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열면 마음이들어오고. 마음을 열면 행복이 들어옵니다.
우리 함께라서 행복한 세상...건강하게 행복한 하루 지내세요.

명상

고통과 재난을 만났을 때

白馬 2021. 10. 9. 05:13

"포기하지 말고 수용해라"

 

 

어떤 일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비록 그것이 슬프고 고통스러운 것일지라도 치유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치료가 불가능한 암 선고를 받았을 때 사람들은 보통 암에 걸린 사실 자체를 부정하거나 분노를 터뜨리거나 한다.

그러나 명상수련에서 수용하는 훈련을 한 사람은 담담하게 그 사실을 받아들인다. 어떤 일도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영성이 깊어진 사람은 죽음까지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수용한다는 것과 포기한다는 것은 매우 다르다. 감당하기 어려운 재난이나 병에 걸렸을 때, 사람들은 보통 처음에는 두려움에 떨면서 화를 내기도 하고, 이를 피할 방법을 찾아 노력도 해보지만, 어찌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포기하게 된다.

 

그런데 포기는 했지만 포기에는 엄청난 분노와 스트레스가 있어 심한 상처를 함께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어려움이나 고통스러운 상황을 수용하면 포기와는 다른 차원의 담담한 마음의 평화가 있다. 수용에는 고통의 이치를 깨달아 성숙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10년도 훨씬 더 된 언젠가 신문에서 이런 기사를 읽고 마음이 아팠던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인 어떤 여학생이 어버이날 전날에 부모님께 드릴 선물을 사 왔다. 그리고 어버이날 당일에 도로 건너편에 있는 문방구에서 꽃을 사 가지고 도로를 건너오다가 급히 달리는 구급차에 치여 숨졌다는 기사였다.

 

한 일주일 후에 그 사건의 뒷얘기가 신문에 또 실렸다. 숨진 아이는 화장으로 장례를 치렀는데, 장례 후에 사람들이 아이 아버지에게 딸이 사 온 선물을 끌러 보자고 했다. 그러나 그는, 딸이 선물을 아빠 혼자 끌러 보지 말고 같이 끌러 보자고 했다면서, 딸이 와서 같이 끌러 보기 전에는 절대로 혼자 끌러 볼 수 없다고 고집을 부린다는 기사였다.

 

나는 그 아버지의 고통이 가슴에 느껴져 마음이 아팠다. 그의 마음의 상처가 치유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딸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만일 그가 죽은 딸아이의 죽음을 받아들이면서 딸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할 수 있다면 그는 치유될 수 있을 것이다.

"아가, 너는 인생의 꽃을 피워 보지도 못하고 아빠 곁을 떠나갔구나. 그러나 너는 착한 아이였으니 좋은 곳으로 갔으리라고 아빠는 믿는단다. 아빠는 네가 보고 싶어 죽을 지경이지만 이를 악물고 참으면서 네 몫까지 열심히 살 거야. 아빠도 언젠가는 죽어서 네 곁으로 가겠지. 그때 다시 만나자꾸나."

그러나 이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이것은 딸의 죽음을 수용할 수 있을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수용한다는 것은 모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뜻이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나'라는 집착에서 벗어나서 자연의 섭리 가운데서 사물을 본다는 뜻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언젠가는 치명적인 병, 지위나 재산의 상실, 그리고 죽음까지도 직면하게 된다. 이런 재난은 피할 수 없다. 언젠가는 겪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성숙한 마음공부가 되어 있어서 이런 재난과 고통을 담담하게 미소로 수용할 수 있으면 좋은데, 이런 재난을 피해보려고 애를 쓰다가 어찌 할 수 없어서 포기하게 된다면 그 고통은 말로 이루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일 것이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살고자 한다면 받아들이는 태도, 즉 수용하는 태도를 익혀야 한다. 수용하는 태도를 익히는 것은 치유의 길이며 지혜를 키우는 일이기도 하다.

 

수용한다는 것과 포기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수용하는 법을 훈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명상이다.



오늘의 날씨

* 오늘 하루도 즐겁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