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어디까지 아세요
여름날의 가메오름 굼부리 능선. 여행자들이 굼부리를 한 바퀴 돌고 있다.
제주의 오름은 그 덩치가 제각각이다. 높은오름이나 다랑쉬, 노꼬메처럼 육지의 산을 방불케 하는 큰 몸집부터 돌미오름같이 경주의 왕릉보다 작은 것도 있다. 모두 화산체여서 크기가 아무리 작아도 저마다 굼부리와 화구능선을 갖춘 걸 보면 볼수록 신비롭다. 그래서 탐방의 즐거움이 큰 오름 못지않다.
거대한 물고기, 가메오름
제주의 서쪽, 한림읍의 중산간 들녘에 있는 듯 없는 듯한 오름 두 개가 한적한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채 자리를 잡았다. 가메오름과 누운오름이다. 억새로 유명한 새별오름과 화구호를 가진 금오름을 연결한 가상의 선 한가운데쯤에 자리한 이 두 오름은 하도 덩치가 작고 키도 낮아서 바로 옆에 가서도 찾기가 쉽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오름에 올라서서 조망하는 주변 풍광은 놀랍다.
가메오름 능선에서 본 ‘맹꽁이왓’ 습지. 뒤로 오름이 거의 없는 애월읍 풍광이 이채롭다.
두 오름 중 더 낮고 작은 쪽이 가메오름이다. ‘가메’는 가마솥을 말하는 제주어로, 작고 아담한 굼부리를 가진 오름 모양이 가마솥을 닮아서 붙은 이름이다. 해발고도가 372.2m지만 오름 자체의 높이는 17m에 불과하다. 제주의 수많은 오름 중에서 낮기로는 으뜸을 다툰다. 월각로 옆에 차를 댈 만한 공간이 있는데, 거기서 굼부리 능선까지 오르는 데 단 1분이면 된다. 이쯤 되면 오름이 아니라 언덕이라고 불러야 할 판이다. 그러나 요렇게 작아도 가운데 움푹 파인 굼부리가 또렷하고, 오름 능선에서의 조망은 가슴을 뻥 뚫어지게 만든다.
초지대를 이룬 오름 능선엔 봄날이면 산자고와 할미꽃, 봄구슬붕이, 자주괴불주머니, 개불알풀, 개별꽃 같은 우리 풀꽃이 빈틈없이 피어난다. 꽃이 만발한 능선에 서면 이웃한 이달봉과 새별오름이 손에 잡힐 듯하다, 그 너머로 바리메와 족은바리메, 큰노꼬메, 족은노꼬메가 겹쳐진 가운데 한라산이 우뚝 서있다. 오름 능선을 한 바퀴 도는 데 채 10분이 걸리지 않는 가메오름은 억새로 가득 덮였다. 그래서 10월이나 11월에 찾으면 멋진 풍광이 기다린다.
메밀을 심어둔 누운오름의 서쪽 밭뙈기. 제주는 우리나라 최대의 메밀 산지다.
가메오름은 전체적인 모양이 참 신비롭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꼬리지느러미까지 갖춘 게 초록 바다를 헤엄치는 한 마리의 물고기를 떠올리게 한다. 길 건너편의 누운오름이 가메오름을 향해 ‘U’자로 열린 모양이어서 집으로 들어가는 듯 보여 더 그렇다.
북쪽 능선에 서면 바로 아래로 널따란 밭 가운데에 동그랗고 얕은 습지가 눈길을 끈다. 습지 가장자리를 따라 습지식물이 자라서 밭과 습지를 구분시켜 준다. 그 모양이 오름 굼부리처럼 신비롭고 예쁘다. 어떤 이들은 이 습지를 ‘맹꽁이왓’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누운오름 북쪽 봉우리에서 내려서는 여행자들. 이곳 또한 띠와 억새로 가득 덮였다.
쉬고 있는 소를 닮은 누운오름
누운오름은 애월과 한림을 가르며 지나는 월각로를 사이에 두고 가메오름과 마주 보고 있다. 부드럽고 야트막한 능선이 커다란 네모 모양으로 이어지며 소가 한가로이 누운 모습을 닮아서 붙은 이름으로, 제주 오름 중에서는 가장 편한 모양새다. 하늘에서 보면 꼬리까지 갖췄다. 높이에 비해 펼쳐진 굼부리가 꽤 넓다. 굼부리 안은 무나 메밀, 감자 농사를 짓는 경작지나 목초지로 이용된다. 굼부리를 반으로 가르며 차가 다니는 널찍한 농로도 지난다.
해발고도가 407m지만 오름 자체의 높이는 50m를 살짝 넘고, 실제 오르는 높이는 30m가 안 되니 들머리에서 금세 능선에 닿는다. 그러나 누운오름이 품은 조망은 큰 감동이다. 공식적인 탐방로가 조성되어 있지만 보통 태영농장 건너편의 도롯가에서 탐방을 시작한다. 가메오름을 마주한 북쪽 봉우리로 올랐다가 능선을 따라 남쪽의 정상까지 간 후 굼부리 가운데를 지나는 농로를 이용해 돌아오는 코스가 애용된다.
초지대를 이룬 누운오름의 북쪽 봉우리. 풀숲엔 녹슨 철조망도 있어서 주의해야 한다.
늦가을부터 초봄까지가 탐방 적기
초지대를 이루는 북쪽 봉우리에서 널따란 밭뙈기를 품은 오름 전체가 가늠된다. 솔숲에 덮인 남쪽의 정상 봉우리와 굼부리 중앙의 농로, 그 건너편의 너른 밭과 서쪽 화구벽능선까지 어느 것 하나 풍광이 거칠지 않고 편안하다. 서남쪽 능선 너머론 금오름과 비양도가 눈길을 끈다.
여기서 내려다보는 가메오름의 작고 앙증맞은 굼부리는 더 신비롭고 예쁘다. 누가 부러 흙을 퍼 날라 만든 듯 아기자기한 느낌이다. 가메오름 건너론 이달봉과 새별오름, 바리메, 노꼬메오름의 하늘금이 얽히고설킨 가운데 한라산이 배경을 이뤘고, 북돌아진오름과 당오름, 정물오름 등 제주 서부 중산간의 오름이 한눈에 들어온다. 누운오름 굼부리 안에는 작은 알오름이 솟았는데, 땅속 동굴이 함몰된 듯 한쪽이 푹 꺼져 있다.
누운오름 동쪽 능선 너머로 중산간의 오름들이 펼쳐졌다. 제주 풍광의 끝은 대부분 한라산이다.
누운오름 능선은 낮고 완만하지만, 풍광은 사방으로 확 트인다. 평지를 걷듯 쉬엄쉬엄, 주변을 감상하며 룰루랄라 걷기에 그만이다. 천천히 가도 20분이면 남쪽의 정상에 닿고, 여기서 잠시 내려서면 굼부리 안의 농로를 만난다. 보통은 여기서 농로를 따라 출발지로 돌아 나오는 코스로 탐방이 이뤄진다. 서쪽 능선을 이어서 가려면 다시 밭을 가로질러 들어서야 한다. 딱히 탐방로가 조성되지 않았기에 눈대중으로 찾아가야 한다.
능선은 억새와 찔레, 복분자, 장딸기 등이 뒤섞여서 봄부터 가을까지는 보기와 달리 길이 사납다. 반드시 긴 소매와 긴 바지 차림에 등산화와 스틱도 갖추는 게 좋다. 소나무가 많은 정상에서 내려서는 길이 희미하다. 길을 잃더라도 농로로 방향을 잡고 내려서면 된다.
하늘에서 본 가메오름과 습지. 오름은 커다란 물고기를 닮았다.
Info
교통
주변 지역으로 운행하는 버스가 없다. 내비게이션에 ‘누운오름’을 입력하고 가면 된다. 가메오름과 닿은 월각로 도롯가에 승용차 한두 대를 댈 만한 공간이 있다. 서쪽으로 200m쯤 떨어진 누운오름교차로 주변에 차를 댈 만한 공간이 꽤 있다.
주변볼거리
새별오름 나홀로 나무 누운오름에서 가까운 ‘그리스신화박물관’에서 광산로를 따라 성이시돌목장 쪽으로 700m 들어선 오른쪽 밭 가운데에 있다. 새별오름과 이달봉을 배경으로 넓은 밭 가운데에 나무 한 그루만 서 있어서 포토스폿으로 인기다. 배우 소지섭이 여기서 광고를 찍은 후 ‘소지섭 나무’로도 부른다.
성이시돌목장과 테쉬폰 일련의 역사적 사건들을 겪으며 폐허가 되다시피 한 제주의 도민들을 위해 아일랜드 출신의 맥그린치 신부가 설립한 목장이다. 목장 안에 화구호를 품은 세미소오름이 있으며, 목장 초지 한켠에 우두커니 선 낡은 테쉬폰 주택 한 동이 이국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테쉬폰은 제주 여행자들이 빠뜨리지 않고 찾는 포토스폿이다.
‘녹차골정식’의 대표 메뉴 ‘제주은갈치조림’.
맛집
평화로의 광평교차로 옆 ‘녹차골정식(0507-1356-6595)’이 먹을 만하다. 흑돼지오겹살구이(2만2,000원)와 제주은갈치조림(소 4만 원)이 대표 메뉴. 그러나 기본 12찬인 녹차골정식(1만 원)이 가장 인기다. 흑돼지김치찌개(1만5,000원)와 흑돼지국밥(1만2,000원)도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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