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 만난 서천 앞바다 쫄깃쫄깃 '주꾸미'
나 주꾸미. 그리 뼈대 있는 가문 출신은 아니다. 실은 뼈라곤 하나도 없다. 본관은 ‘문어과’. 줏대 없이 흐물거리기로 유명한 집안이다. 낙지 오빠가 우리 집안 종손(宗孫)이다.
어려서 나는 가문의 ‘미운 오리새끼’였다. 종손인 낙지 오빠와는 비교도 안 되는 못난이였다. 다리가 그야말로 ‘저주받은 숏다리’다. 길고 미끈한 다리를 자랑하는 낙지 오빠는 몸길이가 최대 75㎝까지 자란다. 난 절반도 안 되는 30㎝에 불과하다.
낙지 오빠는 오래전부터 술안줏거리로 값비싼 사랑을 받아왔다. 하지만 나는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기 서해안 어촌 사람들이 허기질 때나 먹던 천덕꾸러기 신세였다. 그러니 서해에서 멀리 떨어진 서울이나 경상도에선 아직 날 맛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을 수밖에. 세상으로부터 홀대받던 내가 미운 오리새끼 신세에서 우아한 백조로 탈바꿈한 건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1990년대 중반쯤이던가? 사람들이 ‘발전’이란 이름으로 자연을 파괴했다. 낙지 오빠의 서식처인 서해 연안 갯벌이 심각하게 오염됐다. 깨끗한 환경에 익숙한 낙지 오빠는 오염을 견디지 못하고 갯벌을 떠났다. 그러지 않아도 비쌌던 낙지 오빠 몸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요즘 낙지 오빠는 마리당 수천원에 거래되는 ‘귀하신’ 몸이다. 그래서 내가 수난을 당한다.
▲ 충남 서천 마량포구 앞바다 갯벌. 갯벌이 오염되면서 낙지 오빠는 여길 떠났다. 낙지 오빠를 그리워하던 사람들은 대신 나 주꾸미를 찾았고, 덕분에 내 신세도 고달파졌다.
비싼 가격 때문에 낙지 오빠를 맛보기 어렵게 된 사람들은 비교적 저렴한 나 주꾸미에게 젓가락을 돌렸다. ‘꿩 대신 닭’이 아니라 ‘낙지 대신 주꾸미’가 된 것이다. 맛 없고 못생겼다고 나를 구박하던 사람들, 요즘 나를 바라보는 눈길이 전에 없이 부드러워졌다. 낙지 오빠만큼 쫄깃하지 않고 구수하지 않다고 구박하더니 요즘은 “육질이 부드럽고 담백하다”고 한다. 지방이 1%도 안 되고 몸에 좋은 아미노산도 풍부한 ‘웰빙’ 식품이라고도 칭찬한다. 통통한 몸통과 짤막한 다리도 귀엽고 정이 간다나 뭐라나.
예전부터 서해 연안에는 “가을에 전어를 구우면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말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이 말 앞머리에 “봄에 주꾸미를 볶으면”이란 구절이 붙는다. “봄 주꾸미, 가을 전어”라고도 한다. 충남 마량포, 홍원항 등 서해 항구에서는 매년 나를 기리는 ‘주꾸미 축제’까지 열고 있다. 나를 요리해 먹는 방법도 발달했다. 기껏해야 회로 먹거나 끓는 물에 데쳐 초고추장이나 찍어 먹더니, 이제는 샤브샤브니 볶음이니 전골이니 무침이니 다양해졌다. 먹을 줄 안다는 사람은 “회나 샤브샤브로 먹어야 주꾸미의 참맛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내 다리를 잘게 썰어 다진마늘·풋고추·당근 등과 함께 버무려 참기름과 소금에 찍어 먹는 게 회요리, 뜨거운 물에 넣고 여덟 다리가 ‘꽃이 피듯’ 쫙 퍼지고 황갈색이던 몸색깔이 선홍빛으로 바뀌면 꺼내 간장이나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게 샤브샤브다.
특히 5월 산란기를 앞두고 내 몸통(어리석은 인간들은 머리로 착각한다)에 가득 찬 알을 별미로 친다. 잘 데친 알은, 희고 반투명한 모양새도, 쫄깃하게 씹히는 맛도 영락없는 찹쌀이라고 한다. 인기도 몸값도 많이 오른 대신 평화로운 삶은 이제 영영 과거가 됐다. 알 좀 낳으려고 빈 소라 껍데기 속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이 소라가 인간들이 날 잡으려고 깔아둔 미끼가 아닌가! 이제는 금지됐지만 한때 갯벌 바닥까지 그물로 샅샅이 훑는 바람에 씨가 마를 뻔하기도 했다. 나도 낙지 오빠처럼 인간 곁을 떠나야 할 때가 오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여러분들, 서천으로 오시라. 앉은뱅이술 한산 소곡주 홀짝이며 날 좀 잡아잡숫고, 바다 구경도 하시고 곱디고운 한산 세모시도 사 가시길. 아, 일출을 볼 수 있는 바다, 마량포도 있다.
[여행수첩] ◆ 가는 길 서울 등 수도권에서는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간다. 춘장대 나들목에서 우회전하여 21번 국도를 타고 비인 방향으로 3㎞쯤 간다. 사거리에서 다시 우회전해 607번 지방도로를 따라 춘장대 해수욕장 방향으로 달린다. 도로를 따라 ‘마량리 해돋이마을’이라는 표지판이 많아 찾기 어렵지 않다. 10여분 후면 해돋이마을이 있는 마량포에 도착한다. 기차도 편리하다. 장항선 서천역이나 춘장대역에서 내린다. 마량포까지 30분마다 버스가 있다.
◆ 묵을 곳 마량포로 넘어가는 언덕에 있는 모텔 노을(041-951-6697)은 깨끗하고 전망이 좋다. 마량포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동백정별장(041-952-2245), 서울민박(041-952-7748), 동백산장(041-952-3020), 해맞이파크(041-951-3531) 등 민박도 많다. 그 밖에 장급 여관과 펜션 등 숙박 정보는 서천군 문화관광 사이트 www.seocheon.go.kr/tour에서 검색할 수 있다.
◆ 문의 서천군 문화관광 사이트에는 숙박을 포함, 서천 여행에 필요한 정보가 꼼꼼하게 갖춰져 있다. 서천군 문화관광과(041-950-4114)로 전화해도 친절하게 답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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