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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남해 바래길 256km를 1주일간 걷다 [남난희의 느린 산 남해 바래길]

by 白馬 2024. 12. 17.

남난희는 1984년 여성 최초로 태백산맥을 겨울에 단독 일시종주했으며, 1986년 여성 세계 최초로 네팔 강가푸르나(7,455m)를 등정했다. 1989년 여성 최초로 백두대간을 종주했으며, 74일간의 태백산맥 단독 일시 종주기를 담은 <하얀 능선에 서면(1990년)>을 펴내 등산인들의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94년부터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아 살고 있다. 2022년 백두대간을 선구적으로 알린 공로로 한국인 최초로 스위스 알베르 마운틴 상을 수상했다.

바다를 곁에 두고 남해바래길이 이어진다. 간조 시에만 갈 수 있는 구간도 있다.

 

남해를 자주 오간다. 30여 년 전 경남 하동 지리산 기슭으로 터전을 옮기니 바로 이웃 동네라 마실  가듯 자주 갈 수 있는 곳이 되었다. 남해는 섬이지만 육지로 통하는 다리를 진즉에 놓아 육지와의 교류가 빨랐다. 우리나라에서 5번째로 큰 섬인데다 산도 여럿 있고, 어디를 가나 풍광이 빼어나 여행지로 인기 있다.

바다를 볼 수 있고, 남해의 산 어디를 가도 풍광이 트여 있어서 처음에는 자주 다녀오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바다로의 갈증이 해소되었는지, 내 발길은 다시 산으로 향했다. 주변의 산과 아주 먼 산을 주로 다녔다. 남해를 찾는 횟수가 줄어들었지만 지금도 바람 쐬고 싶을 때 다녀오곤 한다.

 

남해의 특산물 시금치를 추수하는 농부들.

남해 특유의 멸치 가두리인 죽방렴. 간만의 차가 크고 물살이 센 곳에 설치한다.

 

남해 둘레를 걷는 길을 만든다는 소식이 들렸고, 가끔 내 걷기 수업으로 지리산을 벗어나서 다른 길을 걷고 싶을 때 그 길을 걸었다. 초창기에 몇 번 갔다가 “역시 지리산이야”하면서 다시 지리산 주변으로 오고는 했다.

지난해부터 국내의 걷기길을 걸어보기로 작정한 뒤 시간이 될 때마다 지역을 정해서 걷고 오고는 했다. 백두대간처럼 능선만 걷는 것이 아니라 산 언저리를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궁금했다.

그래서 선택한 길 중 하나가 남해 바래길이다. ‘바래’의 뜻은 남해의 어머니들이 가족의 먹을거리를 장만하기 위해 바닷물이 빠지는 물때를 맞춰 갯벌에 나가 파래나 조개 미역 고동 등 해산물을 손수 채취하는 작업을 말하는 남해 방언이라고 한다.

전체 길이 256km라고 하니 만만한 거리는 아니다. 2020년에 길을 정비했다는데 예전에 비해서 잘 정돈되었고 길 표시도 잘되어 있었다. 하지만 바다에도 산에도 사람은 없었다. 

그나마 관광지라서 게스트하우스 몇 곳이 있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바래길 픽업 서비스까지 해줘서 편하게 숙소와 교통을 이용할 수 있었지만 식사는 어려웠다.

결론은 우리나라는 걷기길은 어디나 잘 만들어 관리하는데(관리가 잘되는 곳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문제는 숙식을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도시를 지나갈 때 빼고는 먹고 자는 일이 큰 문제다. 

물론 모든 것을 다 지고 다니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러기에는. 아, 그러고 싶지 않는 것이 문제랄까? 그동안 너무 많은 짐을 지고 세상을 누비느라 내 어깨가 더 이상 무거운 배낭 메기를 거부하고 있기도 하고, 산이 아닌 동네는 조심스럽기도 하다.

 

V자 모양의 죽방렴. 목선을 타고 들어가 뜰채로 멸치를 건져내는데 신선하여 높은 값을 받는다.

 

남해 바래길을 걸을 때는 숙소에서 제공되는 아침식사(약간의 빵과 달걀, 음료)를 점심 도시락으로 싸서 배가 고플 때 적당한 자리에서 먹었다. 날씨가 추울 때는 약간 서글프지만 버스정류소 같은 곳을 만나면 아주 좋은 식사자리가 되었다. 날씨가 추울 때는 그만한 곳이 없고 사람도 없어서 한동안 쉬기 좋다.

간식은 집에서 미리 준비해 갔고 저녁은 숙소 주변 식당을 이용하거나 편의점에 들러서 먹을 만한 것을 미리 챙기기도 했다. 어떤 식당은 “1인분은 팔지 않는다”고 해서 그냥 나오기도 했다. 이러저러 해서 먹는 것은 부실한 편이었다.

다시 바래길 이야기로 돌아가면 보통 남해하면 바다가 가장 먼저 떠오르고, 당연히 길도 바다와 함께일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았다. 바다를 끼고 걷는 길보다는 산과 함께하는 길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산길은 등산로가 아닌 주로 임도 위주였다. 거의 하루 종일 임도를 오르내리기도 했다.

 

임도 폐기물 관리 신경써야

임도 주변에는 바다 폐기물을 버린 곳이 엄청 많았다. 남해 지자체에서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임도 주변의 숲은 정리가 잘되어 있는 편이고 숲을 정리하는 곳을 지나기도 했다.

바닷길은 주로 남파랑길과 겹친다. 그 길은 바람이 없으면 조금 나른하다. 그리고 하염없다. 바람 없는 갯가에 앉아서 바다내음을 맡으며 조개껍질을 줍기도 하고, 조약돌로 의미 없는 문양을 만들어보기도 하며 한동안 무료함을 달랜다.

 

평범한 어촌이지만 마음이 고요해지는 평화가 깃들어 있다.

생선을 말리는 어촌 풍경.

 

그러다가 문득 일어나 다시 걷는다. 가끔 위험한 야생의 길도 있다. 그럴 때는 괜히 신이 나서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아무도 없는 야생의 길이 좋은 것이다. 때로는 미국 PCT길 같기도 하고, 때로는 금오도 비렁길 같기도 하고, 그냥 아무 길과도 닮지 않은 남해만의 길이기도 했다. 

어떤 한 날은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서 걷기가 힘들었다. 역시 섬인 것이다. 맞바람에 옷을 잔뜩 껴입고도 몸을 최소한으로 작게 만들고 움츠려서 걷지만 바람은 사정없이 빈틈을 찾아 들어오고 앞으로 진행하는 것을 방해했다. 

그 와중에 길은 표시만 해두고는 사라졌다. 누구도 걸은 적 없어 보이는 야생의 바다 자체만 눈앞에 펼쳐졌다. ‘만조 시에는 위험하다’는 푯말이 달랑 있기는 했는데 그야말로 야생의 바닷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만조가 아니니 길을 갈 수는 있을 것이다.

재미난 길이다. 물이 들어오면 길은 사라지고 물이 빠지면 길이 다시 생기는데 그 길은 누구도 걸었던 길이 아닌 것이다. 바다는 매일 새로운 길을 창조한다.

꼭 캐나다의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과 닮아 있었다. 바닷물이 왔다가며 그동안의 흔적은 몽땅 지우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둔다는 것과 위험함도 닮아 있었다. 비록 매우 짧았지만 기분이 묘했다.

그 길을 걸을 때도 첫발을 딛는 기분이 묘해서 계속 돌아보았는데 이 길도 그랬다. 그리고 갑자기 궁금해졌다. 이 많은 물은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것일까? 턱없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한동안 바다를 노려보지만 답은 모르겠다.

궁금증은 오래갈 수 없는 것이 너무 심한 바람에 지쳐가고 있는 자신이 한심해서 집으로 가야 하나를 잠시 고민했다. 내 집의 편안함과 아랫목의 따뜻함이 불쑥 그리워졌다. 내 집만큼 편안한 곳이 또 있을까?

 

햇빛 바라기 하는 마을 노인들.

 

돌아갈 내 집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길 위에서 까마득히 잊어버린 집 생각을 다 하다니. 너무 힘들어서도 아니고 너무 배고파서도 아니고, 아마 집이 너무 가까운 곳에 있어서인가? 이곳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당장 갈 수 있다. 남해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하동으로 가서 우리 동네로 가는 버스를 타면 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단 몇 시간 후에 버스 타고 집에 가나 며칠을 더 걷고 집에 가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두 달째 걷는 하이커의 배고픔을 느끼다

이 길에서 처음으로 걷는 스루 하이커Thru-hiker(트레일 끝에서 끝까지 가는 여행자)를 만났다. 그는 서해랑길 시작점인 인천 강화도에서부터 줄곧 걸어서 이곳을 지나는 중이라고 했다. 몰골이 말이 아니다. 두 달 반 정도 걸렸으며, 이날도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고 한다.

그에게 숙식을 어떻게 해결하느냐고 물었더니, 처음에는 배낭에 모든 것을 챙겨서 출발했는데, 모든 것이 여의치 않아서 짐은 택배로 집에 보내고, 주로 싼 숙소를 찾아서 자거나 찜질방이 있으면 이용한다고 했다. 

먹는 것은 그때 상항에 따라 해결하는데 모든 것이 여의치 않다고 했다. 어떤 때는 숙소를 못 찾아서 택시를 불러야 했고 먹는 문제는 더 힘들다고 한다.

바람 탓에 배낭도 못 내리고 주고받은 몇 마디 말로 서로를 위로하고 헤어졌다. 한참을 지나고 보니 나에게 있는 간식이라도 나눠 주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못내 안타까웠다. 

한동안 가게나 식당을 만나기 어려운 곳이었다. 때문에 그는 종일 허기를 달래며 걸어야 할 것이다. 같은 길을 걷는 사람으로 그의 배고픔이 내게 전해지는 느낌이다.

그렇게 산길과 바닷길, 마을길을 걸어서 남해를 한 바퀴 돌았다. 새로운 동그라미를 하나 완성한 것이다. 산과 바다와 바람과 철새와 사람이 있는 그 길들. 그 길을 걸을 때 약간 쓸쓸하고 또 꽉 찬 느낌이 좋다. 나는 남해대교를 걸어서 건넜다. 집으로 향했다. 이렇게 걸어서 이틀 후면 집에 도착할 것이다.   

 

남해 바래길을 걷는 필자. 256km의 남해 바래길을 일주일간 걷고 이틀을 더 걸어 집까지 왔다.

오늘의 날씨

* 오늘 하루도 즐겁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