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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명산 명품 산행로] 가야산, 깨달음으로 피어난 가야의 바위 연꽃

by 白馬 2009. 12. 31.
        [명산 명품 산행로] 가야산, 깨달음으로 피어난 가야의 바위 연꽃
해인사~토신골~상왕봉~칠불봉~서성재~백운동 9km
 
마치 현실에 없는 산처럼 보였다. 늘 그랬다. 가야산은……. 희미하게 솟았으나 모양새엔 기품과 카리스마가 있었다. 지리산의 긴 선과는 전혀 다른, 외따로이 단 한 번 산세를 확 솟구쳐 멀리서도 눈에 띄는, 경외감이 드는 비현실적인 선이었다.

합천과 성주 부근에는 가야산보다 높은 산이 없다. 경남·북과 전남·북 네 개 도를 따져도 가야산보다 높은 데는 지리와 덕유가 유일하다. 그러나 지리·덕유와는 확연히 다르다. 높은 산들이 보통 커다란 덩치로 길게 띠를 이룬 반면, 멀리서 본 가야는 구름을 뚫고 단 한 번 하늘을 찌른다. 물론 족보를 따지면 대간의 덕유산 언저리에서 갈래 친 줄기의 일부분이지만 먼 데 다른 산 정상에서 가야산을 보면 마치 홀로 솟구친 하늘의 성채같다. 그 중에서도 동쪽에서 본 모습이 훤칠해 시야가 깨끗한 날이면 도도하게 불타는 바위산을 경남·북의 시야 좋은 산정에서 볼 수 있다.

▲ 상왕봉에서 칠불봉으로 이어진 암릉길. 안전한 우회로가 있어 위험하지 않다.

선대에도 미의 기준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선 후기의 탁월한 지리서인 <택리지>는 가야산의 기암괴봉이 불꽃을 닮았다 해서 석화성(石火星)이라 했다. 이중환은 “불꽃이 공중에 솟은 듯하다”고 했다. 그렇다. 무언가 갈구하듯 하늘을 향해 폭발하는 바위 능선은 보는 방향에 따라 불꽃이나 연꽃처럼 보인다. 같은 꽃이지만 참 다른 아름다움을 닮은 게다. 전혀 다른 둘을 닮았으니 비현실적인 선이라 할 만하다.

연꽃 속으로 걸어들어 간다. 함께 걷는 이는 힘이 장사라 무거운 배낭도 거뜬히 짊어지는 홍장천(자이언트트레킹 이사)씨와 시흥의 등산인 장명숙(38)씨다. 하필이면 근래에 가장 추운 날이다. 도로표지판이나 모든 게 해인사 위주다. 보통은 산에 속한 산이지만 해인사는 산보다 더 큰 이름으로 솟았다. 가야산에 와서 해인사를 빠뜨린다면 산이 가진 깊이의 반을 버린 것이라 했다.

일주문 안으로 들어간다. 늙은 아름드리 나무들이 여기에선 느리게 걸어야 한다며 기운을 은은하게 바꿔놓는다. 봉황문에는 빛바랜 벽화 속에 사대천왕이 살고 있다. “경내에선 경거망동하지 말 것이며, 행자들의 수행을 방해하지 말 것이며……” 하는 잔소릴 늘어놓는 것만 같아 얼른 지나친다.

이어 오른편의 작은 건물은 국사단(局司壇)이다. 가야산을 지키는 산신령과 토지가람신을 위한 건물이다. 가야산신인 정견모주(正見母主)는 깨달음의 어머니란 뜻으로 두 아들을 두었는데 큰 아들 이진아시왕은 대가야국을, 작은 아들 수로왕은 금관가야국을 건국했다 한다. 닫힌 문을 열자 정견모주와 눈이 마주쳤다. 부드러운 눈빛, 호랑이를 거느린 산신령상과 달리 노루를 거느린 인자한 분위기다. 가야산의 어머니답게 모성애가 묻어난다.

돌계단을 올라 해탈문 안으로 든다. 깨달음의 세계로 든다. 너른 마당에 해인도(海印圖)가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보면 탑을 중심으로 만든 미로 같지만 의상대사가 만(卍)자를 발전시켜 불교 교리를 도 안에 써 넣은 것이다. 미로가 54번 꺾이는 동안 210자의 계송을 마음으로 체득하면 깨달음에 도달한다고 한다.

▲ 1 봉천대에서 상왕봉으로 이어진 바윗길. 2 봉천대에서 상왕봉 정상으로 이어진 길의 바위 협곡. 3 토신골 입구의 조릿대 숲. 능선 아래는 육산이며 바위는 대부분 능선에 솟았다.

‘활짝 피어나라 팔만 개의 꽃송이여’

‘부처님 진신사리 참배하는 곳’이라고 커다랗게 적힌 2층 건물 구광루는 현수막과 안내판이 현란해 예스런 맛은 없다. 팔만대장경을 보기 위해 다시 계단을 오르자 대적광전과 비로탑이다. 대적광전에는 여러 글귀가 걸려 있는데 고종과 흥선대원군이 쓴 글이 있다. 고종의 필체는 단아한 반면 흥선대원군의 글씨는 그의 삶처럼 활달하고 거칠 게 없다.  

이어 계단 치고는 경사가 상당히 센 장경각 입구다. 팔만대장경이 있는 곳의 입구라 그런지 계단을 오르자 잡생각이 사라진다. 가파른 계단에 집중하느라 머리가 비워진 게다. 장경각 입구는 은밀한 멋을 지니고 있다. 둥그런 입구와 그 속으로 비치는 햇살, 너머로 보이는 형이상학적인 가람 기왓장의 선들, 뭔가 대장경판에 담긴 비밀을 알려줄 듯하다. 장경각 입구에는 실제로 작은 비밀이 담겨 있는데 춘분과 추분 오후 3시경이면 3분간 연꽃이 땅에서 피어난다는 것이다. 장경각 입구의 동그란 문으로 들어선 햇살이 맞은편 지붕 기와 사이로 내려서면서 땅에 연꽃 모양의 햇살이 생기는 게다. 산도 연꽃처럼 솟았고 장경각에 비친 햇살도 연꽃이니 가야산은 한 송이 연꽃이라 해도 좋겠다. 

장경판전은 네모난 마당을 둘러싼 단층의 가람이다. 참 간결한 건물이다. 보존 기능만 있을 뿐 일체의 장식이나 사치가 없다. 바람이 잘 흐르고 기온이 적당하고 습기가 차지 않도록 과학적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니 진득하게 수백 년 동안 대장경판을 지켜온 것일 테다. 이와 반대로 건물의 화려함과 규모에만 신경 썼다면 대장경판이 지금껏 이어오지 못했을 테다. 대장경을 지켜낸 데 일조한 이로 폭격기 편대장 김영환 대령을 꼽을 수 있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 해인사에 있는 빨치산을 몰아낼 때 폭탄을 쓰지 않고 기관총으로 공격해 대장경의 파괴를 막았다.

나무 창살 틈으로 대장경판이 보인다. 창살 틈으로 햇살이 스며든다. 내려앉는 먼지도 보일 정도로 조용하다. 세월이 멈춘 듯 잠든 대장경판, 곁에 돗자리 깔고 단잠을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자고 나면 사람이 더 깊어져 있을 것만 같다. 벽에 걸린 말이 마음에 든다. ‘활짝 피어나라. 팔만 개의 꽃송이여.’

일주문을 나오자 몹시 바람이 분다. “윙윙”하며 나무와 바람이 나누는 거친 말소리가 들린다. 낙엽이 바람과 춤을 추는지 회오리치며 하늘로 오른다. 땀을 내려 발걸음을 서두른다. 섬뜩하리만치 시퍼런 하늘과 날이 선 바람이 잘 어울린다. 저 하늘 속으로 풍덩 뛰어들면 얼어 죽을 것 같다.

빈 나뭇가지 아래 아직 빛깔을 잃지 않은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다. 손님들이 다 떠나간 잔칫집 풍경이다. 치울 일만 남은 게다. 꽃 피던 시절, 뜨거웠던 시절, 감상적으로 물들던 시절 다 가고 뼈만 남은 산의 속을 보며, 이것이 꾸밈없는 진짜 산임을 받아들여야 하는 그런 시절인 것이다. 어떤 시절도 안 될 것 같아도 다 살아진다는 것을 생채기를 새긴 채 자란 나무는 알고 있다.

거친 바위가 빚어낸 우아한 하모니

힘들지 않은 오름길을 한참, 전망에 대한 기대를 잊어버리자 전망바위다. 상당히 오만한 풍경, 모든 산이 발아래다. 마지막 단풍의 불씨가 꺼져가는 게 저 아래 보인다. 그 위로는 산의 속이 다 드러나 있다. 이후로는 기암 전시장이다. 가야의 진면모는 여기부터다. 지금껏 밋밋하던 풍경은 간 데 없고 어딜 봐도 그림이다. 타오르는 바위 연꽃 속을 걷노라니 발걸음이 설렌다. 봉천대에 이르자 조각품처럼 솟은 침봉들과 거침없는 풍경이 속을 시원하게 한다. 산에 취한 등산객들은 연신 칼바람이 부는데도 쉬 떠나지 못한다.

▲ 칠불봉 정상. 최근의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칠불봉이 더 높은 것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등산객들은 여전히 상왕봉을 정상으로 여긴다.

바위의 형세로 봐서 분명 위험한 길이 나올 법한데, 일부러 등산로를 벗어나지 않는 이상 다 안전한 길이다. 철계단이 간간이 있으나 산세에 비하면 적은 편이다. 철계단을 오르니 늘 멀리서 봐왔던 석화성의 정점, 상왕봉이다. 뾰족하지 않은 2단 구조의 큰 암릉이다. 아래는 넉넉하고, 엄밀한 정상인 위쪽도 뾰족하거나 거칠지 않아 누구나 적당히 붙잡고 오를 수 있다. 정상다운 정상이다. 사방으로 트여 있고, 좁지도, 위험하지도, 연약하지도 않다. 소위 등산인들이 땀값 한다고 여기는 그런 맛있는 정상이다. 하늘은 어떻게 저토록 강렬한 파랑인지, 몸을 날려 으라차차 점프하면 하늘 속으로 풍덩 하고 빠져 버릴 것만 같다.

먼 산의 실루엣보다는 가야산의 지능선이 바위 불꽃으로 타오르는 게 보인다. 능선에 솟은 저 거친 바위의 몸짓들, 그러나 선을 전체적으로 보면 거칠기보다는 우아함에 가깝다. 날카로운 듯 둥글고 제각각인 듯 일관성 있게 솟구친 암릉 줄기는 자연이라는 대가가 빚어낸 필사의 작품이다. 바위는 거대한 무게감으로 사람을 제압하려 들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오래토록 바라보자 햇살에 비친 울퉁불퉁한 선의 결에서 빛이 난다. 섬세한 몸사위로 솟은 총명한 바위다.

바람이 지배하는 암릉길을 지나자 칠불봉이다. 1,433m로 상왕봉보다 약간 높아 성주군에서는 이곳을 주봉이라 적어 놓았지만 정상이 가진 넓이나 아량이 상왕봉에 비할 바 못 된다. 그러나 뾰족하게 솟아올라 동쪽과 남쪽으로 경치가 아찔하다. 가장 매혹적으로 빛나는 것은 만물상으로 저 잘생긴 능선을 손으로 확 잡아 배낭에 넣어 가고 싶다.

하산길, 한참 내려서다 뒤돌아보니 파란 하늘 속에 연꽃이 피었다. 감히 대항할 수 없는 성채 같았던 상왕봉과 칠불봉은 더 이상 험악한 인상이 아니었다. 거친 바위의 몸사위가 아이러니하게도 연꽃으로 피어오른 것이다. 가야산의 신은 깨달음의 어머니인 정견모주라 하지 않았던가. 강함 속에 부드러움이 있고 부드러움 속에 강함이 있다고 저 웅장한 연꽃이 말하고 있지 않는가.

▲ 하늘을 향해 솟구친 봉천대의 기암. 공룡의 뿔처럼 솟은 특이한 모양의 바위다.

“가야산 개방 등산로, 겨우 한 가닥뿐”…등산인들 불만 가득
관리공단 “만물상 구간 개방키 위해 정비 중, 그 외의 추가 개방은 불가”


가야산은 등산코스를 택할 여지가 없다. 해인사와 상왕봉~백운동을 잇는 단 한 코스뿐이다. 이로 인한 지역 주민들의 불만도 있다. 합천 치인리 주민 김인자씨는 “군에서 요청도 하고 우리가 데모도 하고 다 해봤죠. 끄떡도 안 해요”라며 관리공단의 닫힌 행정을 비판했다. 성주 가천면 주민 김인수씨는 “오랫동안 건의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며 가천면을 기점으로 한 등산로 개방에 대해 체념한 듯 얘기했다.

이에 대해 가야산국립공원 장봉식 탐방과장은 “현재 개방된 코스는 예전부터 등산객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던 길이며 지금도 이용객들 대부분이 이 코스를 이용하고 있다”며 현재의 등산로만으로도 큰 불편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불편이 없다는 말의 기준이 모호하다. 가야산 같은 명산은 풍경을 여러 다른 코스로 다양하게 경험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인데, 관리소는 획일적으로 단 한 가닥의 코스만 열어놓고 “불편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관리소는 “다만 성주군과 합천군의 요구가 있어 비법정으로 통제되던 만물상 코스를 안전시설을 정비해 향후 개방할 예정이며, 올해까지 출입이 제한된 청량사~남산제일봉 코스를 두 달 앞당겨 10월 31일부터 개방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 외의 코스는 “볼거리도 적고 과거 주민들이 이용하던 길이 많아 이 길을 다 개방할 순 없다”며 추가적인 개방은 안 된다는 방침이다.

관리소는 “지금의 백운동이나 해인사 지구 외에 새로운 들머리를 만들 경우 도로망과 주차장, 대중교통 등의 인프라를 구축해야 하는데 지자체나 관리공단에서 추진하기에 자금이나 여러 가지 부분에서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소위 그러한 인프라 구축이 돼 있지 않아도 통제만 하지 않으면 등산동호인들이 대환영이라며 찾아갈 것이다.

관리소 측은 영향력이 큰 해인사와의 협의도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2007년에 해인사는 관리공단과 상의 없이 임의로 문화재관람료를 안 내고 입장할 수 있는 남산제일봉 구간에 철조망을 쳐 등산객을 막은 적이 있다.

손동호 사무소장은 “무조건적인 보호를 주장하는 게 아니다”라며 “지역 주민과 상생하고자 한다. 남산제일봉~청량사 구간 조기 개방이나 만물상 개방준비도 그런 의미로 이해해 달라”고 당부한다.

공단 입장에서는 관리상의 어려움이나 인프라 구축의 어려움이 있다지만 백련암에서 서성재로 이어지는 코스나 극락골, 심원골, 솔티재~가산~서성재 코스 등은 아쉽다. 더구나 수도산과 가야산을 잇는 종주코스는 산꾼들에게 겨울산행의 로망 아니던가. 등산인의 욕심대로 길을 다 열 수는 없겠지만 당일산행 한 번에 “가야산 다 본 것”이라고 말하는 지금의 현실은 심하지 않은가. ‘국립공원’이 아닌 ‘국민 접근 금지구역’이라 이름 붙이는 게 지금으로선 더 어울린다고 할 것이다.

산행 길잡이

외길이라서 정상 길찾기 쉬워
암릉에선 걸음을 천천히 하여 감탄사를 충분히 토해내야


가야산 상왕봉은 해인사~토신골~상왕봉~용기골~백운동 코스가 유일하다. 즉 해인사와 백운동 중 어딜 들머리로 할지만 정하면 된다. 원래 해인사로 산행을 시작하는 이들이 많은 편이지만 대절버스는 문화재관람료 탓에 백운동을 들머리로 삼는 산악회가 더 많다. 승용차를 타고 온 경우 반대편 기점에서 택시를 타고 돌아오는 편이지만 택시비가 최소 2만 원 정도 하는 탓에 올라온 길로 다시 내려오는 이들도 있다. 해인사에서 백운동까지는 15km 정도로 멀진 않지만 운행하는 버스편이 없다. 행정적으로 경상남도와 북도가 갈리고 이용률이 적어 수지가 맞지 않아 그렇다고 한다.

외길이니 길 찾기는 쉽다. 버스를 타고 온 경우 해인사터미널까지 가지 말고 해인사 앞에서 내려야 한다. 해인사를 구경한 다음에 왼쪽 숲길을 따라 오르면 토신골이다. 계곡길은 평탄하고 흙길이라 푹신해 담소를 나누며 천천히 몸을 풀 수 있다. 바위산으로 알려진 가야산이지만 한 시간을 걸어도 바위나 조망터는 없다.

해발 1,250m 지점인 봉천대 부근부터 암릉 전망대가 나타난다. 암릉은 대부분 능선에 집중적으로 솟아 있다. 험한 암릉길에는 철계단이 있어 위험한 구간은 없으며 가파른 길은 짧게 이어진다. 다만 적설기 산행시에는 능선 암릉 구간이 미끄럽고 위험한 곳이 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국토지리정보원에서 최근 확인한 바에 따르면 칠불봉이 1,433m로 상왕봉보다 약간 더 높다. 그러나 관습적으로 상왕봉을 주봉으로 여겨왔고 주봉으로서의 생김새 또한 더 어울린다.

가민 오레곤 300 GPS로 확인한 주행거리는 9.5km이며 5시간 정도 걸린다. 토신골과 용기골은 수량이 적고 숲이 빽빽해 산행은 지루한 편이다. 봉천대부터 서성재까지 암릉 구간이 산행의 백미다. 바윗길은 트여 있어 바람이 심하므로 보온 대책을 확실히 해서 나서야 한다. 산행 후에는 목욕으로 땀을 씻어내면 개운하다. 백운동은 가야산관광호텔, 치인리는 해인관광호텔에서 목욕탕을 운영한다.

>>교통

▲ 고바우식당의 산채정식.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대구 서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해인사행 버스를 타면 된다. 40분 간격으로 운행하며 1시간30분 정도 걸린다. 해인사에서 대구까지 가는 버스도 40분 간격이며 막차는 저녁 7시50분에 있다. 반면 백운동은 버스편이 거의 없으므로 해인사행 버스를 타고 오다 가야면에서 하차해 택시를 타면 10분 만에 닿는다. 해인사 개인택시(011-804-7262), 해인사 콜택시(011-512-9702), 가야택시(055-933-3477), 개인택시(055-933-9192) 등이다. 해인사와 백운동을 오갈 때의 택시비는 1만5,000~2만5,000원으로 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다.


>>숙식

▲ 온천이 유명한 가야산관광호텔.
해인사 지구는 치인리에 숙박업소가 많다. 맛집의 원조로 꼽을 수 있는 곳은 고바우식당(055-931-7311)으로 40년 역사의 산채정식(1만 원)이 별미다. 성주에서 시집 온 김윤자(61) 사장이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문을 연다. 맞은편의 고바우별장(055-932-5599)은 여동생이 운영하는 여관 겸 식당이다. 이외에도 삼일식당(055-932-7254), 백운장식당(055-932-7393), 문화장(055-932-7277), 부산장(055-933-0977) 등이 있다. 해인사관광호텔(055-933-2000)은 목욕탕을 운영한다.

백운동 지구는 숙박업소가 적다. 가장 대표적이며 잘 알려진 곳이 가야산관광호텔(054-931-3500)이며 지하 650m 암반수를 끌어올린 유황온천이 산행 후 피로를 씻기에 좋다. 5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중탕이다.

>>명소

해인사

▲ 해인사.
가야산을 모르는 사람도 합천 해인사는 안다. 그만큼 명성이 높다. 가야산 기슭에 위치한 해인사는 팔만대장경판을 봉안한 법보사찰로서 불보사찰 통도사, 승보사찰 송광사와 더불어 한국 3보 사찰로 꼽힌다. 해인사의 ‘해인’은 <화엄경>에 나오는 ‘해인삼매(海印三昧)’에 근거를 두고 이름 지은 것으로, 삼라만상이 고요한 바다에 비치듯이 번뇌가 끊어진 부처의 정심(定心)에 만법의 실상, 즉 진리가 명료하게 비친다는 뜻이다.

현재 남아 있는 50여 동의 당우는 대부분 조선 말 중건한 것이며, 부속암자 14개와 말사 75개를 거느리고 있다. 그 중 장경각은 고려 대장경판을 보관하기에 적합한 과학적인 걸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대장경판은 원래 강화도 선원사에 있던 것을 지천사로 옮겼다가 태조 7년(1398년) 해인사로 옮겨온 것이다. 이 밖에도 신라시대의 3층 석탑, 석등, 석조여래입상(보물 제264호), 대장경판(국보 제32호)과 대장경판고(국보 제52호), 반야사원경왕사비(보물 제128호), 대적광전 등이 있다. 문화재관람료 2,000원.

가야산야생화식물원

▲ 가야산야생화식물원.
성주군에서 조성한 군립식물원(054-931-1264)으로 야생화를 주제로 한 전문 식물원이다. 580여 종의 나무와 야생화를 식재해 2006년 완공한 현대식 식물원이다. 크게 실내 전시관과 야외 전시관, 온실로 나뉘어 있다. 실내 전시관에서는 가야산의 주요 야생화와 사계를 사진과 영상물로 볼 수 있으며 숲속 이야기 등을 관람한다. 야외 전시관과 온실에서는 다양하게 꾸며놓은 야생화와 나무들을 만날 수 있다. 입장료는 무료이며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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