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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고성 옥천사 숲

by 白馬 2008. 4. 21.
        [숲, 인간과 자연의 통로] 고성 옥천사 숲
나무들이 치열하게 자리다툼하는 원시림
구불구불한 옛길 동선 그대로 호젓한 느낌 만끽

연화산(528m)은 경남 고성군 개천면에 있는 산이다. 원래 이름은 비슬산이었으나 조선 인조 때 산세가 연꽃과 닮았다 하여 연화산으로 바뀌었다. 옥녀봉·선도봉·망선봉의 세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높지 않지만 울창한 숲과 깊은 계곡 등 경관이 수려해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다.

바로 그 북쪽 기슭에 옥천사(玉泉寺)가 있다. 절 이름은 대웅전 뒤에 사철 마르지 않고 맑은 물이 솟는 샘에서 유래했다. 이 샘물은 위장병과 피부병에 좋다고 한다. 1948년부터 샘 위에 옥천각을 세워 보존하고 있다. 1983년 9월29일 고성군 개천면 외 4개면에 걸쳐 면적 28.72㎢가 도립공원으로 지정됐다.


▲ 옥천사 일주문. 오제봉 선생의 현판 글씨가 단아하다. 도열한 고목들 사이로 걸어가는 맛이 아늑하다.
숲은 나무의 군집이다. 혹은 나무와 나무 사이의 공간이다. 그 공간에 동물이 산다. 사람도 그 속에서 살아왔다. 여느 동물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삶에서는 일생동안 나무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며, 나무 없는 곳에서 산다는 것은 생각하기조차 삭막한 일이다. 나무가 많은 숲은 사람에게 더없이 풍요롭고 아늑한 보금자리다.

내 고향은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남쪽 경남 고성(固城)이다. 백악기 공룡발자국, 소가야, 신라 고찰 옥천사, 이순신 장군의 당항포 해전, 오광대, 하모(갯장어) 회가 키워드인 고성은 고 제정구 의원, 연극배우 고 추송웅, 산악인 엄홍길, 개그우먼 조혜련씨 등의 고향이기도 하다.

▲ 옥천사 자방루. 7칸의 제일 큰 건물로 승병들이 주둔하던 곳이다.
역사적으로 유서가 깊고, 천혜의 자연이 살아있다. 바다가 가까이 있고, 제법 너른 들이 있으며, 아담한 야산들이 즐비하여 사람들이 거칠지 않고 아직도 인정이 살아있는 그런 곳이다. 사계절이 온화하여 겨울에도 추위가 매섭지 않고, 밭에서는 시금치나 겨울배추들이 자라고 있어 언제나 뽑아 먹을 수 있는 고장이다.

인간과 자연의 통로로서 숲에 대한 원고 제의를 받았을 때 주저 없이 옥천사 숲을 택했다. 내게는 옥천사와 주변의 숲, 그리고 맑은 물소리가 바로 뇌리에 각인된 숲의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9년 동안 두어 번 제외하고는 모든 소풍을 옥천사로 갔었다.

▲ (1) 옥천사 들어가는 길. 도로를 확장하지 않은 호젓한 절길에 고목들이 옛 모습 그대로 서 있다. /(2) 옥천사 산령각. 0.46평으로 전국에서 가장 작은 건물이다. /(3) 백련암 가다보면 돌이 많은 너덜겅에도 다양한 종류의 수목들이 자라고 있다.
옥천사 숲은 동네 뒷산과 달리 아름드리 고목들이 절을 둘러싸고 산을 채워 원시적인 숲의 모습과 고즈넉한 경내의 분위기가 일상과 전혀 다른 느낌을 주어 소풍의 목적과 잘 부합되는 곳이었다. 어릴 때부터 시오리 산길을 아무 불만 없이 즐겁게 다녀 몸과 영혼을 살찌게 했던 아련한 추억이 깃든 곳이다. 월간山 자료를 찾아보니 작년 4월과 6월에 고성과 옥천사에 대한 자세한 소개가 이미 나와 있었다.

옥천사는 고성군 개천면 북평리 연화산(蓮華山·528m) 골짜기에 있다. 말 그대로 아담한 봉우리들이 연꽃의 꽃잎 모양으로 둥그렇게 둘러싸인 가운데 꽃술 부분에 해당하는 곳에 아늑하게 자리 잡고 있다. 대웅전 옆에는 샘이 있어 절 이름으로 삼을 정도로 사철 내내 마르지 않는 맑은 샘물이 솟아나온다.

경내와 사방은 고찰답게 노거수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 피안이 바로 여기인 듯하다. 태백과 용인에도 연화산이란 이름을 가진 산이 있지만, 이곳처럼 아늑하고 품위 있는 곳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풍수적으로 보더라도 기막힌 명당임을 알 수 있다. 1983년에 영오면ㆍ영현면ㆍ대가면을 포함한 연화산 일대 28.72㎢가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고목들이 절을 둘러싸고 산을 채워

옥천사는 신라시대 화엄종 10대 사찰의 하나이며, 676년(문무왕 16)에 의상(義湘·625-702)이 창건했다. 현재는 조계종 제13구 본산인 하동 쌍계사의 말사다. 경내 보장각에는 1252년(고려 고종 39)에 제작된 임자명반자(壬子銘飯子·보물 제495호)가 있으며, 1701년에 주조된 대종, 1816년에 제작된 청동은입사향로, 1866년에 강원 교재로 판각한 금강경 목판 등 120여 점의 문화유산이 보관되어 있다. 한국 근대불교사에 큰 획을 그은 봉암사 결사의 주역인 청담 대종사(靑潭 大宗師·1902~1971)가 출가한 절이기도 하다. 절 마당에 사리탑과 탑비가 있다.

▲ (1) 백련암 주위엔 사철 내내 푸른 대숲이 암자를 감싸고 있다. /(2) 편백나무 사이로 보이는 옥천사 전경. 절 뒤에 편백나무 방화림이 무성하고 차밭도 보인다./(3) 백련암 가는 길. 노거수들이 우람한 몸을 뽐내고 있다.
옥천사 입구의 집단시설지구에 공룡발자국이 있다. 미국 콜로라도, 아르헨티나 서부 해안과 함께 세계 3대 공룡발자국 화석산지로 알려져 있는 고성군은 약 5,000여 개의 공룡발자국 화석이 발견되었다. 예전에 무심히 지나쳤던 바위 흔적이 1982년 경북대 양승영 교수팀에 의해 공룡발자국 화석으로 판명되었다. 현재 상족암 일대가 공룡발자국 화석지로 지정되었고, 공룡엑스포도 개최했다. 뿐만 아니라 남해안 일대가 다 공룡의 서식지였던 듯 고향 주변의 높은 산에도 지층이 융기한 암반에는 어김없이 움푹 팬 발자국 흔적을 볼 수 있다. 어린 시절에는 그저 유명한 장군의 발자국이나 소똥 자국이라는 전설 같은 얘기로만 들어왔었다. 낮은 물가의 공룡 흔적을 산에서도 볼 수 있다. 옥천사의 숲 탐방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멀리서 보면 양쪽에 산 능선이 겹겹이 이어지고, 이내가 깔린 골짜기는 파르스름하여 아늑하게 느껴진다. 아직 새싹이 돋진 않았지만 완연한 봄이다. 오른쪽으로 맑은 물소리가 들리는 계류를 끼고 느릿하게 걷는다. 조금 오르면 소류지가 나오고 매표소를 지나 산굽이를 돌면 바로 하늘을 찌를 듯 고목들이 도열해 방문객을 반긴다.

▲ 황새고개 오르는 길 양쪽에 빽빽이 들어선 적송이 터널을 이루고 있다. (왼쪽) / 연화1봉 오르는 가파른 비탈에도 송림이 울창하여 조망이 어렵다. 건너편 남산이 어렴풋이 보인다. (오른쪽)
길은 포장되어 있지만 스님들의 의지로 확장공사를 막아 승용차 한 대만 지날 수 있고, 구불구불한 옛길의 동선이 그대로 살아있어 나무 사이로 걸어가는 맛이 쏠쏠하다. 주변에 요란한 치장을 하지 않아 산사로 들어가는 호젓한 느낌을 만끽할 수 있어 좋다. 일주문에는 청남 오제봉(菁南 吳濟峰·1908-1991) 서백(書伯)의 단아한 글씨로 ‘蓮華山玉泉寺’(연화산옥천사)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다.

활엽수들이 아직 옷을 입기 전이라 간간이 보이는 노송의 붉은 수피와 새파란 잎이 나목들 사이에 돋보인다. 고목들의 오랜 연륜을 반영하듯 뒤틀리고 꺾이고 부러진 가지들이 걸려있고, 기생식물들이 수피에 붙어 있기도 한다. 계곡의 바람은 잠들고 초봄의 햇빛은 나뭇가지 사이로 스며들어 분위기가 안온하다.

간간이 마주치는 사람들과 눈인사를 나누며 휘적휘적 걸었다. 나보다 몇 십 년이나 선배인 고목들을 섬기는 마음으로 수피를 쓰다듬기도 하고, 키를 가늠하러 고개를 들어 존경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잔챙이들이 아옹거리는 사바를 떠나 고즈넉한 피안으로 접어든다.


능선길엔 떡갈나무들이 바위틈새로 빼곡

부도밭을 지나 왼쪽으로 휙 꺾이는 길을 보류하고 오른쪽으로 가면 천왕문이 나온다. 어린 시절에는 무서워 오금이 저렸던 목조 사천왕상이 아직도 건재해 있다. 하마비(下馬碑)를 지나 오른쪽으로 경내로 들어가는 높은 계단 좌우에는 편백나무들이 짙은 그늘을 드리워 너머의 광명을 예고한다. 계단을 오르면 널찍한 마당이 나오고, 자방루(滋芳樓)가 우뚝 서 있는 인근엔 다른 건물들도 오밀조밀하게 나열해 있다.

▲ 옥천사 절길과 절을 둘러싼 봉우리를 잇는 숲길은 등산객들에게도 인기가 좋다.
뒤쪽에는 방화림으로 조성된 편백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터질 듯한 봉오리를 가득 달고 있는 고매(古梅·매화 고목) 몇 그루를 감상하고 경내를 둘러보았다. 뜻밖에 친척인 봉래(鳳來) 스님을 만나서 오랫동안 담소를 나누었다. 해탈문을 통해 들어가면 대웅전이 높이 서 있고, 그 옆으로 팔상전을 돌면 샘물의 집인 옥천각이 있다. 속세의 먼지를 씻어내듯 시원한 물 한 바가지 마시고 돌아나와 뒤쪽으로 올라가니,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다는 산령각(0.46평)과 독성각(1.08평)이 앙증맞게 나란히 서있다.

다시 마당으로 나와 절 오른쪽에 있는 보장각을 둘러보고 백련암을 향한다. 곳곳에 노송들이 위용을 자랑하고 활엽수들은 움이 틀 날을 기다리고 있다. 요즘은 절에서도 땔나무를 많이 때지 않아 큰키나무 아래에 키 작은 나무들이 우거지고, 쓰러진 나무들이 그대로 있고, 너덜겅에도 잡목들이 무성하여 원시림을 방불케 한다.

대충 봐도 소나무를 비롯하여 편백나무, 굴참나무,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느티나무, 서어나무, 층층나무, 때죽나무, 대나무 등이 서로 왕성한 생명력으로 자리를 다투고 있다. 소나무 군락지에 활엽수들이 가는 몸으로 하늘로 치솟아 오른다. 미처 키를 키우지 못한 소나무는 햇빛을 받지 못해 죽어가고 있다. 잎이 나면 햇빛이 들지 않을 만큼 숲이 어둡다고 한다. 상록수림은 봄인데도 어두울 만치 수목들이 빽빽하다.

절을 나와서 황새고개를 향하여 걷는다. 좌우는 절 입구와 다르게 송림 일색이다. 튼실한 골격과 꿈틀대는 근육을 자랑하며 장중한 리듬을 타고 집단으로 춤을 추는 듯한 모습이다. 때로는 현란한 동작으로 관절을 꺾는 나무들도 더러 있다. 천천히 힘들이지 않고 아름다운 무용을 감상하며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황새고개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연화1, 2봉이 나온다. 봉우리는 의외로 가파르나 높지 않아서 오를 만하다. 비탈에도 예외 없이 소나무와 여타 활엽수가 영역을 다투며 하늘로 치솟는다. 능선길은 바위투성이인데도 떡갈나무들이 바위틈을 비집고 빼곡히 들어차 있다.

황새고개에서 왼쪽으로 가면 연화산 봉우리가 있고 남산으로 이어진다. 여기도 역시 봉우리의 오르막은 만만치 않다. 예전엔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지만 지금은 등산로가 개발되어 곳곳에 이정표가 있다. 송림 사이로 난 소로를 따라 가면 길을 잃을 염려도 없고, 거리도 그리 길지 않아서 잘 보존된 숲을 감상하며 가볍게 걷기에 딱 좋다. 다만 잘 자란 나무들 때문에 봉우리에서 전망이 여의치 않다.

▲ 청련암 뒷길의 절을 둘러싼 산에는 굵은 적송들이 밀림을 이루고 있다.
남산을 거쳐 아름드리 노송을 감상하며 내려오면 청련암(靑蓮庵)이 나타난다. 승욱(昇旭) 스님이 직접 따라주는 녹차를 얻어 마시고 나와 건너편 산과 송백의 푸르름을 감상했다. 옥천사가 발아래 수목들에 가려 일부만 보인다. 가람과 방화림 사이에 보이지 않던 야생 차밭이 함초롬히 숨어있다.

옥천사는 보장각 외에는 다른 전각들과 송림, 고목, 청아한 물소리가 옛날 그대로의 모습이다. 지금 고향에는 부모님도 안 계시고 초ㆍ중학교도 학생이 없어 폐교되었다. 앞으로는 여기로 달려와 연꽃향기에 젖어 수구초심(首丘初心)을 달랠까 보다.

옥천사 숲 약도

찾아가는 길
서울에서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를 타면 3시간30분이면 진주에 닿고, 10분 더 달리면 고성에 도착할 수 있다. 진주와 고성에서 옥천사행 버스가 1시간에 한 대꼴로 있다. 소요시간은 30~40분.

승용차로는 연화산 나들목에서 바로 옥천사로 이어지는 도로를 타면 황새고개로 해서 10여 분만에 옥천사에 도착한다.


오늘의 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