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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충복 옥천 '봄꽃 향기'를 찾아서…

by 白馬 2008. 3. 4.

충복 옥천 '봄꽃 향기'를 찾아서…
시인의 고향…
분홍빛 복사꽃 수줍은 봄마중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향수'의 시인 정지용의 고향 충북 옥천은 이즈음 화사한 봄맞이가 한창이다. 맑은 금강줄기가 굽이쳐 지나는 고장은 국내 묘목의 60% 이상을 생산하는 대표적 묘목생산지로 국내 어느 지방 보다 일찍 봄을 맞는다. 특히 일부 과수농가 비닐하우스에는 한달 보름가량 앞서 핑크빛 복사꽃이 만발해 별천지를 연출하고 있다. '문학과 별미의 고장' 옥천은 굳이 남녘이 아니어도 봄이 오는 느낌을 고스란히 맛볼 수 있어 훌쩍 초봄 기행을 떠나기에 부담 없는 곳이다. 


'정지용 생가' 주변 전국 최대 과실묘목 생산지 유명세
2월 초순부터 4년생 복숭아나무 꽃망울 '환상 꽃터널'

    • ▲ 충북 옥천군 청성면 궁촌리 신정식씨의 900평 규모 복숭아밭에는 복사꽃이 만발했다. 2월중 꽃을 피워 5월 10일경이면 달콤한 백도 복숭아를 수확하게 된다.

      ▶ 옥천의 봄

      대표적 과수묘목 생산지인 옥천(沃川)은 한마디로 이름값을 하는 곳이다. 맑은 물이 흐르는 옥답에서는 복숭아, 배, 밤, 사과 등 다양한 과수묘목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묘목생산지의 대명사격인 이원면 일원에만 37개 농원이 산재해 있고, 136ha의 광활한 재배지에서는 연간 2500만주의 묘목이 생산된다.

       

      옥천의 묘목재배 역사는 깊다. 이미 70년 전부터 체계적인 재배시스템을 갖추고 최대산지의 명성을 쌓았다. 이처럼 옥천이 묘목 명산지가 될 수 있기까지는 빼어난 식생조건이 주효했다. 이 지역 토양의 70%가 사질 양토로 묘목 생산에 적합한 데다 국토의 중간에 위치해 강우량과 기후 조건은 어린 묘목이 싹을 틔우고 자라나기에 안성맞춤이다. 아직 사방은 잿빛이지만 이즈음 이원면 일원 묘목밭에는 출하를 기다리는 과실묘목들이 늘어서 있어 봄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낄 수 있다.

       

      일부 과수 재배농가 비닐하우스에는 복숭아나무가 화사한 꽃망울을 터뜨릴 태세도 갖췄다. 이미 2월부터 핑크빛 자태를 뽐내는 곳도 있다. 청성면 궁촌리 신정식씨(47)의 900평 규모 복숭아밭에는 복사꽃이 만발했다.

      4년생 250주의 복숭아나무가 지난 8일부터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해 그야말로 환상적인 꽃 터널을 이루고 있다. 화사한 봄의 화신은 2월까지는 고운 자태를 간직할 전망이다. 일반 노지 복사꽃이 대체로 4월 중순경 만개하는 것을 감안하면 무려 한달 보름 이상이 빠른 셈이다.

       

      출하는 꽃 피고 3개월이 지난 5월 10일쯤부터 본격 시작된다. 신씨네 복숭아나무는 일천백궁, 왕궁 등 백도 계통으로 그야말로 애지중지 한겨울을 났다. 겨우내 섭씨 15~25도의 따뜻한 기온을 유지하느라 3중 비닐에 온풍 히터, 180드럼의 기름이 사용됐다. 난방비에만 2400만원이 들었다.

       

      주인의 공을 아는지 다행히 당도는 노지에서 생산한 것보다 오히려 뛰어나다는 게 신씨의 설명이다. 신씨는 지난해 간신히 투자비만을 건졌다. 올해도 기름값 인상으로 눈앞이 캄캄하다. 그나마 개화시기에 일조량이 좋아 꽃도 예쁘게 피어 작황이 좋을 것으로 예상돼 위안으로 삼고 있다. 혹여 잘못 될까 올겨울 진땀을 흘리며 살았다는 신씨는 "복숭아 하나에도 농민의 애정과 노력이 듬뿍 담겼다는 사실만 알아준다면 힘이 날 것 같다"며 밝게 웃었다.


      ▶향수와 시향이 넘치는 '정지용 생가'

    • ▲ 정지용 생가

      옥천군 옥천읍 하계리 실개천이 흐르는 조용한 마을에 우리 고향의 정경을 오롯이 그려낸 시인 정지용의 생가가 자리하고 있다. 아담한 초가집 한켠에는 옛 향수를 떠올리려 애를 쓰기라도 하듯 열심히 물레방아가 돌고 있다.

       

      정지용은 일제강점기에는 친일 시인이라는 누명으로, 6·25 이후엔 월북시인으로 낙인 찍히는 등 시대의 희생양으로 질곡의 현대사와 그 궤적을 함께 그려온 작가였다. 때문에 그의 생가를 찾는 발길은 더욱 애틋하다. 오랜 시간 묻어둬야 했던 그의 대표시 '향수'는 이동원, 박인수가 함께 부르며 국민애창곡으로 부활했다.

       

      지난 1996년 생가가 복원됐고, 이후 그의 생애와 문학을 총망라한 기념관이 세워졌다.

      정지용 생가가 위치한 곳은 옥천의 구읍이다. 일제강점기 경부선 철도가 구읍을 통과하는 것을 이 고장 유지들이 반대해 옛 영화를 간직한 조용한 시골 소읍으로 자리잡게 됐다. 덕분에 일제식 건물과 서구식 교회당, 개량민가 등 곳곳에 근대건축물이 남아 있어 정감 있는 풍광을 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