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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제주 바굼지오름] 불후의 명작 ‘세한도’를 품은 오름

by 白馬 2023. 3. 8.

서귀포시 안덕면의 158m 바위산이자 오름

 

서쪽 상공에서 본 바굼지오름과 산방산.주변의 밭이 초록 조각보 같다.

산방산(395m)은 제주 서남부를 여행할 때면 거의 모든 풍광에 등장하는 배경 같은 오름이다. 서귀포시 안덕면의 화순금모래해변 끝자락에 우뚝 솟은 독특한 모양새로 인해 제주를 찾는 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기념사진을 찍는 명소기도 하다. 

산방산은 옛날 사냥꾼이 잘못 쏜 화살을 맞고 화가 난 옥황상제가 한라산 정상의 바위봉우리를 뽑아 던진 것이라는 전설이 전해온다. 약간 떨어져서 산방산을 보노라면 한 세트로 눈에 들어오는 작은 오름이 있으니 바로 바굼지오름(단산)이다. 

 

모슬포에서 서귀포 방향으로 가는 일주도로에서 본바굼지오름과 산방산.

 

골리앗 앞에 선 다윗

‘바굼지’는 바구니의 제주어다. 옛날 일대가 물에 잠겼을 때 이 오름이 바굼지만큼만 보였다는 전설에서 ‘바굼지오름’이라 불렸고, 나중에 소쿠리 단자를 써서 ‘단산簞山’이라 기록했던 것. 혹은 전체 모양이 박쥐를 닮아서 박쥐의 제주방언대로 ‘바구미오름’이라 부르던 것이 와전되어 바굼지오름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조선조 유배지였던 제주에서도 사람들이 가장 꺼리던 곳이 바굼지오름이 있는 이곳 대정지역이다. 바람이 거세고 땅이 유달리 거칠어서 제주 사람 사이에서도 ‘모슬포’를 ‘못살포’라 부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였으니 이곳에서 8년간 귀양살이를 했던 추사 김정희의 고통은 말해 무엇 할까? 

추사의 적거지가 있던 안성리에서 바굼지오름이 멀지 않다. 그가 바굼지오름 아래의 대정향교와 세미물을 자주 찾았다고 하니 그 걸음에 몇 번쯤은 바굼지오름도 올랐을 테다. 그래서 어떤 이는 바굼지오름을 ‘추사의 산’이라고도 한다. 

골리앗 앞에 선 다윗의 모양새가 딱 이랬겠다 싶다. 바굼지오름은 산방산에 비해 덩치나 높이에서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작고 낮다. 그러나 산방산의 거대함에 절대 기죽지 않은 듯 강력하고도 당당한 산세로 섰다. 그 모습이 거인 골리앗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가는 소년 다윗을 떠올리게 한다. 모슬포에서 일주서로를 따라 화순 방향으로 갈 때나 안덕면 중산간에 있는 세계자동차제주박물관 전망대에서 보면 특히 도드라진다. 

 

바굼지오름 남쪽에 자리한 대정향교.

대정향교에서 짚어보는 추사의 자취

바굼지오름은 정상의 높이가 158m로 단숨에 오르내릴 만큼 낮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암릉이 뼈대를 이루고, 굴곡이 있어서 오르내리는 게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본격적인 트레킹에 앞서 꼭 들러야 하는 곳이 대정향교와 세미물이다. 오름 남쪽의 주차장 바로 앞, 바굼지오름을 뒷산 삼아 자리한 대정향교는 조선 태종 16년(1416)에 처음 세워졌다가 터가 좋지 않다며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효종 4년(1653)에 지금 자리에 정착했다. 

 

제주로 유배를 떠나온 추사는 이곳에 자주 들렀으며,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고 전한다. 1846년, 추사는 대정향교의 훈장 강사공의 부탁을 받고 동채에 ‘疑問堂의문당’이라는 현판 글씨를 써주었다. 학문을 함에 있어서 항상 의문을 품고 진리를 찾을 것을 강조한 말이다. 이 현판은 현재 제주 추사관으로 옮겨져 전시되어 있다. 

 

대정향교는 바람 많은 제주의 옛 건축물이 대부분 그렇듯 지붕이 매우 낮다. 그리고 화강암이 아닌 검은 현무암으로 축대와 담을 쌓아서 이색적인 느낌을 준다. 강학공간인 명륜당 마당엔 팽나무와 소나무 노거수가 서로 마주보며 가지를 뻗고 있다. 이는 1811년 강사공이 삼강오륜을 상징하는 의미로 심은 소나무 세 그루와 팽나무 다섯 그루 중 일부다. 이 두 나무가 추사의 그 유명한 ‘세한도’에 등장하는 나무의 모델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바굼지오름 정상. 멀리 뾰족한 봉우리가 동봉이고, 그뒤로 큰 덩치의 산방산과 구름이 머무는 한라산도 보인다.

 

어디서도 만나지 못할 조망

향교를 나와 단산사로 향하는 길에 반듯한 돌담에 둘러싸인 샘이 있다. ‘돌세미石泉’ 또는 ‘세미물’로 불리는 이곳은 옛날 일대 주민들의 식수로 사용되었으며, 바굼지오름 아래에 있다고 해서 ‘바곤이세미’라 부르기도 했단다. 차를 즐겨 마셨던 추사도 이 물을 길어 차를 마시며 힘든 유배 생활에서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오름 들머리는 크게 세 곳이다. 남서쪽 금산과의 사이 안부를 지나는 세미고개와 동쪽 암봉 아래, 그리고 북쪽에서 정상 동쪽 안부로 오르는 계단이 그것. 가장 많은 이가 이용하는 코스는 주차장을 갖춘 남쪽 자락의 대정향교를 기점으로 삼고 단산사를 거쳐 정상에 올랐다가 동쪽 암봉을 지나 내려선 후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모두 3km쯤 된다. 

 

바굼지오름 정상에서 만끽할 수 있는 조망의 값어치는 얼마나 될까? 자동차 여행을 하면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너무나 멋진 모습의 제주가 그곳에 있다. 남쪽으로 형제섬과 가파도, 마라도를 품은 맑고 푸른 제주 바다가 송악산 앞으로 시원스레 펼쳐지고, 걷는 내내 시야를 가득 채우는 산방산은 감탄 그 자체다. 

 

동봉의 남쪽 면. 온통 바위로 된 이 봉우리는 한때 제주 산악인들의 암벽훈련장이기도 했다.

 

절벽을 이룬 북사면 아래로 인성리와 보성리의 크고 작은 밭들이 초록빛 조각보를 덧댄 듯 싱그럽고, 중간 중간의 샛노란 유채꽃이 만발한 밭들은 금 조각을 뿌려놓은 것처럼 매혹적이다. 그 뒤로 한없이 뻗어간 들판과 그 지평선 끝에서 솟은 오름들이 그려내는 제주의 풍광은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이 모든 절경이 시작된 한라산까지, 그야말로 일망무제로 펼쳐지는 제주가 이 작은 오름에서 다 보인다. 

 

정상에서 태극무늬를 그리며 동쪽으로 이어진 능선이 매우 역동적이다. 산 이름처럼 박쥐가 날개를 펼치고 날아오를 듯한 형국 그대로다. 그 끝의 동봉 너머로 산방산이 오버랩되며 풍광은 더욱 신비감을 더한다. 그야말로 제주에서 쉬 만나기 힘든 생경한 그림이다.

 

바위투성이인 동봉은 제주의 산악인들이 암벽훈련을 하던 곳으로, 전문 장비를 갖추지 않고는 오를 수 없을 만큼 가파르다. 대신 남쪽 허리를 따라 줄이 매진 좁은 길이 나 있다. 몇 곳의 바위전망대가 나타나며 쉬어가기도 좋다. 세미고개에서 정상에 올랐다가 동봉을 지나 내려서는 데는 2시간 남짓 걸린다.  

 

바굼지오름 남쪽 자락에 있는 대정향교. 저 소나무가 추사의 ‘세한도’ 모델이라는 설이 있다.

 

교통

서귀포시 구터미널에서 고산환승정류장을 오가는 202번 간선버스와 제주시버스터미널에서 모슬포항을 오가는 251번 간선버스가 향교 입구(정류장명은 ‘사계리서동’)에 선다. 정류장에서 대정향교까지는 1km 남짓 거리다. 

 

바굼지오름 안내도

 

세계자동차제주박물관의 롤스로이스 전시 코너.

 

주변 볼거리

 

세계자동차제주박물관 2008년 4월에 개관한 세계자동차제주박물관(064-792-3000)은 세계 자동차의 역사와 자동차 명 브랜드의 초기 모델부터 최첨단 제품까지 자동차에 관한 놀라운 컬렉션을 감상할 수 있다. 90여 대의 클래식카를 보고 있노라면 쿠바에 온 듯 착각이 들 정도다. 어린이들이 직접 시운전을 해볼 수 있는 미니자동차체험관도 운영 중이다. 주소 서귀포시 안덕면 상창리 2065-4

 

만선식당의 고등어회 상차림.

 

맛집

 

모슬포항에 싱싱한 고등어회를 맛볼 수 있는 만선식당(064-794-6300)이 유명하다. 산방산과 그 주변으로도 맛집과 전망 좋은 카페가 여럿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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