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창문을 열면 마음이 들어오고. . . 마음을열면 행복이 들어옵니다
  • 국내의 모든건강과 생활정보를 올려드립니다
여행

유배·은둔의 땅 영월

by 白馬 2008. 4. 26.

유배·은둔의 땅 영월
섶다리 아래 단종의 눈물인가






▲ 출렁거리는 건 반짝인다. 소나무 가지에 진흙을 발라 만든 섶다리는 발을 뗄 때마다 강물과 함께 출렁였고, 마음까지 씻겼다. 영월 주천강에서.



영월(寧越)은 지명처럼 ‘편안히 넘어가는’ 고장이 아니었다. 옴팡 들어간 분지 형태인 이 땅에 닿으려면 첩첩이 가로막는 산들을 뚫어야 했다. 복작거리는 거대 도시 서울에서 오지로 가는 길은 오르막이 길었고, 그 끝에선 유배·은둔·피란의 역사가 봄볕을 쬐며 슬픔을 말리고 있었다. 이번 주 주말매거진은 영월로 가 단종(1441~1457), 김삿갓(1807~1863), 고씨동굴을 만났다. 물속, 산속, 땅속을 훑는 여행이다.








▲ 단종어가에 있는 단종의 밀랍인형.



◆ 물의 감옥 청령포

역사 안으로 몸을 밀어넣으려면 내 삶을 정지시켜야 한다. 처음 차를 세운 곳은 단종이 잠들어 있는 장릉. 지름 50~60㎝의 푸른 소나무들은 능쪽으로 절을 하듯 몸을 굽혔고, 이들이 호위하는 길 끝에 오롯이 솟은 능은 고요해서 애잔하다. 거뭇거뭇 세월을 이고 있는 석물들을 뒤로하고 단종역사관 쪽으로 내려오는데 딱따구리 한 마리가 소나무를 쪼아 댄다. 능을 통째로 일으켜 세울 듯한 이 소리에 온몸의 세포들이 바짝 긴장한다.

물의 감옥, 청령포는 장릉에서 차로 5분 거리. 단종은 서강이 삼면을 돌아 흐르고 나머지 한쪽도 깎아지른 절벽으로 가로막힌 이 유배지에서 1457년 여름 두 달을 나고, 늦장마에 강 건너 관풍헌으로 이송됐다가 음력 10월 24일 사약을 받는다. 500년이 지나 관광지가 된 청령포에는 50명까지 태울 수 있다는 동력선이 강의 이쪽과 저쪽을 이어 준다.


 

도선료 포함해 1300원이면 1분 만에 청령포를 밟을 수 있다. 자갈밭과 갈대밭을 지나면 눈이 시리도록 푸른 소나무숲이 펼쳐지고 단종 어가가 나온다. 문을 활짝 열어놓은 채 파란 비단옷을 입고 독서 중인 단종(밀랍인형)의 침실에선 강 건너 동쪽 수풀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워 보였다. 하루 종일 강물 소리가 차오르는 방은 뗏목 하나 크기였다.


 

인형의 얼굴은 무표정하다. 이강백의 희곡 ‘영월행 일기’가 그 표정 위로 포개졌다. 작가는 세조 3년인 1457년 신숙주의 하인이 영월을 오가며 썼으리라는 가상의 일기를 통해 삶을 통찰한다. 서울에서 400리가 족히 넘는 길을 세 번이나 왕복한 그 하인에 따르면, 유폐당한 노산군(단종을 낮춘 이름)의 얼굴은 무표정으로 출발해 슬픈 표정, 기쁜 표정으로 변주된다. 단종의 왕위를 빼앗은 세조가 참지 못하고 사약을 내린 건 기쁜 표정 때문이었다고 상상하는 작가는 “살아남고 싶다면 죽을 듯 슬퍼하든지 표정을 드러내지 마라”고 말한다.








▲ 관음송



청령포의 관음송(觀音松)은 과연 수령 600년이 넘도록 무표정으로 여일하다. 1000여 그루의 소나무들 한가운데 우뚝 선 높이 50m, 줄기 둘레 5m의 관음송엔 단종이 이 나무에 올라 시름에 잠기곤 했다는 전설이 따라다닌다.


 

왕비를 그리며 돌을 쌓았다는 망향탑, 강 건너 세상을 보러 오르곤 했다는 노산대에서도 열여섯 살 단종의 비애가 묻어났다. 백성들의 출입을 막으려고 영조 2년(1726) 세웠다는 금표비(禁標碑)에는 ‘동서 삼백척 남북 사백구십척(東西三百尺 南北四百九十尺)’이라고 적혀 있다. 단종은 발이 묶여 더 많은 꿈을 꾸었을지도 모른다. 청령포 주차장에서 들른 화장실에는 ‘욕심을 버리는 집’이라고 적혀 있었다.

 

◆ 방랑시인 김삿갓 유적

방랑시인 김삿갓의 유적지는 하동면 와석리 마대산(1050m) 자락에 있다. 청령포에서 차를 달려 30분. 김삿갓으로 이름난 난고 김병연의 묘와 집터, 삿갓 모양의 지붕을 얹은 문학관이 오밀조밀 모여 있다. 영월은 ‘정감록’에 등장하는 좋은 피란처 십승지지(十勝之地) 중 한 곳. 세상 어떤 난리통에도 화가 미치지 않을 만큼 안전한 은신처다. 1811년 홍경래의 난 당시 할아버지 김익순이 대역죄인으로 몰리자, 김병연의 어머니는 두 아들을 데리고 도피하다 1816년 영월로 들어와 화전민이 된다.









▲ 김삿갓 생가.



 

해질 녘에 본 방랑시인의 묘는 쓸쓸히 찬바람을 맞고 있었다. 저녁 노을을 보고 술 생각이 간절해 읊었다는 “천 리를 지팡이 하나에 의지한 채 떠돌다 보니/…/황혼에 술집 앞에 이르니 어찌할거나” 등 그가 남긴 시들과 돌탑들이 묘역을 지킨다. 스무 살 때 영월에서 열린 백일장에서 조부를 비난하는 시로 장원을 한 김병연은 죄를 통탄하며 1828년 산을 내려왔다. 죽어서야 끝나는 34년 방랑길의 시작이었다.


 

김삿갓이 화전민으로 살던 마대산 중턱까지, 어둑해지는 산길을 올랐다. 청령포가 물로 지어진 감옥이라면 여긴 산으로 둘러쳐진 은신처다. 돌길과 옆으로 난 계곡은 나란히 이어지다 불쑥불쑥 몸을 섞었다. 물은 저렇게 길을 점령하며 은둔자의 발자국과 두려움을 지웠으리라. 길이 물에 잠길 때마다 나는 돌을 밟고 물길을 건너느라 온 신경을 발로 모아야 했다. 계곡엔 얼음장이 보이고 산속은 아직 겨울이다.


 

물처럼 아무 이름 없이 세상을 떠도는 것. 한 자리에 숨는 것보다 더 깊은 은둔이다. 산길 1.5㎞를 30분쯤 오른 끝에 나타난 김삿갓의 집은 남루했다. 담은 없었다. 계곡물 소리가 밀려들어와 해가 떨어진 앞마당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 고씨동굴



◆ 임란 피란지 고씨동굴

이튿날 아침 다시 고씨동굴로 흘러갔다. 깊이 들어가려면 몸을 낮춰야 했다. 땅속 여행에서 배운 공부다. 하동면 진별리에 있는 고씨동굴엔 임진왜란 당시 고씨 일가가 마을 주민들과 함께 왜군을 피했다가 살아남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영월은 고씨, 신씨, 엄씨의 집성촌. 입김이 보일 만큼 서늘한 동굴을 100m쯤 들어가자 고씨 가족이 몸을 숨겼던 공간이 나왔다. 한쪽 벽엔 불에 검게 그을린 흔적도 있다.


 

청령포 앞 서강을 건너며, 김삿갓이 걷던 길을 되밟으며, 고씨동굴의 좁은 길 속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몸과 세상의 단절을 겪은 사람들, 그들은 역사로 남아 세상을 끈끈하게 잡아당기고 있었다. 겨울의 끝과 봄의 처음이 겹쳐지고 있는 영월의 역사여행. 나머지는 빈칸이다. 첨벙! 영월로 몸을 던질 당신을 위해.

 

◆ 여행수첩

●가는 길

서울 등 수도권에서 2~3시간이면 영월에 닿는다. 영동고속도로를 타다 만종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로 옮겨 탄 후, 신림IC에서 88번 지방도로 나오거나 제천 나들목에서 38번 국도로 빠지면 된다.

●이것만은 조심

구불구불한 휘어지는 산길 운전도 위험하지만 특히 낙석을 조심할 것. 김삿갓 유적지에서 돌아오는 밤길엔 낙석을 피해 운전하느라 진땀이 났다. 관광객이 몰리는 7~8월 성수기에 고씨동굴을 보려면 예매가 필수. 입구와 출구가 같아 하루 입장 인원을 2200명으로 제한하기 때문이다. 예매를 해도 서너 시간씩 기다려야 할 정도니, 오후에 아무 대책 없이 고씨동굴에 갔다간 낭패보기 십상이다.

●묵을 곳

최근 지은 모텔로는 터미널을 끼고 있는 코리아파크(033-372-2972)와 동강 쪽이라 전망이 좋은 테마모텔(033-373-1227)이 유명하다. 펜션은 어라연 쪽에 많다. 어라연 올라가는 길목에 있는 동강힐하우스(033-375-1777)는 동굴바위가 보이는 등 전망이 수려하다. 그 밖에 장급 여관과 펜션 등의 숙박정보는 영월군 문화관광 사이트(ywtour.com/kor)에서 검색할 수 있다.

●문의

영월군 문화관광 사이트에는 숙박뿐 아니라 영월을 여행하는 데 요긴한 정보가 꼼꼼히 실려 있다. 페이지 구성도 깔끔해 훑어보기 쉽다. 영월군청 문화관광과(033-370-2542)에 전화해도 친절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눈물나게 아름다운강

▲ 선돌. 단종이 잠든 장릉으로 가는 길에 있다.
 
단종에게 영월은 세상의 끝이자 가장 절망적인 공간이었다. 그러나 영월은 이제 더 이상 끝도, 오지도 아니다. 중앙고속도로가 뚫리고 38번 국도가 왕복 4차선으로 확장되면서 서울~영월은 1시간 이상 단축됐다. 논밭이 전체 면적의 9%에 불과할 정도로 첩첩산중이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하지만 산이 깊으면 물이 좋고 볼거리도 붙는다고 했다. 1박2일 영월을 즐기는 코스.


▲ 청령포

 

◆ 선돌·장릉·청령포

중앙고속도로 신림IC에서 영월읍으로 들어가는 88번 지방도를 20여분 타면 소나기재에서 선돌을 만난다. 서강 옆에 두 갈래로 우뚝 솟은 70m 높이의 바위. 푸르디 푸른 강과 깎아지른 층암절벽, 수수한 인삼밭과 집들이 한 폭 수묵화처럼 펼쳐진다. 선돌 사이로 내려다 보이는 풍광이 아름다워 신선암으로도 불린다. 경기도 양평 양일중학교에서 소풍 왔다는 학생들이 왁자지껄 전망대로 몰려들더니 긴 탄성을 질렀다. 딱 10분만이라도 차를 멈추고 눈에 담을 만한 볼거리다.

 

내리막길로 차를 몰면 바로 장릉이다. 조선 6대왕 단종의 무덤. 단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충신 등 264인의 위폐를 모신 배식단사와 충신단 정려각 등으로 꾸며져 있다. 매년 한식날엔 제를 올린다. 입구 쪽 단종역사관에 들어가면 단종의 삶과 죽음을 모형과 서적으로 훑을 수 있다. 입장료는 어린이 640원, 청소년 1000원, 성인 1200원. (033)370-2619

장릉에서 영월군청 방향으로 가다 보면 청령포 이정표가 나타난다. 4년 전까지는 줄배로 청령포를 드나들었지만 이젠 동력선을 타야 한다. 투입될 날만 기다리는 황포돛배도 볼 수 있다. 청령포 안엔 2000년 4월 단종문화제를 앞두고 승정원일지의 기록에 따라 기와집으로 지은 단종어가와 관음송, 금표비 등이 있고 절벽 쪽으로 오르면 망향탑과 노산대를 만난다. 소나무숲엔 지난해 가을부터 떨어져 쌓인 솔방울과 마른 솔, 나무 껍질 등을 뚫고 이름 모를 들꽃들이, 봄이 올라오고 있었다. 청령포 관람료는 배삯 포함해 어린이 700원, 청소년 1000원, 성인 1300원. (033)370-2620

 


 

 

 

◆동강·별마로천문대

동강은 정선군 가수리부터 영월군 문산리까지 51㎞를 달린다. 예로부터 100번이나 굽이치며 흐른다고 전해지는 물이다. 강을 따라 길도 흐르고, 사람도 자연을 닮아간다. 논밭이 드물게 흩어져 있는 길 옆에선 두엄 냄새가 진동했다. 겨우내 몸이 굳었던 소를 길들이는 농부들 옆에서 밭두렁을 태우던 시골 아낙 이순자(59·영월군 삼옥2리)씨는 “수수로 일년 농사를 지을지, 옥수수랑 무수(무)를 차례로 심을지 고민 중”이라고 했지만 별로 걱정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동강 줄기인 영월군 영흥리엔 봉래산(799m)이 있다. 단종이 1457년 청령포에서 세조가 보낸 사약을 받자, 그를 모시던 몸종들이 봉래산 낙화암에서 강으로 몸을 던졌다 한다. 동강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유행했던 음악은 구성진 아라리. 하지만 그 가락으로 종종 밤을 밝혔던 주막집이 이젠 없다. 동강 중에서도 ‘고기가 비단결같이 떠오르는 연못’에서 이름을 딴 어라연은 관광철을 앞두고 곤히 잠들어 있었다.

 

 

영월 밤하늘에서 가장 높이, 가장 큼지막하게 반짝이는 건 별이 아니라 별마로천문대다. 봉래산 정상에 자리를 잡은 이 천문대는 심야개방도 하고 천체사진을 직접 촬영할 수도 있다. 이용시간은 오후 2~10시. 입장료는 어린이·청소년 4000원, 성인 5000원. (033)374-7460


▲ 김삿갓계곡

 

 

◆고씨동굴·김삿갓유적지

영월읍을 빠져나와 영월의 동부를 훑는다. 읍에서 차로 20분 떨어진 하동면 진별리에 고씨동굴이 있다. 천연기념물 제219호. 4억~5억년 전 고생대에 형성된 석회암 동굴로 주굴의 길이만 1.8㎞에 달한다. 임진왜란 당시 고씨 가족이 몸을 숨겼다는 곳을 지나 안쪽으로 더 들어가야 석간수와 지층, 세월이 빚어낸 동굴의 비경을 눈에 담을 수 있다. 용이 쉬었다는 와룡소, 엎드려 기어 오를 수밖에 없는 등용문, 님의 기둥, 욕선대, 500 나한상 등을 거쳐 천왕전까지. 어린이 1500원, 청소년 2200원, 성인 3000원. (033)370~2621

 

고씨동굴에서 10여분 차를 몰아 더 산골로 들어가면 방랑시인 김삿갓유적지가 나온다. 하동면 와석리. 강원도 경북 충북 3도가 만나는 곳으로 엎드린 노루를 닮았다고 해 노루목이라고도 불린다. 바람처럼 떠돌다 전남 화순땅에서 죽은 김삿갓을 둘째 아들이 옮겨왔다고 전해지는 김삿갓의 묘가 1982년 여기서 발견된 후 문학의 거리가 조성되고 관광객이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영월의 맛집

 


 

보리밥

영월읍 영흥리 장릉 주변에 보리밥집이 많다. 30년 돼 이름난 집은 장릉보리밥집(033-374-3986). 주인이 직접 담근 된장과 간장으로 양념한 11가지 봄나물이 나온다. 감자를 얹은 보리밥에 나물을 입맛대로 넣어 비벼 먹는다. 한 그릇에 5000원. 더덕구이와 산적, 감자부침과 메밀부침도 일품이다.

 

칡국수

영월엔 칡이 많다. 장릉엔 고싸움을 위해 칡을 꼬아 만든 거대한 고가 전시돼 있을 정도. 고씨동굴 주변에는 강원토속식당(033-372-9014) 등 10여개 식당에서 칡국수를 먹을 수 있다. 감자 호박 미나리를 숭숭 썰어 넣고 매콤한 양념을 친 굵직한 국수가 혀에 착착 감긴다. 4000~5000원. 도토리묵(5000원)과 감자떡(3000원)을 곁들여도 좋다.

 

올갱이 해장국

동강 서강 주천강 등 강이 많아서인지 올갱이(다슬기)로 끓인 해장국은 빼놓을 수 없는 영월 음식이다. 영월역 앞에 해장국 골목이 있고, 고씨굴 쪽으로 나가도 갓 잡은 올갱이를 먹을 수 있다. 다슬기향촌(033-374-1260)에서 먹은 올갱이 해장국은 올갱이와 부추·근대를 듬뿍 넣고 된장과 들깻가루를 풀어 맛을 냈다. 5000원. 올갱이전은 1만원.



오늘의 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