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좌읍 송당리 대표오름, 높은오름

당당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높은오름. 이름처럼 일대에서 가장 높다.
높은오름(405.3m)은 이름에서부터 맹주다운 기운을 대놓고 풍긴다. 제주에서 오름이 몰려 있는 구좌읍 송당리에서도 가장 높아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이름처럼 과연 우뚝한 자태를 가졌다. 전체가 삼각뿔 모양이어서 조금 떨어져서 보면 뭍에서 흔히 만나는 탄탄한 산의 느낌을 준다. 그러나 정상의 동그랗고 아담한 굼부리가 이곳이 화산체임을 알려 준다.
제주 동부의 대표 오름 전망대
일대에서 유일하게 고도 400m가 넘고, 오름 자체의 높이도 175m로 높은 축에 드는 높은오름은 송당리의 숱한 오름 중에서도 도드라진다. 단단하고 거대한 뿔처럼 솟았기에 사면이 가파른 편이며, 가까운 세화리의 다랑쉬오름과 함께 제주 오름의 원형을 잘 보여 주는 곳으로 꼽힌다. 30년쯤 전만 하더라도 오름 전체가 온통 풀밭이었다는데, 지금은 정상부를 제외하고는 소나무로 빼곡히 덮였다.
작정하고 오름을 찾아다니는 이가 아닌 다음에야 뭍에서 온 여행자가 이 오름을 오를 일은 거의 없다. 다시 말해 인기가 없는 곳이다. 일단 ‘높은’이라는 이름 때문에 여행목록에서 제외됐을 가능성이 크다. 주변에 낮으면서도 멋진 오름이 수두룩하니 굳이 고생하며 이곳을 오를 이유를 찾지 못했을 테고, 우뚝 솟은 외형도 한몫했을 것이다. 또 그리 외진 곳이 아닌 데도 승용차가 없다면 찾아가기가 애매하다. 가까운 버스 정류장에서 오름 들머리까지는 1.4km쯤의 외진 길을 걸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오름 들머리에 자리한, 한적하고 으슥한 느낌의 공동묘지도 영향을 미쳤을 듯하다. 그러니 여행자라면 걸음이 주저되는 곳이다. 참 안타까운 탐방 여건이다.

높은오름에서 본 한라산과 제주 동부의 오름들. 오름에 올라야만 만날 수 있는 풍광이다.
사실 제주의 오름 중 높은오름만큼 장쾌한 풍광을 만날 수 있는 곳도 드물다. 서쪽의 노꼬메오름과 남쪽의 군산 정도가 꼽힐까? 제주 동쪽의 숱한 오름을 높은 지점에서 굽어보는 조망의 즐거움은 무척 특별하다. 그리고 겉보기와 달리 실제로 걸어보면 탐방에 어려움이 없다.
정상엔 둘레가 500m나 되는 우묵한 원형 굼부리가 밋밋한 세 개의 봉우리에 둘러싸인 채 멋진 자태를 뽐낸다. 아찔한 깊이를 가진 다랑쉬나 산굼부리처럼 위압적이지 않고 아늑한 풀밭 느낌의 굼부리다. 능선을 따라 걸으면서 굼부리를 내려다보면 굼부리 내부가 손바닥처럼 훤히 다 보인다. 대청마루에서 앞마당을 보는 듯 가깝고 편한 느낌이다.
정상부 능선에서 사방으로 조망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바로 앞의 동검은이오름과 문석이오름이 손에 잡힐 듯 속속들이 가늠된다. 동시에 동부 오름 중 가장 당당한 모습을 보여 주는 다랑쉬오름과 송당리의 허다한 오름을 조망하기에 단연 최고의 명당이다. 동쪽 끝 멀리 깍두기 머리를 한 성산일출봉과 우도, 서쪽 멀리 한라산도 잘 보인다.

동검은이 알오름 상공에서 본 높은오름과 한라산, 그리고 제주 동부의 오름들.
탐방로는 무척 단순하다. 구좌읍공설묘지 사이로 난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따라 탐방이 시작된다. 공설묘지를 벗어나면서 계단길이 이어진다. 중간쯤에 숨 돌리며 쉬어가라고 얼마간의 평지도 나온다. 이 평평한 곳에도 무덤 몇 기가 자리를 잡았다. 여기서 정상부 능선까지는 다시 오르막 구간인데, 살짝 가파르다. 그러나 조망이 트일 때마다 가없이 펼쳐지는 제주 풍광이 아름다워서 감탄하다 보면 어느새 정상부 능선에 닿는다.

공동묘지를 벗어나며 나무계단이 시작된다. 길옆으로 모시풀이 무성하다.
아늑하고 예쁜 굼부리
능선을 만난 지점에서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왼쪽으로 꺾어지면 정상이 더욱 가깝다. 놀랍게도 감시초소 바로 뒤에 무덤 한 기가 눈길을 끈다. 어찌 이 높은 곳까지 올라와 고인을 묻었을까! 하긴 이만한 명당을 찾기도 쉽지 않을 듯하다. 높은오름 정상이 품은 제주 풍광을 이 무덤의 주인이 온통 차지하다시피 하고 있다. 부럽기까지 하던 이 무덤은 몇 해 전 파묘되어 빈 봉분만 남았다. 둥글게 두른 돌담이 소박하고 정겹던 무덤은 파헤쳐진 채 방치되어 흉물이 되고 말았다. 오름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이런 풍광은 제주도의 독특한 풍습 때문이기도 하다. 현재 법적으로는 파묘 후 봉분과 석물을 땅에 묻고 평탄 작업을 해야 하는데, 제주에서는 파 놓은 묘를 덮지 않는 것이 주변의 잡귀들이 따라오지 말고 그곳에 머물러 있도록 하는 조치라고 한다.

높은오름 굼부리는 걸어서 들어갈 수 있어서 특별하다. 굼부리 안 세상은 바깥과 차단된 별천지다.
화구벽능선을 따라 걷노라니 제주 동쪽의 거의 모든 오름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하나하나 짚어가며 걷는 재미가 비할 데가 없다. 화구벽이 높이를 낮춘 동북쪽에서 얕고 우묵한 초지대를 이룬 굼부리 안으로 들어설 수 있다. 화구 안은 철 따라 온갖 꽃이 흐드러져 천상의 화원을 방불케 한다. 높은오름은 ‘피뿌리풀’의 서식지로 유명하다. 고려 말, 몽골에서 유입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피뿌리풀은 더덕처럼 생긴 굵은 뿌리가 핏빛처럼 붉어서 이런 무서운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수십 개의 작은 꽃이 모인 꽃송이가 무척 신비롭고 예쁘다. 예전엔 높은오름 능선에서 비교적 쉽게 볼 수 있었다는데, 무분별한 남획으로 지금은 눈을 씻고 찾아도 보이지 않는 멸종위기 야생식물이 되고 말았다.

높은오름 굼부리를 걷고 있는 탐방객들. 뒤로 제주 북동부 바다 건너 완도 땅이 아스라하다.
하산은 올랐던 길을 되짚어 내려서는 길뿐이다. 공동묘지 바로 아래에 차를 댈 만한 공간이 넉넉하다. 높은오름은 이웃한 동검은이오름과 함께 탐방하면 좋다. 체력이 괜찮다면 식수와 도시락을 준비해서 백약이오름과 좌보미오름까지 둘러보면 금상첨화다.


높은오름 능선에서 본 송당리. 이곳은 귤 농사가 되지 않아 각종 묘목을 많이 심는다.
교통
내비게이션에 ‘높은오름’을 입력. 오름 표석이 서 있는 곳에서 직진 방향으로 650m 더 들어서면 공동묘지 중간의 들머리가 나온다. 제주버스터미널에서 성산항을 오가는 211번, 212번 버스가 중산간동로 상의 ‘높은오름 입구’ 정류장에 선다. 여기서 오름 들머리까지는 1.4km를 걸어야 한다.
주변 볼거리
스타벅스 송당파크R점 스타벅스가 2023년 10월에 선보인 국내 최대 규모의 리저브 전용 매장이다. 지상 1, 2층, 360평 규모로, 전체 좌석이 340개지만 늘 북적인다. ‘흑임자 품은 큐브 브레드’, ‘돌보루 마스카포네 브레드’ 등 이 매장의 특화 푸드와 음료가 인기. 제주 화산석을 중심으로 꾸민 자연친화적 공원인 ‘동쪽송당 동화마을’을 품고 들어선 터라 널따란 정원을 둘러보는 재미가 좋다. 영업시간은 09:00~22:00.

맛집
로타리식당 명성 자자한 오름이 숱하지만 딱 꼽을 맛집은 떠오르지 않는 곳이 송당리다. 허름하다는 말로도 모자랄 외관을 한 로타리식당은 점심때만 영업하는 가정식백반 전문점이다. 일대의 공사판 인부는 모두 이곳을 이용하는 듯, 피크타임엔 늘 자리가 없다. 또 조금만 늦게 가도 그날 준비한 재료가 떨어질 경우, 발길을 돌려야 한다. 한 번 먹으면 또 생각나는 곳이다.

문의 064-783-2788.
끌락(호끌락)
‘끌락다(호끌락호다)’의 어간. ‘끌락다’는 매우 작다는 뜻이다. 지역에 따라 ‘쩨끌락’, ‘쪼끌락’이라고도 한다.

★오늘의 날씨★
'등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난희의 느린 산] 차 한잔 쉼이 있는 길, 용강마을로 오세요 (0) | 2025.02.27 |
---|---|
[경상도의 숨은 명산] 저 멀리 오륙도·광안대교… 정상 밑엔 억새밭 (4) | 2025.02.24 |
[겨울 월출산 특집] 1,000년 된 ‘새 길’ 그도 이 길을 걸었을까 (5) | 2025.02.22 |
[장박하는 사람들] “집에선 학원·게임 쳇바퀴…아이가 밝아졌어요” (2) | 2025.02.21 |
[지도 위를 걷다] 험상 궂지만 ‘일급 조망’ 품은 산 (6) | 2025.0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