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자들의 이야기
설악산에서 조난자 구조훈련을 하고 있는 국립공원공단 레인저들.
등산사망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꼭 모든 등산사고가 사망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살아난 사람들이 있고, 살리는 사람들이 있다. 살아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경각심을 주어 다른 조난사고를 예방할 수 있고, 살려낸 사람들의 이야기는 따뜻한 감동을 준다.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 본다. _ 편집자
2023년 12월 21일 민성업씨는 설악산 오색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대청봉에서 중청, 소청, 희운각을 지나 신선대, 양폭, 비선대, 소공원으로 내려서는 종주였다. 입산통제기간에 이어 폭설까지 겹쳐 오랫동안 통제됐던 설악이 비로소 열렸을 때라 하루 빨리 눈에 담고 싶었다.
대청봉까지 오른 뒤 중청을 거쳐 하산을 시작했다. 소청대피소에서 용아장성을 바라보며 쉴 생각에 기쁘게 걷는데 등산로가 희미해지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길에서 살짝 벗어나면 눈에 몸통까지 푹 빠져 낑낑거리며 올라와야 했다. 소청까지 가니 아예 길이 중간 중간 안 보이기 시작했다. 민씨는 “그때 그냥 오색으로 되돌아갈까 생각했다”며 “그랬다면 고생도 덜할 수 있었고 조난자 분도 안 만났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래도 길을 알고 있었고, 춥고 배고픈 탓에 일단 대피소로 빨리 가자는 일념으로 걸었다. 그러다 갑자기 등산객 한 명이 빠르게 추월해 지나갔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보이기 시작한 용아장성을 사진으로 담은 뒤 천천히 다시 가는데 아까 그 등산객이 앞에 가만히 서 있었다. 간단히 인사하고 지나가려 하자 그가 말을 걸어왔다.
“혹시 어디로 가시나요? 소공원까지 가시나요?”
“네. 희운각대피소에서 밥 먹고 소공원으로 하산할 예정입니다.”
그러자 그는 “뒤에서 따라가도 되냐”고 물었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기에 “조심히 따라오라”고 한 뒤 먼저 길을 나섰다. 능선에 너무 많은 양의 눈이 쌓여 있어 허리까지 빠지는 길을 열심히 헤치며 가는데 뒤따라오는 사람의 속도가 너무 느렸다. 그래서 괜찮은지 알아보려 돌아서서 말을 건네는데 그제야 그의 옷차림이 눈에 들어왔다. 민씨는 “말 그대로 ‘아뿔싸’였다”고 했다.
“스패츠도 없고 신발은 얇은 경등산화에 얇은 양말을 신고 있었어요. 그래도 요즘 등산바지들은 어느 정도 밑단이 길고 스패츠 역할을 해주는 것도 꽤 있잖아요? 그런데 그런 것도 아니고 짧은 바지라 양말과 신발에 모든 눈이 고스란히 들어가고 있는 상황이었어요.”
민씨는 그의 동상이 걱정됐다. 그래서 희운각대피소까지 빠르게 가든지 아니면 소청대피소로 되돌아가야 하는데 어느 쪽을 택하겠느냐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강행. 그래서 공포의 희운각 내리막 러셀이 시작됐다. 급경사에 수많은 계단과 절벽 구간. 길이 안 보이니 속도가 나지 않고 뒤따르는 이도 갈수록 느려진다. 심지어 계속 넘어진다.
“궁여지책으로 어릴 때 썰매 타던 생각이 떠올라서 몸을 뒤로 눕힌 채 최대한 눈을 치우면서 내려갔어요. 그래서 조금이나마 뒤에 분이 편하게 오실 수 있게 했죠. 그런데 저도 체력이 계속 떨어지니 미치겠더라고요. 이젠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전화도 안 터지는 구간이었거든요.
또 그분이 스틱에 너무 의존해서 자세도 꼿꼿하고, 아이젠도 헐렁하게 착용해서 자꾸 넘어졌어요. 둘 다 어떻게 하면 된다고 말씀을 드려도 바로 적용을 못 하시더라고요.”
겨울산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민씨는 우여곡절 끝에 그를 데리고 2시간여 만에 희운각대피소에 도착했다. 직원에게 현재 상황을 얘기해 주자 돌아온 대답은 “아직 시간이 있으니 빨리 하산하라”였다. 민씨는 “그냥 보내면 100% 동상에 걸릴 텐데 그냥 하산하라고 해서 내 귀가 의심됐다”고 했다.
“하지만 일단 저도 제 앞가림이 급했어요. 취사장으로 달려가서 밥을 지어 먹느라 정신이 없었죠. 급하게 밥을 먹고 나니 그분이 대피소에서 젖은 양말을 핫팩으로 말리고 있더라고요. 힘든 기색이 역력해서 제 핫팩 따뜻한 거 두 개를 드렸어요.
제 솔직한 심정은 대피소에서 알아서 이 분을 보호해 주실 것이라 생각했는데 딱히 그런 분위기가 아니더라고요. 이 분도 양폭대피소까지 가보겠다고 하시면서 젖은 양말을 다시 신으십니다. 그래서 일단 더 젖지 않게 임시방편으로 비닐봉지를 신고 등산화를 신으라고 했죠.”
또 힘든 길이 시작됐다. 천불동은 해가 빨리 진다. 양폭까지 가는 길도 험난하다. 계속 걸어야 동상에 안 걸린다고 독려하며 20분 정도 가니 몸에 열이 났는지 상태가 좀 좋아 보였다. 양폭대피소에 도착해 다시 그를 살펴보는데 당황스러울 정도로 준비가 안 된 상태였다.
“랜턴도 따뜻한 물도 아무것도 없으셨어요. 본인은 이렇게 산행이 오래 걸릴 줄 몰랐고, 이렇게 설악산에 눈이 많이 쌓였을지도 몰랐다고 하시더라고요. 듣고 보니 설악산 등산 경험이 꽤 있는 분이셨는데, 이런 겨울 설악산은 처음 겪어보는 거라고 했어요. 어쩔 도리가 있나요. 결국 제 걸 나눠 먹으면서 길고 긴 천불동을 내려왔죠. 도착하니 가족들이 마중 나오셨더라고요.”
조난자는 민씨에게 생명의 은인이라며 소정의 돈을 택시비 삼아 건네려고 했다. 하지만 민씨는 극구사양 했다. 단지 다음에 산에서 자기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만나면 모른 척 하지 말고 도와주라고만 하면서.
“새해 일출을 보려고 산에 올랐을 때도 젊은 분들 대부분이 그냥 운동화에 트레이닝복을 입고 산에 오셨더라고요. 겨울 산을 잘 몰라서 그런 건데 정말 위험한 행위라는 걸 꼭 좀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산에 대한 정확한 정보, 비상식량과 긴급물품, 경솔하지 않은 태도, 장비에 대한 개념과 사용법을 숙지해야 오래오래 안전하게 산행할 수 있습니다.”
나는 ‘야생화의 천국’이라 불리는 덕유산국립공원의 끝자락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스물여덟 살 때 내가 근무하는 국립공원을 방문한 여성과 처음 만나 운명처럼 사랑에 빠져 결혼도 했다.
그러나 광활하고 수려한 국립공원이라는 근무 환경이 늘 낭만적인 것은 아니었다. 눈꽃이 만발한 덕유산 설경은 신선세계에 들어온 것같이 황홀하다. 하지만 감히 사람이 근접할 수 없는 공포로 다가왔던 적이 있었다. 조난자를 구조하기 위해 생사를 건 험난한 여정을 펼쳤던 지난해 겨울, 덕유산의 자연은 내게 불가항력의 존재였다.
2003년 1월 중순 어느 날, 며칠째 많은 눈이 쏟아져 내렸다. 하늘을 보니 불길한 예감이 들어 귀가하던 차량을 돌려 후배가 운영하는 근처 스키장비점에 들렀다. 비상사태에 즉시 대처하기 위한 조치였다.
마음이 뒤숭숭해 새벽 2시경 겨우 잠이 들었는데 눈을 감기 무섭게 다시 일어나야만 했다. 거머쥔 휴대폰에서는 무룡산 주변에서 조난자가 발생했다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한복을 입으면서도 계속 심장이 떨려왔다.
소방서 구조대도 출동했다. 그런데 구조대원들은 이런 날씨에 움직이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며 출발을 망설였다. 그러나 우리는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탐방객이 우리 국립공원에서 죽는 것을 어찌 두고 볼 수만 있겠는가. 내버려둘 수 없었다.
조난자들의 위치를 가늠하고 안성 원통사 길로 오르기로 했다. 평소라면 한 시간 30분이면 능선에 오를 수 있는 길인데 다섯 시간이 넘게 걸렸다. 계속 눈보라가 몰아쳐서 1m 앞도 보이지 않았다. 눈은 이미 가슴까지 차올라 있어서 길을 가늠할 수 없었다. 몸을 삽으로 삼아 눈을 파헤쳐가며 길을 만들어야 했다. 시리던 발은 이제 감각도 없다. 삿갓재대피소를 지난 후 두 시간 만에 겨우 무룡산에 도착했다.
밤 10시경, 산속을 헤맨 지 7시간 만에 드디어 눈 속에 파묻혀 있는 조난자를 발견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두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눈은 검은 눈동자 없이 흰자위만 있다. 소름이 끼쳤다. 꺼져가는 심지를 쥐어짜듯이 그들은 얼어붙은 입으로 겨우 살려달라고 중얼거렸다. 조난자들은 밤새 조금이라도 온기를 얻기 위해 소지품들을 하나씩 태워나갔다고 했다. 반찬통이며, 침낭, 등산 가방까지 모두.
국립공원공단 레인저들이 조난자를 구출하고 있다.
대피소 숙박하던 간호사 큰 도움
헬기로 구조 요청을 했지만 날씨가 좋지 않아 즉각 구조할 수 없었다. 조난자들을 바로 업어서 데려가고 싶었지만 먼저 그들을 구하려면 강제로라도 걷게 해야 했다. 자신의 근육을 움직여 체온을 올려야 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사람을 흔들어가며 가던데 현실에서는 볼을 세게 치고 발로 차야 움직였다. 우리는 조난자들을 부축해 서로 밀고 당겨 주면서 눈 속을 구르기도 했다. 그렇게 두 시간 넘게 혹한을 견뎌낸 후 겨우 삿갓재에 도착했다. 전원이 무사했다.
그러나 바로 들어가면 갑작스런 온도 변화로 심장마비를 일으킬 수 있으므로 기력이 없어 축축 늘어지는 조난자들을 현관 앞에서 계속 뛰게 한 후에야 대피소에 들여보냈다. 그랬는데도 그중 1명은 대피소 안에 들어서자마자 기절했다.
마침 삿갓재대피소 숙박객 중 간호사가 4명이나 있었다. 천사 같은 그녀들은 조난자들에게 마사지를 해주었다. 그들은 기절한 상태로 겨우 남아 있는 가녀린 숨을 쉬고 있었다.
한숨 돌리고 양말을 벗어보니 발이 온통 하얀색이다. 동상이라고 했다. 간호사가 혈액 순환을 위해 소주를 맥주 컵에 따라주었다. 평소 술을 마시지 않지만 살기 위해서 남김없이 마셨다. 밤새도록 눈 속에서 사투를 벌였던 소방대원들과 직원들도 모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날 우리는 대피소에서 함께 아침을 맞이했다. 살아서 해돋이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되살아난 조난자들은 연거푸 감사하다고 머리를 조아렸다. 우리는 한마음이 되었던 지난밤의 감동을 나눈 후 헤어졌다. 나는 그후로도 오랫동안 발 가려움증 때문에 고생해야 했다. 두 생명을 살리느라 지친 내 발가락에는 훈장처럼 동상이 남았다.
집사람과 치킨에 맥주 한 잔. 모처럼 오붓한 시간이다. 이부자리를 펴고 누워 TV를 보는데 눈꺼풀이 오르락내리락한다. 잠시 선잠에 들 즈음 전화 받으라는 집사람. 반사적으로 시계를 본다. 12시 37분. 자정이 넘었다.
119산악구조대의 전화일 것이 뻔했다. 역시 조난 신고다. 이미 용아장성과 공룡능선 산행을 한다고 서울에서 떠난 남편과 연락이 두절되자 실종 신고가 들어와 있었는데, 23시 59분에 재차 당직자에게 ‘사고자가 용아장성에 있다’는 신고 전화가 걸려온 모양이었다. 이미 선발 수색대는 봉정암과 용아장성 일대를 광범위하게 수색하다가 일몰로 인해 다음날 수색 작업을 재개하기로 하고 철수한 상황이었다.
신고자의 위치를 추적해 보니 용대리 어느 공중전화 박스라고만 나왔다. 부랴부랴 옷을 갈아입고 사무소로 내달렸다. 직원들이 속속 모여드는데 가관이었다. 머리에 까치집을 이고 온 사람, 술자리에서 달려온 사람, 노래방에서 놀았는지 단체로 택시를 타고 온 사람 등이었다.
사고 브리핑이 이어졌다. 신고 경위와 어제의 수색 작업 경과 등을 얘기하고 수색 범위를 좁혀 나갔다. 새벽 2시, 장비를 모두 챙겨 백담으로 달렸다. 전날 봉정암에서 용아장성 6봉까지 수색을 마쳤으니, 우리는 1봉부터 수색하면 뭔가 나올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4시 2분 수렴동대피소에 도착해 한 숨 돌린 뒤 바로 출발했다. 용아장성 개구멍 방향으로 진입하는데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개구멍을 통과하자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걸음이 빨라졌다.
어느새 새벽은 사라졌다. 랜턴 없이 이동할 수 있으니 멀리 있는 사람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용아장성 불법산행 팀이다. 한두 명이 아니라 20명은 족히 넘어 보였다. 무전을 통해 후미에게 알렸다.
“전원 과태료 부과 대상자다.”
단속팀과 구조팀 두 개로 나눈 후 다시 출발했다. 두 고개쯤 넘었을까. 좁은 길에 누군가 침낭을 덮고 누워 있다. 찾았다. 조난자다. “여보세요!” 소리치며 어깨를 두드리니 눈을 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차근차근 부상 부위를 체크했다. 의식은 좋은데 꼼짝을 못 했다. 허리 부상으로 인해 움직일 수 없다.
예전에 발생했던 천화대 추락 사고가 생각이 났다. 등반 중 20m 추락해 경추골절이 된 환자를 후송했는데, 한 달 정도 시간이 흐른 뒤 보호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께서 응급처치와 후송을 아주 잘해서 신경 손상 없이 수술을 잘할 수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너무 고맙습니다.”
설악산 용아장성 입구에 세워 놓은 경고 표지판.
구조 보람 느낄 새 없이 단속 실랑이
그 이후 환자의 응급처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한 번 더 살피게 되는 것 같다. 어느 정도 처치가 마무리되니 사고 경위가 궁금했다. 사고자에게 물으니 차근히 말해 주는데, 순간 참지 못하고 험한 말이 튀어나왔다. 모든 대원이 똑같이 한마디씩 내뱉었다.
그는 말로만 듣던 용아장성 산행을 계획하고 단독으로 2014년 6월 16일 서울을 출발해 오전 10시경 용아장성 산행을 시작, 개구멍을 통과해 3봉 지날 때쯤 우회하지 않고 직선으로 등반하다가 잡고 있던 돌이 떨어지면서 약 30m 추락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커다란 소나무에 걸려 있었고, 겨우겨우 움직여 바닥에 내려서 그 자리에서 1박을 했다.
6월 17일, 주위에 도움의 손길이 없어 하루 종일 기어서 500m 이동했고, 오전 11시경 지나가던 사람에게 구조 요청을 했으나 “나도 불법산행을 하고 있어서 구조 신고를 못해 주겠다”고 그냥 지나가더라는 것이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 자리에서 2박을 하고, 3일째 되던 날 새벽에 구조팀을 만난 것이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신고를 못 해 주겠다던 그 사람이 산행을 마치고 하산해서 12시간 59분 만에 용대리 어느 공중전화 박스에서 신고를 하긴 해주었으니 고맙게 생각을 해야 할까? 참 기가 막혔다. 과태료가 그렇게 부담스러웠나?
수없이 많은 구조를 해왔지만 정말 씁쓸했다. 사람의 생명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과태료를 내지 않으려고 그냥 지나쳐버린 무심한 사람.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까 싶은 마음이었다.
곧 헬기가 와서 조난자를 구조했다. 순간 맥이 쫙 풀린다. 새벽부터 긴장한 상태로 일을 마무리하고 나니 허기가 졌다.
무사히 구조한 보람도 잠시, 구조하러 오는 길에 보낸 불법산행 단속팀 쪽에서 언성이 높아진 것 같다. 가보니 좁은 공간에서 20여 명 이상이 직원들 7명을 둘러싸고 겁을 주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마에 없던 주름을 만들고 그들 틈으로 들어갔다. 그 무리 속에 한 사람이 거들먹거리면서 흥정을 시작했다. 그는 몇 사람에게만 과태료를 부과하고 나머지는 경고장 정도로 하자고 했다.
경고장을 알고 있을 정도면 불법산행을 한두 번 한 사람이 아니었다. 순간 울컥해 이번 사고에 대해 한참 설명했다. 기세가 수그러들자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전원 과태료를 부과했다. 그리고 안전벨트를 채워 안전하게 개구멍을 통과시켰다. 그중에는 무서워 눈물 흘리고 다리를 후들거리며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올바른 산행 문화가 자리 잡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오늘의 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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