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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겨울 월출산 특집] 1,000년 된 ‘새 길’ 그도 이 길을 걸었을까

by 白馬 2025. 2. 22.

 

새 탐방로 ‘하늘 아래 첫 부처길’~구정봉~천황봉 잇는 10km 산행

 

 

*소설 형식을 띤 산행기임을 밝혀 둡니다. 출연자는 박건영(블랙야크 성삼재매장 점장)·박수진(교육 공무직)씨입니다. 

수진과 건영은 인적 없는 능선을 걸었다. 대화는 거의 없었지만 가깝게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구정봉에서 본 향로봉과 기암능선.

 

투명한 파도가 왔다

정적이 살결을 휘감으면, 고요해졌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밝은 숲을 지나면, 명상에 빠진 동굴 속 수도승이 되었다. 바쁘게 일하다가도 묵음 처리되는 순간이 있다. 시속 100km로 달리던 차가 관성의 법칙을 뛰어넘어 딱 멈춘 것처럼, 문득 찾아오는 정적. 띄엄띄엄 찾아오는, 공간 이동 같은 고요가 좋았다. 

의사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무의식적인 보호기제가 작동한 것이라며 휴식을 권했다. 내 생각은 달랐다. 나를 부르는 고요의 발원지를 찾아 나섰다. 남쪽으로 갔다. 폭설경보와 한파주의보가 겹친 날, 고속도로는 한가했다. 아니, 눈발로 붐볐다. 

 

여자 혼자 가는 길이 덜컥 겁이 났다. 눈이 많이 오면 성삼재 가는 찻길이 통제되어 일을 쉰다던, 건영에게 연락했다. 그는 월출산을 권했다. 대학산악부 시절 자주 갔던 산인데, 안 가본 산길이 있다고 했다. 몇 가지 질문이 떠오르는 걸 삼켰다. 고요가 부르는 것일 터.

영암읍에 들어서자 산이 지배하는 세상이 있었다. 들판에 솟은 오랜 전설이 있어, 늙수그레한 마을이 가라앉지 않게 꼿꼿이 치켜세우고 있었다. 이토록 강인하고 매혹적인 실루엣이라니. 오묘한 추임새로 솟구친 산은 거대한 상징이었다. 고대로부터 이어온 삶의 온도를 높이는 불꽃같았다. 이해하기 어려웠던 조각이 맞춰지고 있었다.

천황봉을 지나 천황주차장으로 내려서는 길에 본 사자봉과 구름다리. 바위산과 눈이 섞인 풍경은 놀라울 정도로 수려했다.

 

주차장엔 건영의 차만 덩그러니 있었다. 다운재킷 후드를 푹 뒤집어쓰고, ‘하늘 아래 첫 부처길’ 안내판을 보고 있었다. 그는 담배 연기마냥 입김을 내뿜으며, “새 길이자, 옛길”이라 인사를 대신했다. 재작년 가을에 새로 열린 산길이지만, 1,000년 전부터 있던 길이라 엄밀히 따지면 옛길이라는 것. 

 

하늘 아래 첫 부처길

아이젠과 물을 가져왔는지 물어보고선, 핫팩 하나를 주머니에 넣어주고 산으로 향했다. 3년 만에 본 사이치곤 담백한 인사였지만, 그런 묵묵함이 더 편했다. 국보로 지정된 마애여래좌상과 보물로 지정된 삼층석탑이 있다고 했다. 

큰골을 따라 이어진 ‘하늘 아래 첫 부처길’. 국보인 마애여래좌상으로 이어진 코스라 국립공원에서 그렇게 이름 붙였다. 소박하고 긴 계곡이라 마주치는 사람이 없었다.

 

해발 600m대에 불상이 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국보라 하여 ‘하늘 아래 첫 부처길’이라 일러 주었다.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호기심을 끌어올리기에 충분했다. 어쩌면 내 고요의 근원일 수도 있다는 예감이 들었지만, 사소한 것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았다. 

삼층석탑 부근을 지나는 수진과 건영. 멀리 마애여래좌상이 보인다.

 

새 등산로다운 분위기는 없다. 평범한 시골 마을길. 폭설이 지나간 다음날, 하늘은 피카소가 붓질한 파랑이었다. 펑펑 울고 나서 후련해진 듯 평온했다. 평일인데다 외딴 코스인 탓에 아무도 없음이 자연스러웠다. 

임도를 오르자 겨울 미녀의 출현이다. 마을 상수원인 저수지는 차갑고 청아했다. 깨끗한 물결에 쏟아지는 아침 햇살은 평범하지만, 넋 놓고 보노라면 맺힌 슬픔이 모락모락 증발할 것 같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다는 국보. 웅장한 마애여래좌상은 공기를 아늑하게 하는 힘이 있는 것만 같다.

 

“뽀시락 뽀시락” 귀여운 소리

등산객이 몰리는 천황사나 경포대보다 저수지 코스가 마음에 들었다. 산 좋아하는 이도 와본 사람이 극소수일 것 같은, 흔히 “거긴 볼 것 없고 교통 불편해”라고 할 만한 곳이었다. 덕분에 텅 빈 도화지에 걸음을 새기며 걸을 수 있었다. “뽀시락, 뽀시락” 눈 밟는 소리가 귀여워서 절로 미소 지어졌다. 흰 옷 입은 조릿대숲으로 들자 세상이 고요하다. 

어수룩하고 얼빠진 사내의 뒷모습은 측은하고, 아프다. 그가 살아내느라 느꼈을 숱한 감정이 뒷모습에 서려, 와락 감정이 북받치는 걸 꾹꾹 누르며 걸었다. 이 모질지 못한 사내야, 그리 허겁지겁 떠나서 온 곳이 결국 산이었니. 할 말 가득한데 가파른 산길이 대신 삼켜 주었다. 말해도 소용없다는 걸 산은 알고 있었다.

구정봉에서 바람재로 이어진 능선을 걷는 두 사람. 이름처럼 바람이 심한 곳이라 키 큰 나무가 많지 않다.

 

내게 와서 부서지는 고요

산이 내게 걸어오고 있었다. 격한 감정의 풍랑 지나 말하지 않아도 다 안다는 듯, 헐떡이는 폐를 지나 깊은 어딘가를 어루만지는 산. 누구에게도 닿은 적 없는 내 속의 목소리들, 가만가만 쓰다듬는 고즈넉한 산길. 고요의 물결이 시작되는 곳은, 달이 뜨는 산 언저리였나. 알 수 없는 정적의 신호가 투명한 파도가 되어 밀려왔다. 

주능선의 남근바위를 지난다. 온 몸을 다 쓰는 격한 산행이라 말이 없어도 어색하지 않았다.

 

내게 와서 부서지는 고요. 설탕을 뿌려놓은 흰 길은 산이 허락한 신비로운 의식 같아서, 걸음이 새겨질 적마다 마음이 말랑말랑해졌다. 절은 없고 터만 남은 용암사지, 삼층석탑 곁에 서자 1,000년 전 수도승이 보았을 능선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나의 사리가 나오기 위해선 숱한 깨달음이 쌓여야 한다는데, 사리 32점이 나온 석탑 앞에 하나의 깨달음도 얻지 못한 이가 감히 서있다. 

바람재에서 천황봉으로 이어진 계단길. 잡념이 사라지고 산에만 몰두하게 된다.

 

아늑함이 퍼지는 1,000년 국보 

한 굽이 올라서자, 햇살을 막는 큰 바위.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다는 국보, 마애여래좌상이다. 10m 벽에 새겨진 거대한 부처는 공기를 아늑하게 하는 힘이 있어, 아궁이 앞에 앉은 것처럼 진중함이 퍼져 나온다. 

1,000년 불상의 부름이었을까. 고요한 뜰 안에 앉은 것처럼 아늑하다. 불교에서 말하는 궁극의 경지, 해탈에 조금도 가까워지지 않았으나 깜빡이를 켜지 않고 침범해 추월하는 차량이 있어도, 욕하지 않을 것만 같다. 

산길 끝에서 닿은 벼랑에 삼층석탑이 있다. 볕이 잘 드는 벼랑은 천혜의 쉼터다. 물을 마시는데 멀리 부처가 보인다. 압도적인 크기의 불상이었는데, 멀리서 보니 작은 바위 한 점이다. 내가 머무는 곳에 따라 모든 것은 달라지게 마련인 것을. 1,000년 전 사람들은 이 높은 곳에 어떤 마음으로, 이렇게 세심한 설계를 한 걸까. 

고요한 골짜기인 큰골을 지나 용암사지 삼층석탑에 닿은 수진과 건영. 보물로 지정된 탑으로 사리 32점이 나왔다. 10분을 더 가면 전망 좋은 곳에 석탑이 하나 더 있다.

 

아홉 마리 용이 풀어놓은 경치

동양화 속을 걷는다. 드문드문 설산을 이룬 바위산이 걸작이다. 세상 시름 저 바위에 실려 훨훨 날아가고, 감탄만 남아 더디게 산을 간다. 아홉 마리 용이 살았다는 구정봉이 걸출하게 서서 걸음을 이끈다. 정상은 천황봉이지만, 경치의 예술성은 첫 손가락에 꼽히는 구정봉이다. 

험준해 보이는 알바위 구정봉을 오르는 비밀은, 숨은 바위틈에 있었다. 이곳을 오르면 정상으로 이어진다. 

 

도저히 오를 수 없을 것 같은 험악한 통바위에 다가간다. 비탈진 바윗길이 두려운데 성큼성큼 걷는 건영의 걸음이 너무 편안해 보여 오기가 생겼다. 직벽이다. “여긴 못 가”라는 말이 차오르는 찰나, 좁은 바위틈으로 쑥 들어간다. 동굴 같은 통로가 있다. 세속의 구정물을 씻어 내는 과정이었을까. 동굴을 지나자 바위 뒤로 어렵지 않게 오르는 길이 있다. 

통바위에는 정말 욕조처럼 사람이 들어갈 만한 구멍이 있는데, 얼음이 들어차 있다. 아홉 마리 용이 풀어놓은 경치다. 타오르는 바위 불꽃이 사방으로 뻗었고, 평야와 바다까지 격정적으로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살아내고 있다. 

이곳에 올라 도술을 부리며 오만과 만용을 일삼아 옥황상제를 분노케 하여 아홉 번 벼락을 맞아 죽었다는 동차진의 전설이 사실처럼 느껴지는, 오묘한 알바위 꼭대기다. 마애여래좌상과 구정봉만으로 한 달치 즐거움을 곳간에 쌓아둔 것처럼 든든하다. 건영은 “이렇게 좋을 줄 알았으면, 수진이 너랑 안 왔을 것”이라며 분위기 잡치는 농담을 한다. 티격태격하기엔 너무 높고 춥다. 

아홉 개의 우물에 아홉 마리 용이 살았다는 구정봉 정상. 얼어붙은 구멍이 그 중 하나이다. 

 

하남석, ‘밤에 떠난 여인’

바람재를 지나 천황봉 가는 길. 바위 사이로 난 산길을 지나는데 그가 노래를 흥얼거린다.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데 알 수 없는 멜로디, “노래 제목이 뭐야?”라고 묻자 “알려줘도 모를 거야”라고 답한다. 30분을 걷더니 묻지도 않았는데, 계단 끝 쉼터에서 “하남석, ‘밤에 떠난 여인’”이라고 한다. 옛날 노래 좋아했냐고 묻자,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 “우리 얘기 같아서…”라며 산을 오른다. 

통일신라시대부터 하늘에 제사를 올렸다는 천황봉 안내판 글귀가 어울린다. 파노라마로 펼쳐진 흰 산과 검은 산, 들판의 향연. 경쾌하고 거대하게 다가오는 영암과 강진의 산과 들, 작은 산인데 오밀조밀한 매력이 도자기 같다. 한눈에 들어서 더 완벽한 작품, 겨울 월출산을 서서히 마신다. 차갑고, 아름다운 대기를 마신다. 

 

사랑한 적 있다

천황봉 정상에 오른 수진과 건영. 두 사람 뒤로 경쾌하고 시원한 경치가 펼쳐진다.

 

도망치듯 고도를 급하게 내리는 하산길. 오래 걷고 싶었으나, 몸은 그만 걷기를 원한다. 눈길에서 미끄러지지 않으려 힘을 준 탓에 피로감이 엄습한다. 바람폭포를 지나 바람골 완만한 곳에 이르러 “좋은 산행이었다”고 말하고, 그에게 “가장 좋아하는 산이냐”고 물었다. 

그는 구정봉 위에 서 있으면, 몸이 사라지는 것 같을 때가 있다고 했다. 마치 산과 하나가 된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고 했다. 사랑한 적 있었고, 이젠 옛 일이 되었다고 했다.  


어수룩하고 얼빠진 사내의 뒷모습은 측은하고, 아프다. 그가 살아내느라 느꼈을 숱한 감정이 뒷모습에 서려, 와락 감정이 북받치는 걸 꾹꾹 누르며 걸었다. 이 모질지 못한 사내야, 그리 허겁지겁 떠나서 

온 곳이 결국 산이었니. 할 말 가득한데 가파른 산길이 대신 삼켜 주었다. 말해도 소용 없다는 걸 산은 알고 있었다.


 

산행길잡이

국립공원이라 이정표가 잘되어 있고, 산길이 선명해 길찾기는 쉽다. 계단이 많고 가파른 산길이 많아 거리에 비해 체력 소모가 큰 편이다. 가고자 하는 코스를 이해하면 길찾기가 쉽지만, 너무 쉽게 생각하면 갈림길에서 엉뚱한 곳으로 빠질 수도 있다. 향로봉 갈림길과 바람재, 정상에서 바람골 갈림길을 주의해야 한다. 사자봉에서 천황봉으로 이어진 코스는 결빙으로 인해 현재 산행이 통제되었다. 

 

대동저수지가 하류와 상류에 각각 있다. 하류 저수지 부근에 국립공원 주차장과 화장실이 있다. 주차장에서 임도 따라 1.2km를 걸으면 상류 저수지에 닿는데, 여기서 데크길을 비롯한 산길이 시작된다. 임도 중간에는 철문이 있고 주차공간이 없으므로 주차장에 차를 세워야 한다.

 

용암사지에 닿으면 오른편 계단 위에 삼층석탑이 있다. 경치가 트인 곳이라 오를 만하다. 마애여래좌상을 지나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여기서 두 번째 삼층석탑으로 가야 한다. 벼랑 끝에 또 다른 삼층석탑이 있고, 여기서 본 마애여래좌상이 신비롭다. 

구정봉 정상을 생략하고 곧장 천황봉으로 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팥소 없는 찐빵을 먹는 것과 같다. 구정봉은 바로 앞에서 보더라도 험악해 보여서 꺼려지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바위틈 사이로 쉽게 오르는 뒷길이 있다. 다만 통바위 정상은 별도의 난간이 없는 고도감 센 둥근 암봉이므로, 기념사진 촬영 시 주의해야 한다. 

 

구정봉에서 바람재로 가는 길에 볼거리인 베틀굴이 있다. 들렀다가 오는 것이 좋다. 천황봉까지는 험준한 바위능선이지만 여간한 곳은 데크계단이 있어, 체력만 충분하다면 어렵지 않다. 정상에서 천황주차장으로 내려서는 길은 짧지만 가파른 급경사이므로 미끄러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산행을 역방향으로 하는 것도 권할 만하다. 마애여래좌상이 서해 바다를 향하고 있어, 해가 질 때 더 신비롭다. 

원점회귀를 해야 한다면 경포대 코스가 효율적이다. 정상을 올랐다가 구정봉과 마애여래좌상을 보고 다시 되돌아와서 바람재에서 경포대로 하산하는 방법이 있다. 

 

교통(지역번호 061)

대동제는 영암읍내에서 3km로 가깝다. 영암터미널에서 군서면 방면으로 가는 버스가 많다. 2km를 버스로 5~6분 타고 가서 녹암에서 하차한다. 1km를 임도 따라 오르면 등산안내판이 있는 주차장이다. 터미널에서 대동저수지까지 3km이므로 시간이 넉넉하다면 걸어서 오는 것도 어렵지 않다. 천황주차장에서 영암읍내 터미널까지 3km이지만 버스가 하루 4회만 운행한다. 콜택시를 타는 것이 효율적이다. 문의 영암콜택시(473-2010, 473-2949, 471-1995, 473-8001). 

 

맛집

 

월출산 주변의 별미로 소문난 식당거리와 맛집을 소개한다

*소개된 식당은 식대를 내고 식사했으며, 별도의 지원을 받지 않았습니다.

 

설성식당 연탄불고기백반

 

경포대탐방지원센터에서 14km, 천황탐방지원센터에서 20km 떨어져 있다. 월출산에서 멀지 않지만 가깝지도 않다. 하지만 한 상 가득 반찬이 실려 나오는 걸 보면, 대부분 이구동성으로 “잘 왔다”고 말한다. 강진군 병영면의 병영 돼지불고기는 역사가 있는 먹거리다.

 

조선시대 강진 현감의 친 조카가 전라병영성 병마절도사로 부임했다. 현감은 조카이지만 지위가 훨씬 높은 병마절도사의 부임을 축하하기 위해 인사를 갔고, 병마절도사는 현감을 웃어른으로 모시며 특별히 양념이 잘된 돼지고기를 내놓으며 귀한 대접을 했다고 한다. 이후 병영에서는 귀한 손님이 오면 돼지불고기를 내오는 전통이 생겼다. 병영성로 일원에는 병영 돼지불고기 거리가 조성되어 있고, 병영 5일장이 열리는 날이면 불고기 파티인 ‘불금불파’ 행사가 열린다.

 

병영불고기 거리에서 설성식당이 가장 저렴(2인상 2만6,000원)하고, 시골스러운 전라도 밥상이다. 2인상이 기본이며, 다른 식당은 2인상 기준 3만~4만 원선이다. 식당에 들어서면 몇 명인지 물어보고, 몇 호실로 가라고 안내한다. 다른 식당에 비하면 당황스러울 수 있는 첫인상이다. 방에 들어가면 방석만 놓여 있고, 식탁이 없다. 곧이어 ‘상다리가 부러진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22가지 반찬, 불고기, 국, 조기, 홍어회가 한 상 가득 차려진 식탁째 들고 들어온다. 하산 후 배고픈데 멀리 왔다고 투덜거리던 일행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는 건 지금부터다. 음식은 짜지 않고, 간이 잘 맞다. 반찬을 더 달라고 하면 더 주는 인심까지, 하산 후 불고기에 쌈 싸먹으면 늦은 귀가에도 만족감이 가시지 않는다. 

주소: 전남 강진군 병영면 병영성로 92

주차: 식당 맞은편 식당 전용 주차장. 

영업 시간: 11:00~19:00(15:00~17:00 브레이크 타임)

전화: 061-433-1282

 

청하식당 낙지볶음

 

과거 영암은 바다를 끼고 있었다. 영암만과 도포만은 갯벌에서 나는 낙지가 유명했다. 적당한 크기와 부드러운 식감으로 인기를 얻은 것. 현대에 들어 영산강 하굿둑이 생기고 매립되면서 갯벌이 농경지가 되었다. 낙지의 명성은 바랬지만 지금도 낙지거리가 곳곳에 남아 있다. 

 

영암의 여간한 식당은 낙지 요리를 한다. 낙지탕탕이, 낙지호롱이, 낙지볶음, 연포탕 등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학산면 독천마을 낙지거리의 청하식당은 낙지볶음이 유명하다. 평일 점심때가 지난 시간, 손님은 없으나 밝고 깨끗한 실내가 좋은 첫 인상을 주었다. 주말이면 꽤 손님이 많을 것 같았다. 음식이 조리되어 나오는 과정, 식당 시스템이 효율적으로 잡혀 있다고나 할까. 반사적으로 움직이는 아주머니들은 곧장 13가지 반찬을 내어왔고, 비벼 먹을 수 있는 큰 대접에는 김가루가 뿌려져 있었다. 

 

단순히 음식을 팔고 끝나는 게 아니라, 낙지볶음을 어떻게 먹어야 가장 맛있는지 끌어주는 듯했다. 혹은 낙지볶음을 맛있게 먹는 노하우가 쌓여, 제대로 상품화된 듯했다. 중中(4만 원)과 대大(5만 원) 크기만 있어 2명인 우리는 선택의 여지없이 중中자를 주문했다. 공기밥은 별도 주문 후 돈을 내야 했기에 야박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낙지볶음을 대접에 넣고 반찬으로 나온 콩나물과 반찬 몇 가지를 곁들여 밥이 빨갛게 되도록 비벼 먹었는데, 마음이 풀렸다.

불향이 먼저 올라오고, 매운맛은 강하지 않은데, 말미에 슬그머니 찾아온다. 매운 음식을 즐기는 사람 입장에선 약간 싱겁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평균적인 입맛에는 무난한 맵기다. 특히 낙지 특유의 탱탱한 식감이 살아 있어서 재료의 신선함이 느껴졌다. 비벼 먹기 좋은 크기로 낙지를 잘라 놓아 좋았다. 사소한 것들에 배려가 있다고 할까. 손님은 우리뿐이었지만, 맛은 섭섭하지 않았다.

주소: 전남 영암군 학산면 독천로 170-1

주차: 식당 앞 거리 주차 구역

영업시간: 10:30~17:00(재료 소진 시 일찍 종료)

전화: 061-473-6993

 

중원회관 짱뚱어탕

영암군청 앞에 있어 찾기 어렵지 않았다. 군청에 볼일 보러 온 사람이나 동네 주민들이 공용으로 사용하는 노상 주차장이 좁지 않은데, 빽빽하여 두 바퀴를 돌고 차를 세울 수 있었다. 조명은 조금 어두웠고, 넓이에 비해 테이블 수가 적은 듯했다. 평일이라지만 점심 식객이 몰릴 시간인데, 군청 앞 식당에 손님이 한 테이블밖에 없었다. 

 

나름 유명한 식당답게 정갈하게 밑반찬이 나왔다. 6가지 반찬이면 전라도 밥상으로는 소박한 편이었으나, 광주의 지인이 추천한 곳이라 내공이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짱뚱어는 독특하게 생긴 망둑어과 물고기로 갯벌을 기어 다니는 것이 특징이다. 서해와 남해에선 예부터 주요 식재료였으며, 튀김이나 구이로도 먹고, 탕으로 많이 먹는다. 

 

장뚱어탕(1만2,000원)은 추어탕과 비슷한 외관이지만, 재료가 추어보다 귀해 추어탕보다 한 수 위급 음식으로 인식된다. 생김새가 독특한 짱뚱어가 통째 들어 있어서 비위가 상하거나, 비린내가 나거나, 뼈가 씹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기우였다. 잡냄새 없이, 식감이 부드럽고, 고소했다. 살점이 갈려 있어 어린이나 노인이 먹기에도 이질감이 없었다. 된장과 시래기를 넣어 푹 끓인 풍부한 맛이 가벼운 한 끼 보양식으로 어울렸다. 

 

식사 후 계산한 뒤에 맛의 비결이 무엇인지 물었다. 원래 50년 전통의 식당이며 솜씨 좋은 할머니가 운영하던 것을 지금의 사장이 20년 전 인수해 짱뚱어탕 조리법까지 전수 받았다고 한다. 

육수를 따로 내어 짱뚱어를 넣어 끓여내는데, 묵은시래기를 비롯해 토란대와 찹쌀가루 등 다양한 재료를 넣고 다시 끓여낸다고 한다. 일손을 돕는 남편은 국립공원 직원으로 30년을 일하고 퇴직해 “월간산에서 왔다”고 하니 더 반가워했다. 사장은 식당을 들어설 때부터 나갈 때까지 냉랭하기 그지없어 음식 맛으로 승부를 하는 성향임을 염두에 두고 방문하면 거부감 없이 맛을 즐길 수 있겠다. 

주소: 전남 영암군 영암읍 군청로 2-13 

주차: 군청 정문 앞 공영주차장

영업 시간: 10:00~21:00

전화: 061-473-6700 

오늘의 날씨

* 오늘 하루도 즐겁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