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물이 인상적인 옥계계곡.
초록색 잉크에 버금가는 진초록의 물이 소에 그득한 것은 산이 간직하고 있던 초록이 온통 녹아들어서일까?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면서도 덧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이제 곧 산이 무채색으로 변해 버릴 것이 걱정스럽다.
돌로 베개 삼고 물로 이를 닦는다는 침수정. 경치가 뛰어난 지역을 대상으로 지정하는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으로 베개 ‘침枕’에 이 닦을 ‘수漱’를 쓴다. 대자연에 취해 풍류를 즐기는 옛 선비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침수정은 경상북도 영덕군 달산면의 옥계玉溪계곡에 있다. 팔각산과 동대산의 천연림이 빚어낸 맑고 투명한 물이 기암괴석과 어우러져 하얀 포말을 뿜어낸다. 소에는 늘 진초록의 물이 그득하다. 이 계곡물은 영덕군 강구면의 오십천을 통해 동해로 흘러든다.
계곡수가 오랜 세월 동안 거대한 암반을 침식시키면서 형성된 소와 돌개구멍이 독특하면서도 멋진 자태를 뽐내며 계곡을 따라 줄지어 있는데 세심대, 탁영담, 부연, 병풍대, 학소대 등 경관이 수려한 37곳을 ‘옥계 37경’이라 부른다. 그리고 가을이 오면 이 37경에 1경을 더해 즐길 수 있다. 바로 단풍이다.
첫 번째 산행코스 _ 동대산
편안한 계곡으로 몸 풀고 거친 바위 올라타기
옥계 버스정류장 앞 무료주차장에 차량을 주차하고 옥계유원지관리소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계곡으로 내려서 잠수교를 건넌다. 차량 통행이 가능한 길이지만 경방골 방면 들머리인 신교까지 15분가량 옥계계곡의 절경을 즐기면서 걸어가는 것이 좋다. 잠수교를 건너면 맞은편에 침수정 정자가 보인다. 계곡 주변에 우뚝 솟은 입석을 지나니 계곡을 높이 휘어져 가로지르는 옥녀교가 보인다. 이 교량을 종종 옥계유원지 입구에 있는 옥계교와 혼동하곤 한다.
옥녀교 앞 20m 지점에 위치한 다른 바데산 들머리를 지나 500m가량 더 가면 신교가 있다. 다리 옆의 경방골 방향 들머리로 들어서면 계곡 옆으로 난 오솔길을 시작으로 2시간 이상을 걷는 계곡트레킹이 시작된다. 계곡물을 십 수 차례 건너다녀야 하는데 처음에는 산행리본이 별로 없어서 헷갈릴 수도 있지만 물속에 징검다리 형태의 돌무리가 보일 때 어김없이 계곡을 건너면 된다. 트레킹 종료지점까지 계곡을 크게 벗어나는 일은 없다.
옥녀교 아래 진초록빛 맑은 계곡수.
물가의 오솔길 위주 길은 계곡 상부로 갈수록 난이도가 조금씩 높아져 돌길을 걷는 빈도가 많아진다. 안전 밧줄에 의지해 바위를 타고 가야 하는 구간도 있다. 하지만 위험한 곳에는 어김없이 바위에 공룡화석발자국 모양의 딛을 곳이 있고, 그곳에 미끄럼 방지용 줄눈까지 새겨 놓아서 별 어려움 없이 나아갈 수 있다.
트레킹 전체 구간의 경사도도 낮다. 들머리의 고도가 153m인데 계곡이 끝나는 지점의 고도가 317m이니 2시간 이상의 트레킹에서 고도는 불과 164m를 올릴 따름이다.
계곡물을 다섯 번째 건너니 정자 뒤로 물줄기가 반석 위로 길게 누워서 흘러내리는 와폭臥瀑이 보인다. 동해로 머나먼 여정에 나선 물줄기가 반석 위에서 하얀 포말을 내뱉으며 찰나나마 몸을 누이고 쉬어가는 모양새다. 조심스레 돌다리를 건너는데 개구리 한 마리가 나처럼 해보라는 듯 우쭐대며 앞장서 뜀박질한다. 온통 활엽수 천지인지라 단풍철이 되면 계곡물과 어우러진 황금빛 잎들로 눈부신 장관을 기대할 만하다.
너덜지대를 지나니 소나무 서너 그루를 한 묶음으로 해서 우산처럼 머리 위에 펼치고 있는 기암이 우뚝 서 있다. 그 아래로는 자그마한 폭포수와 진초록 물을 담은 소가 함께 어우러져 멋진 경관을 제공한다.
동굴 모양으로 움푹 파인 바위를 지나니 경방골 최고의 명소 호박소가 나타난다. 크고 둥근 물그릇 모양의 잔잔한 호수에는 작은 폭포수가 끊임없이 흘러든다. 숲의 초록은 폭포수를 따라 온통 소로 빨려들고 있는데도 숲은 여전히 푸르기만 하다. 갈길 먼 산행, 모처럼 찾아든 평화와 고요를 잠시나마 만끽하며 숨을 돌려본다.
침수정.
산사태로 물침이골 길은 폐쇄 진행 중
호박소 위 개울이 갈라지는 삼거리의 이정표(동대산 2.8km, 비룡폭포 0.4km)에서 동대산 방향의 계곡이 등산로 영구 폐쇄가 추진 중인 물침이골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비룡폭포 방향으로 가야 한다. 비룡폭포 아래 세 갈래 폭포가 보이는 지점에 ‘추락주의’라고 적힌 둥근 표지판이 서있는 곳부터 다소 험한 길이 이어진다. 비룡폭포는 건너편 먼 곳에 위치하므로 보이는 위용은 명성에 미치지 못하고 차라리 아래쪽의 세 갈래로 쏟아지는 폭포가 더 폭포다워 보인다.
비룡폭포를 지나서 안전로프가 끝나는 지점부터는 길이 다소 애매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여기서는 너덜지대로 올라서지 말고 계곡 건너편의 완만한 길을 찾아내어 계곡을 건너야 한다. 계곡 트레킹은 비룡폭포에서 1km를 지나온 바데산 2.0km 이정표 지점에서 마지막으로 계곡을 건너면서 끝난다.
지그재그 형태의 산길을 10분가량 오르면 바데산에서 동대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만난다. 비룡폭포부터 1.4km 진행한 지점이다. 이곳 이정표에는 바데산 1.8km 1시간, 동대산 3.4km 2시간으로 적혀 있다. 동대산으로 방향을 잡고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른다. 경사도가 상당해 마치 거대한 공룡의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것 같다. 가쁜 숨을 몰아 쉬어대며 45분 만에 644봉에 도착한다. 힘들여 올라왔지만 아무런 조망이 없다. 644봉을 지나면서 이제 완만한 경사도의 숲길이 펼쳐진다.
호박소에선 소나무를 머리에 펼치고 있는 멋드러진 바위를 감상할 수 있다
최단거리로 정상 등정하려면 쟁암리 코스
644봉에서 10분 후 만나는 동대산 2.0km 이정표 지점에도 비룡폭포 방향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정표 하단에는 ‘폭포 쪽 진입 금지’라고 표기되어 있다. 경사도가 높은 산인데 바위가 많아 낙석사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지점을 지나 좀 더 가다보면 건너편에 큼지막한 산사태 현장이 보인다. 산의 무너진 부분에서 쏟아져 내린 돌무더기가 잔뜩 보인다. 이곳이 바로 앞서 비룡폭포 위 삼거리에서 동대산 방향으로 가지 말라고 했던 그 물참이골 코스다.
정상 못 가서는 참나무숲 들판이 평온하게 펼쳐져 과연 지금까지 지나온 그 험한 된비알의 산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비룡폭포 위 능선 이정표 지점에서 1시간 35분 만에 고도 791.3m의 동대산 정상에 도착한다. 동대산 정상에는 정자쉼터가 마련되어 있고, 멀리 동해와 영덕풍력발전단지도 보인다.
동대산 정상에서 하산은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한다. 물참이골을 통해 옥계계곡으로 하산하는 길은 정자 옆으로 나 있는데, 폐쇄했지만 아직까지 길 막음 시설은 보이지 않는다. 혹 길 욕심이 난다면 조금 전 보았던 산사태의 흔적을 잊지 말기 바란다.
하산 시 1.2km 가서 있는 이정표에서 ‘주차장 2.3km’가 가리키는 방향은 옥계계곡과는 반대방향인 쟁암리로 가는 길이다. 많은 산꾼들이 옥계계곡 주차장으로 오인하고 이 길로 하산해 낭패를 본다고 한다. 이정표에 ‘주차장’이란 글씨 대신 ‘쟁암리’라고 써넣기를 관계 당국에 건의하는 바이다.
최단거리로 동대산 등산을 하려면 바로 이 길이다. 쟁암리에서 정상까지 왕복 3시간가량 걸린다. 동해안의 7번국도에서 달산 방향으로 들어올 때 ‘동대산 등산로’ 이정표가 옥계계곡을 17km 남긴 지점에 차량 진행 방향의 왼쪽에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쟁암리 등산로를 가리킨다.
동대산 정상에서 비룡폭포 1.4km 삼거리 이정표까지는 1시간 15분 걸린다. 여기서 비룡폭포를 향해 경방골로 하산하는데 비룡폭포까지 40분, 비룡폭포에서 신교 들머리까지는 50분이 소요된다. 신교 입구 들머리에서 시작해 동대산 정상을 밟고 다시 신교 입구로 되돌아오는 산행은 총 14.6km의 거리에 6시간 40분이 소요된다.
산행길잡이
동대산 정상 아래에서 시작된 물침이골 계곡수는 바데산 아래의 비룡폭포를 거쳐 온 물을 만나 호박소로 흘러들어 경방골계곡을 이루어서 골짜기를 따라 흘러 옥류계곡으로 합류된다.
경방골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서 호박소와 비룡폭포를 지나 바데산과 동대산을 연결하는 내연지맥의 능선에 올라서면 왼쪽으로 바데산, 오른쪽으로 동대산을 향할 수 있다. 본래 이 지역 산꾼들은 경방골을 거쳐 동대산 정상을 밟은 후 물침이골을 통해 호박소 방향으로 하산하는 길을 택해 경방골과 물침이골 계곡트레킹을 연이어가는 것을 선호했다.
그러나 최근 이 일대 등산로 입구에 걸린 플래카드에는 ‘동대산 정상에서 옥계계곡 구간은 지장목 및 낙석으로 인해 출입금지’라고 적혀 있다. 영덕지방국유림관리소의 담당자와 통화해 보니 현재 심한 낙석으로 인해 길이 끊긴 지점들이 있고, 추가 낙석의 우려도 커서 이 길은 영구 폐쇄시키는 절차를 진행 중이라고 한다.
당국이 말하는 출입금지 구간은 바로 호박소 위에서 육단폭포로 향하는 물침이골을 의미한다. 또한 동대산 정상에서 옥계계곡 위쪽에 위치한 하옥계곡 간의 코스도 함께 폐쇄된다고 한다. 따라서 이제 동대산 산행은 정상을 밟은 후에는 비룡폭포 위 분기점까지 되돌아와서 비룡폭포를 거쳐 경방골로 하산하는 왔던 길을 그대로 되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교통&맛집은 바데산 참고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바데산(가운데).
두 번째 산행코스 _ 바데산
웅장한 팔각산과 주왕산을 바라보는 전망대
바데산은 경상북도 포항시 죽장면과 영덕군 달산면의 경계에 위치하는 높이 646m의 산으로 북서쪽의 팔각산과 옥계게곡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으며 내연지맥을 통해 동대산과 연결되어 있다.
‘바데산’이라는 독특한 산 이름의 어원에 대해서 몇 가지 설이 있다. 산에서 바다 위에 뜬 달이 보인다고 ‘해월봉海月峰’으로 부르다가 바다와 달이란 단어를 연이어서 발음하다 보니 ‘바데’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산 이름이 외래어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바데산의 옥녀교 쪽 들머리는 산꾼들이 가장 애용하는 코스이지만 산불조심기간인 2월 1일~5월 15일과 11월 1일~12월 15일까지 입산금지임을 유의해야 한다. 또 다른 바데산 산행 들머리는 옥계1교 200m 아래의 길가에 있는 금황사 표지석 있는 곳에서 잠수교를 건너가면 있는데 산불조심기간에는 이 길을 이용하면 된다. 옥녀교 쪽 들머리는 옥녀교 20m 앞 숲속에 ‘입산통제구역 입산 금지’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있는 지점이다. 바데산 정상까지 봉우리를 여러 개 넘어가는 된비알의 능선길이 연속된다. 길은 선명하고 참나무가 주종을 이루는 숲길이어서 단풍철이 기대되는 길이다.
정상 바로 아래 바위 지대를 제외하면 대부분 낙엽 덮인 흙길이고 경사도가 심한 구간에는 어김없이 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길옆 쏟아져 내릴 것 같은 급경사의 사면은 이 산의 산세가 만만찮음을 보여 준다. 1시간 45분가량을 힘들여 오르면 정상에 도착한다.
금황사 표지석 잠수교를 건너면 시작되는 길은 정상을 300m쯤 남긴 지점에서 옥녀교 쪽 들머리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 합류된다. 잠수교를 건너 임도를 따라가다가 임도 끝에서 개울물 옆으로 난 산길로 접어드는데 흘러내린 흙과 잔돌 때문에 길이 매우 희미하므로 GPS를 통해 실시간으로 자신의 진행 방향을 확인하지 않으면 정상적인 등산로를 찾기에 어려움이 따른다.
바데산 정상에서는 키 큰 나무들로 인해 조망이 가려지지만 정상 직전의 바위지대가 멋진 조망 터다. 바로 눈앞에는 암봉들이 활처럼 휘어진 곡선을 이루며 연이어 펼쳐져 있는 팔각산의 멋진 자태가 보이고, 그 뒤로 주왕산의 암봉이 웅장한 자태를 자랑한다.
물침이골 산사태 현장. 바데산을 오른 후 동대산으로 하산할 경우 이 산사태로 인해 선택할 수 있는 등산로가 제한적이란 점을 반드시 사전에 인지해야 한다.
경방골 야간산행은 절대 엄금
경방골로 하산하기 위해서 동대산 방향으로 내연지맥의 능선을 따라가다가 비룡폭포를 향해 내려선다. 내연지맥은 낙동정맥이 성법령에서 북동 방향으로 가지를 쳐 마복산. 매봉, 내연산, 동대산, 바데산, 매티재, 천재봉을 지나 영덕군 강구항에서 끝을 맺는 도상거리 42.8km의 산줄기로서 영덕 오십천의 왼쪽 경계 능선이다.
가파른 내리막길 30분 만에 비룡폭포 0.7km, 30분의 이정표를 만나지만 이곳은 그냥 통과한다. 바데산~동대산 구간에서 비룡폭포로 향하는 갈림길은 총 세 군데 있는데 두 번째 이정표인 비룡폭포 1.4km 방향의 등산로가 길이 선명하고 경방골과 쉽게 연결되어 있다.
곰처럼 큰 덩치의 바위가 봉우리 정상부에 웅크리고 자리 잡은 곰바위봉, 그리고 464봉을 마저 지나면 정상서 55분 만에 큼지막한 바위의 옆구리에 올라서서 멋진 경관을 즐길 수 있다. 다시 본 바데산은 464봉 너머에 늘씬한 모습으로 그 자태를 뽐내고 있고 멀리 동해가 조망된다. 정상 출발 1시간 만에 비룡폭포 1.4km 이정표 지점에 도착한다. 신교 들머리에서 출발해 경방골을 거쳐 동대산으로 향할 때 올라왔던 바로 그 이정표다.
바데산에서 하산하는 길의 조용한 숲길.
바데산 산행 시간이 다소 지체되었거나 비가 내릴 가능성이 있는 날에는 산행 들머리로 신교의 경방골 들머리를 택하기를 권한다. 경방골 계곡 트레킹은 소요 시간도 길고 계곡물을 지속적으로 건너다녀야 한다. 하산 시각이 늦어져 어둠이 내리면 랜턴 불빛으로는 계곡에서 길 찾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게다가 산행 도중에 갑작스런 폭우가 쏟아져 계곡물이 불어나 길이 막혀 버리면 왔던 길을 되돌아가 다시 바데산을 넘어 가는 수밖에 없다. 정말 오도 가도 못할 힘든 상황에 맞닥뜨릴 수도 있는 것.
옥녀교 옆 들머리에서 바데산 정상을 밟고 경방골로 하산하는 데 총 8.4km, 4시간 10분 걸렸다.
동대산~바데산 능선에서 본 동대산(왼쪽 뒤)과 가운데 경방골, 오른쪽의 바데산.
★오늘의 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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