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소백산 정상 주목나무 군락지에서 울창한 숲사이로 주목나무가 수백년 묶은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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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 국립공원은 한반도 온대 중부의 대표적인 식생을 갖는 지역으로 사시사철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 들풀들과 소나무, 신갈나무, 철쭉, 느릅나무 등 목본식물 1,000여 종 이상이 서식하는 생태환경이 그대로 보존된 곳이다.
자생식물 군락지로는 해발 1,000m 부근의 신갈나무, 비로봉 정상 바로 밑의 주목나무, 정상 부근에 넓게 퍼져있는 철쭉나무, 어의곡 들머리부터 골고루 자라고 있는 두충나무 등이 있다. 특히 신갈나무의 교목한계선(tree limit 또는 tree-line, 삼림한계선이라고도 하며 용재한계선라고도 함)은 1,000m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 부근에서 엄청난 자생군락을 형성하고 있다. 이는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한반도 식생에 벌써 변화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간접 지표이다.
해발 100m 높아질 때마다 기온은 보통 0.6℃씩 떨어진다. 지난 100년간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한반도 평균기온이 1.6℃ 올랐다. 따라서 교목한계선도 약 300m 높아진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고산지대의 교목한계선은 기온 외에도 적설량, 적설기간, 바람, 산불 등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한반도 식생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소백산 국립공원은 변함없이 예로부터 자생군락을 이루고 있는 대표적인 식생군이 있다. 해발 1,439m의 비로봉 바로 밑에 군락을 이루고 있는 주목나무가 바로 그것이다. 주목 바로 옆에 크리스마스트리로 쓰이는 구상나무 군락도 눈에 띈다.
구상나무는 한국에만 서식하는 특산수종이다. 구상나무의 아름다운 자태 때문에 이미 외국으로 진출해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나무다. 특히 구상나무에는 구과(솔방울)가 하늘을 보며 가지에 앉아있어 쉽게 식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매우 매력적이다. 구과의 색깔에 따라 푸른구상, 붉은구상 그리고 흑구상으로 구분한다.
열매의 색깔이나 꽃의 색깔이 달리 나타나는 경우, 그들을 품종이라 한다. 반면 주목처럼 바람이 많이 부는 지역에서 자라는 관계로 누워서 자라게 되는 경우, 형태의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에 이를 변종이라 부른다.
이번 호에는 한국의 대표적인 자생나무이자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으로 알려진 침엽수 주목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자.
주목은 지리산, 태백산, 오대산, 두위봉 등 한반도 여러 지역에서 군락을 이루고 있지만, 소백산 주목만 1973년 6월20일 천연기념물 제244호로 지정됐다. 전국적으로 식물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221종 중에 강원도 정선의 1,400년 수령의 주목이 최고령을 기록하고 있을 정도로 오래 사는 나무다.
- 천연기념물 지정식물 중 최고령도 주목
- ▲ 다래덩굴과 어울려 자연스러운 자연림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바로 자연의 건강한 상태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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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의 멋진 모습을 보기 위해선 소백산 정상 비로봉까지 올라가야 한다. 생태 트레킹한다는 생각으로 올라가는 등산로 주변을 둘러보면 자연 그대로의 숲을 감상할 수 있다. 비로봉까지 가장 가까운 거리인 어의곡 계곡을 따라 비로봉을 올라가보자. 이 등산길이 특별하고 소중한 것은 살아있는 자연의 맛을 듬뿍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어의곡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면서 만날 수 있는 나무만도 무려 60여 종이 된다. 특히 재미있는 사실은 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나무들이 살아가는 모습의 변화를 확연히 찾아볼 수 있다. 추위를 싫어나는 나무들은 산 아래에서 만나게 된다. 밤나무나 가래나무, 신나무, 칡 등은 600m 이상이 되면 더 이상 볼 수 없다.
- ▲ 해발 1,000m 이상에서도 볼 수 있는 신갈나무 군락.
- 인공적으로 심어놓은 일본잎갈나무 군락과 산뽕나무 군락, 그리고 계곡 주변으로는 신갈나무가 조금씩 나타나면서 수없이 많은 다래덩굴들을 볼 수 있는, 그야말로 자연의 맛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어 좋다.
키 큰 나무 아래에는 함박꽃나무, 층층나무, 노린재나무, 고로쇠, 찰피, 당단풍, 까치박달, 야광나무, 느릅나무, 개암, 백당나무, 붉나무, 옻나무, 앵두, 귀룽나무, 소태나무, 쪽동백, 생강나무 등과 바닥의 키 작은 나무로는 산수국, 국수나무와 병꽃나무가 비로봉 가는 길을 아름답게 해준다.
- ▲ 수피가 얼룩얼룩한 어의곡 계곡 숲의 제2인자 물푸레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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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800m부터 1,300m까지 어의곡의 최상층을 지배하고 있는 나무는 단연 신갈나무다. 어의곡 계곡은 신갈나무가 군림하는 전성기라 할 수 있다. 그 바로 아래 줄기에 흰 반점들이 있는 물푸레나무를 만날 수 있으며, 그 밖에도 물박달나무나 박달나무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정상에 오르면 갑자기 키 큰 나무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지막한 키로 자라는 소나무와 철쭉, 그리고 구상나무군락을 만나게 된다. 그 한쪽 사면에서 수백 년 된 주목 군락지를 만날 수 있다. 이처럼 정상으로 오르면서 식물들의 변화상을 관찰하는 맛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래에서 정상으로 올라갈수록 나무들의 높이가 낮아지고, 나무의 종류들도 줄어든다. 최정상부에서는 몇 안 되는 나무의 종류들이 아주 작은 키로 때로는 세찬 바람을 못 이겨 누워서 견디는 나무들도 종종 만나게 된다.
주목 군락지에 다다랐다. 주목이 지구상에 등장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대략 1억5천만 년 전인 공룡이 득실대고 은행나무가 등장한 바로 중생대 쥐라기로 보고 있다. 주목(Taxus cuspidata·朱木)을 풀이하면 붉은 나무라는 개념이다. 주목은 나무줄기의 중앙부분인 심재가 붉어 붙은 이름이기도 하지만, 나무껍질을 삶은 물에 백반을 섞어 염색하면 붉은 빛으로 염색된다고 한다.
- ▲ [좌]주목나무의 붉은 열매. [우]주목나무의 수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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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이 생산하는 붉은 열매를 보아도, 오랫동안 진한 녹색의 나뭇잎을 보아도 정열적인 인상을 준다. 마치 매우 자극적이고 강인한 여성 같기도 하다. 주목의 만국공통인 Taxus란 속명은 의학적인 용어로 사용되고 있는 탁신(Taxin)이란 용어에서 그 의미를 찾아 볼 수 있다. 탁신은 그리스어로 독성이 있다는 뜻이다. 주목 열매를 제외한 모든 부분에는 독성이 있다. 독이란 곧 약을 의미하며, 약은 곧 독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약이 되고 독이 되기도 한다는 뜻이다.
오늘날 주목이 우리에게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는 인류의 고질적인 질병인 암을 치유할 수 있는 항암 성분이 함유되어 있다는 데 있다. 미국에서 이미 임상실험에 성공해서 그 추출물이 각광을 받고 있는 단계에 있다.
주목은 매우 강한 내음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웬만한 응달에서도 죽지 않고 길게는 수십 년 동안 살아 견딘다. 반면 그 생장속도는 무척 느리다. 강원도의 금강송이 매년 지름 약 1cm 웃도는 정도로 자라는 반면, 주목은 고작 0.1cm 자라는 것이 보통이다. 생명력이 매우 강한 나무 중의 하나다. 모진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변함없이 살아간다. 바람이 많이 부는 높은 지역에서는 곧게 자라는 것이 부담스러워 누워서 자라는 주목도 있다. 이를 누운주목(눈주목), 또는 앉은주목이라고도 부른다. 우리가 흔히 만날 수 있는 주목은 서있는 주목(선주목)인 셈이다.
또한 주목은 관목의 형태나 교목의 형태로도 자랄 수 있는 성질을 지닌 침엽수 중 특별한 수종이다. 대부분 침엽수들은 나무의 원기둥을 잘랐을 때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나는 맹아갱신이 되지 않지만, 주목만큼은 맹아갱신이 되어 다시 자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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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은 8년까지 푸르게 붙어 광합성 작용
소나무나 잣나무의 잎들은 대부분 2~3년 지나면 떨어지지만, 주목의 잎은 길면 8년까지도 푸르게 붙어서 광합성을 계속해나간다. 매년 생장하는 나이테가 매우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는 까닭으로 목재의 강도나 안정성은 매우 높은 편이다. 일반적으로 어린 시절 빠른 성장을 보이는 나무는 그 생명이 짧고, 긴 성장을 보이는 나무는 그 생명이 길다. 대부분 음지에서 잘 자라는 나무는 어린 시절의 성장기간이 길다.
성장하고 살아남기 위해 많은 빛을 필요로 하는 나무가 있는가 하면, 빛이 조금만 있어도 살아가는 데 큰 영향을 받지 않는 나무가 있다. 빛을 많이 필요로 하는 나무를 양수라 하고, 음수는 빛의 양이 적어도 살아가는 데 큰 영향을 받지 않는 나무를 말한다. 그 중 주목은 음지에서 견디는 능력이 대단한 나무에 속한다. 물론 빛이 많은 곳에서도 잘 자라지만 말이다.
옛날에는 주목의 재질이 매우 단단하고 좋아서 악기나 전쟁터에서 활용하는 활을 만드는 데 주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렇게 우리도 모르는 세월을 살아온 나무는 그 세월만큼 목재로서의 수명을 다하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고 할 수 있다.
주목은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되어 있을 뿐 아니라 때로는 암나무와 수나무가 함께 있는 나무도 있다. 주목의 꽃은 4월에 피며, 암꽃과 수꽃이 바람에 의해 수분이 되면 8~9월에 열매를 맺는다. 주목의 열매는 매우 강렬하게 표현될 만큼 붉고 아름답다. 빨간 종피 안에 종자가 들어 있어 먹을 수 있다. 침엽수 중에 구과가 아닌 것이 몇 종류 있는데, 이것이 그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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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소백산 주목 군락지는 아쉽게도 물푸레나무와 관목 등으로 이루어진 무성한 숲으로 인해 오히려 주목 어린나무들의 발아가 방해받고 있다. 천연기념물로 정작 보호 받아야 할 주목이 무성한 숲으로 인해 주목의 대(代)가 끊길 우려가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질긴 생명력으로 인해 수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 결과가 드러나겠지만. 결국 인간에 의한 보호는 자연의 생명력을 단축시킬 뿐이라는 사실은 소백산 주목 군락지를 통해서도 다시 한번 드러난 셈이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일 때 가장 아름답다는 평범한 교훈을 인간은 생각해볼 일이다. 소백산 식물군락의 빠른 변화추이를 보면서, 인간의 필요에 의해 나무를 종속시켜 살아가는 인류의 생명이 위태롭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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