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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경상도의 숨은 명산 운제산] 천년고찰 숲길에서 바라보는 영일만 호미곶

by 白馬 2024. 6. 29.

운제산에서 바라본 영일만 호미곶.

 

호수에 뜬 하늘과 구름, 초록의 절정이다. 경내는 보리수로 불리는 찰피나무 잎이 무성하고 연등이 걸린 절집은 초파일을 준비하는지 어수선하다. 연못에 비친 오어사 잔물결에 흔들린다. 신록의 계절, 만나는 것마다 살갑다. 하늘, 바람, 나무, 돌, 물, 바위. 다시 태어난 것처럼 모든 이들이 새롭다.

주차장에서 조릿대 계단 길 자장암으로 오르는데 0.3km 남짓, 느티·당단풍·졸참·신갈·상수리·산벚·생강·들꿩·작살·팥배·서어·쇠물푸레·싸리·붉·소나무 가운데 서어·굴참나무가 많다. 15분가량 올라 절벽의 바위에 앉은 암자에 선다. 발아래 계곡 한편에 오어사, 눈을 들어보면 나뭇잎 사이로 운제산 자락이 푸르다. 

 

오어사

 

자장암에서 내려다보니 절집을 둘러 연못으로 흘러드는 물이 굽어진다. 숲에 가려진 기와지붕. 아카시아 향기 가득한 이곳에서 시름 잊고 그냥 앉아 있어도 좋다. 하얀 불두화꽃 절벽 아래 인간 세상이요, 여기는 선계인 듯 시간을 잊을 수 있겠다. 신라 사성四聖으로 불리는 자장·혜공·의상·원효대사가 수도했던 곳, 자장암 외에도 근처에 원효암이 있다. 구름을 사다리 삼아 왕래했다고 구름 운雲, 사다리 제梯, 운제산雲梯山이다. 

 

오어사, 운제산 유래와 신모신화

운제산은 해발 482m,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항사리와 대송면 산여리에 걸쳐 있다. 산 이름보다 사찰이 유명해서 오어사吾魚寺로 이름이 난 곳. 운제산은 잘 몰라도 오어사는 들어본 이름일 것이다. 산행은 오어사를 기점으로 자장암으로 올라간다. 산불감시초소를 지나 울창한 숲속의 오르막인 듯싶으면 어느덧 운제산 정상에 닿는다. 영일만과 포항제철소, 호미곶이 한눈에 보인다. 대왕암까지 가서 출발지점으로 되돌아오는 데 대략 5.9km, 3시간 정도. 오어사에서 저수지 둘레길도 걸을 만하다. 

 

자장암

 

오어사는 본래 항하사恒河寺, 숫자 이름에서 비롯된다. 인도 갠지스강의 모래를 합한 수, 모래알처럼 많다는 은유적 표현 항하사. 자장이 지은 것으로 알려진 이곳 항사리마을 이름도 이와 무관치 않다. 1,500여 년 전 우리나라에 인도의 강 이름을 붙인 절이라니, 수많은 스님이 나오길 바라는 염원이었을 것이다. 혜공과 원효가 두 마리 물고기를 법력法力으로 살리는 시합을 했다. 헤엄치는 물고기를 가리키며 서로 ‘내 고기’로 불러 ‘나오吾, 고기어魚’ 오어사로 바뀌었다고 한다. 

암자를 비켜 돌아 붉은 연등을 따라 걸으니 12시 55분 어느덧 산여초소, 산불감시초소에서 입산자 이름을 적으라고 한다. 기분 좋은 숲길을 걸어 쪽동백, 산벚나무를 바라보다 오른쪽으로 바다가 보이는데 영일만이다. 봄을 시샘하는 듯 바람이 세차게 부는데 나뭇가지들이 휘어진다. 오후 1시 15분 깔딱재(자장암 1.4·오어사 1.6·정상 0.9·대왕암 1.5·대각 2.5km) 전망 좋은 곳, 바윗재와 무덤을 지나 둥굴레 하얀 꽃, 애기나리, 새소리 들리는 숲속의 풀 냄새는 시큼하면서도 향긋하다. 나무껍질 우둘투둘한 비목나무 고목, 산오리나무, 노린재나무 흰 꽃을 바라보다 대왕암 갈림길(대왕암 0.7·오어사 2.5·정상 0.1·영일만 온천 3.6km)에 선다.

 

자장암에서 바라 본 오어사.

 

오후 1시 40분 포항 오천읍과 대송면 경계 482m 운제산 정상, 정자 보수공사를 하는지 표지석은 붕대처럼 친친 감겨 있다. 왼쪽부터 내연산, 비학산, 북부해수욕장, 영일만, 포항제철, 호미곶. 운제산 줄기를 따라 남서쪽으로 가면 시루봉, 경주 토함산 자락을 만날 수 있다. 원효와 혜공대사가 구름을 사다리 삼아 절벽을 넘나들어 운제산이라 했다는 것과 신라 남해왕 운제부인의 신모단이 있어 산 이름이 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신라 때는 주요 산마다 신모神母가 있다고 믿었다. 여성 산신이 신앙으로 이어져 온 신모신화神母神話다. 이곳 운제산을 비롯해서 경주 선도산·치술령, 지리산, 가야산 등 곳곳에 신모를 기리고 섬겼다.

 

운제산 숲길.

 

대왕암 전설과 영일만 호미곶

정상 바로 아래 갈림길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니 해발 471m 대왕암에 닿는다. 가뭄이 심할 때 기우제를 지냈던 제향단이 있다. 산악 훈련장인지 곳곳에 해병대 붉은색 표지판이 많다. 대왕암의 창해滄海 역사力士를 닮으려는 것인가? 푸른 바다 창해는 동해의 옛 이름. “우리나라 장수가 하늘 찌를 듯한 키로 뇌성벽력을 질러 왜장을 물리쳤다”는 것이 표지판에 쓰인 대왕암의 요지다. 왜장이 넘어지며 손을 짚어 움푹 꺼진 데가 바닷물이 들어와 지금의 영일만이 되었다고 한다.

 

운제산 정상 전망대.

 

영일만 호미곶은 겨레 정체성의 상징이다. 16세기 명종 때 격암 남사고南師古 선생은 ‘한반도는 호랑이가 앞발로 대륙을 할퀴는 형상으로 백두산은 호랑이 코, 호미곶虎尾串은 호랑이 꼬리’라 했다. 일제강점기에 생김새를 말갈기 모양이라 우겨 장기갑으로 불렸는데 호미곶으로 다시 바꿨다. 포항 흥해의 달만곶과 호미곶 사이에 있는 영일만迎日灣은 수심 30m 이하의 완만한 해저 경사를 이룬다. 해맞이의 뜻, 형산강이 흘러든다. 만灣은 육지 쪽으로 쑥 들어간 해안이고, 곶串은 바다로 돌출된 육지다.

 

대왕암.

 

사초, 애기나리, 둥굴레 군락지. 산길도 널찍하고 다양한 나무들이 자라는 이 숲은 여름 산행에도 그만이다. 뻐꾸기, 산비둘기, 참새 소리 들으며 기분 좋은 숲길을 걸어 오후 3시 넘어서 오어사로 되돌아왔다. 산 이름대로 구름사다리를 타고 다녀온 듯 몸이 가볍다. 절벽 위의 빼어난 자장암 절경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운제산 대왕암 제단.

 

산행길잡이

오어사주차장 → 자장암 → 시멘트길 → 산불감시초소 → 깔딱재 → 대왕암 이정표 → 운제산 정상(팔각정 전망대) → 대왕암(제단) → 대왕암 이정표 → 깔딱재 → 산불감시초소 → 자장암 → 오어사주차장

※ 5.9km, 3시간, 먼지떨이기 있음.

 

 

교통

고속도로 대구포항고속도로(포항 IC), 부산~포항 동해고속도로(남포항 IC), 국도 31번국도

※ 내비게이션 →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항사리 산 28-14

※ 입장료, 주차장 무료

 

숙식 

포항 시내 다양한 식당과 호텔, 여관 등이 있음

 

주변 볼거리 

죽도시장, 호미곶,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 포항수목원, 사방기념공원, 영일대 해수욕장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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