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창문을 열면 마음이 들어오고. . . 마음을열면 행복이 들어옵니다............국내의 모든건강과 생활정보를 올려드립니다
  • 국내의 모든건강과 생활정보를 올려드립니다.
  • 건강하고 랭복한 하루 되십시오.
등산

[지도 위를 걷다] 고흥반도 바닷내음 물씬, 당일 트레킹 가능한 코스

by 白馬 2025. 4. 28.
 

전남 고흥 월각산~천등산, 우마장산

 

월각산에서 천등산으로 향하는 길목 산비탈에 서자 앞산이 빼꼼 모습을 드러냈다.

 

 

1 첫 번째 산행코스 _ 월각산~천등산, 봄비 속에 다시 찾은 고흥

훌쩍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디든 멀리, 좀 더 먼 곳으로. 한반도의 가장 아래 자리 잡은 고흥으로 향했다. 고흥은 높을 고高, 일 흥興 자를 쓴다. ‘한창 일어나는 흥’, 또는 ’고상한 흥취’라는 의미다. 꽤 괜찮은 이름이었다. ‘어느덧 다시 봄, 그래, 멀리 떠나 한껏 걸어보자.’ 고흥에 갈 계획을 세우니 정신이 왕성해졌다.

동트기 전 깜깜한 새벽, 졸음이 덜 깬 몸을 이끌고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해 고흥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에서 누가 업어가도 모를 만큼 깊이 잠들었다. 중간에 버스를 갈아타고 반나절이 훌쩍 지나서야 고흥에 다다랐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부슬부슬 봄비가 옷깃을 적셨다. 빗줄기는 굵지도 가늘지도 않았다. 마치 내리는 둥 마는 둥, 하지만 온몸이 금세 축축해졌다.

10여 년 전 어느 날 새벽 나는 이곳에 온 적이 있다. 봄이었는지 가을이었는지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대학원 학기가 막 시작된 무렵이었고, 오후 수업이 몹시 지루했던 것은 확실하다. 그때 문자 한 통을 받았다. 대학 시절 룸메이트였던 선배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부고 소식이었다.

나는 그대로 가방을 챙겼다. 그녀와 나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자랐고, 형제가 많았으며, 그런 이유로 유난히 닮은 구석이 많았다. 나는 언니가 둘이나 있었지만, 그녀를 셋째 언니처럼 잘 따랐다. 고흥에 가야 했다. 

막차는 이미 끊기고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인근의 도심으로 가는 심야버스를 타고, 자정이 지나서야 겨우 고흥에 들어섰다. 그곳이 정확히 어디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해안 절경 같은 건 없었고, 바다 냄새조차 나지 않았다. 장례식장에서 꼬박 밤을 새워 선배를 위로하다가 어슴푸레한 새벽녘, 다시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싣고 곯아떨어졌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흘러 다시 이곳에 왔다. 이번에는 낮의 고흥을 볼 기회였다. 빗방울이 점점 굵어졌지만 묘하게 기대감이 들었다. 이번 산행의 동행을 구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주말 내내 비 예보가 있었고, 고흥은 어느 곳에서든 너무 멀었다. 그런데도 아웃도어 동호회 ‘라온’의 이범호씨와 차선주씨가 동행을 자처했다. 
 

한 편의 수묵화처럼 고요한 고흥 앞바다의 풍경.

 

“비 예보가 있는데 괜찮으세요?”

“비 오는 날 산이 더 좋아요.”

그들은 단호했다. 어차피 다 젖을 건데 뭐가 문제냐는 얼굴이었다. 

들머리는 송정마을 회관이다. 송정마을에서 출발해 월각산을 지나 천등산에 오르는 코스로 잡았다. 해안 절경을 만끽할 수 있는 두 개의 산을 오르기로 했다. 고흥행 버스에서 월각산과 천등산의 산세를 상상했다. 월각의 ‘각’이라는 글자가 이상하게 날카롭게 느껴졌다. ‘산이 뾰족하게 각이 졌을까?’ ‘첨단공포증(뾰족한 것에 공포를 느끼는 증상)’을 앓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산을 거들떠보지도 않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월각산은 산에 있는 바위를 밟을 때마다 딸각거리는 소리가 난다고 해서 ‘딸각산’으로도 불렸다. 그러다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달 월月, 뿔 각角 자를 써서 ‘월각산’이 됐다. 하지만 지금도 등산로 안내판에는 ‘딸각산’이라고 쓰여 있다. 어디선가 딸각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마을을 지나 산길로 접어들었다.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됐다. 빗물에 젖은 바위들이 반질거렸다. 미끄러운 돌을 피해 엉금엉금 오르자 시야가 트였다. 산은 습기를 가득 머금고 있었다. 이범호씨는 쏜살같이 올라 정상에서 우리를 기다렸다. 환상적인 조망은 없었다. 그저 눈앞의 돌을 요리조리 피하며 걸을 뿐이었다. 
 

천등산 정상에서 망중한忙中閑, 아니 우중한雨中閑.

 

딸각거리는 바위 소리보다 재잘거리는 우리 소리

조망이 없는 산행은 수다스러워지기 마련이다. 조망이라는 게 있으면 누구든 묵묵해진다. 하지만 경치가 단 하나도 안 보이는 날에는 그걸 대체할 무언가가 필요하다. 선주씨와 나는 쉴 새 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꽤 오랜만에 만났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는 내가 ‘산’에 관해 이야기할 때면 귀를 쫑긋 세우고 열렬히 듣는다. 사람들은 산에서 무언가를 듣는 일이 별로 없다. 그저 묵묵히 걷고 땀을 흘리고 흙을 밟는다. 하지만 그녀는 다르다. 나는 가끔 엉뚱한 이야기들도 늘어놓았다. 이름이 이상한 산들의 유래라든가, 이제는 사라져버린 옛 등산로 같은 것들. 그럴 때면 그녀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며 묻는다. 

“그러면 그 산은 원래 뭐라고 불렸대? 너무 신기하다!”

나는 아는 대로 대답하고 모르는 것은 적당히 둘러댔다. 중요한 것은 정답이 아니었다. 

“언니, 천등산 이름이 정말 재미있어요.”

그녀가 나를 힐끗 보며 말했다. 기다렸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어서 말하라는 무언의 압박감이 느껴졌다.

“천등산? ‘등산’이 우리가 말하는 등산인가?”

“오! 맞긴 맞아요. 하늘 천天 자를 써서, 하늘로 오르는 길 같다고 해서 천등산이라고 하고요. 또 천 개 만 개 할 때 일천 천千, 등잔 등燈 자를 써서 승려들이 정상에 올라 1,000개의 등불을 밝히며 기도를 올렸다고 해서 천등산이라는 말도 있어요.”

“하늘로 오르는 길처럼 보이긴 했겠다.”

우리는 산 아래로 이어진 능선을 바라보며 말했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저 아래는 바다였다. 그런데 바다로부터 우뚝 솟은 이런 기암괴석이라니! 그리고 그 위에 우리가 서 있다니! 고흥은 바다가 아름다운 곳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산도 이 정도면, 꽤 멋지다.
 

천등산 철쭉공원 일대. 사진 고흥군 문화관광.

 

그녀와 재잘거리면서 걷다 보니, 성큼 월각산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은 마치 구름 위에 둥둥 떠 있는 섬 같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여기가 정상인지 아닌지도 모를 정도였다. 부슬비가 계속 내렸고, 바람이 불 때마다 축축한 공기가 몸을 감쌌다. 선주씨가 콜라 한 캔을 꺼내 들었다. 나는 마치 마라톤 결승선 앞에 선 기분이었다.

정상을 지나 임도로 들어섰다. 힘겹게 오른 길 끝에 나타난 임도는 늘 허탈감을 동반한다. 오르는 동안 그렇게 대단했던 길이었는데, 임도 앞에서는 대단함의 각오가 한없이 보잘것없어진다. 발걸음이 느려졌다. 한 걸음 한 걸음 힘을 주어 걷던 걸음이 터벅터벅 소리를 냈다. 

임도 갈림길에 노란색 이정표가 보였다. 천등산 정상까지는 다시 지독한 오르막길이 시작됐다. 비가 계속 내렸다. 한 번쯤 고흥 앞바다를 보여 줄 만도 한데 산속은 여전히 어둑어둑했다. 비탈진 길을 계속 치고 올랐다. 

들머리에서 약 2.4km. 마침내 천등산 정상에 닿았다. 큼지막한 한글로 새겨진 정상석이 비에 젖어 번들거렸다. 봄이면 철쭉공원 방면으로 천등산에 오르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정상보다 철쭉공원 방면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더 많은 듯했다. 철쭉공원으로 발길을 돌려야 하나 잠시 망설였다. 봄비에 가려 철쭉 꽃망울도 보지 못할 것 같았다. 우리는 벼락산 방향으로 직행했다. 

철쭉을 따라 천등산에 오르는 길이 있는가 하면 동쪽 산비탈의 비자나무숲을 따라 오르는 금탑사 코스도 있다. 이 코스가 정상으로 오르는 가장 빠른 길이다. 비를 한껏 머금은 비자나무숲의 황홀한 내음이 우리를 유혹했다. 하지만 송정마을 회관 앞에 두고 온 자동차가 퍼뜩 떠올랐다. 아쉬웠지만 쏜살같이 하산했다.
 

임도가에 서 있는 소나무 잎에서 빗물이 툭툭 떨어지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다.

 벼락산을 뒤로 하고 쏜살같이 하산을 시작했다.

 

 

월각산(429m)~천등산(554m)

전남 고흥군 도화면, 포두면, 풍양면 송정리

산행 거리 8km  산행 시간 1시간 50분
산행 난이도 ★★☆☆☆(예상 외로 바위 구간 많음)

산행길잡이

송정마을에서 올라 월각산과 천등산을 함께 오르는 코스가 가장 일반적이다. 다만 봄철에는 천등산 중턱에 있는 철쭉공원 일대를 지나가는 것이 좋다. 금탑사에서 올라 천등산으로 곧장 오르는 코스가 가장 빠르다. 고흥군 문화관광 홈페이지 정보에 따르면 코스는 셋으로 나뉜다. 

코스 1 : 풍양사동마을 - 안치재 -천등산 정상 (총거리 2.7km/소요 시간 1시간 40분)
코스 2: 금탑사 - 천등산 정상 - 안치재 -사동재 (총거리 3.8km/소요 시간 2시간 20분)
코스 3 : 송정마을 - 딸각산 - 헬기장 - 천등산 정상 (총거리 2.7km/소요 시간 1시간 40분)

 

교통

서울에서 고흥으로 가는 버스는 센트럴시티(서울)에서 오전 2회(8:00, 9:30), 오후 2회(14:40, 17:30) 총 4대가 운행한다. 약 4시간 15분 소요된다. 고흥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면 들머리인 송정마을(또는 금탑사 등)로 이동해야 한다. 대중교통 이용 시, 고흥버스터미널에서 농어촌버스를 타면 된다. 버스 배차 간격이 크고 종종 운행하지 않을 때도 있으므로 사전에 시간을 확인해야 한다. 택시를 이용하면 요금 1만4,000원 정도. 자가용을 이용하면 송정마을회관(고흥군 송정길 24)을 목적지로 설정하면 된다. 고흥읍에서 송정마을까지 약 20~30분, 광주에서는 약 2시간 소요된다. 

 

숙소

송정마을 안쪽에 ‘비파 ALL 펜션(고흥군 천등길 46-301)’이 있다. 독채와 침대방, 가족실 등이 갖춰져 있어 천등산 철쭉산행을 계획하고 있는 단체 산행객이 머물기에 좋다. 

남당리 바다 앞에 있는 풍남모텔(고흥군 천마로 1390-13)은 남파랑길을 걷는 이들이 하루씩 묵어가는 곳으로 소문났다. 시설이 깔끔하고, 숙소 앞 바다 조망이 좋다.

 

2 두 번째 산행코스 _ 우마장산, 우마장산 아랫마을 도화마을에서의 하룻밤

등산로 초입에서 바라본 도화마을 풍경.

 

 우중 산행을 마쳤지만 우리는 여전히 뭔가 부족했다. 멀리 고흥까지 왔는데, 이대로 돌아가기엔 아쉬웠다. 그래서 하룻밤 더 머물기로 했다. 바다와 맞닿아 있는 도화마을로 향했다. 도화마을은 산에 가려는 사람보다 평지를 걷는 이들에게 더 잘 알려져 있다. ‘남파랑길 69코스’의 종점이기 때문이다.

남파랑길은 ‘남쪽의 쪽빛 바다와 함께 걷는 길’이라는 뜻으로,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전남 해남 땅끝마을까지 남해안을 따라 총 1,470km에 걸쳐 이어진 걷기 여행길이다. 이 길은 90개 코스로 나뉜다. 고흥에 도착해 처음 만난 사람인 택시 기사가 그랬다. 

“요즘 고흥 오는 사람들 반은 남파랑길 걸으러 와요.”

가파른 구간을 치고 오르자 저 멀리 고흥 바다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만찬을 즐길 차례였다. 지역 주민들의 추천을 받아 도화면 숯불갈비 집을 찾았다. 여기서 특별한 반찬을 발견했다. 논이나 저수지에서 잡히는 작은 민물새우 토하土蝦로 담근 젓갈이다. 시원하고 깔끔한 맛이 일품이라고 했다. 갈비 한 점 위에 토하젓을 올려 입에 넣었다. 짠맛과 불맛, 그리고 적당한 감칠맛이 퍼졌다. 산행의 피로가 사르르 녹는 기분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숙소를 찾았다. 도화마을은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그래서인지 하룻밤 묵을 공간도 많지 않았다. 우리가 선택한 곳은 허름했지만, 하룻밤 묵기엔 충분했다. 하지만 이게 웬걸? 마을 중심에 있는 단란주점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가 새벽까지 끊기지 않았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노랫소리에 처음엔 ‘이게 뭐야? 너무 시끄러워’라며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듣다 보니 묘하게 정겨웠다. 밤이 깊어질수록 이 작은 마을에서 흘러나오는 흥겨운 노랫소리가 이상하게도 기분 나쁘지 않았다. 

어느덧 아침이 왔다. 창밖은 여전히 흐릿했지만, 한밤중 내내 쏟아지던 비가 잠시 숨을 골랐다. 마치 다음번 세찬 빗줄기를 준비 중인듯? 우리는 이른 아침, 부스스한 얼굴로 서둘러 배낭을 꾸렸다. 젖은 등산화를 툭툭 털어 다시 신었다. 우마장산牛馬場山으로 향했다. 들머리는 도화면사무소였다. 

우중산행의 묘미에 푹 빠진 이범호씨와 차선주씨 덕분에 산행이 더욱 즐거웠다

 

마을 길을 따라 산길로 들어섰다. 초입부터 정상 부근까지 묘소가 끝없이 이어졌다. 200m마다 하나씩, 아니 그보다 더 가까운 간격으로 묘소가 나타났다. 이쯤 되면 우마장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마을 어르신들께 차례로 인사를 올리는 기분이었다. 아침나절이라 그나마 괜찮았다. 야간산행이라도 했다면 어땠을까. 나는 잠시 상상해 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묘소를 보면서 선배의 아버지가 떠올랐다. 10여 년 전, 새벽녘에 급히 달려왔던 고흥의 어느 장례식장, 그때의 고흥은 우울했다. 선배는 발갛게 충혈된 두 눈으로 어색하게 웃으며 나를 맞이했고, 나는 밤새 그 옆을 지켰다. 다시 서울로 오기 위해 문을 나서며 마지막으로 본 선배의 얼굴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묘지와 소나무 숲 사이로 걷다

어쩌면 이 산 어딘가, 아니면 고흥의 어딘가에 선배 아버님의 묘소도 있을 것이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낡은 묘소들, 반쯤 쓰러진 비석들, 그 위로 조용히 빗물이 흐르고 있었다. 비는 계속 내리고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산을 오르는 일과 죽음을 마주하는 일에 관해 닮은 구석이 있다고 해도 될까? 산에 오르는 일이 안타깝고 슬픈 일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것이 약간은 비슷하다고 느꼈다. 능선이 혹은 산길이 한없이 이어질 것처럼 하다가 마침내 하산지에 닿는 것처럼 삶도 언젠가는 끝난다. 또 산에서 대단한 경치를 보지 못하더라도 그 산행이 의미가 없는 건 아니듯 위인전의 주인공들처럼 굉장한 삶을 겪지 않았어도 어느 누구든 그들 각자의 삶은 의미가 있다. 대충 이런 식으로 이번 산행의 아쉬움에 관해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우마장산은 조망이 없다. 나무들은 높고 빽빽했다. 끝없이 뻗은 나무들 사이를 걷는 동안 여기가 고흥반도인지, 서울 근교의 작은 숲길인지 헷갈렸다. 월각산과 천등산에서는 한 번쯤 조망을 기대할 만한 곳이 몇군데 있었는데, 우마장산은 처음부터 끝까지 까마득한 숲이었다. 비까지 내리니 한층 더 몽환적이었다.

500m 남짓한 가파른 구간이 시작되었다. 비에 젖은 흙길은 질퍽거렸다. 발을 디딜 때마다 조금씩 미끄러졌다. 바위나 돌이 거의 없었다. 월각산과 천등산을 오르는 길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결국 능선이 모두 이어지는 길인데, 완전히 다른 산 같았다. 이정표 없는 삼거리 갈림길을 지나 정상으로 향했다. 오르막길을 치고 오르자 편안한 안부가 이어졌다. 정상까지 고도가 크지 않은 길을 오르락내리락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상에 도착했다. 이곳에는 정상석도 없고 조망도 없을뿐더러 잠시 숨을 돌릴 만한 공간도 마땅치 않았다. 그곳이 우마장산 정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건 나뭇가지에 매달린 등산 리본뿐이었다. ‘고흥지맥 우마장산 344.5m 준희’라고 적어놓은 푯말이 정상이 되었다. 여기서 계속 걸어가면 천등산 철쭉공원에 이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방향을 돌려 다시 도화마을로 내려가기로 했다. 

우마장산 정상에 도착했다. 이곳에는 정상석도 조망도 없었다.

 

삼거리 갈림길에서 왼편으로 향했다. 도화마을에서 당오저수지를 사이에 두고 두 길이 나 있었다. 우리는 올라온 만큼 가파르게 내려가야 했다. 거의 미끄러지듯이 하산을 시작했다. 비에 젖은 길이 더 미끄럽게 느껴졌다. 이럴 거라면 썰매를 타고 내려가는 것이 나을 정도였다. 한두 군데 흰색 밧줄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그게 정말 도움이 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산길 끄트머리에는 가족묘가 나란히 있었다. 처음엔 묘지들이 낯설었지만 내려올 때엔 그저 길가의 풍경처럼 느껴졌다. 시종일관 이 산을 지켜보는 사람들이라 생각하니, 오히려 든든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선배의 아버지도 어디에선가 평안히 잠들어 있기를 바랐다. 그리고 선배도 늘 평안하고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가족묘를 지나자 도화면 중·고등학교의 건물이 얼핏 보였다. 학교를 바라보며 내려가니, 마을 길로 이어졌다. 저 멀리 남파랑길을 알려 주는 리본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면사무소 앞 중화전문점을 찾았다. 주인장은 이른 아침부터 분주했다. 직접 요리를 하면서 동시에 전화도 받았다. 손길이 분주했다. 우리는 젖은 옷을 말리며 묵묵히 음식을 기다렸다. 곧 하얀 국물이 가득 찬 그릇이 나왔다. 마늘과 해산물 향이 퍼졌다. 국물을 마시니 몸이 한결 따뜻해졌다. 창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마장산(344m)

전남 고흥군 도화면 가화리
산행 거리 6km  산행 시간 1시간 20분
산행 난이도 ★☆☆☆☆

 

산행길잡이

우마장산 단독 산행보다는 월각산·천등산을 지나 고흥지맥을 따라 걷는 연계 산행을 추천한다. 등산로 안내판이 많지 않지만 길을 헤맬 우려는 없다. 도화마을에서 시작해 산길을 따라 숲속을 걷다 보면 천등산 철쭉공원으로 길이 이어진다. 다만, 등산로 주변에 묘소가 많고 숲이 울창해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 있는 구간이 이따금 있다. 가급적 동행과 함께 걷는 것을 권장한다. 

 

교통

우마장산 산행 또는 남파랑길 69코스 도보여행을 위해서는 도화면사무소까지 이동해야 한다. 대중교통 이용 시, 고흥 버스터미널에서 도화면 방면 농어촌버스를 이용하거나 도화행 방면 버스를 타면 된다. 지방 특성상 버스 배차 간격이 길어서 미리 시간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자가용 이용 시, 도화면사무소(고흥군 도화면 당오길 18)를 목적지로 설정하면 된다. 고흥읍에서 약 25~30분, 광주에서는 약 2시간이 소요된다. 면사무소 주변에 주차할 수 있으며, 산행을 마친 후 마을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맛집

도화면 면사무소 앞 중화전문점 ‘대성루’(고흥군 당오천변1길 2) 백짬뽕 맛이 좋다. 마늘과 해산물이 어우러진 담백하면서도 깊은 국물 맛이 일품이다. 직접 요리를 하면서 배달까지 하는 주인장의 손맛이 남다르다. 오치교를 지나 ‘달맞이숯불갈비’(고흥군 천마로 2265)의 갈비도 맛이 좋다. 네이버 평점이 무려 4.82다. 갈비와 함께 토하젓을 곁들여 먹을 수 있다. 

고흥 특산물인 유자도 빼놓을 수 없다. 식후에는 고흥 유자로 만든 차나 디저트를 맛보는 것을 추천한다. 대체로 모든 카페에 유자와 모과 등으로 만든 시그니처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오늘의 날씨

* 오늘 하루도 즐겁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