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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산따라 맛따라] 양평 용문산

by 白馬 2007. 10. 26.

        [산따라 맛따라] 양평 용문산

        천년 은행나무의 묵직하면서도 은근한 맛
        용문사계곡·용문시장·신내리·연수리·신복리 먹거리집들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용문사 / 1,100년이나 된 은행나무는 / 늘 소리를 낸다.
조선 말기 고종 황제가 승하했을 때 / 큰 가지를 부러뜨리며 / 소리를 질렀다.
8.15 해방이 찾아왔을 때 / 6.25 난리가 벌어졌을 때 / 4.19 혁명이 일어났을 때 / 5.16 쿠데타가 터졌을 때
용문사 은행나무는 / 어김없이 큰 소리를 내었다.
나라에 큰 일이 일어날 때 / 소리를 지르는 용문사 은행나무
제 한 몸, 제 가족밖에 모르는 / 인간보다 낫다. / 소시민보다 낫다.
나라 걱정 없고 / 지역감정만 가득 찬 / 한국 사람보다 백 배 천 배 낫다.


꽃을 노래하고 나무를 노래하는 대구의 산꾼 박지극(朴志克) 시인의 시집 ‘오리나무처럼 튼튼한 목소리로’ 속에 실려 있는 은행나무를 노래한 네 편의 시 중 한 편인 용문산 용문사의 은행나무(2)다.
1,100살이나 된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30호)로 더 유명해진 용문산으로 간다. 꿈길 물길을 따라 달리던 차가 산길로 들어서고, 산길이 끝나는 산자락에 천년고찰 용문사가 있다. 그리고 그 절 앞에 천 년의 세월을 훌쩍 넘은 은행나무가 턱 버티고 서있다. 천 년의 청년 용문산의 은행나무는 그 기나긴 세월을 잠시 접어둔 채 푸르디푸른 청년의 기상으로 백 년도 살지 못하는 인간들에게 영겁(永劫)이 무엇인지를 생각케 해준다.
은행나무는 꽃보다 잎이 더 아름다운 나무. 시인은 꽃보다 잎이 더 아름다운 은행나무(3)를 이렇게도 노래했다.


꽃보다 잎이 더 아름답다. / 누구든 다들 / 한 가지는 다 아름답다. / 설혹 / 아무것도 결코 아름답지 않는 이가 있다면 / 아름다움 남에게 모두 물려주었으니 / 그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가


산꾼인 시인은 식물분류학으로 이학박사 학위를 받은 학자이자 교육자이기도 하다. 꽃을 노래한 또 한 권의 시집 ‘동백나무 붉은 꽃은 시들지 않는다’도 함께 펴냈는데 두 권의 시집 속 삽화는 딸이 그렸다. 두 권의 시집은 아버지가 쓰고 딸이 그린 ‘나무와 사람’ ‘꽃과 사람’인 것이다. 시인의 나무사랑, 특히 은행나무 사랑은 은행나무(4)에서 잘 드러나 있다.


(전략)
사람 같은 나무 / 착하고 고운 사람 같은 나무 / 동네 어귀 / 노오랗게 물이 든 은행나무가 / 차분하게 서 있는 / 그런 마을에서 살고 싶다.


정영애 할머니의 손맛과 인정 한마당식당

용문산 산행 나들목에 수많은 음식점이 들어서 있다는 것이 조금도 이상할 바는 아니다. 그 수많은 음식점들 중에서 한 곳을 선택해야만 한다는 것은 전체 산행일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클 수밖에 없다. 자신있게 한 곳을 추천 하고픈 업소가 ‘한마당식당(031-773-5678)’이다. 어떤 교통편으로 왔건 우선 이용하기에 불편함이 없다. 식당 앞이 바로 넓은 주차공간이다. 대중교통편으로는 업소 앞이 버스종점이자 시발점이다.


게다가 더 중요한 것은 음식맛과 식당 분위기, 그리고 업소 사람들이다. 회갑을 넘긴 업주 정영애(鄭英愛) 할머니가 제대로 공부한 예의바른 아들 딸들과 함께 식당을 운영한다는 점  한가지만 보더라도 깊은 신뢰가 간다. 할머니는 해마다 인근 지역에서 재배한 콩 30여 가마로 장을 담그신다. 이 장은 양평군청에서 식품허가가 난 상품이기도 하다. ‘음식은 장맛’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다 주변 음식점들과는 여러 가지로 차별화를 두고 운영하고 있다. 산채음식은 산자락 식당에선 기본으로 꼽히는데, 그 기본을 뛰어넘고 있다고나 할까. 산행을 마치고 내려온 분들이 어떤 음식들을 가장 선호하는지, 그 선호도를 성의껏 충족시켜 드리고 있다는 것이다. 관광지 식당들이 저녁시간이면 대부분 일찍 문을 닫는 경향인데, 이 식당은 늦은 밤까지 영업한다. 손님들이 마음 느긋하게 이용할 수 있는 장점이다. 손님에 대한 이러한 배려와 씀씀이가 단골손님과 단체손님을 가장 많이 확보하게 된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산채비빔밥 5,000원. 청국장·된장찌개 7,000원. 더덕구이 5,000~15,000원. 삼겹살화로구이 8,000원. 엄나무토종닭백숙 35,000원. 어름막걸리 3,000원. 더덕막걸리 4,000원. 어름동동주 5,000원. 집에서 담근 장류-된장. 보리고추장. 조선간장. 무우, 더덕장아찌-택배 가능. 양평 인근지역 차량편의 제공.


시골 장터에 이런 집이 있다니 나해

지난 여름 휴가철에 P산우회 후배들이 용문산을 다녀오고 난 뒤 제보 하나를 해주었다. 자동차에 이상이 생겨 서비스센터로 차를 몰았고, 기다리는 동안 자동차 서비스센터로부터 음식점 한 곳을 안내받았다고 한다.

뜻밖에도 안내받은 곳이 장터국밥집이나 순대에 막걸리를 마실 수 있는 그런 집이 아니라 ‘나해’라는 한정식 집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비싼 음식점 말고 매운탕집 정도의 음식점을 찾는다고 했더니 오히려 매운탕집 보다도 훨씬 쌀 거라면서 강추(?)하더라나. 그래서 네 사람이 찾아간 집이 5일장이 서는 장터골목을 약간 벗어난 곳에 위치한 ‘나해(031-774-2279)’였는데, 결론은 일행 모두가 100% 만족했다는 것이다.

이 식당은 1년 전 용문교회 맞은편에 터를 넓게 확보하고 한껏 멋을 부려 지은 기와집이라 시각을 먼저 즐겁게 해준다. 깔끔한 분위기에 100석 규모의 열린 식탁이 놓여 있고, 주방 역시 열려 있는 터라 조리하는 종사자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세 종류로 차려내는 한정식상의 음식값(18,000원, 13,000원, 10,000원)만이 아니라 한정식에 대한 기존의 통념을 깨기까지 했다. 한정식B(1인분 13,000원)에는 LA갈비 불고기 손두부 탕평채 야채참치회 야채샐러드 황태구이 탕수욕 전 막국수냉채 동치미 나물(3종) 된장찌개 가마솥밥에 튀각이나 김, 수정과나 과일, 떡이 따라 나왔다. 한정식 차림에 나오는 음식 하나하나를 따로 주문해서 먹을 수도 있고, 오리주물럭 낙곱철판 낙곱전골 등도 차려낸다. 해장국이나 돌솥비빔밥(각 5,000원)을 먹기 위해 찾아오는 인근의 주민들과 직장인들로 점심시간이면 식탁 차지하기가 쉽지 않다는 소문이다.


면 단위의 장터에 이런 집이 있기에 놀라웠는데 주방장이기도 한 업주 최상묵씨(45)의 이력을 살펴보니 이런 업소를 운영할 수 있게 된 속내를 알 수 있었다. 이곳 토박이인 최상묵씨는 어릴 때부터 음식을 장만하는 일이 취미였고 자라서는 호텔 주방에서 일하면서 주방장까지 맡았다. 나아가서 일본으로 진출했다는데 이왕이면 고향에 돌아와서 고향땅에서 살겠다는 생각으로 ‘나도 해내겠다’는 뜻의 외식업소 ‘나해’를 차렸다고 했다. 집안이나 주변에서는 반대했었다지만 기어이 성공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 주겠다고 했다.


양평해장국의 자존심 양평신내서울해장국집
천하의 식도락가들에게 ‘양평’ 하면 떠오르는 음식이 있다. ‘양평해장국’이다. 전국 각지에 체인점이 있고 유사한 상호의 식당 간판을 쉽게 만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 원조의 집은 어느 집일까.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사항인데, 정확한 것은 용문산 정남향의 양평군 개군면 공세리에 있는 ‘양평신내서울해장국집(031-773-8001)’이다.

30년 전만 해도 신내천이 흘러내리는 이곳 공세리는 물놀이를 즐기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던 곳이었다. 도로사정도 양평~여주간은 37번 국도를 주로 이용하던 때라 공세리는 활기가 넘치는 곳이었다. 이러한 곳에 내장탕과 해장국 전문점 ‘양평신내서울해장국집’을 정연학(鄭然學·75)씨가 시작한 것이 양평해장국의 원조가 된 것이다.


선지를 넣어 끓이는 해장국은 소문을 타고 널리 퍼져 나갔고, 손님들은 해장국집 식탁 차지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식당은 성세를 누렸다고 한다. 식당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이 집에서 음식을 장만하는 법을 익히고는 전국 여러 지역에서 ‘양평해장국’을 전문으로 하는 업소를 표방, 간판을 걸고 개점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창업주인 정연학 할아버지는 ‘양평해장국’이라는 음식이름이 들어간 업소가 문을 여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듯했다. 자신이 개발한 이 음식에 대한 고집과 자존심 때문이라고 했다. 부득불 인구 100만 단위로 한 집 정도의 체인점이 있는 것이야 좋겠지만 그것도 돈을 받고 명의를 빌려준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자신이 개발한 음식이 정확하게 손님들에게 전해지기를 바랄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사진이 들어가 있는 빨강 바탕에 본점과 같은 흰 글씨체의 간판을 걸게 했다고 한다. 그러고는 정직하게 영업하지 않는 경우가 드러나면 가차없이 자신의 사진과 옥호를 제거해 버렸다고 했다.


자신의 음식을 모방하고 간판을 건 어느 업소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 째로 맛 있는 집’이라고 했다는데, 그래도 애교 있는 간판이라며 창업주 할아버지는 크게 웃으셨다. 그렇다면 가장 맛있는 집은 어디일까? 할아버지집? 아니면 어머니나 아내가 차려 주는 정성어린 음식이 있는 집, 바로 우리집이겠다. 양평신내서울해장국집 해장국 6,000원. 내장탕 8,000원. 140명 동시 이용 가능.



보리밥과 개떡도 먹어 봐야 보리고개마을


‘보릿고개가 태산보다 높다’는 속담이 있었다. 계절은 봄날, 아직 보리는 익지도 않았는데 지난해 가을에 추수한 식량은 이미 바닥이 났다. 그래서 봄날은 궁핍했다. 암담하고 궁핍했던 봄날. 보리가 익을 때까지 넘어야만 하는 춘궁기 보릿고개. 지금 50대 이상의 사람들은 이 말을 알고 있으리. 얼마나 먹을 것이 없었던지 초근목피(草根木皮), 풀뿌리 나무껍질로 연명하기도 했다. 지금 자라고 있는 세대들은 이해하기 참으로 어려운 일이겠지만, 불과 50년 전, 이것은 바로 이 땅의 사람들이 겪었던 엄연한 현실이었다.


온고지신(溫故知新), 옛 것을 돌이켜 보고 새 것을 알게 된다고 했겠다. 용문산 장군봉 아래 쪽 상원사 가는 길 용문면 연수리에는 ‘보리고개마을(031-774-7786)’이 있다. 이미 있던 마을의 23개 농가가 참여하여 도시사람들에게 궁핍했던 그 때 그 시절을 회고토록 하며 농촌생활을 체험토록 해주고 있다. 체험코스는 당일치기와 1박2일 두 가지가 있는데, 다양한 프로그램이 짜여져 있다.


콩으로 두부를 만들어 보기도 하고, 디딜방아에 보리를 넣고 찧은 보리가루로 보리개떡을 만들어 본다. 쑥과 호박으로 쑥개떡과 호박개떡도 만들어 본다. 인절미를 만들어 함께 나누어 먹기도 한다. 밭에 나가서 고구마와 감자를 캐고 옥수수를 따고 복숭아 밭에도 간다. 농산물수확체험을 해 보는 것이다. 농촌마을을 둘러보고 밤에는 모닥불에 둘러앉아 고구마와 감자를 구워 먹으며 밤하늘의 별자리를 관찰해 보기도 한다. 보리밥과 제철음식을 맛본다는 것은 빠뜨릴 수 없는 필수이겠다.


어린 시절 아빠 엄마를 따라가서 농촌의 이런 체험을 한차례 해 본다는 것은 일생을 두고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는 추억거리가 될 것이다. 용문산을 오르겠다는 산꾼이라면 가족 모두가 이 보리고개마을에서 1박 하고 부인과 애기들은 마을에서 농촌체험을 하도록 하고 산을 다녀 오면 될 것이다.
보리고개마을 예약 김장만 사무장(촌장) 031-774-7786. 010-4400-7786.


최상의 맛 그 비결은 중미산막국수

‘중미산막국수(031-773-1834)’는 용문산이나 중미산, 유명산 자락을 달리는 37번 국도상의 최고의 명소가 됐다. ‘얼마나 맛있는 집이기에’ 하고 늘 관심을 가졌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다녀온 사람들이 계속 제보해 주었다. 수차례 이 업소를 다녀오면서 느낀 바는 우리나라 산자락 외식업소들이 모두 이 수준이라면 산꾼들은 참으로 행복하겠다는 것이다. 만 10년 넘게 산자락 맛집들을 돌아보면서 얻어낸 소중한 자산의 업소다.


그렇다면 ‘중미산막국수’ 최상의 맛, 그 비결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식자재 구매에서부터 조리, 그리고 홀서빙, 식당의 위생상태와 분위기까지 모두가 완벽하다는 품평을 받고 있는 업소, 먼저 업주부터 탐구해 봤다. 이 집에서는 몇 가지 아름다운 모습이 눈에 띈다. 첫번째는 4대가 한 울타리 안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송용옥(宋龍玉) 할머니와 며느리 사분희 여사가 식당을 맡아 운영하고 있다. 고부간의 정겨운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바깥주인 윤광규님은 주변의 친구들로부터 ‘윤 박사’ 로 호칭되고 있었다. 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것이 아니라 식당경영을 위해 철저하게 공부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친구들이 ‘식당경영학박사’를 별명으로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윤박사’는 소중한 시간을 할애, 전국 각지의 이름 높은 외식업소들을 돌아보는 것이 일상이라는데, 자신의 직업에 대한 높은 자긍심과 철저한 프로근성으로 가장 합리적인 식당경영에 임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업소를 찾는 ‘고객들의 행복이 바로 자신들의 행복’이라는 업주는 이윤이 많이 나온 달에는 혹, 너무 적은 인력으로 종사자들이 혹사를 당하지나 않았는지 엄밀하게 챙겨 보기도 한다고 했다. 어느 단골은 주방과 식탁을 두루 돌보며 열심히 일하고 있는 안주인을 보고는 “한 집에서 참 오래 일하고 있네요” 라고 인사한다고도 했다. 주인과 종업원간 격의가 없는 업소라는 뜻이겠다. 주인 내외의 이런 자세와 모습만 보더라도 업소의 성공은 당연한 귀결임을 금방 알게 해준다.


1996년 12월 개점. 120명 식탁. 막국수 5,000원. 모두부 8,000원. 두부구이 9,000원. 편육·빈대떡 10,000원. 주차공간도 넉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