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길 6개 구간, 4코스는 화가들 풍경화 단골 소재
한반도 서남단 남도의 끝자락에 있는 진도珍島는 멋과 맛과 흥의 고장이다. 과거 대표적인 유배지였던 만큼 유배인들의 문화가 녹아 시, 서, 노래가 꽃 피운 예술의 용광로가 되었다. 진도아리랑에서 알 수 있듯이 진도의 문화는 고단한 삶과 한恨을 예술적 경지로 높였다.
망자를 위한 씻김굿과 상갓집 귀신도 웃게 만드는 ‘다시래기’는 초상집에서도 해학과 풍자가 넘치게 한다. 여럿이 하나가 되어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 오랜 세월을 통해 체득한 지혜, 그것이 진도 사람의 기질이다.
진도는 우리나라에서 제주도·거제도 다음으로 큰 섬이다. 해안선의 굴곡이 심하고 곳곳에 만입이 발달한 리아스식 해안이다. 그 남쪽 해안선 따라 ‘진도 미르길’이 있다. ‘미르’는 우리말 고어로 ‘용’을 뜻한다. 해안절벽지대를 따라 구불구불하게 오르락내리락하는 길이다. 얼핏 보면 바다에서 막 튀어나온 용이 승천을 준비하는 모습이다.
남도진성 성문 입구
미르길은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일부 속해 있다. 조상들이 고기 잡으러 가던 옛길, 작은 어촌과 포구, 때로는 임도와 도로를 따라 이어진다. 남도진성, 윤고산사당, 아리랑마을 등 역사와 문화유적까지 두루 아우른다.
미르길은 여귀산(458.4m) 아래 헌복동에서 전국 최대 꽃게잡이 항인 서망항까지 총 6개 구간 19.7km 코스로 이루어져 있다. 단절된 구간을 포함한 도상거리까지 합치면 28km가 넘는다. 서해랑길 진도 구간 9코스와 일부 겹치는 미르길은 주로 해안선을 따라 조성되어 있다.
굴포에서 동령개까지 이어지는 4코스 7.1km 구간은 미르길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평가된다. 해안 조망도 뛰어나고, 구실잣밤나무, 후박나무가 울창한 상록수림으로 사계절 푸른 자연이 있다. 남도진성에서 국립남도국악원까지 이어진 3코스, 4코스, 5코스를 연계한 16km 구간도 인기 있다. 산책로처럼 길이 좋아 걷는 거리에 비해 크게 힘들지 않다.
제2초소 전망대, 새떼 같은 조도군도가 보인다.
남도진성에서 시작하는 5코스, 서해랑길 9코스와 같은 구간
이번 산행은 남도진성南桃鎭城이 있는 남동마을에서부터 시작해 5코스 4코스, 3코스를 거쳐 역순으로 진행했다. 남도진성(사적 제127호)은 남도석성으로도 불린다. 남도진성은 삼국시대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며, 배중손이 이끄는 삼별초군이 용장산성과 더불어 대몽항쟁의 근거지로 삼았던 성으로도 알려져 있다. 현재 남아 있는 남도진성의 둘레는 610m 정도로, 인근에는 홍예교 모양의 단운교와 쌍운교가 있다.
수군들이 궁술 훈련하던 ‘남도진성사대’를 지나, 해안선을 따라 0.3km 걷다보면 바다를 가로지르는 석축이 보인다. 배를 만들던 선소船所 유적이다. 이곳에서 포장도로를 100여 m 더 올라가면 서해랑길 9코스 입구이면서, 미르길 5코스다. 임도 차단기만 들어서면 길찾기에 무리가 없다. 미르길 5코스 들머리는 남도진성에서 ‘서해랑길 9코스 시점’ 이정표 방향과 동일하다.
임도 차단기에서 시작되는 3km의 임도는 천등산(198.9m) 허리를 감고 돌아간다. 암릉으로 이루어진 천등산 능선을 따라 길을 냈다면 다도해의 환상적인 풍경을 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든다. 포장도로(진도대로길)와 쌈지공원을 지나 동령개마을로 들어선다. 4코스의 시작이다. 국립진도휴양림으로 들어가지 않고 아랫길 따라 마을 안쪽으로 들어간다. 순자네식당 옆으로 4코스 이정표가 있다. 골목을 벗어나면서부터 남다른 해안 경치가 드러난다. 만 깊숙이 들어온 평화로운 동령개마을은 천등산 암릉들과 팽나무가 어우러져 있어 화가들이 그림 그리는 단골 장소로 삼을 만하다.
4코스에는 이정표가 주요 지점에 잘 갖추어 있다.
척박한 환경이 만든 보배의 섬
넓은 데크 쉼터가 있는 1초소와 2초소는 군 해안초소가 있던 전망대다. 사방으로 관측하기 좋게 트여 있고 해상국립공원인 불무도, 사자도, 조도가 보이고 진도에서 가장 동쪽에 위치한 독거도까지 조망된다. 독거도는 파도가 험한 지역. 거친 파도를 맞고 자란 조도군도 일대 최고의 돌미역이 이곳에서 생산된다.
미르길 4코스의 경치 좋은 곳에는 데크 조망대와 쉼을 위한 벤치가 있다. 둘이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도 될 만큼 길도 넓다. 국립진도휴양림 앞을 지나면서부터 약경사길이 이어진다. 2.5km 지점의 굴포등대까지 바다 조망이 트여 있다. 하얀색 굴포등대는 자그마한 무인등대다. 날이 맑은 날에는 추자도까지 보이고, 그 너머로 한라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굴포방파제 끝에 우리나라 민간 간척지 1호인 윤고산둑이 있다. 고산 윤선도가 1650년에 높이 3m 길이 380m 둑을 축조해 30만 평의 땅을 만들어 인근 4개 마을 백성들에게 농사를 짓게 했다고 한다. 윤고산둑 바로 옆에는 윤고산사당尹孤山祠堂이 있다.
미르길 3코스는 굴포식당과 짝별방파제를 지나고 방파제 끝에 있는 중만마을부터다. 이곳부터 귀성마을까지 이어지는 3.8km 거리는 바다를 바라보며 걷는 평범한 임도다. 평화롭게 숨죽이고 있는 바다를 향해 진도아리랑 흥타령을 하고 싶은 길이다.
귀성마을에서 우뚝하게 보이는 여귀산 아래에는 국립남도국악원, 진도국악고등학교, 아리랑마을이 있다. 명창들의 소리를 귀동냥으로 듣는 진도 사람들에게 웬만큼 해서는 박수를 못 받는 이유다.
아리랑마을은 2011년에 개장했다. 아리랑의 유래는 물론 조선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아리랑의 역사를 보여 주는 다양한 전시물을 만날 수 있다. 컴퓨터를 통한 아리랑 체험도 가능하다.
중만에서 귀성마을로 가는 3코스 해안.
산행길잡이
▲남도진성 - 선소 - 갈림길 - 천둥산 임도 - 포장도로-동령개갈림길-1초소, 2초소 - 국립진도휴양림 - 등대 - 굴포방파제 - 윤고산사당 - 짝별방파제 - 귀성마을 - 국립국악원 주차장(16km 5시간)
▶동령개마을-1초소, 2초소 - 국립진도휴양림 - 등대-굴포방파제 - 윤고산사당(7.1km 2시간40분)
미르길은 방향을 안내하는 이정표를 찾기가 힘들다. 미리 가야 할 길을 숙지하는 것이 좋다.
교통(지역번호 061)
서울센트럴시티 터미널에서 진도공용터미널로 가는 버스는 하루 3회(07:55, 16:00, 17:00) 운행한다. 4시간 40분 소요. 프리미엄 좌석 5만3,200원, 우등 4만900원.
진도공용터미널(544-2121)에서 남도진성으로 가려면 팽목/서망행 군내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40분 소요된다. 4회(08:10, 11:00, 15:40, 17:50) 운행하며 버스요금은 1,000원.
맛집(지역번호 061)
윤고산사당 앞에 위치한 굴포식당(543-3380)은 복탕집이다. 허름한 외관이지만 인기가 많아 재료 소진으로 일찍 문을 닫곤 한다. 자연산 졸복을 고사리와 함께 오랫동안 끓여 만든다. 사골국처럼 진득한 맛이다. 전라도 밥상답게 밑반찬도 12가지나 나온다. 졸복탕 1인분 1만4,000원. 영업시간 08:30~18:00
진도 미르길
▶제1코스 헌복동~죽림시앙골 1.5km ▶제2코스 죽림시앙골~탑립 1.6km ▶제2 - 1코스 탑립~귀성 3km ▶제3코스 귀성~중만 2.1km ▶제4코스 굴포~동령개 6km ▶제5코스 동령개~남동 3km ▶제6코스 남동~서망 2.5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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