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은도 두봉산 산행+분계 해수욕장+추포도 바닷가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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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고요했다. 목포항을 빠져나간 여객선이 본격적으로 유영을 시작한다. 객실 구석에 누워 잠시 눈을 붙이는 사이 배는 큰 바다로 빠져나간다. 낮잠이 지겨워질 즈음, 갑판에 올라 차가운 바람에 몸을 싣는다. 가슴 속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피부에 꽂히는 햇살이 제법 따갑다. 저 멀리 시야가 닿는 곳에 길쭉한 산맥이 솟아 있다. 신안군의 핵심지역인 나주군도다.
1시간 반, 뭍이라면 그다지 먼 거리도 아니다. 하지만 바다를 건넌다는 것은 어딘가 모르게 부담스럽다. 일상에서 접하기 어려운 교통수단인 배를 탄다는 자체도 생소하다. 게다가 선박 운항은 날씨에 따른 변수가 너무 크다. 섬 여행은 이런 여러 요인들 때문에 선뜻 권하기 어렵다. 하지만 휴가철이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1년에 한번 큰 맘 먹고 떠나는 여행인데, 이 정도 색다른 경험은 오히려 환영할 일이다.
나주군도 최고봉 자은도 두봉산
- 이번에 찾은 나주군도(羅州群島)는 150개가 넘는 많은 섬들로 이루어졌다. 신안군의 중심인 이곳의 섬들은 산과 바다를 동시에 갖춰 피서 여행지로 알맞은 환경을 지녔다. 신안군은 이 일대를 통틀어 ‘다이아몬드 제도’라는 별칭으로 홍보하며 관광객 유치에 힘쓰고 있다.
이곳의 자은도, 암태도, 팔금도, 안좌도 네 섬은 연도교로 이어져 하나의 지역으로 묶여 있다. 배를 이용하지 않고도 네 섬을 두루 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연도된 네 섬 가운데 가장 북쪽에 위치한 자은도는 풍부한 볼거리를 지니고 있는 섬이다. 특히 나주군도 최고봉인 두봉산(363.8m)이 자은도에 자리하고 있다. 이 봉우리는 주변 섬산에 비해 유독 웅장한 모습이 눈길을 끈다. 뚜렷한 하나의 산줄기가 곧게 뻗어 있는데다 가지를 뻗은 지능선 또한 수려하기 때문이다.
- ▲ 건너편에 보이는 봉우리는 암태도 승봉산. 자은도와 암태도는 은암대교로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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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이 전하는 두봉산에 대한 전설도 은근히 재미있다. 자은도는 태초에 세상이 만들어질 때 바다 속에 잠겨 있었다고 한다. 다만 한 말(斗=두) 가량의 땅덩어리가 솟아 있었는데, 세월이 흘러 바닷물이 줄며 섬이 만들어지고 두봉산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바로 옆 암태도에는 두봉산보다 조금 작은 한 되(升=승) 가량의 땅덩어리가 솟아 있었는데, 이것은 나중에 승봉산(355.5m)이 되었다고 전한다. 지금도 두봉산 산정의 바위에는 조개껍질이 발견되어 이 산의 생성설화를 뒷받침하고 있다.
- ▲ [좌] 주능선의 일부 구간은 산길 양쪽으로 절벽이 형성된 곳도 있다. 난간을 설치해 안전한 산행을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우] 꽃을 피운 찔레덩굴이 바위를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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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봉산에 전해오는 또 하나의 전설은 산 이름과 관련된 것이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 휘하에 두사춘이라는 병사가 있었는데, 그가 탈영해 이곳 자은도에 숨어 지냈다. 그는 은신하는 동안 이 산에 올라 “큰 산이라고 해서 올라와 보니 발아래 있다”면서 이를 기념해 산 이름을 두봉산으로 지었다고 한다. 또, 두봉산 남쪽 해발 126m 지점에 천혜방(天惠房)이라는 자그마한 방 모양의 바위굴이 있는데, 이곳이 두사춘이 숨어 지냈던 장소라고 전해진다. 명나라의 원정군이 회군하자 그도 이곳을 떠나며 감사하는 마음에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 ▲ 대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숲길을 걷고 있는 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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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봉산은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 곳이다. 육로가 발달되지 않았던 시절에는 뱃길 확보는 물류는 물론 군사적으로도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다. 실제로 자은도와 북쪽의 증도 사이의 해협은 한반도 남쪽과 중부를 잇는 대단히 중요한 항로였다. 고려 우왕 3년(1377년)부터 조선 세종 23년(1441년)까지 이곳에 수군영이 위치했고, 또한 일제 강점기에는 해로를 확보하기 위해 섬 북쪽에 많은 땅굴 진지를 만든 흔적이 남아 있다.
면소재지인 구영리가 조선시대 당시 수군영이 있던 자리다. 기록에 따르면 종사품 벼슬의 관리가 수군 400여 명을 거느렸다. 막사는 두봉산 북서쪽의 성제봉(225m) 아래에 있었고, 현재 자은초교가 있는 곳이 병사들의 훈련장이라고 전해온다. 지금도 성제봉 부근에는 돈대 규모의 성터가 남아 있고, 도자기 조각들이 많이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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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산길이 결코 만만치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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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봉산으로 가려면 여객선이 닿는 암태도 남강 선착장에서 찻길을 타고 자은도로 이동해야 한다. 암태도와 자은도를 잇는 은암대교를 건너기 직전 건장한 풍채의 두봉산이 잠깐 모습을 드러낸다. 한눈에도 두봉산은 단순히 높기만 한 산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뼈를 드러낸 정수리의 화려함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수행을 견뎌낸 도인처럼 위풍당당하다.
- ▲ 등산로 안내판을 보고 설명하고 있는 자은 토박이 박상범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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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봉산 산행은 면소재지인 구영리에서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교통이 편하기 때문이다. 면사무소 앞의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200m쯤 가니 왼쪽에 커다란 두봉산 등산로 안내도가 보인다. 이 안내도 바로 옆에 곧바로 산으로 진입하는 소로가 나 있다. 무선기지국을 통해 주능선으로 오르는 길이다.
“여기서 올라가면 좀 돌아 가구요, 자은초등학교 뒤쪽으로 오르는 길이 더 낫습니다. 그쪽으로 가시죠.”
자은면사무소에서 공익요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토박이 박상범(23)씨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저수지 위에 자리 잡은 자은초등학교는 자은도에 있던 여러 곳의 초등학교를 통폐합해 만든 것이라 규모가 상당했다. 학교 정문 왼쪽으로 난 산길을 따라 잠시 오르니 곧바로 수풀이 가득한 급경사 임도가 앞을 가로막는다.
- ▲ [좌] 두봉산 정상에서 도명사 방향으로 내려서는 가파른 길. [우] 자은면소재지인 구영리 일대가 내려다보이는 바위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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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제봉에 정자를 만들면서 길을 새로 정비했는데, 몇 달 사이에 완전히 풀이 우거졌네요. 길이 생각보다는 나쁜 것 같습니다.”
사람의 발길이 닿기 힘든 섬산은 아무래도 길이 좋지 않은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도 자은도의 경우 신안군과 면사무소에서 적극적으로 산길 관리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습하고 따뜻한 이곳 날씨는 식물 생장에 유리한 환경이다. 산길 정비작업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다시 풀이 무성하게 자란 것이다.
- ▲ 성제봉에서 정상 가는 도중에 거치게 되는 바위절벽.
- 가파른 산길을 10분 가량 치고 오르니 성제봉(225m)과 무선기지국이 있는 봉우리로 연결된 능선에 올라붙었다. 잠시 숨을 돌리고 보니 앞에 솟은 성제봉까지 가는 길이 보통 가파른 것이 아니다. 초반에는 침목계단이 나타나다가 곧 사라졌다. 그리고는 발붙이고 쉬기도 힘든 엄청난 급경사 길이 20분 가량 이어졌다.
- ▲ 성제봉 정상의 정자에 앉아 땀을 식히고 있다. 둔장 해변 일대가 멋지게 조망되는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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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제봉 정상에서 동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최근에 만든 정자가 서 있었다. 북쪽의 두모 마을 일대와 3km가 넘는 긴 해안선을 자랑하는 둔장 해수욕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멋진 전망대에서 운해가 깔리는 바다를 바라보며 후미를 기다렸다. 잠시 후 오랜만에 취재산행에 함께한 사진기자 이상선 선배가 온몸이 흠뻑 젖은 채로 나타났다.
“아이고 사람 잡겠네. 이런 몹쓸 길이 어디 있어. 구간이 짧았으니 망정이지, 조금만 더 길었으면 낙오하겠어요.”
정자에 걸터앉아 얼음물을 마시며 열을 식혔다. 햇살은 한 여름처럼 따가웠지만, 산 위로 불어오는 바닷바람은 아직도 서늘했다. 잠시 앉아 있는 사이 추위를 느낄 정도로 몸이 식었다. 서둘러 배낭을 꾸려 정상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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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직전 1km 구간이 백미
성제봉에서 남쪽으로 뻗은 주능선은 한껏 고도를 낮췄다. 이정표가 없다면 하산로로 착각할 수 있을 정도로 내리막길이 길었다. 10여 분 동안 그늘이 짙은 숲길을 따라 내려섰다. 내리막이 끝나고 나니 제법 주능선 분위기가 나는 산길이 나타났다. 바지를 잡아끄는 가시덤불과 키 큰 시누대가 숲을 이룬 것이 특이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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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선길을 따라 잠시 나아가니 벤치까지 만들어 둔 널찍한 안부에 도착한다. 이곳은 구영리에서 대율리로 이어지는 산길이 지나가는 고갯마루로, 이름은 대율재다. 이곳에서 서쪽 하산길을 따르면 자은초교 밑 저수지 방면으로 내려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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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다른 조망이 없어 곧바로 정상 방면의 산길을 따른다. 서서히 고도가 높아지는 능선길을 타고 다시 15분쯤 진행하면 오른쪽으로 구영저수지로 내려서는 갈림길이 보인다. 면소재지에서 두봉산을 오르는 최단 코스로 이용되는 산길이다.
이 삼거리에서 정상까지 약 1km 구간이 두봉산 산행의 하이라이트다. 두루뭉술한 암반 위로 이어지는 능선길 어디서나 조망이 뛰어나다. 자은도 북쪽의 한운리와 바다 건너 증도의 우전 해수욕장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다가온다. 구명리 일대의 드넓은 논밭은 햇살을 받아 푸른 빛을 쏟아내고 있다. 어디를 둘러봐도 수려한 경관이 펼쳐졌다.
- ▲ 도명사 하산길의 시설물들. 계단과 난간을 설치해 안전산행에 도움이 된다.
- 주능선 바윗길의 위험지대에는 계단과 난간이 설치되어 있었다. 어느 정도 암릉 경험이 있는 등산객들은 큰 어려움 없이 산행이 가능하도록 배려해 두었다.
상쾌한 기분으로 뾰족한 암봉에 올라서니 뒤쪽 조금 떨어진 넉넉한 모습의 바위산이 솟아 있다.
한달음에 정상에 올라서니 동쪽 유천리 일대의 염전과 개간지들이 눈에 들어온다. 바다 건너 암태도의 아기자기한 산자락도 볼만한 풍경이다.
- ▲ 두봉산 정상 부근의 바위 지대. 신안군의 크고 작은 섬을 조망하기 좋은 전망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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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휴식을 마치고 곧바로 하산을 시작했다. 코스는 급경사 바위지대를 통과해야하는 도명사쪽으로 잡았다. 산길이 다소 거칠기는 해도 산행기점인 면소재지로 돌아가려면 이 코스가 제일 무난했다. 초반부터 절벽 같은 단애가 앞을 가로막는다. 가파른 곳에 난간과 계단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진땀을 흘려야 할 정도로 경사가 급했다.
경치만큼은 자은도에서 제일로 칠만했다. 산길 좌우로 도열한 바위지대는 설악산의 일부를 축소해 옮겨 놓은 듯하고, 벼랑 위에 처연하게 서 있는 해송은 멋들어진 그림을 만들어냈다. 20분 정도 유격훈련장 같은 구간을 지나면 다시 산길은 숲으로 숨어든다. 나무가 가득한 자그마한 지능선을 타고 잠시 내려서면 왼쪽 도명사 방면의 산길이 나타난다. 이곳에 이르면 본격적인 산행은 모두 끝난 셈이다.
두봉산은 그리 서두르지 않아도 3시간이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는 작은 규모의 산이다. 산세가 아름답고 조망이 좋다고는 하지만, 단지 이 산만 오르기 위해 바다를 건너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휴가철을 맞아 해수욕을 즐기며 섬 여행과 산행을 같이 한다면 충분히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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