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초도 ‘숨결의 지구’
일본 카가와현에 나오시마라는 섬이 있다. 어업으로 먹고 살아가던 면적 8㎢에 불과한 이 작은 섬은 1917년 미쓰비시 광업이 나오시마 제련소를 설치하면서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매연과 유독가스, 폐유로 환경이 급속도로 악화됐고 1980년대 초반 제련소마저 폐업하면서 한때 8,000명 가까웠던 인구는 서서히 줄어 1980년대 초에는 400명까지 쪼그라들었다.
쇠락하던 섬에 연간 100만 명 몰려
이런 나오시마를 구한 것은 ‘예술’이었다. 카가와현은 1985년부터 ‘나오시마 프로젝트’를 밀고나갔다. 문화와 예술의 섬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지만 사람들은 특별할 것 없는 이름 없는 섬에 예술이 가당찮다며 회의적으로 바라봤다. 예산만 따먹으려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일었다. 회색빛 전망은 그러나 기적으로 꽃피었다. 버려진 빈집과 낡은 염전, 창고 등을 예술 공간으로 바꿔나갔다. ‘건축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세계적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베네세 하우스’, ‘지중미술관’ ‘이우환 미술관’ 같은 자신의 창작물 가운데 최고의 작품들을 내놨고 그 속은 클로드 모네, 쿠사마 야요이, 이우환, 제임스 터렐, 월터 드 마리아 같은 거장의 작품들이 채웠다.
작은 나오시마를 보기 위해 전 세계 사람들이 찾아온다. 섬이 아니라 섬이 가진 콘텐츠를 보기 위해 연간 수십만 명이 온다. 특히 ‘베네세 트리엔날레’기간에는 100만 명이 넘는 인파로 북적인다. 섬 인구도 4,000명으로 늘었다.
전라남도 신안군(박우량 군수)은 ‘한국의 나오시마’를 꿈꾼다. 지방 소멸 위기를 고기잡이, 농사로 막기는 역부족이라고 판단했다. 청정한 신안의 해양환경에 시너지 효과를 불러오는 것, 신안도 나오시마처럼 문화예술에서 답을 찾고 있다. 지역민들에게 문화예술을 체험할 기회를 제공하는 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문화예술을 신안의 랜드마크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섬 하나에 박물관 한 곳을 세운다는 ‘1섬 1뮤지엄 프로젝트’는 이런 배경에서 태어났다.
신안군은 현재 군내 27곳에 박물관, 미술관, 전시관 등을 만들고 추진 중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화가 고故김환기 화백의 고향 안좌면에는 ‘김환기 미술관’을 만들었다. 세계적 바둑스타 이세돌의 고향 비금도에는 ‘이세돌 바둑기념관’을, 우암 박용규 화백의 작품으로는 압해도에 ‘저녁노을미술관’을 만들었다.
세계적 설치미술가 올라퍼 엘리아슨
2024년 11월 수국과 팽나무 정원으로 유명한 도초도에 덴마크 출신 세계적 설치예술가 올라퍼 엘리아슨의 작품 ‘숨결의 지구’가 문을 열었다.
‘1섬 1뮤지엄’을 내건 신안의 미술관 가운데 세계적 작가가 참여한 작품 중 첫 번째로 도초도의 생태와 자연환경이 어우러진 ‘대지의 미술관’이다. 먼 옛날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도초도의 독특한 지형을 모티브로 택한 이 작품은 붉은색, 녹색, 청록색의 용암석 타일로 만든 직경 8m 원형 공간이다. 녹색은 대지, 붉은색은 태양, 청록색은 생명을 상징한다. 이탈리아산 용암석을 사용한 작품 내부는 정교하게 배치된 붉은색과 녹색 타일이 햇빛을 반사해 입체감을 자아낸다. 작가는 “유네스코 보존 지역으로 선정된 신안의 다도해는 무척이나 독특하고 아름답다. 세계 어디에도 이런 풍경은 없을 것이다. 신안의 뛰어난 자연환경 속에 담아낸 예술 창작물을 통해 인간은 자연과 공존하는 존재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숨결의 지구’가 의도한 콘셉트”라고 말했다.
‘숨결의 지구’는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도초도의 독특한 지형을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대지의 미술관’이라는 콘셉트를 갖고 있다. 붉은색, 녹색, 청록색의 용암성 타일로 만든 직경 8m의 원형공간이다. 녹색은 대지, 붉은색은 태양, 청록색은 생명을 상징하고 있다.
위에서 바라본 ‘숨결의 지구’의 위용.
세계적 작가들 잇달아 신안에 둥지
올라퍼 엘리아슨은 1997년부터 설치, 회화, 조각, 사진,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바탕으로 베니스 비엔날레와 영국 런던의 템즈강변 현대미술관 테이트 모던 같은 세계적인 아트 행사와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2023년에는 일본 황실로부터 프리미엄 임페리얼 상을 수상했고 유엔개발계획UNDP 굿윌 기후 행동 친선대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박우량 신안 군수는 “1섬 1미술관으로 대표되는 예술섬 프로젝트가 성공할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수없이 질문을 던지며 여기까지 왔다. ‘숨결의 지구’ 이외에도 신안에서 세계적 작가들의 작품이 연달아 대중에게 다가갈 것이다. 이번 올라퍼 엘리아슨의 작품을 통해 예술의 섬 신안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도초도 ‘숨결의 지구’는 사전 예약제로 운영하며 한 명씩 5분간 감상할 수 있다.
2024년 11월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작품 설명회. ‘숨결의 지구’를 만든 덴마크 출신 작가 올라퍼 엘리아슨(왼쪽 다섯 번째)과 박우량 신안군수(왼쪽 여섯 번째). 박 군수는 신안을 문화의 섬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1섬 1뮤지엄’ 프로젝트를 의욕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일본 나오시마에 있는 쿠사마 야요이의 ‘빨간 호박’
신안에서 가장 넓은 고란평야… 도초도는 ‘쌀부자섬’
전라남도 신안군 도초도 고란리의 고란평야는 신안군에서 가장 너른 평야다. 섬에서 가장 높은 219m 금성산 남쪽으로 산지가 형성돼 태풍을 막아주고 북쪽과 서쪽에 구릉지와 평야지대가 있다. 이런 지형적인 특성으로 섬이지만 농사가 발달했다. 고란평야에 들어서면 도초도가 섬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천석꾼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쌀값이 형편없어진 시대지만 옛날엔 쌀이 돈이었고 부의 상징이었다. 신안의 섬들 중 귀한 쌀이 가장 많이 생산되는 마을이었으니 고란리는 부촌이었다. 그래서 예전엔 고란리가 도초도의 행정 중심이었다. 지금은 옮겨갔지만 면사무소도 고란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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