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 산악기자의 무박 2일 불수사도북 도전기
종주? 그걸 하고 싶게 될 줄이야
월간<山> 출근 첫날이었다. 선배와 이야기를 하다 ‘종주 산행’이 주제가 되었다. 나는 암벽등반에 빠져 있었기에, 등반보다 종주가 좋다는 선배의 말에 궁금증이 생겼다. 선배는 그 이유로 ‘단순함’을 꼽았다.
그 말이 참 좋았다. 산을 걸으며 한 번에 한 가지 생각만 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렇게 산은 복잡한 머리를 싹 정리해 주었다. 그러니까 산을 걷는 동안 온갖 복잡한 생각을 던져버리고 지금 당장 하고 있는 움직임과 생각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아무튼 산에 가면 단순해지는 내가 좋아 산을 좋아했다.
그날 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는데 문득 ‘종주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 아침에 지유님한테 연락해야지’ 하고 잠시 종주에 대해 검색하다가 잠에 들었다.
서울등산학교에서 만나 6박7일간 설악 생활을 함께하며 자일의 정을 나눈 끈끈한 산 친구 지유님은 내가 아는 가장 열정적인 사람 중 한 명이다. 다수의 종주 경험과 트레일 러닝까지 섭렵한 산아가씨로 지유님이라면 나를 이끌어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단박에 들었다.
불암산 등산 중 등 뒤로 펼쳐진 야경에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 정상에 가서 실컷 보자며 뒤에선 발걸음을 재촉한다.
“지유님, 저 종주를 너무 해보고 싶어요. 종주 한 번만 데려가주실 수 있나요?”
“그럼 혹시 불수사도북 한 번 가실래요?”
1분 만에 답장이 왔다.
불수사도북에 대해 처음 들은 것은 약 석 달 전이다. 그때는 그 말이 뭔지도 몰랐고, 한동안 ‘불수사도국’이라고 이름도 잘 못 알고 있었다. 불수사도북은 서울 강북권의 5대 산을 연이어 오르내리는 종주로 불암산, 수락산,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을 통과한다. (약 43km)
무시무시한 설명에 “불수사도북, 이거 일반인도 가능한 거 맞나요?” 물으니, “우리는 일반인 아니고 산아가씨니까 가능합니다”라고 사기를 북돋는 대답이 돌아왔다. 일반적으로 18시간이 걸리는, 저녁에 시작해 다음날까지 밤을 꼴딱 새워 걷는 일정이라 체력이 걱정되었지만 왠지 못할 건 없어 보였다.
사패산 정상에서 마주한 파란 하늘. 오랜만에 찾은 여유다. 넓고 찬 바위에 자꾸만 눕고 싶어진다.
따뜻했던 야등의 추억, 불암산-수락산
전날 싸둔 배낭을 메고 6호선을 타는데 단체 톡방을 보니 다들 비슷한 마음인 듯하다. ‘두근두근’ 오늘의 대장 지유님과 나, 채원님, 미경님까지 등산학교 동기 4인의 ‘한글날 기념 불수사도북’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거북이 전략’을 선택했다. 천천히 느리게 가되 멈추지 않고 꾸준히 가자는 전략이다. 야등은 처음이었다. 새벽에 시작해 어둠이 점점 가시는 산행은 해보았지만 갈수록 더 어두워지는 야등은 또 달랐다. 어둠속 랜턴을 켜고 차곡차곡 올라가다 가끔 보이는 도시 야경을 내려다보고 감탄하기를 반복했다. 거북바위를 지나 불암산 정상에 도착하니 바람이 매섭게 불었다. 반짝이는 야경을 보며, 첫 야등이 종주라니 뿌듯하다는 생각을 했다.
가는 길, 바위가 나올 때마다 지유님은 “괜찮아요, 우리는 클라이머니까”하며 걱정이 안 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잠이 올 때는 산가를 불렀다. 가사를 잘 몰라 중간 중간 노래가 끊겼지만 웃음과 힘을 동시에 주는 효과 좋은 체력보강제가 되어주었다.
수락산 정상에선 옹기종기 모여 핫초코 한 잔을 나눠 마셨다. 우리는 한 모금씩 두 바퀴 돌리면 끝나는 소중한 한 잔을 나눠 마시며 추위를 녹였다. 전에 설악산 등반 끝나고 내려와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김용철 강사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이게 행복이지!”
불암산 정상, 시원하게 펄럭이는 깃발이 있다. 접지력 좋은 신발 덕에 바위를 오르내리는 데에 거침이 없다.
평양냉면 같은 종주의 매력, 사패산-도봉산
수락산에서 하산하며 이 종주에 시간제한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일몰시간이 걸리면 안전문제로 구조대에서 입산 제한을 하는데 지금 상황대로라면 빠듯했다. 여유롭던 마음이 소용돌이쳤다. 이미 예정보다 세 시간 늦은 시간이었고, 사패산을 지나 도봉산에서 보기로 한 일출은 순대국을 먹는 동안 떠버리고 말았다.
다행히 빠듯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도봉산이 시작되는 호암사 입구, 재정비를 단단히 하고 발걸음을 또 차곡차곡 쌓았다. 그렇게 1시간 30분을 계획했던 사패산을 40분 만에 돌파하고 한시름 놓은 채 사패산 바위에 등을 붙였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 10분의 짧은 쪽잠이었지만 조금이라도 자고 나니 개운했다.
“위이이잉~” 눈을 떠보니 엄지손가락만 한 호박벌이 내 머리 위를 빙빙 돌고 있다. 졸음을 못 이겨 도봉산 넘어가는 길목에서 잠시 눈을 붙였는데 벌이 우리를 깨워 준 것이다. ‘10분 있다 깨워 주겠다. 푹 자라’ 해놓고 같이 잠들어버린 나였다. 신기하게도 벌은 정확히 10분 뒤인 10시 20분에 우리를 깨워 주었다. 알람요정이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수락산 하산 후 두 명이 중탈했다. “이걸 왜 하는 걸까? 생각했다”는 미경님의 말에 “오! 그게 바로 종주의 본질입니다”라는 지유님의 답변에 다 같이 웃었다. 걸으며 생각해 보니 상당히 평양냉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양냉면을 처음 먹었을 때 바로 그런 생각을 했었다. ‘이걸 왜 먹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하고도 며칠 지나면 그 맛이 떠오르는 것이 평양냉면의 매력이다. 왠지 종주가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유님도 맞다며 미소를 지었다.
‘오늘 산행이 끝나고 며칠 지나면 다시 종주를 떠올리고 있을까?’
끝나고 보면 알겠지. 우이동으로 내려가서 먹는 점심 메뉴리스트에 평양냉면을 올려두고 남은 사패산을 사뿐사뿐 걸어 내려갔다.
우회를 고민하다 정면돌파한 Y계곡. 재미있는 길이었지만 종주 중에 가기엔 체력이 빼앗기는 ‘굳이’ 싶은 구간이었다. ‘굳이 ‘왜’ 여기로 가야 하는가 해서 ‘why와이’계곡이 아닐까’하는 의견이 나왔다.
공기는 깔끔하고 바람은 솔솔 불고 파란 하늘에 뭉게뭉게 구름, 단풍이 들락말락 눈치보고 있는 나무들까지 산행하기 딱 좋은 초가을 날씨였다. 새빨갛게 물든 잎을 잔뜩 가지고 있기에 사진을 찍으려 자세히 보니 바로 옆 가지는 아직 초록잎이다. “한 나무에서 자란 가지가 어찌 이렇게 다른지 신기하다”고 얘기하며 가을 산행을 즐겼다. 신선대에 도착하니 12시가 넘었다. 15시까지 하산을 목표로 집중해서 발을 움직였다. 중간에 회룡역에서 사온 감자떡을 나눠 먹을 때 빼고는 한 번도 쉬지 않았다.
앞만 보고 달려, 백운대 질주, 북한산
우이동으로 내려와 우동을 먹으며 기존 계획대로 불광역으로 하산하기는 무리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북한산 뒷구간은 전부 오르락내리락 하는 암릉 구간인데 어두울 때 가기엔 위험하다는 이유였다. 그때부터 우리는 백운대를 목표지점으로 두었다. 북한산 정상인 백운대를 찍으면 비록 완벽한 종주는 아니지만 마음이 충분할 것 같았다. 그렇게 정리하고 비장한 마음으로 용덕사로 향했다.
15시 45분 들머리에 진입. ‘17시 넘어서 구조대랑 마주치면 내려보낸다’는 무시무시한 정보를 입수한 우리는 미친 듯이 앞만 보고 걸었다. 그것만은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오르는 길에 만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늦게 올라가네요. 안전 산행하세요”하는 따뜻한 잔소리를 건네는데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머릿속엔 오직 17시 안에 구조대를 통과해야 한다는 마음뿐이었다. 꽤 가파른 돌길을 지나 지친 몸을 이끌고 가니 속도가 느려질 법도 한데 지유님은 마치 파쿠르를 하듯 돌을 밟아 올라갔다. 그 뒤를 똑같이 밟아 올라갔다. 몇 시인지 시간은 묻지 않기로 했다.
“그냥 가는 만큼 가는 거야.”
아침보다 확연히 무거워진 무릎을 다른 생각 없이 들고 내렸다.
산 경험도 많지 않고 길치인 탓에 종주 내내 대장의 뒤만 따라갔다. ‘몇 km면 얼마나 걸리겠다’는 것도 잘 몰랐고, ‘어디를 지나면 곧 어디다’ 하는 지리적 지식도 거의 없었다. 경험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나에겐 이에 대비한 능력이 있다. 앞사람이 어떤 페이스로 가든지 그걸 꽤 맞출 수 있다는 것이다. 길을 잃으면 안 되니까. 악착같이 따라 붙는다. 영봉으로 가는 길에서 아주 유용했다.
오르락 내리락 암릉구간의 연속이다. 햇빛 쨍쨍하고 바람 선선한 가을 날씨에 초록잎들이 반짝거린다.
영봉까지 2km, 하루재 지나 구조대까지 약 2.5km. 속으로 불가능하다 결론 내리고 말았다. 한참을 걸었고 숨은 점점 차는데 ‘이제 1km 왔다고?’ 믿기지 않았고 아주 슬펐다. 머릿속엔 왠지 칼같이 돌아가라고 할 것만 같은 구조대의 모습이 그려졌고, 상상만으로도 살짝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일단 가.”
혹여 ‘우리의 진심이 전해져 얼른 지나가라고 눈감아 주실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꿈을 품고, ‘너무 실망하지 말자’고 스스로 마음을 다독이며 최선을 다해 걸었다.
영봉을 지나 하루재가 나온 순간, 시간은 16시 47분이었다. 드디어 아는 길이었다. 미친 듯이 뛰었다.
“이게 바로 트레일러닝?”
백운대 정상에서 보는 인수봉. 일몰시간이 다 와가는데 아직도 등반하는 팀이 남아 있었다.
극적으로 16시 58분에 구조대를 통과했고 우리는 이번 산행 중 가장 행복한 미소를 나눴다.
“해냈다!”
이날 우리는 백운대 정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몰을 보았다. 정상에 올라서니 오늘 걸어온 길이 한눈에 보였다. 뿌듯한 마음보다는 그냥 기분이 무척이나 좋았다. 따지고 보면 완주를 못 한 것이지만 우리는 굳이 따지지 않기로 했다. 불수사도북을 깊이 알지 못하는 입장에서 보기에는 다섯 개의 산을 다 갔으니 성공이었다. 아니, 굳이 성공이 아니어도 행복했다. 멋있게 지는 해, 하루종일 걸어온 산, 눈앞에 보이는 인수봉, 함께 걸은 지유님까지 그 순간이 영영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또 다시 김용철 강사의 말이 생각났다.
“성공보다 행복하기!”
우리는 정말 행복했다.
무사히 구조대를 통과해 백운대피소에 도착했다. 지친 몸으로 환호했던 순간이다.
무모한 도전은 없다
처음 불수사도북을 한다고 했을 때 회사 선배는 무모한 도전이라고 했다. 그리고 실제로 완주에 실패했다고 해야 맞지만 오늘 하루를 돌아보았을 때 신기할 정도로 완벽했다. “무릎이 아플 거다” 모두가 이야기했지만 신기하게도 무릎이 아프지 않았다. “힘들어서 북한산은 포기할 거다”라고 옆에서 말했지만 백운대에 오르고서도 ‘시간만 더 있었으면 완주하고도 남았을 텐데’ 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솟았다.
1년 전 산티아고 순례길이 생각났다. 아버지는 “이틀 걷고 포기할 줄 알았다”며 놀랐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하기로 한 것을 끝까지 해냈다는 것에 스스로 감명을 받았다. 아마도 순례길에서의 훈련이 지금의 체력을 만들어준 것일 거다.
백운대 정상에 선 오늘의 대장님. 오늘 걸어온 길을 한눈에 담으며 웃고있다.
‘어쩌면 나 타고난 산악인이 될 몸인가?’ 하는 생각을 잠깐 하다 ‘겸손하자’고 생각을 살포시 접는다. 그러나 어디에선지 두근거리는 마음이 피어난다.
‘단순함’을 찾으러 종주를 시작했지만 예측하지 못한 즐거움들로 가득한 22시간을 보냈다.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무언가 가득 찬 기분이 들었다. ‘아쉬움’이 들어갈 틈은 없었다.
종주가 끝난 지 이틀째 되는 날, 나는 평양냉면을 먹으러 남대문에 갔다. 종주는 ‘평양냉면’이 맞았다. 종주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채 평양냉면을 들이키며 설악 대종주를 꿈꿔 본다. 이렇게 또 다시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인다.
강북5산(불수사도북) 종주 일정
2024.10.08.~09.
10.08(화)
22:00 화랑대역 집합
22:30 백세문 출발
10.09(수)
00:15 불암산 정상
03:40 수락산 정상
06:10 수락산 하산
06:30 명가 순대국 아침식사
08:10 사패산 출발
08:30 호암사 통과
09:10 사패산 정상
11:30 포대능선 정상
11:45 Y계곡 통과
12:20 도봉산 정상(신선대)
14:40 도봉산 하산
15:00 길동우동 점심식사
15:45 북한산 출발
16:45 영봉 통과
16:48 하루재 통과
16:55 구조대 통과
17:25 백운대피소 통과
17:50 북한산 정상(백운대)
18:25 백운봉 암문 통과
19:00 용암문 통과
19:40 도선사 도착
총 소요시간 22시간
산행 중 생긴 궁금증
야등 중 나무에 붙은 반사스티커 하나로 알바를 피할 수 있었다. 이 스티커는 어떤 원리로 이렇게 작은 빛에 밝게 빛날까?
반사는 일반적으로 난반사, 거울반사, 재귀반사로 구분된다. 그중 안전 소재로 쓰이는 반사 스티커는 재귀반사의 원리를 이용한다. 재귀반사란 빛이 들어온 방향으로 다시 빛이 돌아가는 반사를 말한다. 랜턴을 머리에 달고 어두운 길을 걷다 머리 위 불빛이 재귀반사 스티커를 비추면 빛을 비춘 방향으로 되돌아와 스티커를 쉽게 볼 수 있는 것이다.
산행 중 단 것을 먹으면 갈증이 온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온음료를 마시는 것은 괜찮을까?
땀을 많이 흘리는 등산 중이라면 이온음료를 마시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땀으로 수분 외에 우리 몸에 필요한 여러 가지 이온들이 함께 배출되기 때문이다. 이온음료에는 전해질과 다양한 이온이 포함되어 있어 오히려 갈증 해소와 탈수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산행을 하다보면 배낭에 종을 매단 분들이 종종 계시다. 종을 왜 매다는 걸까?
야생동물들 때문이다. 곰이나 들짐승들은 쇳소리를 싫어하며 인기척이 들리면 알아서 피한다고 한다. 실제로 일본에는 종을 달고 난 후 야생동물로 인한 피해 사례가 급격히 줄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종소리가 시끄럽다고 느끼는 등산객이 많으며 발자국 소리만으로도 도망가는 동물들이 대부분이기에 종을 매다는 것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오늘의 날씨★
'등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X맨은 노루궁뎅이 찾아왔나?” 그가 남긴 GPS를 따라가다 [낭만야영 대미산] (4) | 2024.11.21 |
---|---|
[만화등산백과 가벼운 백패킹] 배낭을 가볍게 만들어보자 (1) | 2024.11.20 |
< 2人 2色 가을에 가기 좋은 제주 자연휴양림> 서귀포자연휴양림 (2) | 2024.11.18 |
사막, 해변, 절벽 길까지 지질 트레킹 천국, 대청도 (13) | 2024.11.16 |
인생 들머리 잘못 들었지만…산이 길을 내어주다 [보호 처분 청소년 백두대간 일시종주] (11) | 2024.1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