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중청대피소 앞에 선 근무자들. 왼쪽부터 김명수, 신영창 주임. 이해일 대청분소장이다. 이들은 한번 대피소에 올라오면 6일 근무 후 하산, 4일 휴식 후 다시 올라오는 근무 시스템을 따른다
설악산 중청대피소가 곧 운영을 중단한다. 시설 노후화로 철거 후 신축에 들어간다고 공단은 설명했다. 이에 관한 여론이 어떻든 간에 월간<山>은 철거되기 전 지금 중청대피소의 모습을 기록하기 위해 설악산에 올랐다.
대피소 사무 공간 안에 놓인 신발장. 근무자들이 신는 등산화로 가득하다.
지금 대피소 매점에서 판매하는 음식물은 ‘생수’가 유일하다. 헬기로 운반된 생수통을 창고에 쌓고 매점으로 옮기는 것도 중노동이다.
대피소 사무 공간에서 분주한 근무자들. 근무자들은 대피소 ‘관리’만 하지 않는다. 본소에 전달할 각종 보고서 작성도 그들의 임무다. 매우 바쁘다.
중청대피소 철거 소식이 전해진 뒤 수많은 등산객이 “대체 왜?”라면서 불만의 목소리를 냈다. 이 볼멘소리에 공단이 내놓은 공식 답변은 1~2줄 정도의 짧은 문장으로만 이뤄진 채 여러 매체를 떠돌았다. 나는 중청대피소 상황을 좀더 자세히 알고 싶었다. 본래의 철거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여기고 더 깊이 캐고 싶었다. 대피소 근무자의 일상을 살펴보면서 말이다(누구도 그들의 일상을 궁금해하지 않는 것 같았다). 국립공원 대피소 근무 시스템은 누가 봐도 특이하다. 6일 근무 4일 휴무다. 그러니까 한 번 사무실에 출근하면 약 일주일간 집에 갈 수 없다. 사무실에서 직원들이 직접 요리를 하면서 끼니를 해결하고 청소와 빨래도 본인들이 해야 한다. 보통의 회사원들과는 분명 다른 일상이다. 그들은 과연 괜찮을까? 행복할까? 만족할까? 회사 생활에 불만은 없을까? 그들의 삶을 대충 살펴보면 ‘아, 그럴수도 있겠다’ ‘과연 그랬구나’ 하면서 그동안 알 수 없었던 걸 새로이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가족과 통화 중인 신영창 주임. 대피소 근무 중 가장 곤란한 때는 가족과 관련된 급한 일이 발생했을 경우다. 그들은 집에 일이 생겨도 곧바로 내려갈 수 없다.
근무자들이 이용하는 부엌. 요리는 근무자들이 직접 한다. 요리하는 걸 즐기는 김명수 주임이 주로 음식을 조리한다.
취재 허가를 어렵게 받았다. 더불어 대피소 예약도 어려웠다. 대피소가 곧 없어진다는 소식에 탐방객들이 몰린 탓이었다. 9월 첫째주부터 ‘국립공원공단 예약시스템’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새로고침’ 버튼을 매일 아침마다 20번 정도 눌렀다. 빈 자리가 나타나지 않았다. 마음이 조급해져 공단에 전화해서 물어봤다.
“취재날 대피소에 가면 당일 예약 취소자가 나오나요? 예약 취소자가 나오면 현장에서 등록하고 잘 수 있겠죠?”
직원이 대답했다.
“취소자가 나올 순 있는데, 안 나올 수도 있죠.”
자리가 나지 않으면 도로 내려와야 할 상황이라 무작정 대피소로 찾아갈 수도 없었다. 마음이 더 급해졌다. ‘새로고침’ 버튼을 더욱 맹렬하게 눌러댔다. 결국 계획했던 취재날짜를 이틀 앞두고 ‘예약 대기’를 걸었다. 끝내 자리를 얻었다. 사이트를 들락날락한 지 삼 주 만이었다. 우리는 바로 오색으로 향했다.
대피소 2층에 마련된 분소장실에서 업무 중인 이해일 분소장.
설악산국립공원 남설악탐방지원센터 앞에서 중청대피소로 ‘출근’하는 이해일(51) 설악산 대청분소장을 만났다. 비가 많이 내렸다. 사진기자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짙은 남색 우의를 뒤집어쓴 그에게 물었다.
“출근길이 즐거우세요?”
그가 대답했다.
“즐거울 게 뭐 있나요? 일이니까 그냥 가는 거죠.”
보통 걸음으로 4~5시간 정도 걸리는 가파르고 험한 출근길을 앞에 두고 담담할 사람 얼마나 있을까? 하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나는 담담하지 않았다. 오색코스라고 불리는 이 길을 나는 애용하지 않는다. 올라가면서 볼거리가 얼마 없고 가파르기만 하기 때문이다. 나는 매우 귀찮고 짜증났다. 비까지 내려 더 그랬다. 사진기자의 표정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우리는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남설악탐방지원센터에서 출근 신고를 하는 이해일 분소장. 여기서 대청봉까지 약 4시간 걸린다. 걸음이 빠른 직원들은 2시간 걸리기도 한다. 한국에서 가장 길고 힘든 출근길일 것이다.
6일 일하고 4일 쉬어… ‘사명감이 힘’
이해일 분소장은 2006년 국립공원공단에 입사했다. 대학에서 환경공학을 공부했다. 박사학위까지 땄지만 ‘자연 속에 있는 것이 좋아서’ 국립공원에 발을 들였다. 첫 근무지역은 오대산이었다. 설악산에는 2011년에 왔다. 오자마자 소청대피소로 올라갔다. 그는 당시 겨울을 회상하면서 말했다.
“2012년 1월이었나 그랬을 거예요. 눈이 엄청나게 많이 내렸어요. 2m 정도 쌓인 것 같았어요. 혼자 소청대피소로 가야 했어요. 그런데 영시암에서 수렴동대피소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없었어요. 가면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결국 소청대피소까지 가긴 갔는데, 2박 3일 걸렸어요. 출근하는 데 3일 걸린 셈이죠.”
나는 놀라서 물어봤다.
“많이 위험했을 텐데 어떻게 혼자 가겠다고 결심한 거죠?”
그가 대답했다.
“그때는 젊기도 했지만 얼른 가서 대피소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이었어요. 거긴 제 일터잖아요. 등산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일의 일부잖아요. 일종의 사명감이었죠.”
“저는 사명감을 갖고 일을 하는 사람이 지구상에 얼마 없을 것이라고 봐요. 대피소 근무자들은 웬만큼 이런 사명감을 가져야 일하면서 버틸 수 있겠군요.”
“맞아요. 그런 마음 없으면 여기서 일하기 매우 힘들 거예요.”
대청봉에서 중청대피소로 내려가는 이해일 분소장. 그는 대청봉에서 ‘인증샷’을 찍은 경우가 얼마 없다.
그의 경우 이번이 세 번째 대피소 근무다. 한 번 올라가면 1년을 채운 다음 다른 근무지로 이동한다. 2011년 이후 그는 2021년 수렴동대피소 근무를 발령받았고, 올해 중청대피소로 다시 올라와 분소장이 됐다(설악산 내 5개 대피소를 관리하는 곳이 대청분소다. 중청대피소에 분소장실이 있다). 그는 발걸음이 가벼워 보였다. 올라가는 속도가 매우 빨랐다. 그는 보통 이 길을 오를 때 한 번 정도 쉰다고 했다. 가장 빨리 올랐을 땐 3시간 정도 걸렸다. 나는 그에게 “천천히 가자”고 여러 번 애원했다. 그때마다 그는 우리를 돌아보면서 말 없이 서있었다. 쉬어갈 요량으로 그에게 궁금한 걸 물었다.
“여기 근무 시스템에 관해 다른 사람에게 말했더니 ‘6일 근무하고 4일 쉬는 건 굉장히 좋은 근무조건 아니냐’라고 하더군요. 여기에 동의하시나요?”
그가 대답했다.
“저는 동의합니다.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다른 직원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네요. 이 부분은 각 직원이 담당하고 있는 직무나 급여 등을 따졌을 때 논의해 볼 만한 문제예요.”
“제가 올라가서 물어봐야겠군요!”
대피소에 도착하면 안내문이 적힌 종이 쪽지를 받는다. 대피소에서 음주와 흡연은 금지다. 근무자들이 철저하게 감시한다.
우리는 부지런히 다리를 놀렸다.
4시간 걸려 대청봉에 다다랐다. 비바람이 몰아쳤다. 옷과 배낭이 다 젖었다. 나는 올라가다가 도중에 다리에 쥐가 나는 바람에 다리를 절룩였다. 이해일 분소장은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무심하게 정상석 앞을 지나쳤다. 여기서 그는 ‘인증샷’ 같은 걸 찍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우리가 인증샷을 찍어준다고 했는데도 그는 별 다른 감흥이 없어 보였다. 서둘러 내려가는 그를 따라 터덜터덜 중청대피소로 내려갔다.
이날 중청대피소엔 두 명의 직원이 근무 중이었다. 그중 김명수(30) 주임이 우리를 맞았다. 그는 무표정하게 앉아 우리를 안내했다. 그에게서 자리 배정표를 받고 지하로 내려가 짐을 풀었다.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김명수 주임 말에 따르면 이날 날씨가 좋지 않아 대부분 예약을 취소했다고 했다. 덕분에 널찍하게 자리를 잡았다. 침상이 삐걱댔다. 지금 중청대피소 내부는 1995년 신축됐을 당시와 비교했을 때 변한 게 거의 없다. 30년 동안 용케도 버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근무자들이 일하는 업무공간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궁금했다. 올라가서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미리 협조를 구함).
근무자들의 식사 시간. 제육볶음 메인 메뉴에 반찬은 3가지 정도다. 김명수 주임이 주로 요리한다.
설거지를 하는 신영창 주임. “요리는 김 주임이 했으니 설거지는 제가 해야죠.” 그는 고무장갑 낀 손으로 재빨리 일을 처리했다.
대피소 취사장. 탐방객들은 여기서 밥을 짓는다. 의자가 없어 대부분 등산객들은 서서 밥을 먹는다.
정돈된 분위기는 아니었고 그렇다고 어질러진 것도 아니었다. 남자 셋이 있는 공간치고 비교적 깔끔했다. 직원들이 지내는 공간은 1층과 2층으로 나뉘어 있었다. 1층에선 업무를 보고 2층은 근무자들이 씻고 잠을 자는 공간이었다. 1층은 방 2개와 부엌, 창고와 복도로 구성되고 2층은 방 5개와 욕실 1개로 나뉘어 있었다. 방은 대체로 좁았다. 어떤 방은 사람 1명 겨우 누울 수 있는 크기였다. 나는 우주 탐사선을 떠올렸다. 이처럼 갇힌 공간에서 여러 사람이 24시간 부딛치면서 생활하려면 조심해야 할 것들이 상당히 많을 것이라고 짐작됐다. 근무자들 표정이 대체로 굳어 있는 이유가 짐작됐다. 직원들은 1층 업무공간에서 일하다가 교대로 한 사람씩 2층으로 올라가 휴식을 취한다. 업무공간에는 신영창, 김명수 주임이 있었다. 김명수 주임은 컴퓨터로 ‘보고서’ 같은 걸 작성하고 있었고, 신영창 주임은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김명수 주임에게 궁금한 걸 물어봤다.
업무공간에 걸린 화이트보드에 숙지해야 할 사항이 가득 적혀 있다.
태풍 불 땐 건물 전체가 삐걱삐걱
그는 2019년에 국립공원공단에 입사했다. 2년 정도 저지대에서 근무한 뒤 1년 반 전 소청대피소에서 근무하다가 중청대피소로 왔다.
“처음엔 행정과에서 일했어요. 일이 엄청나게 많았죠. 예를 들면 직원이 200명 정도 되는데, 전 직원 서약서 하나 받는 것도 큰 일이었어요. 저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폭식하는 습관이 있어요. 그래서 이때 몸무게가 130kg이나 나갔죠. 이 상태로 있다간 죽겠다 싶어서 몸 많이 쓰는 부서로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대피소 근무를 지원했어요. 그리고 나서 6개월 만에 30kg을 뺐어요.”
김 주임의 출근시간 최고 기록은 2시간이다. 그 이하로 줄이기는 매우 어려워 기록 단축에 도전하는 건 포기했다고 했다. 그가 일하면서 아찔했던 순간을 고백했다.
“태풍이 오거나 겨울에 바람이 많이 불거나 할 때 누워 있으면 삐걱삐걱 소리가 들려요. 건물 전체가 흔들리는 소리요. 곧 무너질 것 같을 때가 많아요. 그래서 어느 날엔 바람이 많이 분다는 뉴스를 보고 아래 소청대피소로 대피한 적도 있어요(숙박객이 없었을 때). 이제 철거할 때가 됐구나 하고 많이 느껴요.”
대피소 비상대비 용품점에서 판매하는 물품 목록. 먹을거리는 생수와 즉석밥이 유일하다. 이전에는 담요까지 빌려줬지만 지금은 빌려주지 않는다.
대피소 내부에 TV는 없다. 따라서 김명수 주임은 쉬는 시간에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보거나 책을 읽는다. 대피소 바깥으로 나가 경치를 보거나 하진 않는다. 너무 익숙한 풍경이라 무감각해졌다. 6일 근무 4일 휴무 시스템은 대체로 만족한다고 했다. 휴무일에 가끔 서울로 놀러가는데, 만원 지하철을 타면 금방 질린다면서 자신의 숙소가 있는 인제로 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자주 든다고 했다. 그에게 이곳 생활 중 불편한 게 있긴 하다.
“폭우가 오건 폭설이 내리건 무조건 산에 가야 한다는 점이오. 점검을 해야 하거든요. 구조작업 나가는 것도 많이 부담돼요. 사고자가 생기면 무조건 빨리 출동해야 하는데 체력적으로 무리가 될 때가 있어요. 아, 요리하는 건 부담되지 않아요. 재미있어요(그가 요리 담당이다. 막내라서 그런 건 아니고 재미있어서 한다).”
“또 재미있는 일이 있을 것 같은데, 뭐죠?”
“중청대피소에선 물이 많이 팔려요. 물 많이 판다고 인센티브 같은 게 있는 건 아닌데, 묘하게 ‘세일즈’가 재미있어요.”
등산객들이 떠난 침상을 청소하고 있는 김명수 주임.
가족과 떨어져 있으니 항상 신혼 기분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등산객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신영창 주임이 창구에 앉아 그들을 안내했다. 그의 책상 위엔 이날 숙박 예정인 사람들 목록이 정리되어 있었다. 신영창(43) 주임은 대청분소 근무자 중 경력이 가장 오래됐다. 2006년 설악산국립공원사무소에 입사해 2년간 본소에서 일을 배운 다음 2008년부터 지금까지 대피소 근무만 하고 있다. 지금은 일이 적성에 맞는 편인데, 처음에는 굉장히 힘들었다고 말했다.
“처음 대피소 근무를 할 때 20대 후반이었어요. 대피소에서 일하는 사람 중 가장 나이가 어렸죠. 그때는 대피소 분위기가 거의 ‘군대’ 급이었어요. 막내가 힘든 일 거의 다 했죠.”
“힘든 시간을 어떻게 버텼죠?”
“’자연’을 좋아해요. 제 고향이 속초예요. 속초는 다 있잖아요. 산, 바다, 호수 등. 그런데 서울 같은 대도시는 다르더군요. 저하고 잘 맞지 않았어요. 처음 대청봉에 올랐을 땐 외국인 줄 알았어요. 되게 놀랐죠.”
“그렇다면 출근길이 마음에 드나요?”
“네, 좋아요. 제가 평상시에 운동을 잘 안 해요. 출근하면서 자연스럽게 운동하는 편이죠. 저도 출근시간 2시간이 최고 기록이에요.”
그는 대피소 근무를 하면서 가족과 떨어져 있는 것이 오히려 장점일 때가 있다고 설명했다.
“초반에는 아내와 떨어져 지내는 게 힘들었어요. 그런데 몇 년 지나니까 이것이 장점이라는 걸 깨달았죠. 신혼 기간이 길어져요. 시간이 지나니까 다 적응하게 되더라고요.”
인터뷰 도중 함께 산에 오른 일행이 지쳤다면서 잠시 쉬어가겠다는 등산객이 찾아왔다. 신영창 주임은 흔쾌히 쉬었다가 가라고 했다. 얼마 후 등산객들은 하산하겠다고 했는데 신 주임은 이들을 말렸다.
“지금 날씨가 많이 안 좋으니까, 여기서 주무셔도 됩니다. 예약 취소자가 많아 자리가 남아요.”
그들은 신 주임의 말에 고분고분 따랐다.
당직근무를 마치고 오전에 방에서 잠든 신영창 주임. 근무자 개인 공간이 대피소 내에 얼마 없다.
“대피소에서 가장 오래 일한 근무자로서 중청대피소 철거에 관해선 어떻게 생각하죠?”
“일단은 철거지만 다시 짓잖아요. 리모델링을 하고 숙박 기능을 없앤다고 하긴 했는데, 이건 계획일 뿐입니다. 앞으로 언제든 다르게 바뀔 수도 있는 거고요. 물론 아쉽긴 하죠. 등산객 입장에서 생각하면 철거를 반대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어요. 여기는 설악산을 찾은 등산객이 당할 수 있는 사고를 줄이기 위한 중요한 위치에 있거든요.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빨리 고쳤으면 좋겠어요. 아니, 저는 꼭 다시 지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 중청대피소는 너무 낡았어요. 안전사고가 우려됩니다.”
당직자는 산객들 떠난 아침에야 취침
그는 책상에 놓은 목록을 내려다보면서 아직 대피소에 도착하지 못한 등산객들에게 한 명 한 명 전화했다.
“네, 지금 어디쯤 계시죠? 아, 그렇군요. 네, 조심히 천천히 오세요.”
이날 대피소에서 머문 등산객은 30명쯤 됐다.
창구 뒤쪽에 있는 부엌에선 막내 김명수 주임이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주 메뉴는 제육볶음이었고 반찬은 달걀말이와 김치, 깍두기, 김뿐이었다. 밥을 다 먹은 다음 설거지는 신영창 주임이 했다. 고무장갑을 낀 손놀림이 재빨랐다. 김명수 주임은 순찰을 돌았다. 돌아왔을 때 그의 손엔 담배 한 갑이 들려 있었다. 그가 말했다.
“탐방객들이 산장 내부나 혹은 주변에서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단속하고 있어요. 방금 전에도 어떤 등산객이 손에 이 담뱃갑을 쥐고 있었어요. 그래서 압수했습니다.”
시간이 금방 흘렀다. 밤 9시가 되자 신영창 주임은 대피소를 돌면서 소등했다. 다음날 아침 7시가 되자 등산객의 대부분이 대피소를 떠났다. 순식간에 대피소가 썰렁해졌다. 전날 당직이었던 신영창 주임은 2층으로 올라가 잠을 청했고, 김명수 주임은 등산객들이 머문 대피소로 내려가 청소기를 돌렸다. 이해일 분소장은 기상상황 등을 본소에 보고하느라 바빴다.
김명수 주임. 대피소 근무 1년 반 정도 됐다. 대피소에서 근무하면서 몸무게 30kg을 줄였다.
근무자들이 이용하는 욕실. 씻기 위한 용도의 물은 인근 샘터에서 가져온다. 갈수기 땐 씻는 데 애를 먹기도 한다. 사용한 물은 저장했다가 헬기로 실어 나른다.
설악산 대청분소장 "걱정마세요, 중청 완전 철거 아닙니다"
이해일 분소장이 전하는 말
대청봉 정상석 앞에 선 이해일 대청분소장.
설악산을 찾는 탐방객들이 중청대피소 철거를 아쉬워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특히 나이 드신 중장년층 탐방객들의 아쉬움은 남다른 것 같습니다. 중청대피소가 들어선 지 벌써 30여 년이 되었으니 그 무렵 중청대피소를 이용했던 20대는 지금 50대일 겁니다. 중청대피소는 그 긴 시간 동안 한결같이 이곳에 있었고, 탐방객들은 비나 눈보라를 피해 이곳에 들어 식사 한 끼를 해결하고 언 손발을 녹이며 하룻밤을 묵고 했으니, 특히 중장년층들이 중청대피소에 대해 느끼는 마음은 특별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우리 직원들에게도 중청대피소 철거는 남다릅니다. 1995년 지금의 중청대피소 건물이 들어설 때 근무하셨던 선배들한테 들은 얘기도 있고, 세월이 흘러 당시 중청을 지켰던 분들은 대부분 은퇴하셨습니만 그 시절은 정말 힘든 일들이 많았습니다. 이곳이 설악산 정상부라 바람이 우선 어마어마하게 붑니다. 바람이 심한 날은 대청봉을 지나가는 것 자체가 힘들 정도죠. 만일 그때가 겨울이고 눈 내리는 날이라면 정말 가혹한 상황이 됩니다. 중청대피소 직원들은 오색 방향으로 출퇴근을 하니, 눈폭풍이나 폭풍우가 심한 날엔 제때 퇴근을 못 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그런 때는 또 탐방객 재난안전 사고도 발생하기 쉬워 직원들이 정말 경계하는 때입니다. 폭설이 내리는 날도 그렇습니다. 폭설이 내리면 탐방로 이동 자체가 매우 힘들어 출퇴근 시간이 다른 때보다 배 이상 늘기도 합니다. 그런 모든 애환과 고생을 이곳 중청대피소에서 겪어 왔으니 이곳을 거쳐간 직원들이 겪었던 고생은 말로 형언하기 어렵습니다.
개인적으로는 2011년 가을에 겪은 이틀간의 중청대피소 파견근무가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 소청대피소에서 근무할 땐데 10월 어느 날, 주말을 끼고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일손이 부족하다고 중청대피소로부터 지원 요청을 받았습니다. 날은 춥고 비바람까지 불어대니 가을 단풍을 보러 대청봉에 오른 탐방객들로 중청대피소는 발 디딜 틈 없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한숨 돌릴 겨를도 없이 선배 손에 이끌려 고무장갑을 끼고 취사장으로 갔습니다. 비구름이 대청~중청봉에 낮게 걸려 있을 때라 주변은 뿌연 안개로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취사장은 라면 끓이고 고기 굽는 사람들로 그야말로 북새통이었습니다. 발길에 묻어난 흙과 먹다 흘린 라면발, 버려진 비닐로 진창을 이룬 취사장 바닥을 고무장갑 낀 손으로 30분 단위로 훑어야 했습니다.
취사장 정리가 끝나면 바로 화장실로 가야 했습니다. 줄 지어 사람들이 이용하니 틈만 나면 재래식화장실을 정리해야 했죠. 지금이야 ‘포세식’으로 보기에 좋지만, 그때만 해도 재래식이었으니 그 풍경을 짐작할까요? 제때를 놓치면 변기 가운데로 봉우리가 솟아 올랐습니다. 그러니 화장실 역시 수시로 들여다봐야 했습니다. 그날은 아마 거의 앉아 쉬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 시절 중청대피소에서 근무했던 직원들은 다들 비슷한 경험들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또 중청대피소에서 근무하다 보면 지치고 탈진한 사람들, 다리가 풀려 발목을 접질리거나 넘어져 다친 탐방객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가을처럼 기온 변화가 크고 날씨가 궂은 날 제대로 된 복장을 갖추지 못한 탐방객 중에서 저체온증을 호소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대피소 객실은 마룻바닥이라 체온 회복에 충분치 않다 싶으면 직원들 머무는 숙소를 비워 돌봐주는 경우도 흔하게 생기는 일들입니다. 이 모든 것들, 대청봉을 오른 탐방객들과 직원들이 겪은 모든 경험과 추억들에 중청대피소가 자리하고 있다고 봅니다.
이제 3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중청대피소가 시설 노후화에 따른 안전문제 우려로 철거되고 신축될 예정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탐방객들은 철거된다는 것만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완전 철거가 아니고 노후건물 철거 후 새 건물이 들어서는 ‘신축’입니다. 지난 30여 년간 설악산을 지켜온 중청대피소가 새로이 태어나는 겁니다.
올해 중청대피소에 근무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설악산을 찾는 젊은 세대가 엄청 늘었다는 것입니다. 지난 몇 년간의 코로나 유행 후, 눈에 띄게 두드러지는 특징입니다. 젊은 산행 인구가 늘어나는 것에 맞추어 새롭게 들어서는 신축 중청대피소 또한 그들의 젊음 속에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갈 겁니다. 몇 십년 뒤에 그들이 우리처럼 장년이 되었을 때 그들의 추억담에 등장하는 중청대피소는 새로이 지어지는 신축 대피소의 모습으로 자리할 겁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현 중청대피소의 철거를 추억의 파괴라고 보지 않습니다. 시간은 미래로 흘러가니까요. 앞으로도 중청대피소는 지금과 같은 위치에서 계속 우리들 곁에서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나갈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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