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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신안군 무인도 우세도, 로빈슨 크루소처럼 여행하기

by 白馬 2024. 11. 29.

신안군 비금면에는 꽤 많은 무인도가 있다. 우세도도 그중 하나다. 몇몇 무인도들은 과거 사람이 살았던 기록을 가지고 있다. 섬이 비워진 사연은 안타깝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연이 주인이 된 이후 생태는 훨씬 더 풍성하고 건강해졌다. 가끔은 인공의 때가 말끔히 지워진 섬이 귀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떠났다. 로빈슨 크루소의 마음으로.

 

저 너머에 프라이빗 아일랜드

우세도는 비금도 원평해변 앞에 있는 무인도다. 가장 가까운 지점과 지점 사이 거리를 잰다면 불과 650m에 불과하다. 면적은 0.5km2 남짓, 제주 한림 앞바다의 비양도와 같은 크기다. 우세도로 가는 정기 여객선이나 도선은 당연히 없다. 탐방하려면 비금도에서 고깃배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우세도에는 해수욕장으로 이용해도 좋을 잘생긴 백사장 두 곳이 있다

 

우세도란 존재는 꽤 오래전부터 마음에 있었다. 비금도를 여행하다 원평, 명사십리 해변에 도착했을 때, 첫눈에 알아봤을 정도다. 섬의 풍광은 가늘게 뜬 눈 너머에 있었다. 하얀 백사장과 나지막한 구릉까지, 대단히 이국적이며 프라이빗했다. 그곳에서 며칠쯤 캠핑하며 로빈슨 크루소처럼 지내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꿈이 현실이 됐다.

가끔씩 비금도 소속 고깃배가 우세도 백사장에 닻을 내리기도 한다

 

고깃배를 빌려 타고

운 좋게 원평해변 앞, 신원리 마을에서 배를 가진 사람을 만났다. 그와 함께 섬으로 건너가는 그 짧은 사이, 우세도의 옛이야기가 물결처럼 전해졌다. 

“섬 모양이 소가 서 있는 형상이라 처음엔 우서도로 부르다 우세도가 됐지라. 밭에서 보리, 조, 무, 고구마를 키웠는디, 물이 좋아서 풍선(돛단배)들이 물을 실어 갈 정도였당께. 섬 뒤가 강달이(황석어) 어장이었소. 파시 열리면 우세에서 원평까지 풍선이 꽉 들어차서 뱃전 밟고 오갈 정도였는디. 모래도 좋아 갖고 유리공장에서 와서 막 퍼 날라가 부렀소. 사는 건 힘들지 않았는디 사람들도 떠나고, 바람 불면 배가 못 다닝께 불편하고 외롭지….” 

선착장이 없는 까닭에 갯바위에 배를 댔다. 뱃삯을 물었더니 20만원을 달란다. 터무니없이 높은 금액이라 생각돼 선뜻 내놓기가 어려웠다. 깎아 달라는 말은 못 하고 대신, 돌아갈 때 주겠다고 했다. 

우세도는 작은 무인도지만, 해안의 들고 남이 좋아 둘러보는 재미가 있다

 

비경의 우세도

해변은 멀리서 봤을 때보다 훨씬 훌륭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두 개나 됐다. 완만한 경사에 하얗고 고운 모래질, 비금도에 명사십리와 원평해수욕장이 없었다면 주민들의 여름 놀이터가 되고도 남았을 환경이다.

우세도의 북쪽 해안은 해식애가 발달한 전형적인 침식지형이다

 

섬의 깊은 곳으로 좀 더 들어가 보기로 했다. 길이 있을 법도 했지만, 풀이 오르고 넝쿨이 엉켜 있어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 나무와 나무 사이를 헤집어 가며 어렵사리 숲의 경계를 넘어선 순간, 사방이 트였다. 바람이 빗어 놓은 듯, 한 방향으로 누운 억새군락. 비로소 우세도의 풍광이 시야와 나란해졌다. 

섬의 가장 높은 곳에는 등대 하나가 서 있다. 이 역시 수풀과 가시덩굴을 헤치고 올라야 하는데 여간 까탈스럽지 않았다. 외로움이란 이름으로 남은 무인등대는 비금도 북쪽과 서편 해역을 지나는 선박들의 육지 초인표지 역할을 한다. 

섬의 중심 초지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덤불 지대를 통과해야 한다

 

찔리고 걸려 넘어지며 나선 섬 트레킹, 다시 능선을 따라 내려와 암석해안으로 접근해 본다. 섬은 흥미로운 구조를 가졌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남쪽 해안에 반해 북쪽 해안은 매우 거칠고 남성적이었다. 큰 섬을 압축해 놓은 듯 다채로운 풍광, 파도가 계획 없이 만들어 낸 민낯이라 해도 우세도의 해식애는 가히 비경이었다. 게다가 이런 광경을 독점할 수 있다니.

우물은 사람이 살았다는 증표며 더할 나위 없는 생존 인프라다

 

섬의 남동쪽 해변을 걷다가 우물을 발견했다. 물을 길어 휴대용 정수기로 필터링한 후, 바닷가에서 주운 페트병에 담았다. 물은 짠맛이 조금 돌았지만, 식수로 사용해도 별문제가 없어 보였다. 자연이 지배하는 무인도에서 특히 주의해야 할 것은 뱀이다. 천적이 없으니 여간 주의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뱀은 중부지방의 경우 11월 중순이면 동면에 들어가지만 따뜻한 남쪽의 경우, 아직은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해가 떨어지면 하늘과 바다는 급속도로 스산해진다. 모섬 비금도가 페이드아웃 되고 나니 비로소 무인도에 갇혀 버린 느낌이 들었다. 하늘은 청명하고 별빛은 더없이 온화했다. 그런데 그때 눈에 들어오는 기상예보. 내일 아침 6시부터 초속 13m의 강한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릴 거란다.

억새가 남쪽으로 누운 것을 보면 주된 바람의 방향은 북풍이다

 

놀라운 기상청 예보

다음날 새벽 5시쯤, 텐트 밖으로 뛰쳐나와 꾹 참고 있던 소변을 누었을 때도 사방은 너무도 고요했다. ‘그럼 그렇지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비가 올 리가 없지’, ‘섬에서 나가면 무엇을 먹을까?’ 잠자리에 누워 이런저런 생각을 이어 갈 때, 알람이 울렸다. 시간은 정확히 6시.

캠핑은 먹고 자는 것을 스스로 해결하는 베이직한 여행의 테마다

 

갑자기 세찬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러다 무언가가 텐트를 후려치는 느낌이 들었다. 확인하기 위해 텐트 지퍼를 열자 강한 비가 쏟아져 들어왔다. ‘기상청이 옳았구나.’ 다행히도 잠자리에 들기 전, 장비 정리를 해 두었기에 철수가 간편해졌다. 침낭과 매트리스를 배낭에 넣고 텐트를 빛의 속도로 접어 패킹한 후 레인 커버를 덮어씌웠다.

텐트 밖은 무인도, 지퍼를 열면 초자연이 펼쳐진다

 

신속하게 대처는 했지만, 섬을 탈출하는 것이 문제다. 혹 악천후에 배가 안 들어올까, 걱정이 엄습했다. 해변으로 내려와 모래사장에 우세도라고 크게 쓰고 ‘제발’이라고 읽었다. 그리고 애써 담담한 척 스스로를 위로하던 그때, 여린 배 한 척이 휘청이며 다가왔다. 배에 오른 순간 목격했다. 바닷물을 온통 뒤집어쓴 배 주인과 펼쳐진 채로 흠뻑 젖은 성경책을. 바람을 등에 지고 나가는 것도 이토록 어려운데, 이 바람을 거슬러 온 바다는 얼마나 위험천만했을까.

우세도로 가려면 비금도 원평마을에서 고깃배를 빌려 타야 한다

 

비금도 가산 선착장에 도착 후, 막 떠나려는 여객선에 배낭을 실었다. 숨 가빴던 마음을 진정시키고 뒤쫓아올 풍랑주의보에 안도했다. 그리고 따뜻한 객실에 배를 깔고 생각에 잠겼다. 어떤 무인도는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둬도 좋겠다고, 자연은 인공의 능력보다 훨씬 더 감각적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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