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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가장 폐쇄적인 국가 코앞에 반짝이는 자본주의의 상징

by 白馬 2024. 12. 30.

크리스마스에 불 밝힌
애기봉 전망대 가보니

 

지난 18일, 애기봉평화생태공원 폐장이 다가올 무렵 트리처럼 지그재그로 연결된 탐방로에 환하게 불이 켜졌다. 21일 점등식을 앞둔 리허설이었다. 

 

지난 18일 해가 지며 어둑해지기 시작한 오후 5시. 김포시 월곶면 애기봉평화생태공원 성탄 트리에 반짝 불이 들어왔다. 탐방로 끝에 맞닿은 애기봉(愛妓峰) 전망대에는 지난달 29일 문을 연 스타벅스 간판이 빛나고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국가 코앞에 들어선 자본주의의 상징이다.

애기봉은 민간인 출입을 제한하는 군 검문소를 지나고도 한참을 달려야 나오는 비무장지대(DMZ)에 있다. 임진강 건너 북한 개풍군과 겨우 1.4km 떨어진 이곳은 육안으로 북한 민간 마을과 송악산을 조망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깝다.

 

21일 김포시는 2014년 철거된 전망대 위의 등탑을 10년 만에 복원해 크리스마스트리로 꾸며 점등하고 레이저 쇼를 개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최근 계엄령 선포 등으로 군 수뇌부의 공백이 현실화한 상황에서 북한을 자극하는 행동은 자제해 달라는 군의 요청에 따라 계획을 철회했다.

하지만 김포시는 등탑 대신 애기봉 전망대로 올라가는 800m 길을 성탄 트리를 형상화한 전등으로 꾸미고 점등식을 열기로 했다. ‘아무튼, 주말’은 21일 점등식을 앞두고 이날 열린 리허설 현장에 갔다. 지난 70년간 정치적 풍랑에 따라 조도가 밝아지기도, 어두워지기도 했던 애기봉에서 반짝이는 희망의 불빛을 미리 보고 왔다.

2012년 12월 22일 점등식이 열린 서부전선 최전방 애기봉 등탑. 이 등탑은 2014년에 기습 철거될 때 논란이 있었다. 

 

◇남북 관계에 따라 명멸

약 15km 떨어진 개성에서도 불빛이 보인다는 애기봉 등탑은 대북 심리전의 상징으로 꼽힌다. 북한이 “불빛이 단 한 점이라도 보일 경우, 그 즉시 무자비한 물리적 타격과 경고 없는 조준 격파 사격이 가해지게 될 것”이라고 위협할 정도였다.

 

애기봉에 처음 불이 켜진 것은 6·25전쟁 직후인 1954년. 한 병사가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애기봉 소나무에 전구를 단 것이 시작이었다. 1971년부터는 평소 국기 게양대로 사용하던 18m짜리 철탑이 석가탄신일과 성탄절이면 북한 땅에서도 훤히 보이는 등탑으로 변신했다.

하지만 2004년 애기봉은 빛을 잃었다. 그해 6월 제2차 남북 장성급 군사 회담을 열고, 종교탑, 전단 살포, 대북·대남 방송 등 심리전과 관련된 모든 장비와 시설물을 철거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크리스마스의 애기봉 불빛은 남북 관계의 변화에 따라 명멸했다. 북한의 천안함 폭침에 대한 대응으로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대북 제재 내용을 담은 5·24 조치를 시행하고, 연평도 포격전(11월 23일)이 벌어진 2010년, 꺼졌던 애기봉 등탑은 7년 만에 다시 불을 밝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한 2011년엔 북한 내부 정세가 불안정해져 불을 켜지 않았다. 2012년 불을 밝혔던 등탑이 다시 어두워진 것은 한반도에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 2013년이었다.

그리고 2014년 10월, 애기봉 등탑은 43년 만에 기습 철거됐다. 국방부는 “시설 노후화”를 이유로 내걸었지만 청와대와 국방부도 알지 못하는 사이 대북 심리전의 상징이 철거되며 큰 논란이 일었다.

 

수차례 시도한 등탑 복원은 올해도 요원해졌지만 크리스마스를 앞둔 애기봉 일대가 빛으로 다시 밝아진 것은 9년 만에 생태공원 탐방로에 야간 조명이 들어온 작년부터였다.

비무장지대(DMZ) 안에 있는 유일한 카페 ‘스타벅스 김포애기봉생태공원점’에는 ‘통일 라떼’를 즐기고 망원경으로 강 건너 북한 주민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몰렸다. 해가 지고 어둑해지자 밝게 빛나는 스타벅스 간판과 달리 북한 땅은 어둠에 갇히고 있었다.

 

◇‘통일 라떼’ 마시러 애기봉으로

등탑은 세워지지 못했지만 애기봉 전망대엔 국내 1위 커피 프랜차이즈인 ‘스타벅스’가 입점해 성업 중이다. 지난달 29일 문을 연 이곳은 검문을 거쳐야만 입장할 수 있는 국내 하나뿐인 카페다. 보안상 오후 4시 30분까지만 영업하고, 오후 5시면 직원들이 모두 철수하지만 이날도 오전부터 카페를 찾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내부의 테이블과 창문들은 북한 방향이 잘 보이게 배치돼 있다.

 

<애기봉 스타벅스 개장 이후 지난 12일까지 애기봉평화생태공원을 찾은 방문객은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4배 늘었다. 방문객의 56%는 50대 이상. 이날 전망대에서 만난 박희감(인천 강화군·78)씨는 “어린 시절 북한군을 피해 부모 손을 잡고 산으로 도망친 기억이 어렴풋이 있다”며 “저쪽에서도 이쪽의 간판과 아파트들이 보일 정도로 지척인데, 저들은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젊은 층과 외국인들은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전망’을 가진 이곳을 안보 관광지이자 문화 관광지로 소비한다. AP통신은 “가장 자본주의적인 브랜드가 이곳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강력한 안보를 상징한다”고 보도했다. CNN은 “북한 주민들이 거니는 모습도 볼 수 있다”며 “북한에 가지 않고도 북한 내부를 둘러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방법 중 하나”라고 소개했다.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SNS)에는 “통일 라떼 한잔” “자유민주주의의 커피 향기를 느낄 수 있다”는 방문 후기가 올라온다. 영어·일본어·중국어로 방문법을 설명하는 게시글도 여럿이다.

 

이날 전망대에서 만난 인도네시아 관광객 무프티(28)씨는 건너편 북한 땅을 신기한 듯 바라보며 스마트폰 카메라 렌즈를 망원경에 대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는 “인도네시아는 북한 여행이 가능한데 코로나 이후 북한 입국이 막혀 이곳에서라도 보러 왔다”며 “자본주의 상징인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며 삭막한 북한 땅을 볼 수 있다는 글을 보고 한국 관광 일정 중 하루를 여기서 보내는 중”이라고 했다.

모스크바 푸시킨 광장에 문을 연 맥도날드 1호점. 냉전 시기, 미국에 갈 수 없던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다.

 

북한 땅이 훤히 보이는 이곳에 스타벅스가 들어선 것은 접경 지역의 글로벌 관광을 활성화하려는 노력의 하나다. ‘모스크바 맥도날드 1호점’에 버금가는 혁명이라는 평가도 있다. 1990년 당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소련)에 맥도날드 1호점이 문을 열었다. “동구권 사회주의의 심장인 모스크바에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자본주의가 침투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인 노란색 골든 아치 모양의 맥도날드 로고가 박힌 간판이 모스크바 푸시킨 광장에 전시되고, 소련 국민들이 길게 줄을 늘어선 모습은 과연 진풍경이었다. “미국에 갈 수 없다면 모스크바에 있는 맥도날드로 오라”는 도발적인 광고가 송출됐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모스크바 맥도날드 1호점은 냉전 종식의 상징이 됐다.

 

◇전쟁은 멈춰도 상처는 여전하다

분단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가장 가까이 북한을 볼 수 있는 곳. 그러나 아무리 통일 라떼를 마셔도 마냥 유쾌하지만은 않다. 6·25전쟁 당시 국군과 인민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애기봉생태공원 곳곳에서 전쟁의 흔적을 마주하기 때문이다.

평범한 커피도 ‘통일 라떼’로 느껴지는 곳. 비무장지대(DMZ) 안에 있는 유일한 카페 ‘스타벅스 김포애기봉생태공원점’이다. 해가 지고 어둑해진 시간. 밝게 빛나는 스타벅스 간판과 달리 강 건너 북한 땅은 어둠에 잠기고 있었다.

 

무장한 군인에게 신분증을 제출하고 한참을 차로 달려 들어오자 ‘할아버지 강’이라는 푸근한 이름(조강)을 가졌지만 넘어갈 수 없는 한반도 유일의 남북 공동 이용 수역이 보였다. 직접 말 걸 수 없는 북한 주민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빛이던 등탑과 DMZ에서 수거한 낡은 탄피를 녹여 만든 ‘남북 평화의 종’, 6·25전쟁에서 산화한 해병대 장병을 기리는 전적비까지….

반짝 불이 켜진 애기봉 탐방로와 등탑 대신 조명을 밝힌 카페 간판이 강 건너 주민들에게는 희망일까 절망일까 다른 무엇일까. 빛에 발을 딛고 깜깜한 어둠 속으로 점점 사라져 가는 북한 땅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지난 18일, 애기봉평화생태공원 폐장이 다가올 무렵 트리처럼 지그재그로 연결된 탐방로에 환하게 불이 켜졌다. 21일 점등식을 앞둔 리허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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