높은 산을 흘러온 청류가 선생의 회고가(懷古歌)를 낭랑히 읊조리며 세상에 길이 전해주고 있다.

 

천애절벽에서 한 치도 물러섬이 없는 약사암이 바위옷을 입었다.

천애절벽에서 한 치도 물러섬이 없는 약사암이 바위옷을 입었다.

 

금오산(金烏山)은 우리나라 최초의 도립공원이다. 산세의 규모가 컸더라면 국립공원이 될 만한 산이다. 해발 높이는 976m, 정상 현월봉까지는 3.3km다. 금오산 산명의 유래는 아도 스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도는 삼국유사에 의하면 고구려에 불교를 전파한 스님이다. 그 스님이 태양 속에 산다는 황금빛 까마귀 금오(金烏)가 저녁노을 속에 비상하는 모습을 보고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금오는 태양의 이명이며, 삼족오(三足烏)라 부르는 신화 속의 새다. 금오산은 여수, 경주, 하동에도 있다. 구미의 금오산 말고는 한자 ‘오’ 는 모두 자라 ‘오(鰲)’ 자다. 무학대사가 이 산에서 왕기를 보았다고 한다. 우연일까. 현대사가 말해 주고 있으니 금오산은 이곳 사람들에게는 태양의 정기를 받은 특별한 산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금오동학(金烏洞壑) 암각서를 지난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단박에 붓을 크게 휘둘러 썼다. 초서의 대형 필체가 활달한 기운을 준다. 글자마다 만학동천이다. 안내문에 초성(草聖)이라고 일컬어졌던 고산(孤山) 황기로(黃耆老)의 글씨라고 적혀 있다.

해운사로 간다. 케이블카가 심심찮게 오르내린다. 문명의 길은 직선을 고집하고 자연의 길은 곡선을 지키려 한다. 사람들은 에둘러 돌아가는 길을 탓하기도 하나 시냇물은 투덜거리는 대신 즐거이 노래하며 흐른다. 더불어 연둣빛 버들도 낭창한 가지를 흔들며 기쁘게 춤추고, 꽃들도 한껏 부풀어 얼굴까지 발갛게 상기되었다.

 

구미 금오산 약사암

1 약사암에서 현월봉 가는 길. 바위 협곡 동국제일문 지나 하늘이다. 2 큰 바위 속에서 피어난 마애여래입상의 미소가 아침햇살로 퍼진다. 3 애틋해서 아프고 눈물 나는 사연의 오형돌탑에 깊은 사랑이 흐른다.

 

대혜문을 지난다. 수양벚나무가 연방 꽃을 내려놓고 있다. 떨어진 꽃들이 땅바닥을 덮을수록 가슴 한복판이 허전할 것도 같은데, 나무는 서운한 기색이 없다. 대혜문은 그럴수록 탄탄한 성곽의 팔을 펼쳐 나무들을 그느르고 있다.

해운사 마당에 선다. 칼다봉을 중심으로 펼쳐진 능선 아래로 급박하게 내지른 절벽들이 절을 에워싸고 있다. 그 중간쯤 길 없는 곳에 도선굴이 보인다. 곧장 굴로 향한다. 길은 벼랑이다. 이런 길로 가는 도선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깨치지 못하면 깨지고 마는 절박하고도 비장한 그 발길을 생각한다. 우리는 구도자가 아니어도 때로 외통수에 걸려 무언가를 걸어야 할 때가 있다. 무엇을 걸 것인가. 그 무엇을 우리는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굴의 내부는 생각보다 넓다. 큰 반달 모양의 굴은 고요하다. 갇히는 곳이 아니라 나아가고 열어 새로운 세계를 보는 그런 적적(寂寂)의 공간이다. 눈을 감고 앉아 있어 보니 알겠다. 도선굴은 하나의 눈이다. 밖으로 노출되기보다는 항상 무명의 심처에서 빛의 세계를 탐조하는 눈이다. 주체로서보다는 객체가 되어 사물과 세상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보기 위한 심안이다. 도선은 돌아설 수 없는 절벽의 그 길을 스스로 선택했던 것이다. 켜놓은 촛불들은 미세한 숨결로 떨며 빛을 발하고, 어디선가 떨어지는 물방울소리가 하늘에 또 다른 구멍을 내고 있는 중이다.

반질반질한 협로를 따라 도선굴을 나선다. 곧 대혜폭포다. 대혜담을 지나온 성성한 물줄기는 금오산을 울리고, 밤 새 별을 씻긴 물소리가 나무들의 가지마다 신록으로 움튼다.

 

칼다봉 능선 아래로 펼쳐진 기암절벽은 만물상이요 만물송이다.

칼다봉 능선 아래로 펼쳐진 기암절벽은 만물상이요 만물송이다.

 

구미 금오산 약사암

숙종의 어필오언구와 길재 선생의 절의가 빛나는 명승 채미정이다.

 

빛의 물결로 번지는 마애불의 미소와 거암을 입은 약사암

‘할딱고개’를 오른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일품이다. 금오지 가장자리를 따라 벚꽃은 만개했고, 호수를 떠다니는 오리 배들은 휴일의 전형적인 풍경을 만들었다. 오형돌탑에 이른다. 마침 이 돌탑들의 사연을 잘 아는 현지인을 만나 생생한 이야기를 들었다. 뇌성마비로 태어난 손자를 위하여 할아버지 혼자서 쌓아온 돌탑이다.

안타깝게도 손자는 열 살 때 세상을 떴지만 돌탑을 쌓는 일은 이어져 올해가 11년째라고 한다.

‘큰 돌 작은 돌/ 잘생긴 돌 못생긴 돌/ 차곡차곡 등에 업고… 못다 핀 너를 위해/ 세월을 묻고 싶다/ 석아’

돌탑의 글을 읽고 있노라니 숙연해진다. 애틋해진다. 눈이 매워진다. 사랑은 이렇게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흘러 우리의 핏속에 영원히 전해지고 우리를 지키는 것이구나.

오형돌탑에서 얼마 가지 않으면 마애여래입상이 나온다. 보물 제490호다. 특이하게도 바위의 모서리 부분에 새겼다. 양감이 풍성하고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곡선이 흘러 자연미와 생동감을 더한다. 상체의 형태미는 뛰어나다. 다만 아래로 내려오며 팔의 길이나 크기 등이 비례를 벗어났다. 그렇지만 볼수록 조형미가 살아나 오래 보게 된다.

 

꽃은 아무리 피어도 무겁지 않다. 만개한 벚꽃이 금오정 지붕이다.

꽃은 아무리 피어도 무겁지 않다. 만개한 벚꽃이 금오정 지붕이다.

 

굽은 솔 곧은 솔, 붉은 솔 검은 솔, 이 솔 저 솔 다 모인 솔숲이다.

굽은 솔 곧은 솔, 붉은 솔 검은 솔, 이 솔 저 솔 다 모인 솔숲이다.

 

바위 모퉁이를 돌아서 가풀막을 기어오르면 약사암이다. 암자 바로 뒤의 거대한 암봉이 세상을 압도한다. 약사전에는 석조약사여래좌상이 모셔져 있다. 바위 사이의 협로를 따라 동국제일문을 지나 현월봉에 올라선다. 구미시를 품고 흐르는 낙동강이 유유하다. 약사암 전경은 정상보다는 바로 오른쪽 아래 돌탑이 있는 봉우리에서 봐야 가장 잘 보인다.

약사암은 천애절벽에 있다. 거대한 바위봉우리에 기댄 것이 아니라 바위 자체를 입고 있다. 대오의 단추 하나 풀면 바위는 암자의 날개가 되어 누군가에게 또 저 태허의 자유를 줄 것이다. 바위를 입기도 어렵지만 벗지 못하면 죽는 바로 저기서 의상이 선녀의 천공(天供)을 받으며 득도했다 하여 유래된 암자다.

성안으로 향한다. 산의 정상부 바로 아래에 있는 천연분지다. ‘금오산성중수송공비’가 세워져 있어서 그 내력을 소상히 알 수 있다. 성안마을은 과거 9정(井) 7택(澤)이 있어 40여 호의 민가가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지금도 3개의 못이 있어 물이 풍족하다.

산을 내려간다. 걸음마다 꽃이다. 현호색은 지천이고, 노루귀와 개별꽃도 피고 올괴불나무도 꽃을 피웠다. 산길은 굽어서 사람은 깊어지고, 물은 굽이굽이 흘러 멀리 갈 힘을 얻는다. 금오지에 닿는다. 꽃바람 난 세상에 소풍 나온 하루가 좀처럼 저물지 않는다. 꽃에 취하지 않는 봄날이 무슨 소용이냐며.

 

구미 금오산 약사암

1 깎아지른 도선굴 가는 길 도선의 마음 벼랑 조심조심 디뎌본다. 2 깊고 고요한 산속 노루귀가 햇살을 빨며 잔뜩 귀를 기울이고 있다. 3 산괴불주머니. 주머니마다 한 움큼 보석을 숨기느라 개화가 늦다. 4 올괴불나무가 발레 스커트에 빨간 슈즈 신고 나비처럼 춤추며 산다.

 

대혜폭포

절벽에 길을 내는 건 폭포뿐이다

성안의 못물 대혜담 깊은 물 모아
한 점 의심 없이 벼랑을 뛰어내리는
성성한 물줄기 금오산을 울린다
칼다봉의 심박동은 빨라만 지는데
절벽의 꽃과 나무들이 절로 내지르는 탄성
물보라로 흩어지고 무지개로 빛난다
밤 새 별을 씻긴 물소리 나무마다 신록으로 움트고
세상을 마음껏 두드리는 폭포비는
선녀의 욕담을 흥건히 채우고 노래되어 흐른다
굽이굽이 금오동학 골짝을 돌며
세상 에둘러 가는 길 탓하지 말고
즐거이 노래하는 걸음이 되라 한다
나무가 나무를 만나 이룬 깊은 숲같이
봉우리가 봉우리를 만나 만든 큰 산같이
그대 사람의 사람이 되라 한다
꽃비 폭포비 맞으며 세상을 잊은 지금
대혜문 지나 채미정으로 흐르는 청류가 되라 한다
때로 누군가의 폭포가 되는 그대
사람에 길을 내는 건 사람뿐이다
 

 

 

금오산 안내도

 

 

*** 1번 코스(약 4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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