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박 4일간 범선 타고 독도 항해…술 취한 일행 때문에 위기일발 순간도
2005년부터 올해까지 20년째 매년 독도를 방문했다. 지난 6월 17일 저녁 9시, 범선 코리아나호 정채호 선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울진 후포항으로 오라는 말을 듣고, 급하게 카메라를 챙겼다. 아내에게 독도 다녀올 테니 옷가지를 챙겨 달라고 하니, 지난주에 남해안 요트 항해하고 어제 울진 구산항을 다녀온 사람이 이 밤에 또 간다고 하니 한소리 한다.
다음날 아침 일찍 짐을 챙겨 출발, 후포항에 도착하니 오후 3시 30분이다. 배에는 선장님과 기관장, 산악인 손칠규 선배, 러시아인 선원 씨면, 안양에서 온 태훈씨까지 먼저 와서 출항 준비에 한창이다. 선원들과 반갑게 인사한 뒤 후포에 귀향해서 사는 친구 권종석 선생이 마리나 부두로 와서 잠깐 보고 승선했다.
이번 항해는 안재영(헤이리 영토문화관 독도) 관장팀 31명과 선원 6명으로 총 37명이다. 2024년 6월 18일 오후 4시 15분 후포항에서 출항했다. 항구를 빠져나오니 동해 넓은 바다에 검푸른 파도가 일렁이며 뱃전을 철썩인다.
범선 항해 중 만난 동해안 일출. 독도를 배경으로 일출을 보고 싶었으나, 약간의 차이로 독도 못미쳐서 해가 떠올랐다.
범선의 속도는 8~9마일로 시간당 16km 정도를 간다. 시야가 좋아 우현으로 왕돌초를 지난다. 왕돌초는 후포리 근해의 동서 21km, 남북 54km 길이의 거대한 수중암초이다. 수심이 얕은 곳은 5m, 깊은 곳은 50m에 이른다. 육지에서 23km 떨어진 곳에 있는 126종의 해양생물이 서식하는 천혜의 수중암초다.
주변에 어장이 많아 이리저리 피하면서 물살을 가른다. 들물이 왕돌초 해산海山에 부딪혀 동쪽과 서쪽 바다의 물살이 전혀 달라 육지 쪽으로 세차게 밀려온다. 우리 배는 안정된 속도로 파도를 밀어낸다.
어두워지니 근해에는 고깃배가 여러 척 나타났다. 4시간 정도 항해하자 육지와 멀어져 어선은 사라지고 망망대해를 범선 홀로 나아간다. 음력 13일이라 달빛이 휘영청 온 바다에 내려앉아 배의 길잡이가 되어주고, 스피커로 흘러나오는 “아엠 셀링~” 노래에 맞추어 바람과 파도, 석양과 어두움, 점점이 보이는 몇 개의 별, 아스라이 밀려오는 추억들이 머리를 스치며 밤바다에 몸을 맡긴다. 아주 멀리 불빛이 희미하게 보이는데 어선이 아니고 화물선이다. 보름달이 밝으면 오징어가 잡히지 않는다.
국내 유일의 범선 코리아나호 항해사들.
20시부터 답사단을 모아 놓고 한 시간 정도 선상 강의를 했다. 단원 중에는 독도 관련 전문가와 비전문가가 섞여 있어, 수준을 맞추기가 어려워 여러 독도 이야기를 두서없이 했으나, 다행히 좋은 반응이라 신나게 강의할 수 있었다.
어두운 밤의 범선 항해는 나름의 맛이 있다. 배가 흔들림이 없어 밤바다를 가르며 달리고, 내 몸에 와서 안기는 바람의 촉감, 망망대해의 거침없는 풍경, 순간순간이 힐링이며 재미있다.
독도 배경으로 일출 찍고 싶었으나
단원들은 그룹별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른다. 범선의 낭만이다. 필자도 흐름에 몸을 맡겼다. 트럼펫으로 ‘홀로 아리랑’을 부니, 밤바다가 숙연해진다. 마음에 울컥 솟구치는 무언가를 뒤로하고 잠을 청한다.
독도의 해녀바위와 부채바위.
나는 연일 강행군으로 몹시 지쳐 있었다. 선실의 긴 의자에 누워 파도의 흔들림에 몸을 맡기고 잠시 눈을 붙였다. 새벽 1시경 바다를 보러 선창으로 나오니, 손칠규 선배와 선원 씨면이 자정부터 키를 잡고 운항하고 있다.
좌현 멀리 울릉도 불빛이 해무 사이로 희미하게 보인다. 배의 속도를 빠르게 하기를 당부하고, 새벽 4시에 시계 알람을 맞춰 놓고 잠깐 누웠다 일어나니 파도와 해무가 올라와 배 위에는 물기가 가득하다.
먼 하늘에 조금씩 붉은 여명이 비친다. 오늘은 해무가 두껍게 끼어 정상적인 일출을 보기 어렵다. 앞바람과 낮은 엔진 출력으로 천천히 속도를 냈다. 새벽 4시, 일출이 가까워 오건만 독도에 도착하지 못해 기대했던 멋있는 독도 일출 사진을 찍기는 어렵게 되었다. 새벽 4시 50분 운해 위로 붉은 해가 떠오른다. 독도는 보이지 않고 해가 떴지만, 일출은 장관이다.
망양대와 독도 등대.
5시경 멀리 보이는 독도 근해에 오니 해가 중천에 떠 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배는 계속 나아간다. 선장께서 독도 항해 지휘권을 나에게 주었고, 독도 안내 해설을 하며 항해를 한다.
동도와 서도 가운데까지 배를 몰고 가서 우현으로 배를 돌려 서도 코끼리바위를 돌아 물골 방향으로 진행했다. 아주 천천히 독도를 한 바퀴 돌며, 마이크를 잡고 독도의 여러 바위 이름과 지형, 시설물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7시 30분경 동도 부두에 배를 대려고 하니 파도가 밀려와 배가 거칠게 밀린다. 독도경비대원이 줄을 잡아주어 독도 부두에 배를 대고, 동도 망양대까지 올라가서 동·서도를 조망하면서 식물과 주요시설을 안내했다.
독도의 등대를 관리하는 이는 시인이자, 포항지방 해양수산청 직원인 김현길 주무관이다. 어제부터 지인인 독도 등대 시인 김현길씨에게 여러 번 연락했는데 “전화가 꺼져 있다”는 메시지만 나와서 결국 만나지 못했다. 나중에 포항에 있다는 전화를 받았다.
독도 등대와 괭이갈매기.
멀리 울릉도에서 출항한 씨스타Ⅱ호가 독도에 접근한다. 우리 배를 빨리 빼줘야 하는 상황이다. 8시 50분 범선에 승선해 9시 독도를 출항한다. 배 앞줄만 부두에 걸어 놓고 뒷부분을 밀어내는 식으로 부두에서 빠져나오는 방식이다.
배의 앞줄이 잡혀 있으니 승선하는 데 문제가 없어 선원이 줄을 풀려고 부두에 내려갔는데 파도와 배의 미는 힘으로 부두에 걸어둔 앞줄이 터져버렸다. 이렇게 배가 부두에서 멀어진 진기한 사고가 발생했다. 선원은 승선하지 못하여 119대원의 고무보트를 타고 동서도 해상에 대기한 우리 배에 올라탔다. 여객선에 자리를 비켜주느라 급하게 출항해서 생긴 일이다.
바다가 잔잔해 배의 제일 앞쪽 돛인 제노아 돛을 펼치고 2시간을 항해했다. 와중에 바람 방향이 바뀌어 돛을 내리고, 울릉도 근해에 오니 오후 3시 40분이다. 돌고래가 보이는지 갑판에 나가 여러 번 두리번거렸으나 볼 수 없었다. 햇볕이 따가워 돌고래 찾기를 포기하고 선실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잿빛 괭이갈매기 새끼.
오늘 울릉도 근해 항해는 사동항 부근까지 가서 좌현으로 울릉도를 돌아 현포항으로 갈 예정이다. 가두봉 가까이 가니 비행장 공사로 멋진 자태를 뽐내던 가두봉이 헐어내고 잘려나간 아픈 상처를 드러내고 있다.
몇 해 전 큰 태풍으로 사동항 방파제가 부서지고, 테트라포드가 도로 위에 나뒹굴고 대형 여객선이 침몰한 기억이 있다. 지금은 태풍과 파도를 막는 천연 방파제인 가두봉을 없애는 공사가 한창이다. 주민을 위해 비행장은 있어야겠지만, 후손에게 물려줄 귀한 땅을 잘라내 버리는 우를 범하는 것 같아 무척 아쉽다.
도동항을 지나 관음도와 죽도 사이를 항해하여 삼선암을 돌았다. 천부항 부근에서 잠수 작업을 하던 배가 우리 배에 접근해 손을 흔들고 돌아간다. 추암 송곳산을 지나 현포항 좁은 방파제 사이로 들어가 관용선 전용부두에 정박했다.
20여 년간 독도를 매년 왔지만 올해 처음 본 섬괴불나무 열매.
술 취해 선실에 오줌 누는 이를 어찌할까
울릉도 현포항에 있는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김윤배 대장과 직원들이 나와서 환대해 주었다. 김윤배 대장이 직접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설명을 자세하게 해주었고 식사까지 챙겨주어 삼겹살로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범선이 육지에 정박하면 대원들 개인 시간이 주어진다. 삼삼오오 모여 환담하며 노래도 부르고 술도 마시는 자유시간이다. 다만, 선장에게 보고하고 움직여야 한다.
술을 못 마시는 나는 혼자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선실에서 누워 쉬는데, 밤 12시경 술에 취한 대원이 인사불성이 되어 배와 부두 사이 바다에 떨어졌다. 다행히 배와 부두 사이가 좁아서 가슴까지 떨어져 걸린 것을 여러 명이 함께 당겨서 끌어올렸다. 큰 사고를 면한 것. 만약 바다에 떨어졌다면 사망사고로 이어진다.
독도 망양대를 답사한 단원들.
여러 명이 부축해서 선실에 데리고 왔는데, 자기 방으로 가지 못하여 내가 누운 반대편 의자에 눕혔다. 술 냄새를 풍기며 의자에서 떨어진 그는 이곳저곳에 쿵쿵 부딪힌다. 술에 취한 사람이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며 누워 있는데, 그가 선실에서 룸으로 가는 계단에 냅다 오줌을 눈다. 달려가 고함을 질러 멈추게 했다.
나를 보더니, 내 쪽으로 오줌을 갈긴다. 이런 망나니가 있나. 갑판으로 나가 대원 여러 명을 불러 수습하는데, 그 사이에 내 카메라 가방을 집어 던져 놓았다. 다행히 고장은 안 났다. 선장이 소독하고 수습을 하려고 하니 그는 술에 취해 도저히 감당이 안 된다. 밖으로 나가면 바다에 떨어질 것 같아 그를 선실에 다시 눕히고, 결국 나는 갑판으로 나왔다. 침낭을 가지고 나와 갑판에 자리를 깔고 누웠는데 모기가 윙윙대어 잠을 설쳤다.
아침에 그를 불러 본인의 안전을 위해 하선을 명령했다. 그는 사과했으나, 어젯밤 일어난 사건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직업은 변호사라고 한다. 내가 자세히 적은 이유는 자제하지 못하고 마신 술이 자신의 목숨과 맞바꿀 수 있다는 것 때문이다.
동도 동쪽 해식 동굴지대.
새벽 4시 20분경 어김없이 아름다운 일출이 갑판 위로 살짝 비친다. 일어나기 싫어 머리맡에 둔 스마트폰 카메라를 열어 손을 삐죽 내밀고 사진 몇 장 찍고선, 이불을 덮었다. 바다에서 보는 울릉도는 무척 조용하고 아름답다. 현실의 어려움은 어느덧 잊혀지고, 동화의 나라에 온 것 같다.
나는 개인 일정이 있어 범선에서 내려 여객선을 타고 육지로 돌아왔다. 사동항에서 대형 크루즈 선박인 썬플라워호를 탔다. 선내는 널찍하고 쾌적하다. 오후 3시 30분 출항해서 오후 8시 후포항에 도착했다.
이번 답사는 3박 4일로 짧았지만 이틀간 선실(살롱)에서 자면서 휘영청 달빛 아래 감성 있는 항해를 할 수 있었다. 뜻깊은 독도 답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강렬한 아침 햇살에 독도는 아름다웠다.
독도 절벽에 피어난 해국.
범선 코리아나호.
info
국내 유일 범선 코리아나호
▶ 전통적인 범선帆船은 돛Sail을 이용해 바람과 조류의 힘에 따라 항해했다. 근래의 범선은 엔진을 달아서 원동력을 얻고, 돛은 항해에 보조 역할을 한다.
▶ 국내 유일한 범선인 코리아나호는 길이 41m, 폭 7m, 무게 135톤, 마스트(돛대) 4개이며 최대 높이 30m, 침실 40개, 최대 승선 인원 72인, 엔진 200마력이다. 1983년 네덜란드에서 만들어졌으며, 배 밑바닥엔 킬keel이라 부르는 납 280t이 들어 있어 어떤 상황에서도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정재호 선장은 1994년 범선을 구입해 ‘코리아나호’로 명명했다.
독도 식생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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