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암괴석과 다도해 풍경 으뜸, 팔영산 선녀봉 10km 종주

8봉 적취봉에서 바라본 7봉 칠성봉, 멀리 여자만이 보인다.
고흥 팔영산은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해 있다. 우리나라에서 흔치않게 산지가 해상국립공원에 포함된 경우다. 8개 지구로 나뉘어 있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는 400여 개 섬과 여러 산들이 있다. 그중 팔영산八影山이 가장 높다. 팔영산은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산봉우리에 여덟 폭 병풍을 펼쳐 놓은 모습이다. 다도해를 지키는 수문장처럼 봉우리마다 당당한 기세다. 허리를 바짝 숙이고 손발을 모두 사용해야만 겨우 길을 열어 준다. 우리나라에서 10대 악산에 꼽힌다. 땅보다 바위를 밟는 곳이 많은 골산이다.
팔영산은 1998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뒤 2011년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편입되었다. 고려시대에는 팔전산八顚山, 조선 후기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는 팔령산八靈山으로 표기되었는데 언제부턴가 팔영산八影山으로 바뀌었다. 산 아래에는 구례 화엄사, 순천 송광사, 해남 대흥사와 어깨를 견주던 호남의 4대 사찰 천년고찰 능가사楞伽寺가 있다. 신라 눌지왕 3년(419년) 아도화상이 창건한 사찰이다. 한때 40여 개의 암자를 거느린 대찰답게 보물 3점이 있다. 18세기 중엽에 중건된 대웅전, 17세기 대표적인 범종으로 평가받는 동종, 1666년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목조사천왕상이다.

신선봉으로 가는 초입은 ‘강산愛’ 펜션에서 시작한다.
팔영산은 크게 10개 봉우리로 이뤄져 있다. 1봉 유영봉(491m), 2봉 성주봉(538m), 3봉 생황봉(564m), 4봉 사자봉(578m), 5봉 오로봉(579m), 6봉 두류봉(596m), 7봉 칠성봉(598m), 8봉 적취봉(591m) 그리고 정상인 깃대봉(609m)까지 기다란 포물선을 이룬다. 선녀봉仙女峰(518m)은 북동 능선에 홀로 떨어져 있다. 선녀봉은 마치 8명의 호위무사를 거느린 여왕벌같이 위엄 있는 모습이다. 팽팽한 활시위처럼 놓인 9개 봉우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리다.
능가사 만경암은 고흥 항일운동의 중심지
예전에는 1봉, 2봉 등 숫자로 봉우리를 불렀지만, <팔영산 만경암 중수기>에서 발췌한 내용을 참고해 숫자와 이름을 함께 표기한다.

선녀봉으로 가는 암릉지대, 선녀를 만나려면 한없이 낮아져야 한다.
<팔영산 만경암 중수기>는 1903년, 고흥 출신 문사 신창모가 작성한 기문이다. 팔영산 여덟 개 봉우리의 아름다움을 담았다. 만경암萬景庵은 능가사 흔들바위 위쪽에 있던 암자다. 1909년 만경암을 근거지로 고흥의 중요 항일 전투가 발생한 곳이다. 102명의 의병과 일본 토벌대의 전투에서 16명의 의병이 장렬하게 전사했다. 현재는 축대만 남아 있다.
일반적으로 능가사에서 출발해 1~8봉을 거쳐 원점회귀하는 코스를 많이 택한다. 8개 봉우리를 넘으며 암벽을 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나마 데크계단과 쇠발판, 쇠고리 등 보조물이 많이 보강되었기에 안전한 산행이 가능하다. 하지만, 선녀봉에서 남포마을로 하산하는 종주 코스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팔영산 능선 전체를 아우르는 최장 코스로 아찔한 암릉지대를 넘어야 하는 스릴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국립공원공단에서 제시하는 ‘탐방로 구간별 난이도’에 따르면 곡강에서 선녀봉~유영봉까지 2.7km는 ‘어려움advanced’ 으로 적혀 있다. 물론 난이도는 거리, 경사도, 노면의 상태 암릉, 암반의 유무, 개인의 체력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선녀봉 들머리는 곡강마을 표지석에서 서쪽으로 0.5km 거리에 있다. 대형주차장과 깨끗한 화장실이 있다. ‘강산애 펜션’을 끼고 올라간다. 암봉들이 앞으로 쏟아질 듯한 위압감이 느껴진다. 급경사 지대라는 것이다. 농로를 벗어나면 오른쪽 이정표에서부터 본격적인 숲길이다. 선녀봉까지 1.6km, 원래라면 1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지만 고도차가 커서 시간이 더 소요된다. 이정표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강산폭포는 10m 높이의 수직 협곡이다. 평소에는 석벽이 촉촉이 젖어 있는 수준이다. 30분 정도 더 올라서면 조망바위(292봉)가 나온다. 바위에 올라서면 탁 트인 조망을 볼 수 있다. 여자만 일대의 섬들은 바둑돌을 무수히 깔아 놓은 듯 다도해임을 실감나게 한다.

강산폭포는 실낱같은 물줄기만 흐른다. 석벽은 촉촉이 젖어 있는 수준.
선녀를 꼭 붙들어야만 오를 수 있는 길
암릉지대에 올라서면 시야를 가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암릉과 바다가 교차하는 환상적인 풍경의 연속이다. 불끈불끈한 판상형 바위 좌우로 수직 낭떠러지다. 선녀 1봉을 지나면, 거대한 군함 같은 암봉이 길을 막고 있다. 선녀 2봉이다. 깎아지른 절벽은 주름이 깊게 팬 호두의 표면처럼 거칠지만 전체적으로는 도도하게 홀로 서 있는 미인의 자태가 분명하다. 과거 선녀봉은 신선들이 바둑을 두는 곳 같다고 해서 신선대로 불렸다. 도저히 올라가는 길이 없을 듯하지만 겨우 한 사람, 철제 난간에 의지해서 오를 수 있다. 발아래는 아찔한 절벽이다.
‘선녀봉을 오지 않으면 팔영산의 절반만 봤다’는 말이 있다. 정상에 올라서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공룡의 등처럼 보이는 팔봉을 비롯해 남쪽으로 나로도 봉래산, 동쪽으로 돌산도 금오산, 북쪽으로 조계산까지 화려하다. 눈길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선녀봉 정상 이후부터 2봉 성주봉 갈림길까지 1.2km는 지나온 길에 비하면 오솔길이다. 1봉 유영봉에서 시작해 8봉 적취봉까지 모두 여덟 봉우리를 오르는 데 1시간 30분 정도면 충분하다. 봉우리마다 난이도가 다르지만 6봉 두류봉이 가장 고도감이 높다. 8봉 적취봉 표지석은 앞면과 뒷면에 모두 글씨가 새겨져 있다. 풍광이 워낙 좋아 어느 쪽에서 사진을 찍어도 작품이다.

남포미술관으로 내려가는 소사나무 군락지.
깃대봉 정상은 예전에 봉수대가 있던 곳으로 날씨가 좋은 날은 멀리 제주도까지 보인다. 정상 부근의 방치된 통신시설 2곳이 미관을 해치고 있어 안타깝다. 바른등재까지 이어지는 하산길에는 가슴이 후련해지는 바다 풍경이 펼쳐진다. 바른등재는 평평한 암반지대다. 수십 명이 앉아도 될 만큼 넓다. 정면으로 포두면 일대 간척지와 마복산, 천등산이 보인다. 하산 지점에 있는 남포미술관은 폐교된 학교 건물을 리모델링해 개관한 전남 제1호 사립미술관이다. 이곳에서는 지난해 12월, 천재 화가 천경자 탄생 100주년 연계 전시가 있었다. 천경자 화백은 팔영산 자락 아래 성주마을에서 팔봉을 바라보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산행길잡이
▲곡강마을-강산폭포-암릉지대-선녀봉-유영봉(1봉)-성주봉(2봉)-생황봉(3봉)-사자봉(4봉)-오로봉(5봉)-두류봉(6봉)-칠성봉(7봉)-적취봉(8봉)-깃대봉-바른등재-남포미술관(9,6km 5시간)
※내비게이션에 ‘강산애 펜션’ 입력하면 선녀봉 들머리다.
※차량 회수를 위해 남포미술관에서 곡강마을까지 6km, 도보로 1시간 30분 소요
▲능가사-흔들바위-유영봉(1봉)-성주봉(2봉)-생황봉(3봉)-사자봉(4봉)-오로봉(5봉)-두류봉(6봉)-칠성봉(7봉)-적취봉(8봉)-깃대봉-적취봉-탑재-능가사(8.5km 4시간)

교통(지역번호 061)
서울센트럴시티 터미널에서 고흥버스터미널까지 하루 5회(08:00, 09:30, 15:30, 16:30, 17:30) 운행하며 4시간 10분 소요, 고흥버스터미널에서 고흥여객(834-3641) 31번 농어촌버스가 능가사를 거쳐 곡강마을까지 간다. 55분 소요.
맛집(지역번호 061)
과역면은 벌교와 고흥을 잇는 교통 요지로 ‘삼겹살 백반 거리’가 있다. 메뉴는 오직 삼겹살 백반이다. 냉동삼겹살이 기본으로 나오며, 밑반찬은 15가지 이상 나온다. 1인분 1만2,000원,
50년 자리를 지킨 동방기사식당(832-9445)을 비롯해 유성기사식당(834-7113), 과역기사님식당(834-3364), 보성식당(833-9381) 등 6곳이 영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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