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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남해안 섬에서 해풍 맞고 자란 쑥… 봄은 도다리쑥국과 함께 북상한다

白馬 2024. 3. 22. 07:01

 

통영 도다리쑥국 두 맛집

 

 

경남 통영엔 봄이 왔다. 터미널회식당의 도다리쑥국(왼쪽)과 동광식당의 도다리쑥국. 

 

 

“전부 섬에서 옵니더. 한산도, 욕지도, 매물도. 육지 쑥은 쓰면 안 됩니더. 영 파이라예.”

경남 통영 터미널회식당 여사장님은 ‘어디서 난 쑥을 쓰냐’는 질문에 상냥하지만 단호한 어투로 답했다. 산란을 마치고 금어기가 풀리는 2월부터 남해에서는 도다리가 흔하게 잡힌다. 해풍을 맞고 자라난 어린 쑥도 한산도, 욕지도, 매물도 같은 한려수도 섬들에 잔디처럼 깔린다. 계절 생선인 도다리와 제철 나물인 쑥을 넣고 끓인 도다리쑥국은 남해안의 봄을 알리는 전령사다.

가격도 두 배까지 차이가 나지만, 이뿐이라면 도다리쑥국을 찾아 통영까지 올 필요는 없었다. 부산, 김해, 창원 일대 횟집들도 일제히 도다리쑥국 개시를 알리는 알림판을 내걸었다. 머지않아 서울을 비롯한 전국 여러 식당에도 도다리쑥국이 메뉴에 올라올 터이다. 하지만 여사장님의 말처럼 남해안 섬에서 해풍을 맞고 자란 자연 쑥이 아니고는 알싸한 맛과 향을 제대로 내기 어렵다. 자연산 참도다리도 대부분 인근에서 자체 소비된다.

 

통영 터미널회식당 

 

꽃샘추위가 한차례 지나간 통영은 봄기운이 완연하다. 강구안 일대는 통영 여행의 중심이다. 벽화마을로 이름난 동피랑과 서피랑 사이에 자리한 세병관 뒤편 언덕에 오르면 통영항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통영이라는 이름도 이곳에 설치했던 조선의 해군사령부 ‘삼도수군통제영’에서 유래했다. 제1대 수군통제사는 이순신이었다. 해산물이 넘쳐나는 중앙시장과 서호시장이 강구안 근처에 있고, 통영을 대표하는 횟집이며 복국, 꿀빵, 충무김밥 노포들도 이곳에 몰려 있다. 우리나라에서 해산물 미식 거리를 한 곳만 골라야 한다면 강구안이 아닐까.

 

통영항여객선터미널에 차를 대고, 서호시장 근처 터미널회식당을 찾았다. 어항에는 도다리, 감성돔, 쥐치가 가득하고, 식당 입구 빨랫줄에서는 한창 생선을 말리고 있다. 보통 때는 횟집으로 운영되는 다른 식당과 마찬가지로 이곳도 봄철에만 도다리쑥국(1만7000원)을 낸다. 손님은 많지 않다. 외지인의 동선에서 벗어난 골목에 자리한 데다 이른 시간인 때문일 터이다. 주문을 받자마자 어항에서 도다리를 꺼내고 쑥을 수북이 씻어 조리를 시작한다. 기본에 충실한 쑥국이다. 큼지막한 도다리와 푸짐한 쑥 말고는 들어가는 부재료가 없다. 무도 대파도 고추도 없이 끓여낸 ‘미니멀리즘’ 도다리쑥국이다. 물론 맛은 단순치 않다. 쑥 향은 진하고 두툼한 도다리 살은 쫄깃하다. 머위·방풍나물, 파래 무침, 멸치 볶음 등 8가지로 구성된 반찬도 정갈하다.

 

강구안 일대는 발길 닿는 곳마다 유적이요 관광지다. 식당 바로 옆에는 이중섭 거주지와 한산대첩광장이 있고, 맞은편 통영시민문화회관까지 바다 위에 새로 놓인 강구안보도교를 건너면 동피랑, 세병관, 서피랑까지 한 바퀴를 돌 수 있다. 보도블록에는 ‘깃발’이나 ‘행복’ 같은 유치환의 시가, 벽면에는 김춘수의 시가 새겨져 있다. 한일김밥 옆에 자리한 커다란 금속 물고기 조형물은 이중섭의 은박지 그림을 모티브로 삼았다. 바다를 끼고 시장까지 곧게 뻗은 도로에는 한 집 건너마다 꿀빵, 충무김밥을 파는 오랜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통영 동광식당 

 

동광식당은 한눈에도 맛집임을 알아볼 수 있다. 대로변의 커다란 간판에는 ‘3대 전통의 맛, 원조 복국집’이 적혀 있다. 관광객이 자주 찾는 중앙시장이 지척이고, 밥때와 무관하게 손님이 넘친다. 식당 내부는 정갈하고 주문부터 계산까지 질서 정연하다. 다른 철이라면 대표 메뉴인 복국이나 매운탕, 물회, 멍게비빔밥을 고민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밑반찬으로 도다리 알, 병어회 무침, 풀치, 미역 무침, 창란젓, 시금치, 창포묵, 김치, 깍두기가 나온다. 덜 것도 보탤 것도 없는 인상적인 구성과 맛이다. 도다리쑥국(1만7000원)도 물론 훌륭하다. 쑥 향은 진하고 무, 대파, 홍고추가 적당히 들어간 국물은 깔끔하다. 가격부터 음식까지 이렇게 만족스러운 식당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통영은 찾을 때마다 그립고 떠나올 때마다 이내 아련하다. 빠듯한 일정과 불러오는 배가 야속할 뿐이다. 겨우내 무뎌진 감각을 깨워준 한 끼를 두고 우열을 가리기는 어렵다. 도다리 크기와 쑥의 넉넉함에서는 터미널회식당을, 국물의 진한 쑥 향과 밑반찬 구성에서는 동광식당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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