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창문을 열면 마음이 들어오고. . . 마음을열면 행복이 들어옵니다.
  • 국내의 모든건강과 생활정보를 올려드립니다
등산

[눈표범 원정대] 7,000m 5개가 뭐길래…입사 1년 만에 사표 던지다

by 白馬 2023. 3. 9.

대학산악연맹 MZ 3인의 눈표범상 원정 도전기

 

한국대학산악연맹의 젊은 피 김태관, 이재호, 최선홍이 눈표범상을 따기 위한 원정을 시작한다. 아직 보내 준다는 사람도 없고, 계획도 없지만 일단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던졌다. 아무것도 없는 맨바닥에서부터 저기 머나먼 설산의 정상까지. 성공할지 실패할지 모를 이들의 여정을 시리즈로 담는다. - 편집자

(좌) 입사당시 팀장님이 본 나 / (우) 1년후 팀장님이 본 나

 

“그래도 4월까지는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해요.”

마지막 기회를 주는 듯한 팀장님의 한마디에 오만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스치는 건 대부분 지난 20분 동안 팀장님이 하신 말들이다. ‘생계도 걱정해야지’ 라던가 ‘현실적으로 생각해서’, ‘이제는 안정적인 삶을 생각할 나이’ 화룡점정으로 ‘또래보다 늦은 취업이 불안하지 않는가’까지.

걱정을 넘은 오지랖이 해도 너무하다고 아주 찰나 생각했지만 사실 너무한 건 나였다. 그도 그럴게 입사한 지 1년 간신히 채운 신입이 “7,000m짜리 산을 두 개 오르고 싶으니까 두 달 휴가를 허가해 주시든지, 아니면 그만두겠습니다”라고 한다면 누구라도 ‘얘가 정신이 나간 걸까’ 생각할 것 같다. 물론 저렇게 거두절미하고 극단적으로 이야기하진 않았다. 뭐라고 했더라?

“다가오는 7월부터 8월에 걸쳐 중앙아시아의 7,000m 봉우리 2개 등반을 하고자 하오니 가급적이면 두 달 정도 휴직을 하여 경력과 현재 직무를 유지하고 싶습니다. 만일 불가능하다면 불가피하게 퇴사하겠습니다. 부디 재가 부탁드립니다.”

 

레닌 봉 정상의 최선홍.

 

팀장님의 깊은 고뇌에 유감을 표하며 자리로 돌아간 나는 생각했다. 나는 구체적이고 예의바른 날강도라고. 방금 이야기를 듣지 못한 사수는 앞으로 잘하면 된다고 격려해 주었지만 그는 알까, 3개월 뒤면 우리의 앞으로는 없다는 걸…,

이거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머릿속에선 지난 기억의 필름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때는 2021년 1월로 돌아간다. 2018년의 중국 강시카산 등반 이후 고산등반에 대한 꿈과 희망을 키워가던 나는 키르기스스탄의 7,000m 봉우리 5개를 모두 오른 산악인에게 주어지는 영예인 눈표범상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게 됐다. 이븐시나(레닌봉·7,134m), 젱이시 초쿠수(포베다봉·7,439m), 캉텐그리(7,010m), 이스마일 소모니(코뮤니즘봉·7,495m), 오조디(코르체넵스키 봉·7,105m) 총 5개의 7,000m급 봉우리를 오르면 주는 상으로 한국인 중에서는 아직 그 누구도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에 걸쳐있는 눈표범상 대상지 5개봉. (출처:https://www.chumacraju.org)

 

이븐시나(레닌 봉) 7,134m

젱이시 초쿠수(포베다 봉) 7,439m

캉텐그리 7,010m

이스마일 소모니(코뮤니즘 봉) 7,495m

오조디(코르체넵스키 봉) 7,105m

키르기스스탄 7,000m 5개봉 완등하면 눈표범상!

사실 상 자체는 알바 아니다. 이미 세계인들은 5개 봉우리 연속 타임어택에 스키 등반도 했다. 이런 마당에 한국 초등은 중요하지 않다. 나를 매료시킨 건 단 두 가지 이유였다. 첫째 히말라야와는 비교할 수 없는 저렴한 가성비 원정지라는 것, 둘째 눈표범상이라는 ‘쩌는’ 이름. 솔직히 소련에서 만들었던 상인 만큼 ‘산악인민상’이나 ‘로동당 산악인상’ 같은 이름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눈표범이라는 멋이 철철 넘치는 이름을 듣자 ‘한국의 눈표범 김태관’이라는 타이틀에 군침이 싸악 돌아버린 것이다.

눈표범 대상지를 최단시간에 스키등반까지 해버린 폴란드 산악인 안제이 바르지엘. 2018년도에 K2  꼭대기에서 스키하강한 그 사람이 맞다. (출처: 바르지엘 웹사이트)

 

그후로 백날 천날 가고 싶다고 돌림노래를 불렀다. 그러다 어느 날 우연히 가진 술자리에서 술김에 나와 인천대 산악부 최선홍 단 둘이 원정대를 결성했다. 그리고 2021년 7월 코로나의 두려움이 세상을 휩쓸던 그 하이라이트에 눈표범상 대상지 중 가장 난이도가 낮다고 알려진 레닌봉으로 향하게 되었다.

 

레닌봉의 기억들, 많은 일을 경험했던 4주간이었다.

 

천운인지 악운인지 그 누구도 다치지 않고 단 둘만의, 우리들의 첫 7,000m 고산등반을 성공적으로 끝마치게 되었다. 기사도 쓰고, 보고서도 쓰고, 월간<산>에 원정기도 내며 한껏 성공의 기쁨을 만끽하던 우리는 이번 원정에 전폭적인 도움을 주신 한국외대 산악부의 김동수 선배님을 찾아뵙고 보고서도 전달 드리고자 2021년 11월 대학산악인의 밤 행사에 참석했다. 거기서 만난 한국외대 산악부 후배 이재호는 그 전해에 해외원정의 경험에 목말라 있던 우리와 똑 닮아 있었다. 결국은 또 술의 힘을 빌어 2차 키르기스스탄 원정대(잠정)가 발족했다. 우리는 밤새 캉텐그리와 포베다에 대해 떠들며 열정을 불태울 곳을 찾았고, 그렇게 우리의 원정을 향한 발걸음이 시작됐다.

그리고 시작과 동시에 즉시 걸음을 멈췄다. 무책임한 대장인 내가 덜컥 취업을 해버리는 바람에 2022년 원정은 물 건너가게 되었다. 당시 선홍이는 “형이 취업을 왜 해요!”라고 했다. 어떻게도 아니고 왜라니. 그는 내 한량 인생에서 취업은 당연히 없는 변수로 치부하고 있었다.

사실 레닌봉에서 고생이란 고생을 다하고 하강 도중 로프를 놓쳐 삼도천을 프리다이빙으로 입수할 뻔했던 나로서는 조금 산과 거리를 두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모처럼 대기업에 입사도 했겠다. 2년 바싹 채워서 정규직 되고 가도 늦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애초에 내가 다시 그런 개고생을 하고 싶을지도 의문이었고. 그렇게 대충 반년이 흘러 2022년 6월에 나는 생각했다.

 

‘개고생하고싶다…!’

술김에 원정 선언

그저 안락의 바다로 흘러갈 것 같았던 나의 마음은 어느덧 저 연어 떼와 같이 내 삶이 가장 가치 있게 빛났던 개고생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이 신비한 감정 변화에 번민하기 시작한 나는 원정을 갈 구실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2차 키르기스스탄 원정대(잠정)은  ‘언제 밥 한번 해야 하는 모임’으로 변해가고 있었고, 현장과 사무실을 오가는 나의 업무 특성상 ‘산에서 한 번 보자!’ 도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대로라면 정년까지 월급 타먹다가 그 사이에 결혼하고 애는 둘 정도 낳고 퇴직금으로 카페나 하는 삶을 살게 될 거라는 불안감과 묘한 기대감이 함께 흐르기 시작할 때, 동아줄이 내려왔다. 대학산악연맹 50주년 기념으로 재학생들이 주축이 돼서 꾸린 원정대가 나에게 원정대상지 추천을 요청한 것이다.

나는 내가 아는 한 해외원정의 권위자인 동수 형님과 나와 같이 원정을 다녀온 선홍이, 그리고 ‘밥 한번 해야지’ 상태였던 재호까지 불러다가 50주년 기념 원정대의 주축이 되었던 재학생들과 회동의 자리를 가졌다. 마시고 먹고, 웃고 떠들고 그리고 이어진 2차 자리에서 거나하게 취한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선언해 버렸다.

“나 일 그만두고 너네랑 원정 갈래!”

역시 술이 원수다. 그렇다고 해도 당장 출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던지라, 팀원들은 팀원들대로, 나는 나대로 뭉그적뭉그적 자료를 모으면서 시간을 죽이고 있던 와중에 인사발령이 나서 개인면담을 가지게 되었고, 팀장님이 머리를 싸매게 된 것이다.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날벼락을 맞게 된 팀장님께는 죄송한 마음뿐이다. 갑자기 두 달 휴무 아니면 퇴사할 거라는 레볼루시옹 노사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했던 팀장님께 다시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 아 물론 퇴사는 할 거지만.

결국 그렇게 퇴사 날(공식적으로는 다시 이야기해 보자는 날이지만) 정해지고 원정 준비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올해의 원정 대상지는 캉텐그리와 포베다로 좁혀지게 되었는데, 이유는 타지키스탄보다 비행기 값이 덜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교적 원정기도 많고 완등자도 많았던 캉텐그리와 달리 포베다는 국내 원정사례는 고사하고 해외 등정기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다녀왔던 레닌봉과 달리 난이도로 치자면 8,000m 봉과도 맞먹을 만큼의 살인적인 기후와 운행거리를 자랑하는 곳인 만큼 당연한 일이었다. 캉텐그리를 가자니 뭔가 아쉽고, 포베다를 가자니 실패로 돌아가 또 1년을 기다리는 것이 걱정이었던 우리의 결정은 이랬다. 둘 다 가기로.

아니 뭐… 캉텐그리 하고 포베다도 하면 좋은 거고, 캉텐그리 하고 포베다 못 하면 캉텐그리는 건진 게 될 테니깐. 그게 아니더라도 둘 다 하는 걸로 상정하고 원정에 임하면 뭐라도 하나는 건지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낙관론에 기댄 결정이었다.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세 명이 7,000m 봉우리 2개를 오르겠다는 무모한 도전이 시작되었다.

원정 준비는 레닌봉 때와 마찬가지로 진행되었다. 짬날 때마다 개인 훈련을 하고, 시간이 맞으면 팀 훈련을 하고, 자료와 계획서를 준비한다. 그렇게 모든 게 준비되면 통장을 털고 선배들 바짓가랑이를 붙잡아 예산을 마련하고 간다. 하지만 이번 원정의 경우 나도 기대하는 바가 크고 뭔가 크게 이루고자 하는 욕심이 생겨서 추가로 세 가지를 더 넣어보려고 시도했다. 협찬 및 후원사, 팀 SNS 생성 및 원정 준비 과정과 원정기 연재, 멋진 로고(제일 중요)다. 

로고가 필요한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역시 팀 로고는 필요하다. SNS 프로필로 사용할 수도 있고, 와펜을 제작해서 팀의 소속감을 줄 수도 있고, 협찬사에서도 글자만 좌르륵 있는 단체보단 뭐라도 마크가 달려 있는 편이 뭔가 본격적인 원정대스럽고 좋아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냥 로고를 갖고 싶었다. 

그런 관계로 가장 시급한 3번을 먼저 완료하기로 했다. 미대 나온 현직 종사자인 누나에게 금일봉과 치킨을 지불하고 우리의 로고가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팀 이름이 뭐가 될지 생각해 본 적 없었기에, 눈표범상을 수상하고자 하는 우리의 목적만이 아주 순수하게 보이는 로고가 완성되었다. 그리고 본격적인 원정 준비에 돌입했다. 

 

멋진 팀 로고. 이걸로 좀 더 의욕이 생기면 좋으련만...

 

1. 훈련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자 우리가 가장 곤란했던 점은 훈련이었다. 레닌봉 원정 때야 둘 다 할일 없는 백수나 다름없었으니 마음 내킬 때 훈련이 가능했는데, 이제는 좀 어려워진 것이다. 한 명은 회사원(퇴사 예정), 한 명은 대학생(대학원 예정), 한 명은 월세 방도 빼서 집시생활을 하고 있으니 스케줄이 맞으려야 맞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각자 알아서 훈련하다 공항에서 만나자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우리는 개인 훈련을 공유하며 서로의 나태함을 예방하고자 했다.

팀원들이 사용하는 밴드를 개설해 개인훈련, 팀훈련, 협찬 및 후원부터 자료까지 우리의 모든 데이터를 보존하고 공유하기로 했다. 체력훈련에 대해서는 누군가 가르쳐줄 필요까지는 없을 정도로 베이스가 있기에, 자율훈련을 밴드에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효과는 있는 것 같았다. 가능한 한 해당 훈련 내용을 데이터로 남기고자 노력했다. 삼성헬스나 기타 운동 기록 어플 등 신체활동을 정확하게 기록할수록 우리는 물론 원정을 준비하는 다른 사람들이 이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엔 야심찼지만 결국 지금은 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적을 뿐이었다. 그래도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는 점이 정말 다행이었다.

그리고 1월의 끝자락에 드디어 처음으로 팀 훈련을 진행했다. 우리 셋만의 훈련은 아니었지만, 연차를 간신히 받아낸 나는 아무래도 좋았다. 2년 만에 돌아온 설악산은 너무나 즐거웠다. 비록 기상악화로 인한 통제로 인해 훈련일정은 조금 줄어들었지만, 1년 동안 책상물림을 하면서 체력이 바닥을 쳤을 것이라는 스스로에 대한 걱정을 줄일 수 있었던 훈련이었다. 그러나 설악산 훈련에 마지막 연차를 써버린 나는 선홍이와 재호가 제주도에서 원 없이 러셀을 할 동안 그저 아쉬움과 싸우며 사직서 양식이나 찾아보게 되었다.

 

밴드를 사용하여 개인 훈련과 팀 훈련을 공유하고, 삼성헬스 등을 활용해 데이터를 남기려고 노력했다.

 

생각보다 힘들었지만 또 생각보다는 할만했던 설악 훈련

 

2. SNS 운영 / 협찬 및 후원사 발굴

다른 두 명이 훈련에 열심인 와중에 나는 책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그중 하나가 SNS 운영과 후원사, 협찬사를 물어오는 일이었다. 사실 둘 다 딱히 생각은 없었지만 우리의 원정 계획을 들어주신 선배님 한 분이 물꼬를 틔워 주셨다. 많은 장비회사의 장비들을 생산하던 등산장비 생산 전문 회사인 동인기연에 재직 중이던 강남대 산악부 강동욱 선배님이 동인기연에서 론칭한 INSOOTH 브랜드의 장비 일체를 지원해 주시기로 하신 것이다.

 

협찬받은 장비와 함께 운행하는 이재호 대원

 

SNS에 사진과 함께 이리저리 해시태그를 걸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지만 오히려 이러한 조건이 있었기에 팀 계정 운영과 협찬 및 후원 제안서의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렇게 밤을 새워 가며 만든 협찬 제안서가 완성되었고, 나는 처음으로 모 기업에 전화해 협찬 및 후원 제안을 시도했지만 대차게 까였다. 협찬을 진행할 여력이 안 된다는 말과 함께.

 

원정대 협찬 제안서 표지. 열심히 만들었다...진짜 열심히 만들었다구요...

 

그렇겠지. 처음부터 너무 대어를 노렸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제안서 접수조차 받지 않을 줄은 몰랐다. 아무튼 협찬사 및 후원사의 물색은 현재진행 중이다. 무리하게 거물을 노리다 마음의 상처를 입기보다는 작은 소품이나 행동식 같은 틈새시장을 노려 진행하고자 한다.

또한 여러 채널을 통해 원정기를 기고하면 좋겠다는 마음에 레닌봉 등정기로 인연이 있었던 월간<山>에 연락해 원정기를 싣기로 했다. 

 

3. 자료수집

다음은 자료수집이었다. 캉텐그리는 구글 어스에 스트리트 뷰까지 있을 만큼 자료가 풍부했다. 어디에는 뭐가 있고, 로프 상태는 어떻고, 캠프 포인트는 어디가 좋고. 그런 것들이 자세하게 나와 있는데다가 국내에도 등반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는 캉텐그리를 비롯해 멋진 고산 등반을 다수 경험했던 경북대학산악연맹의 구교정 선배님을 소개받아, 캉텐그리 원정에 필요한 자료와 조언, 그리고 훈련을 도와주시겠다는 제안까지 받게 되었다. 정말 압도적으로 감사할 따름이다.

그러나 문제는 역시 포베다였다. 스트리트뷰는 고사하고 루트맵은 ‘대충 이렇게 가면 됨’ 수준에 몇몇은 1980년대를 넘어서지 못한 시점의 자료인 것도 많았다. 원정기록은 남아 있지만, 자료는 남아 있지 않는데다가 해외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나마 찾은 자료들의 공통된 내용은 단 하나였다. ‘진짜 힘듦’. 뭐 힘들지 않는 산이 어디 있겠냐만 국내외를 막론하고 위키백과에서부터 러시아 등반기까지 ‘험난한’, ‘거친’, ‘극한의’, ‘목숨이 걸린’ 같은 단어를 남발하는 걸 보자 역시 겁이 나긴 했다. 이제와 겁이 나봐야 어쩔 방법도 없으니 사지 멀쩡히 돌아오기 위해 포베다에 대한 자료 수집은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이다.

 

김미곤 대장의 결정적 조언

그렇게 원정 준비가 느릿느릿, 긍정적으로 보면 착착 진행되던 와중 외대산악부 동수 형님에게 연락이 왔다. 

“다른 게 아니라~ 김미곤 대장이랑 종로에서 술 한 잔 하자고~”

“아, 술자리 이야기셨구나. 하하하…누구요? 예?”

그 14좌 김미곤 대장님이랑 우리가 술을 한잔 한다고요? 우리 같은 애들이랑 같은 공기를 마실 수 있는 분이신가? 뭘 물어봐야 하는 거지?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거지? 오만 가지 고민을 하던 차에 약속의 저녁은 덜컥 다가왔다.

한인석 선배님이 운영하시는 AMG 티타늄 종로 매장에서 만나 뵌 김미곤 대장님은 생각했던 것 같은 무시무시한 분은 아니셨지만 정말 단단하고, 옹골찬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악수할 때 마치 바이스랑 악수하는 것 같았다. 스포츠클라이머들의 악력이 강하다고들 하는데, 그런 종류의 악력이 아니었다. 강한 악력이라기보다는 놓치지 않는 쪽의 악력이라고 해야 할까. 이런 악력이 있었으면 레닌봉 때 하강 로프를 안 놓쳤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우리는 즐거운 저녁자리를 위해 이동했다.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지만, 따뜻한 국물과 술이 넘어가자 쓸데없는 고민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대장님은 우리의 눈높이에서 고산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과 할 수 있는 일들을 가르쳐 주셨다. 작게는 물을 마시는 법부터 크게는 등로주의와 등정주의 사이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방향성에 대한 조언까지 본인의 경험과 풍부한 지식에서 나오는 설명들은 우리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특히 설맹과 고산병에 대해 말씀하실 때 정말 전문적인 지식과 함께 본인의 경험에서 비롯된 증상, 예방법, 대처법까지 무엇 하나 새겨듣지 않을 수 없었다. 나 또한 레닌봉에서 1도 설맹을 겪어 순식간에 한밤중에도 선글라스 쓰고 다니는 연예인병 말기가 될 수밖에 없었기에 정말로 중요한 이야기였다.

 

(좌측부터) 이재호 대원, 외대산악부 김동수선배님, 김미곤 대장님, 필자,. 최선홍대원, 고대 산악부 이제하

 

남은 시간 5개월, 우리 원정 괜찮을까?

이렇게 지금까지의 기억들을 되짚어 보았다. 뭔가 많이 한 것 같기도 하지만 아직 아무것도 안 한 것 같다. 돈도 안 모였고, 현지 에이전시와는 아직도 논의 중이며, 무엇보다 돈도 없다. 분명 회사에서 연말에 인센티브인가 뭔가 받았던 거 같은데, 어디로 갔는지 먼지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이렇게 된 이상 남은 수단은 퇴직금뿐인가…. 이쯤 되면 4월까지 남아 있자고 제안해 주신 팀장님께 감사드려야 할 것 같다.

글을 쓰다가 바람 쐬러 나갔는데, 어느덧 춥고 매서운 바람이 아니라 봄이 다가오는 것 같은 바람이 느껴졌다. 문득 동수 형님이 하셨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등반은 동화와 같은 것이라, 현실과 함께 있을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 뒤에 그렇기에 산 다니는 놈들은 현실 부적응자며, 그게 너희들이 남들처럼 연애 한 번 못 하는 이유라는 사족이 붙기는 했지만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여름의 한복판에서 눈 덮인 산을 꿈꾸며, 두 발을 땅에 붙이고 수직의 암벽을 올려다본다. 시대의 기준과 보통의 존재에 대한 일말의 지향도 품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산을 오르려고 한다. 이기적이라는 말보다는 현실과 타협하지 못한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이제 5개월 남짓 시간이 남았다.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모르겠지만, 후회가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보고자 한다.

여담이지만 눈표범 원정대란 이름은 가제다. 월간<山>에 원정기를 기고하고 싶다는 제안을 드린 그날 서현우 기자님이 여쭤보셨다.

“그래서 원정팀 이름은 뭔가요?”

“한국 눈표범 원정대입니다!”

“음… 그건 좀… MZ하지 못한데…아 물론 산은 그게 맞긴 한데… 일단 보죠.”

“…”

종로 5가 닭한마리에서 원정대 대원들. 어쩌면 우리 원정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진이라고 할 수 있..겠


오늘의 날씨

* 오늘 하루도 즐겁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