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광산 정상, 바다와 가깝다.
일광日光은 햇빛이다. 멀리서 보면 정상이 흰 눈 덮인 것처럼 희게 보여 백두산이라 했는데 흰빛 뫼에서 햇빛 뫼의 차음으로 일광산, 일출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곳이다. 해 뜨는 것이 일출이라면 해에서 나오는 빛은 일광, 솟아오르는 찬란한 태양의 기운을 받기 좋은 곳이다. 대략 1억5,000만km 거리에서 도달한 햇살, 여기서 동해의 볕내를 맡는다.
일광산(385m)은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읍에 있는 기장의 진산鎭山이다. 읍성이 있었던 충절의 고장답게 문필봉으로 친다. 비단을 짜는 베틀機이 펼쳐진張 형국이어서 기장機張이라는 것과 기機는 노기기장弩機旣張, 쇠뇌 노弩, 화살이나 돌을 잇달아 쏠 수 있는 장치를 댄 활을 뜻하므로 변방인 기장을 수비한 데서 유래됐다는 것. 산성·읍성·왜성 등이 있어 왜적과 전투가 빈번했던 군사적 요충지, 6년간 유배생활한 고산 윤선도의 자취가 남아 있다.
일광포구, 신도시가 됐다.
갯마을 일광포구
산행 기점은 주로 기장향교(정상까지 4.2km 정도)에서 시작하지만 백두사(정상까지 2.3km)에서 오르면 가장 짧은 구간이다. 월명사, 횡금사 구간이 있지만 테마임도를 따라 걸으면 산책하듯 걷기 좋은 길이다. 어느 쪽이든 산행시간은 거의 2시간 안쪽이다.
정오 무렵 일행은 일광포구에 도착했다. 100년 넘은 아름드리 곰솔 수십 그루가 마을의 역사를 알려주는 듯 쉬어 가기 좋은 곳이다. 이천강 다리 옆에 갯마을 문학비, 소설가 오영수(1914~1979)의 ‘갯마을’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1940년대 일광 이천마을 배경으로 여성의 삶을 서정적으로 그린 작품으로 알려졌다.
소설 속의 주인공을 이야기하다 바닷물과 민물이 섞인 강 건너 강송정 공원, 후박나무, 야자수, 겨울에도 이파리 늘어진 수양버들 아래 노는 검둥오리에 정신이 팔려 있다. 일행들은 식당으로 가자고 손짓한다. 아귀 수육, 한 잔은 최고의 오찬이다. 10년도 더 된 지난날 달음산 오면서 들렀던 그 식당,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문전성시다.
오후 3시경 고불고불 산길을 올라 횡금사 입구 주차장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겨울철이지만 남쪽바다 해양성 기후 덕택에 빨간 동백꽃이 피었고 소철이 자란다. 일광산 돌아오는 데 40~50분이면 충분할 것 같은 넓은 비포장 길 임도다.
산길에 떨어진 나뭇잎 한 장 한 장마다 여름 내내 초록빛으로 광합성이라는 중노동에 시달리다 한 번도 주목 받지 못하고 떨어진 이름들. 맑은 공기 내어 주고 지구를 숨 쉬게 했던 거룩한 잎들, 누가 하찮은 낙엽이라 하는가? 가을 지나 겨울이 되니 시린 땅을 모두 덮어 주었다.
바람재 휴게소.
능선 갈림길.
광합성의 노동에 시달린 나뭇잎
때죽·산벚·신갈·비목·소나무를 만나고 건너편에 바위 얹힌 달음산이 빤히 보인다. 그 너머 왼쪽 천성산, 일부 구간은 나무가 없어서 맨둥맨둥하다. 15분쯤 지나 리기다소나무 군락지인데 컴컴하고 모두 짙푸른 동갑내기 숲이다. 노란 이파리 떨어진 나뭇잎에 신발이 미끄러져 하마터면 엎어질 뻔했다. 곧이어 바람재 파고라 휴게시설(일광산 0.2·횡금사 0.5·아홉산 정상 9km)에 닿는다. 까마귀 소리 깍깍대는 나무계단 오르는 길에는 편백·스트로브잣·리기다소나무를 바라보며 오르는데 이내 숨이 찬다.
갈림길(아홉산 4·백두사 1.2·월명사 1.9km)에 서니 왼쪽으로 포구에서 들리는 뱃고동소리 정겹다. 동해바다 풍경이 시원스레 한눈에 들어오는가 싶더니 오후 3시30분 일광산 정상에 도착. 정상은 그리 높지 않지만 바다와 가까이 있어 해맞이하기 딱 좋은 산이다.
“화투의 오광 중 첫 번째 일광이라 올해는 대박난다.”
우스갯소리에 옆에서 웃는다.
정상 몇 군데 말고는 가파른 오르막이 없고 주변 경치가 아름다워, 특히 여름철에 많이 찾는 산으로 알려졌다. 동쪽에 신도시 아파트와 일광해수욕장, 북쪽으로 달음산(588m), 남쪽 해운대구 장산(634m)이 가깝다. 신갈나무와 우뚝우뚝 바위들이 많은데 뒤편으로 어느덧 햇살이 비스듬하게 누웠다. 서산에 감돌아 굽이치는 빛의 무늬, 빛 물살이 동해 바다와 확연히 대비된다. 기울어진 햇빛에 멀리 금정산(802m)을 쳐다보니 눈이 부시다.
정상에서 바라본 주변 산들.
쌍바위 전설과 바위길
왼쪽으로 장안읍 고리원전 돔이 흐릿하고 일광신도시 해수욕장은 오른쪽에서 눈길을 놓아주지 않는다. 울산공업단지의 막대한 전력수요를 감당하는 고리발전소는 1978년에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소 최초의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당시 주입식 교육의 혜택으로 ‘경남 양산군 장안면 고리’ 지명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산중턱에 쌍바위가 있는데 하도 바위가 많아 어느 것인지 헷갈린다. 고을 원님 딸을 한 번 만나는 것이 소원인 총각이 오매불망 밤낮없이 빌었다. 정성에 감동한 산신령이 내일 밤 만나게 해 줄 테니 절대로 말을 걸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술법을 써서 이튿날 처녀를 데려왔다. 총각은 산신령의 충고를 잊고 처녀에게 말을 걸자 그만 둘 다 돌이 되었다.
오후 3시40분 백두사 쪽으로 내려간다. 바위와 나뭇잎 쌓인 산길에는 리기다소나무, 신갈나무 이파리는 아직 다 떨어지지 못해 마른가지에 달려 있다. 발아래 고속도로에는 수많은 속도의 질주, 느림을 잃은 도시의 굉음, 자동차 소리 요란하고 오른쪽 산 너머 해가 기울어 눈부시다. 5분 정도 내려가서 갈림길(백두사 1·테마임도 0.2·일광산 정상 0.2km) 지나고 잠깐 사이 내리막 위험한 바위지대 밧줄구간을 만난다. 발을 헛디뎌 넘어질 수 있다는 불안한 생각에 조심조심 내려간다. 산벚·신갈·리기다소나무, 고사리는 겨울인데도 잎이 푸르다. 바위와 내리막길 마사토에 미끄러지기 십상이다. 과거 사방공사를 했는지 싸리·사방오리·리기다소나무와 진달래·노간주나무들이 많다.
내려가는 바윗길.
철썩이는 포구의 정취
까마귀 울음은 뒤에서 따라오고 오후 4시경 바위 전망대에 서니 고층건물들이 앞에 턱 막아섰다. 우후죽순 아파트공화국이 된 신도시에는 포구의 옛 정취가 많이 사라졌다. 그래도 오늘은 선창가에서 잔을 기울여 보리라 생각하며 산을 내려간다. 리기다소나무와 스트로브잣나무 키를 대는 숲을 내려와 데크 구간, 콘크리트 포장길 따라 테마임도 관리초소, 곧바로 백두사(일광산 정상 2.3·바람재 2.4km) 오후 4시20분이다.
달리는 차창에 비치는 일광산은 달음산과 오누이처럼 나란히 섰다. 해와 달, 일광과 월광은 밤낮 없이 비추는 빛이다. 그래선지 이곳에서는 산과 바다, 농촌과 포구의 일상이 어우러진 전원도시답게 역동성이 느껴진다. 어스름 내릴 무렵 파도가 철썩이는 갯바위 끝의 절집. 내리막길 백팔계단을 걸어 마치 용궁으로 들어가는 듯, 공민왕 때의 해수관음 바다도량이다. 용궁사 돌아 나와 기어이 밤바다와 어울려 호기롭게 잔을 기울인다.
산행길잡이
횡금사 등산로 입구 ~ 바람재 갈림길(편백, 잣나무 숲) ~ 능선 갈림길 ~ 일광산 정상 ~ 바위 지대 ~ 임도 구간(테마임도 관리초소) ~ 백두사 등산로 입구
※ 횡금사에서 일광산 정상 거쳐 백두사 입구까지 약 3㎞, 1시간 20분 정도 걸림(주변 사찰 입구 공터에 주차 가능).
<테마임도 구간 약 19km>
1 흙시루 ~ 정상 4.3km
2 월명사 ~ 정상 4.2km
3 월명사 ~ 횡금사 ~ 정상 8.5km
4 두회마을 ~ 정상 ~ 백두사 입구 6.2km
교통(고속도로)
부산외곽순환선 진영분기점 → 대감분기점 → 노포분기점 → 기장IC
동해선(부산~울산) 부산, 울산 → 기장IC
※ 내비게이션 → 백두사, 월명사, 횡금사, 기장향교(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읍)
기차 동해 남부선(울산·포항·경주)→일광역, 버스 180·182·183번 (확인 필요)
숙식
일광·송정해수욕장 주변에 다양한 식당과 호텔, 펜션, 리조트 등이 많음
일광읍 일광아구찜(오전 11시부터 영업), 기장미역국 유명.
주변 볼거리
고산 윤선도 유배지 삼성대, 오영수 문학비, 강송정 공원(갯마을 배경), 일광해수욕장, 송정해수욕장 등.
★오늘의 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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