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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한국에서 가장 많이 등산한 사람은? 디스크에 당뇨 걸린 66세 아저씨

by 白馬 2024. 7. 16.

2023년 등산앱 산행기록 1위 안희경

 
 

극한 산행은 단순히 체력만 좋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다. 산을 대하는 올곧은 태도와 이념, 탄탄한 지식과 경험을 두루 갖춰야만 안전히 산행을 마칠 수 있다. 넷플릭스 인기 예능 <피지컬100>에서 피지컬이 뛰어난 이를 탐구했듯, 월간<山>은 ‘산지컬’이 뛰어난 이들을 만나본다. 

 

약간 뜬금없는 궁금증이 들 때가 있다. 가령 고속도로에서 차를 몰고 지나가다가 너무나 멋지게 생긴 산의 이름이나 기사를 보다가 댓글에서 내부관계자나 전문가가 아니면 알 수 없을 내막들을 줄줄 읊는 사람들의 정체 같은 것들 말이다.

 

산꾼들이라면 ‘트랭글’에서 사사롭게 궁금증을 자아내는 것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트랭글은 산행지도어플로 간편하고 무료라 가장 많이 사용된다. 여기선 자신의 산행 기록을 자동으로 저장해 다른 이들과 비교할 수 있다.

 

이 기록을 쭉 살펴보면 전체 랭킹도 확인할 수 있다. 걸은 거리나 오른 봉우리 수 등을 종합한 후 점수로 환산한 것이 월별, 연도별로 제시된다. 2023년 기준으로 1위인 사람의 닉네임은 ‘Tory story’다. 회원정보로 들어가면 자그마치 총 운동거리가 5만6,000여 km, 수집한 배지는 1만4,000여 개(등정 봉우리, 장거리 걸음 수 등의 기준으로 수여된다), 산행기록은 2,300여 개에 달한다.

 

도대체 어떻게 산을 올라야 이런 기록을 만들 수 있을까? 우연히 그의 정체를 찾았다. 이름은 안희경, 올해 66세의 노장이다.

 

트랭글에 기록된 안씨의 백양산 등정기록.

 

2023년 백양산 ‘370번+’ 올라

부산 백양산에서 안씨를 만났다. 트랭글에서 확인해 본 결과 그는 유독 백양산을 집요하게 올랐다. 거의 하루걸러 하루 올랐는데, 그 기록이 범상치 않다. 코스가 일반적이지 않다. 올랐다가 내려왔다가 다시 오르기도 하고, 빙빙 돌아서 다시 오르기도 한다. 마치 발로 백양산 지도 위에서 궤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 같다.

 

“그래서 소속 산악회 부산지부장이 백양산을 하루에 3~4번은 기본으로 쓸고 다닌다고 ‘백양산 빗자루’란 별명을 붙여줬어요. 별명이 퍽 맘에 들긴 한데 빗자루라고 하면 어감이 뭣해서 제가 좋아하는 소설 <해리포터>에 나오는 마법빗자루의 이름을 따 ‘님부스’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있죠.”

 

트랭글은 12시간마다 봉우리 등정 기록이 초기화된다. 즉 처음 정상에 오른 후 12시간 동안은 아무리 정상을 오르락내리락해도 한 번 오른 걸로만 셈해 준다. 12시간 후에 올라야 또 한 번 정상에 오른 것으로 된다. 그런데 안씨는 2023년 백양산 등정기록이 무려 370번에 달한다. 하루에 한 번 이상 백양산을 오른 것이다.

 

안씨의 산행 장비. 경량속공, 그리고 애국이 키워드다.

 
 

선암사 들머리에서 만나 함께 백양산을 오르며 그에게 산 이야기를 청했다. 그의 뒤를 따라 걷는데 보법이 무척 모범적이다. 좁은 보폭의 잰 걸음으로 계단을 피해 경사로를 이용하며 무릎을 취대한 굽히지 않고 운행한다. 그래서 그가 발을 놓은 곳만 따라 밟으니 몸에 무리도 덜 가고 쉽게 지치지 않았다.

“이곳 백양산은 슬픈 역사가 있는 곳입니다. 2000년대 초반에 산불이 나면서 아예 민둥산이 됐었어요. 그때 철쭉군락지를 만들었는데 이게 대박이 나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 산이 됐죠.”

그의 입에선 쉴 새 없이 부산의 산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애진봉이란 봉우리는 원래 이름이 없었는데 산불 이후 부산진구를 사랑하는 봉우리란 뜻으로 새로 명명됐다는 것, 백양산 봉우리는 총 11개라는 것, 낙동정맥은 어디까지 이어지고, 금백종주를 비롯해 부산에서 자기 생각대로 길게 이어 걸을 수 있는 산들은 어떤 게 있다는 등. 모든 얘기가 산으로 시작해, 산으로 끝이 나고 있었다. 

 

안씨는 작년 3시간 19분 만에 풀코스를 완주한 건각이다.

 

“사람에 대한 얘기도 해볼까요? 고향은 어디신가요?”

“거제도에서 태어났어요. 옥녀봉 아래 작은 마을에서 초중고를 다 다녔어요. 그리고 부산에서 전자공학 전공으로 대학 공부를 하고 서울로 와서 LG, 당시에는 금성반도체에 입사했죠. 당시에는 반도체가 무척 생소한 물질이었어요. 언론에서 막연히 ‘검은 쌀’이라며 미래 먹거리라고 떠드는 것만 알고 있었죠.”

그의 말을 따라 1970년대로 들어선다. 거제도의 한 아이는 신선한 해삼과 성게알, 생선을 마음껏 먹으며 자랐다. 그땐 생선을 사서 먹는 게 이상하던 시절이었다. 놀이터는 해발 555m의 옥녀봉. 그러니 자연스럽게 몸이 튼튼하게 자랄 수 있었다.

 

청년이 된 그는 반도체회사에 입사했는데 엉뚱하게도 정보통신분야에서 일을 하게 됐다. 회사 수뇌부가 그에게 미국에서 유학하고 관련 사업을 맡아 달라고 청했다. 그렇게 통신사업 시스템엔지니어의 길을 걷게 됐다. 그렇게 그가 38년간 걸은 걸음이 남긴 것이 지금의 LG유플러스다. 통신사업 시스템은 엔지니어링과 설치, 관리의 세 가지 분야로 나뉘는데 그는 이를 거의 도맡아가며 일했다.

 

백양산 정상에 선 안씨.

 

“1982년에 미국에서 반전자교환기를 도입했어요. 그 전에는 TV 드라마 보면 ‘드르륵 드르륵’하고 다이얼을 회전해서 전화 거는 기계식 교환기를 썼었죠. 아 그땐 정말 전화기가 귀했습니다. 그래서 자식들이 전화기를 선물하면 장롱에 넣고 자물쇠로 잠가놓곤 했어요.”

 

안씨의 할머니도 그랬다. 전화기를 선물해 드리고 회사에 출근해 이것이 잘 작동하나 전화를 걸었는데 할머니가 받지 않았다. 이상해서 직접 가보니 귀한 거라고 장롱 안에 전화기를 ‘모셔놓은’ 상태였다. 할머니는 손자가 오자마자 “장롱 안에서 뭐가 자꾸 울려서 무섭다”고 했다. 그래서 앞으로는 전화가 울리면 받으면 된다고 웃으며 알려주곤 돌아나왔다. 

 

허리 다친 그, ‘도봉산’을 처방받다  

시골 어촌에서 건장하게 자란 그였지만 주6일제 대기업 생활은 녹록하지 않았다. 젊은 패기로 피곤한 줄 모르고 일하던 어느 날 서울 혜화전화국에서 핵심부품 하나가 고장 났다는 연락이 왔다. 그 부품은 반도체로 당시에는 무겁고 거대한 대형 원판이었다. 차로 이동해 트렁크에서 이 부품을 꺼내려고 힘을 주는 순간 허리에 ‘찌릿’하고 신호가 왔다. 엄청나게 아픈 것은 아닌데 허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조금 뻐근하기만 해서 하루 자면 괜찮겠다고 생각했는데 석달이 지나도 낫지 않았다. 강남성모병원으로 가니 추간판탈출, 즉 디스크 진단이 나왔다.

 

금정산 고당봉에 오른 안씨.

 

“외과적 수술로는 척추를 되돌리기 어렵다고 했어요. 그래서 고민하고 있는데 전무님이 제가 허리를 다쳤다는 걸 제 동기들로부터 듣고 한 곳을 소개해 주셨죠. 신체균증협회란 곳이었는데 3주 동안 이곳에서 마사지를 비롯해 비수술적치료를 받았죠.”

 

그런데 3주 동안 같은 치료를 반복해도 영 차도가 없었다. 여전히 계단을 걸어갈 때면 허리에 전기가 통해 옆으로 게걸음으로 내려가야 했다. 3주가 되는 날 그를 치료해 주던 이는 “오늘 변화가 느껴질 것”이라고 장담했다. 안씨는 속으로 “썩을 변화는 뭔 놈의 변화”라며 미심쩍은 눈빛으로 협회 건물을 떠나 을지로3가역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첫발을 내딛는데 전혀 고통이 없었다. 게걸음을 걷지 않고 정상 보행을 해도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그분의 마지막 처방이 ‘도봉산’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도봉동에 살고 있었고 토요일 오전까지 일하던 때라 토요일 오후에 시간을 내서 도봉산을 올라갔다 오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이게 마지막 처방이니 이걸 끝까지 지키랍디다. 그래서 일주일에 최소한 한 번은 도봉산을 갔다 오려고 노력했어요.”

 

그래서 이후로는 줄곧 동네 뒷동산인 도봉산을 올랐다. 그땐 막힌 곳도 없어서 자운봉과 신선대에 있는 소나무에 걸터앉아 무아지경으로 시간을 보내곤 했다. 도봉산은 꽤 험한 산인데 그는 한낱 동네 뒷산으로 여겨 등산화도 신지 않고 산보 가듯이 올랐다.

 

세계 6대 마라톤 중 하나인 시카고 마라톤에 출전해 완주 메달을 받았다. 그는 6대 마라톤 완주도 목표로 삼고 있는데 현재 도쿄와 뉴욕, 런던 3개 대회만 남겨두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서울의 삶을 정리하고 경상도에서 일하게 됐다. 낙동강 자락에 있는 LG텔레콤 관제센터 센터장을 맡았다. 단 1분이라도 전화가 안 되면 난리가 나는 정보화시대. 그래서 그는 늘 24시간 긴장상태였다. 그래서 베개 아래에 휴대폰을 넣고 잤다. 그의 아내는 “내가 흔들어 깨워도 안 일어나면서 휴대폰으로 업무 연락이 오면 마치 강아지처럼 벌떡 일어난다”고 말했다. 

 

지금이야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그땐 그만큼 신경과민에 스트레스가 심했다. 거기다 운동부족도 겹쳤다. 그래서 디스크에 이어 이번엔 당뇨 증세가 그의 발목을 붙잡으려 하고 있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마라톤이다. 2002년, 전국이 월드컵으로 환호할 때 그는 춘천마라톤에 처음으로 출전했다. 그리고 지난해까지 총 11번 풀코스를 완주했다. 춘천마라톤 홈페이지 명예의전당에도 등재돼 있다. 흥미로운 건, 2002년 4시간 16분 걸렸던 기록이 시간이 갈수록, 그리고 늙어갈수록 더 빨라져 2023년에 가장 최단인 3시간 19분 13초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그는 춘천마라톤 명예의전당에 헌액돼 있다.

 

장거리종주 시작하자 마라톤 기록 단축돼

“마라톤을 위해서 훈련한 곳이 바로 이 백양산입니다. 이곳 일대가 임도가 잘 발달돼 있어서 런닝 훈련하기에 참 좋아요. 헬기장에서 앵진봉, 그리고 백양산 방면에 376계단 등 오르막내리막과 왕복 스피드 훈련을 많이 했죠. 그래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저한테 ‘백양산 주인이시죠’하고 말을 건네곤 했어요. 트랭글에서 백양산 최다 등정자가 저로 기록돼 있으니 알아보는 거죠.”

 

그는 산행도 상당히 늦게 시작했다. 트랭글에 있는 ‘초보클럽’ 클럽장이 그를 산으로 이끌었다. 거기서 서울 강동6산으로 무박종주의 맛을 봤다. 사람들과 같이 밤새워 걷고 밥 먹는 것이 퍽 재미가 있었다.

 

다시 부산으로 내려온 뒤 금정산과 백양산을 잇는 금백종주를 했다. 마라톤 풀코스를 뛸 정도로 몸이 준비된 상태였기에 그다지 힘이 들지 않았다. 이후에는 산악회 J3클럽 부산지부 지부장과 연이 닿아서 부산 지역 장거리종주는 모두 다 했다. 그리고 가장 큰 변곡점, 영남알프스 태극종주 120km에 도전하게 됐다. 

 

“그것도 8월, 혹서기에 했어요. 정말 장난 아니었습니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고 바람 부는 가지산인데 거기에 바람 한 점 없었어요. 너무 더워서 쉴 땐 응달에 있는 바위를 안고 있어야 했죠. 그렇게 날머리에 섰어요. 놀라운 건 뭔지 아세요? 종주산행이 재미있어서 마라톤을 위한 스피드나 인터벌 훈련을 안 했거든요. 그러고 춘천마라톤에 갔는데 역대 기록 중 가장 좋은 기록이 나왔어요. 3시간 19분이죠. 마라톤에선 기록 1분 단축하는 것도 정말 힘들거든요.”

 

안씨는 험한 산행을 시작하면서 마라톤 기록이 더 좋아졌다고 한다.

 

그는 “목표가 사람을 움직인다”고 했다.  그래서 늘 목표를 세운다. 대기업에서 오래 근무하면서 들인 버릇이라고 했다. 허황된 목표가 아니라, 자세하게 분석과 예측을 거쳐 ‘달성 가능한’ 목표를 세우고 이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다. 

 

“땀은 내공 쌓기의 지름길”

산행도 그렇다. 누군가 부산어린이대공원에서 백양산 정상까지 40분 안에 끊으면 우리나라 어느 종주길도 다 걸을 수 있다고 말하자 이를 목표로 삼았다. 처음에는 51분이 걸렸고, 39분 안에 돌파할 때까지 총 1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그는 그렇게 백양산에서 수행을 거듭했다. “땀은 내공 쌓기의 지름길”이라고도 했다. 백양산은 또 곳곳에 약수터가 많아서 과장을 조금 보태면 종이컵 하나만 들고도 산행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러고 보니 트랭글은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요?”

“정년퇴직 전에 퇴직자 교육을 받을 때 알게 됐어요. 후배가 ‘폰 줘보세요’ 하더니 냉큼 깔아줬죠. 그래서 처음에는 뭐가 자꾸 뜨긴 하는데 어떤 기능이 있는지도 잘 몰랐어요. 지도만 봤지 그 안에 배지니 랭킹이니 레벨 이런 건 몰랐죠. 나중에 보니 모든 산행이 다 저장돼 있더라고요.”

“백양산 최다 등정자라든지 트랭글 종합 1등 같은 기록을 달성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했나요?”

 

그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기록을 달성하기 위해서 노력한 것이 아니라, 노력을 하다 보니 1등을 한 것이란 말이다.

“그냥 평소 하던 대로 등산을 다닌 것뿐입니다. 의식적으로 1등 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원래 목표는 그냥 개인적으로 한 달에 1,000km 걷기였어요. 

백양산 애진봉 정자에서 인터뷰 중인 안씨.

 

이 목표가 조금 더 공고해진 계기도 있죠. 58년 개띠모임이 있는데 여기서 ‘우리 건강 챙길 겸 올해는 모두 하루에 5.8km 이상 걷고 뛴 다음 인증하자’는 공동목표가 생겼죠. 그런데 사람들이 보니 제 기록이 너무 이상한 거죠. 한 달에 1,000km씩 걷고 있으니 다들 기가 차 했죠. 무릎은 괜찮은지, 조기 사망하는 건 아닌지 다들 걱정도 하고 신기해하고 응원도 해주니 이게 동기부여가 돼서 더 꾸준하게 산행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런데 같은 산을 매일 오르면 좀 지겹지 않으세요?”

“백양산이요? 전혀 지루하지 않아요. 산에는 같은 시간과 같은 곳이 없어요. 늘 새로운 곳이죠. 어떤 때는 풀 한 포기 자라나는 것도 신기하고, 또 꽃이 피고, 낙엽 속에서 바스락거리며 잡초가 올라오고. 연녹색부터 진초록과 갈색 낙엽까지. 매일매일 다른 배경화면인 셈입니다.”

 

마라톤 훈련을 꾸준히 했기 때문에 장거리종주에서 이른바 몸의 고비, ‘사점’을 넘는 방식도 마라톤의 형식을 따랐다. 그래서 한결 수월했다. 그는 “사점이 한 번 오면 2~3분 정도밖에 안 간다”며 “평소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케이던스, 즉 분당 걸음횟수를 늘린다. 보폭을 짧게 하고 잰 걸음을 치는 건데, 보통 사람은 힘들다고 한 걸음 넓게 걷고 쉬어버리고 이러는데 이러면 사점을 극복하기 무척 힘들다”고 설명했다. 

 

산행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은 “날머리에 설 때”라고 했다. 평소 훈련할 때나 종주산행할 때나 늘 마찬가지다. 그때마다 “오늘도 내 심장이 잘 견뎌줬구나. 고맙다”고 혼잣말을 한다.

 

“나이가 먹어서 그런지 요즘엔 아침 일출보다 저녁의 황혼이 더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일출은 주황빛을 쫙 모은 다음 정점에서 ‘뿅’하고 드러나요. 일몰은 거꾸로 가죠. 정점에서 ‘톡’하고 떨어지는 대신 15분 정도 은은하게 온 산하에 자기 빛을 뿌려요. 그래서 저도 노을처럼 그리움의 빛결을 퍼뜨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어요.”

 

안씨는 안전을 위해 스패츠와 등산스틱을 꾸준히 사용한다고 했다.

 

 

숫자 뒤에 꾸준함을 봐라

그는 정말 매일매일 꾸준히 산에 간다. 그리고 이 산행을 가능하게 만드는 건 습관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몸을 풀고 바로 다리 들기부터 한다. 상중하 각각의 높이까지 100개씩 한다. 그리고 옆으로 누워서 다리 들기도 100개를 한다. 또 2분30초 플랭크, 30초 휴식을 3~5회씩 한다. 이를 매일 지킨다.

“그렇게 운동을 거듭하면서 가는 산은 무엇인가요?”

 

“글쎄요. 그냥 요즘은 좋은 친구인 것 같아요. 말없이 받아주니까. 이유는 다른 것은 없습니다. 예전 저에게 도봉산은 처방전이었어요. 수단으로서의 산이었죠.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이젠 목적으로서의 산이 됐네요. 언제든지 가면 포근하게 감싸주는, 그런 산이죠. 왜 왔는지 묻지도 않고 하루에 몇 번을 와도 뭐라고 하지 않아요.”

 

“혹시 트랭글 1등을 노리는 다른 산꾼들이나 등산 초보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을까요?”

“한 번에 너무 많이 하려 하지 말고, 양을 줄여서라도 꾸준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꾸준함이 최고의 미덕이죠. 그렇게 내 산을 꾸준하게 올라가다보면 늦든 이르든 정상에 서고, 날머리에 서게 될 겁니다. 

 

인생도 그래요. 누구나 다 힘들죠. 하고 싶은 것도, 하기 싫은 것도 똑같고 힘든 것도 마찬가지죠. 그러니 꾸준해야 합니다. 꾸준함을 쌓아놔야 고수가 되고, 또 안전하게 산행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사실 1등이니 2등이니 이런 걸 볼 때 거기서 기록이나 순위 같은 숫자만 따지고 볼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 숫자를 단순히 자랑하는 게 아니라 그 이면에 깃들어 있는 꾸준한 삶, 그걸 느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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