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가 산을 점령했다고 해서 월간<山>에 매번 레깅스 차림의 젊은이를 등장시키는 건 좀 그렇다. 왜냐하면 지금 산에는 그들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눈을 돌려보자. 우리는 바로 뒤에서 ‘아줌마’를 발견했다. 대체로 산에 다니는 아줌마는 옷 차림이 요란하다. 또 크게 웃고 잘 떠든다. 사실 산에 가면 젊은 사람보다 이런 아줌마가 더 많다. 그럼에도 그들을 제대로 알아본 적이 없다. 저 아줌마는 왜 산에 왔을까? 어떻게 살았을까? 산과 얽힌 아줌마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나열하면 이 시대의 특성이 담긴 어떤 지도가 만들어질 것 같았다. 여기서는 그들을 ‘산줌마’라고 부르기로 한다.
평범한 주부 최서정씨. 그녀는 경기도 구리시에 살면서 불암산에 자주 간다.
‘평범한 사람’은 세상에 없다. 누구나 독특하고 색다르다. 동사 ‘평범하다’는 이렇게 쓰는 게 더 적절하다. 평범한 옷차림, 평범한 맛, 평범한 일상 등등. 하지만 나는 이번에 만난 최서정씨를 설명할 때 앞에 ‘평범하다’를 붙였다. 편집장이 내게 물었다. “왜 이 사람을 인터뷰해야 하지?” 내가 답했다. “평범해서요.” 나는 세 가지 조건을 달아 최서정씨가 평범하다고 주장했다. 첫째, 다른 사람에 의해 알피니스트나 산악인이라고 불리지 않는다. 둘째, 미디어에 노출되지 않았다. 셋째, 산에 많이, 오래 다녔고 지금도 다니고 있다. (세 번째 기준은 월간산에 맞춘 것이다)
인터뷰 대상자 선정 기준이 까다로운 셈이었는데, 저 조건을 통과한 최서정씨는 진짜 평범한 걸까? 내가 들어본 바에 의하면 그녀의 인생사는 알피니스트의 그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다시 강조하면, 보통사람은 없다.
그녀는 경기도 구리시 지체장애인센터에서 일한다. 월급은 많지 않지만 그녀는 행복하다고 했다.
최서정의 평범한 인생
최서정씨는 나의 연락에 어리둥절해했다.
“저를 인터뷰한다고요? 저는 그저 평범한 사람인데요.”
나는 그녀가 위의 조건을 통과했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그녀는 알겠다면서 일단 오라고 했다. 전화를 끊기 전 그녀가 다급하게 물었다.
“혹시 저한테 나중에 금전을 요구하는 건 아니죠?”
평생 잡지사 기자를 만나본 적 없었을 그녀는 나를 보이스피싱범으로 오해했다.
경기도 구리 그녀의 직장으로 찾아갔다. 최서정씨가 나왔다. 흰색 폴로 스웨터에 회색 바지를 입었다. 키가 작았다. 퍼머머리가 풍성했다. 나이 60 넘은 ‘어르신’같지는 않았다. 그녀가 할머니가 아닌 건 확실하다. 손자, 손녀가 아직 없다. 그래도 나는 그녀를 최서정씨라고 부를 수 없었다. 나이차이 때문이라기보다 어떤 묵직한 분위기가 있었다. 얼마 전 그녀가 여행작가학교 과정을 수료했다는 사실을 들어 작가님이라 부르기로 했다. 그녀는 좋아하는 눈치였다. 사진기자가 도착하기 전에 사무실 근처의 벤치에 앉아 다짜고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그녀에 관한 모든 것을 꼬치꼬치 캐물었다. 술술 답하는 그녀는 한편 당황한 것 같았다. 누구에게도 자신의 세세한 사정을 이야기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최서정씨는 1961년생, 올해 62세다. 경기도 구리시의 지체장애인협회에서 장애인 복지 관련 일을 한다. 구리에서 태어났고, 젊었을 때 서울에서 10년 정도 거주한 기간 빼고 모두 구리에서 살았다. 구리는 어떤 곳인가? 서울의 동북쪽 끝, 아차산과 망우산을 넘어가면 나오는 도시다. 서울 노원구와 크기가 비슷하다. 도시의 규모가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의 어떤 ‘크기’를 정하지는 않을 텐데, 최서정씨는 살면서 그런대로 구리시의 경계를 좀처럼 벗어나지 않았다.
그녀는 최씨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 최촌마을에서 태어났다. 마을 주민 중 최씨가 70~80%나 됐다. 그녀의 집은 특별할 것 없는 최씨 가문이었고, 따라서 남들과 같은 보통의 학창시절을 보냈다. 동화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고용직 공무원으로 서울의 한 교육구청에서 3~4년 일했다. 일만 하진 않았다. 방송대를 다니면서 틈틈이 국문학도 공부했다. 그녀는 보통 최촌마을 정류장에서 청량리로 가는 버스를 타고 1시간 30분 걸려 출퇴근했다.
버스를 타고 회사에 가다가 자주 마주쳤던 어떤 남자와 눈이 맞았다. 그와 결혼 후 임신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직장을 그만뒀다. 첫째와 둘째가 태어났고 한동안 구리에서 육아에 전념했다. 첫째가 중학교 1학년 때 그녀는 신문에 실린 도서 대여 대리점 모집 광고를 보고 사업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녀는 책읽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이 일이 자신과 잘 맞을 것이라고 여겼다. 이윽고 어린이 도서 대여점 구리/남양주 지사장을 맡았다. 이때 그녀는 돈을 좀 벌었다. 남편이 주는 생활비가 없어도 살림을 유지할 수 있었고, 아이들도 엄마를 자랑스러워했다. 순탄했다. 앞으로 쭉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몇 년 후 상황이 바뀌었다. 남편의 주식 투자 실패, 도서 대여점의 직영점 개편 등으로 수입이 줄어들었다. 인생길이 순식간에 어두컴컴해졌다. 그녀는 이에 대비할 헤드랜턴조차 챙기지 못한 채 헤매기 시작했다.
최서정씨가 일하는 사무실. 장애인 편의시설 점검 일을 한다.
“자식 버리고 도망간 여자 이해할 수 있어”
“저, 이혼했어요. 돌아온 싱글, 돌싱이에요.”
그녀의 대답에 나는 놀랐다. ‘요즘 이혼 별 거 아냐’라면서 주변 분위기가 흘러가는 모양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는 “아, 그러셨군요”라면서 넘어갈 순 없었다. 이혼한 것을 두고 실패했다고 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으니까. 최서정씨도 분명 그랬을 것이고, 그녀가 그것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궁금했다. 이혼 사유를 물었다. 그녀가 이어서 설명했다.
“남편이 주식을 했어요. 돈을 많이 잃었죠. 빚도 많았고요. 그래서 몇 년은 서류만으로 이혼한 채 실제로는 같이 살았죠. 이때 서로 도와주면서 힘이 됐으면 따로 살지는 않았을 거예요. 상황이 더 악화됐으니까 완전히 갈라선 거죠. 세월이 흘렀으니까 이렇게 얘기하죠. 옛날에 이혼은 엄청난 일이었어요.”
“이혼했다면 남편이 가진 빚을 직접 갚지 않아도 되잖아요. 그런데 어떤 점이 또 힘들었죠?”
“대한민국에서 여자가 혼자 애 둘을 키우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에요. 그건 당해본 사람만 알 수 있는 거예요. 딸이 외국어고등학교 다녔는데 기숙사 비용과 급식 비용을 못 냈어요. 학교 졸업하고도 고지서가 계속 날아왔어요. 몇 년 동안 동창회도 안 나갔어요.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고 펑펑 울면서 친구에게 전화한 일도 수차례고요. 무엇보다도 애들한테 상처를 준 것 같아 그게 가장 힘들었어요.”
“그때는 또 어떤 일을 하셨죠?”
“아는 사람이 운영하는 출판사에 다녔어요. 월급이 130만~150만 원 정도였고요. 애들 앉혀놓고 설명했어요. ‘이 돈으로 이거 써야 하고 저거 내야 하니 너희 용돈을 줄 수 없구나’라고요. 그렇게 세 식구가 먹고 살았어요.”
“힘든 기간이 몇 년 정도 지속됐죠? 그 시간이 언제 끝날 거라고 예상했나요?”
“10년 정도예요. 애들이 학교 졸업하고 취직하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지하 방 한 칸’ ‘급식비 밀림’ 같은 얘기가 그 시대 대다수 가정이 거친 어떤 레퍼토리 같기는 하다. 위와 같은 상황을 겪어본 적이 없는 사람은 그녀의 고통이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하기 어려울 수 있다. 최서정씨의 표현을 굳이 또 덧붙인다.
“그때 쌀 살 돈이 없었고요. 자살 생각도 당연히 했죠. 애들이 착했어요. 만약 말썽을 피웠다면 애들 버리고 집을 나갔을 거예요. 자식 버리고 도망갔다는 여자들 있잖아요? 그 사람들 심정이 당시엔 이해됐어요.”
그녀가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털어놓는 건 결국 극복했다는 것이다. 높은 데서 내려다봤을 때 우리 삶은 그저 한가한 풍경일 뿐이다.
최서정씨 두 자녀는 지금 각각 공기업 직원, 초등학교 교사다. 흔히 말하는 대로 ‘잘 컸다’. 예상대로 자식들이 일을 시작하고 상황이 나아졌다. 그제야 그녀의 인생은 아침을 맞았다. 친구들도 다시 만났다. 그녀는 현재 자신의 상황을 가리켜 ‘태평성대’라고 했다. 지금 최저임금을 받으면서 직장생활을 해도 만족하며, 걱정거리가 없다고 했다. 또 싱글이라서 굉장히 좋다고도 했다.
그녀의 집 아들이 머물던 방. 아들은 결혼해서 따로 산다. 비어 있는 아들방은 최서정씨의 취미 공간으로 바뀌었다.
사무실에서 나와 그녀가 사는 집으로 갔다. 돌싱 중년여성은 집을 어떻게 꾸미고 살까? 그녀의 집은 새 아파트였다. 30평 정도 됐다. 모든 것이 깔끔하게 정돈돼 있었고, 거실 구석에선 화초가 잘 자라고 있었다. ‘윤택하다’는 말은 이때 쓰는 것이리라. 그녀에게 물었다.
“지금 사고 싶은 것이 있나요?”
“없어요. 하고 싶은 건 많아요. 지금 갈매동에 수영장을 짓고 있어요. 그게 빨리 문을 열었으면 좋겠어요. 아, 도서관도 빨리 오픈하면 좋겠어요. 새 책을 원 없이 읽어보고 싶어요.”
“법정 스님이 말한 무소유의 삶이로군요.”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아니지, 그동안 힘들게 살아서 그런가 봐요. 그냥 그 상황에서 벗어난 것만으로도 만족해요. 누가 명품 가방 사준다고 해도 저는 필요 없다고 할 거예요. 그 대신 하고 싶은 게 있어요. 여행 가는 거. 산에 가는 거요. 100대 명산 다 찍을 때까지 허리가 안 아팠으면 좋겠어요.”
부엌 끝에 놓인 식탁에 앉자 작은 베란다 창으로 불암산이 보였다. 내가 앉은 자리가 명당이라고 했다. 그녀는 여기 앉아 불암산을 매일 본다. 불암산에 자주 가기도 한다. 그렇게 산에 다닌 지 15년 됐다. 늦은 나이에 등산을 시작한 셈인데, 남편과 이혼하고 힘들 때 첫 산행을 했다.
“친구가 산에 가자고 해서 갔어요. 처음에는 솔직히 가기 싫었어요.”
“첫 산행은 그렇다 치고, 어쩌다 두 번째 산행에 나섰죠?”
“사람들을 사귀고 나니까 괜찮더라고요. 제가 지금 기자님께 모든 걸 털어놓듯이 산에서 만난 사람들에게도 다 얘기할 수 있었어요. 저를 나쁘게 보는 사람은 없었고 또 소문날 일도 없었어요.”
“혹시, 남자를 만나기 위해서 간 건 아니고요?”
“그런 것도 있죠. 친구가 얘기해 줬어요. ‘어떤 사람이 너처럼 혼자 사는데, 산에 가서 정말 좋은 남자 만나 재혼해서 잘 살더라’라고요.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는 힘들 때였으니까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기도 했고요. 누군가 나를 도와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죠.”
부엌에서 불암산 정상부가 또렷하게 보인다. 그녀는 식탁에 앉아서도 등산을 즐긴다
살면 살아진다
최서정씨는 2021년 환갑을 기점으로 100대 명산에 도전했다. 그 중 37개 산에 올랐고 올해 모두 오르는 것이 목표다. 15년 전과 달리 산에서 사람 만나는 것보다 등산 자체를 즐기고 있다. 그녀는 산에 올랐을 때 기분이 좋다고 했다. 꼭대기에 서면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는데, 단지 그 기분을 위해 산에 간다고 하는 것이 나는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순수하게 산에 가고 싶어 배낭을 챙겨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등산은 ‘일’이다. 자발적으로 산에 가는 사람이 신기했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더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했다.
“도대체 산에 가는 게 왜 좋죠?”
그녀가 답했다.
“동네에 삼겹살 맛있는 식당이 있어요. 배가 고플 때 그 집 삼겹살이 떠올라요. 그리고 자주 가죠. 산이 저한테는 그래요. 배고플 때 맛집 찾아가는 것처럼 산에 가는 거죠. 삼겹살 집에 배를 채우기 위해 간다면 산에는 허기진 ‘나’를 충전하러 가는 거예요. 지금까지 나를 존재하게 만든 것이 산이에요. 어느 시인이 그랬잖아요. 자신을 만든 건 팔할이 바람이라고. 지금의 저를 만든 건 팔할이 산이에요.”
“지금도 슬플 때가 있나요?”
“젊은 사람들이 쓰는 휴대폰 앱이나 식당에서 설치한 키오스크 같은 걸 사용하기가 어려워요. 애들이 없었으면 혼자서 어떻게 살았을까 싶어요. 그렇게 전자기기를 앞에 두고 헤맬 때 나이를 먹었다는 걸 실감해요. 그게 슬퍼요.”
등산복을 입은 최서정씨. 고어텍스 재킷에 선글라스까지 걸쳤다. 그녀는 산행경력이 꽤 된다.
집에서 나와 함께 불암산에 갔다. 등산복을 입은 최서정씨는 다른 사람 같았다. 빨간색 고어텍스 재킷을 걸쳤고 선글라스까지 썼다. 등산학교 강사처럼 그녀는 나에게 등산하는 법을 알려 주기도 했다. 선생님 같은 반듯한 태도를 가진 그녀는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롤모델은 공지영.
나이는 블랙홀이다. 50, 51… 60. 이 숫자는 사람이 가진 체력, 열정, 열망, 애정, 꿈 같은 것들을 하나씩 삼키고 점점 커진다. 60 넘은 그녀는 자신의 꿈을 또렷하게,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그녀는 블랙홀의 마력에 휩쓸리지 않고 유영하는 고고한 우주선 같았다. 그녀가 나 같은 사람에게 해줄 충고가 있을 것 같았다.
“40대 때의 자신과 마주한다면 어떤 말을 건네고 싶으세요?”
“음, ‘책을 많이 읽어라.’ 그리고 ‘살면 살아진다’고 얘기하고 싶어요.”
지난해 4060 여성 여행객 크게 늘어
한국광광 데이터랩의 지난해 여행 통계가 인상적이다. 두드러진 현상은 4060 신중년 여성의 여행 횟수가 늘었다는 것. 충북 지역은 60대 여성 방문자 증가율이 22%로 전 연령 중 가장 많이 증가했고, 충남은 20%로 전 연령 중 증가율이 가장 높았다. 경북은 70세 이상 여성 방문자 증가율이 24%로 모든 성과 연령 가운데 가장 높았다. 경남 역시 60대 여성 방문자 수 증가율이 18%로 가장 높았다. 나머지 지역도 4060 여성 방문자 숫자가 평균 20%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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