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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겨울 설악산 서북주능] 남교리~대승령~귀때기청~천불동 2박3일

by 白馬 2023. 2. 13.

설악산 서북주릉 1408봉에 서서 일출과 마주하고 있다. 대승령에서 귀때기청봉까지 무려 5시간 넘게 걸렸다. 배낭이 무거웠고 눈 때문에 진행이 더뎠다.

 

설악산 서북주릉에 간다고 해서 긴장하진 않았다. 짐이 무거운 게 문제였다. 내가 멜 아크테릭스 보라 80리터 배낭엔 세 명이 3일 동안 먹을 식량이 가득했다. 물만 5리터 들어 있었다. 무게가 대략 30kg는 되는 것 같았다. ‘이걸 지고 갈 수 있을까? 중간에 퍼지면 어떡하지?’ 자꾸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신도림역에서 한상철씨를 만났다. 그는 설악산 대청봉을 500번 이상 오른 사람이다. 그의 배낭은 더 컸다. 그레고리 데날리 프로 100리터 배낭이 터질 것 같았다. 먹을 건 내가 다 챙긴다고 했는데, 그의 배낭엔 대체 뭐가 든 걸까? 궁금했지만 우선 그에게 다가가 인사했다.

“이야, 데날리 프로! 아직도 이걸 메세요?”

“옛날에 멨던 건 고장 나서 버렸어요. 이건 중고시장에서 또 구한 거예요.”

양수열 사진기자의 차가 곧 우리 앞에 섰다. 차 트렁크에 배낭을 우겨 넣었다. 잘 들어가지 않았다. 우리 뒤에 멈춘 차들이 얼마 동안 기다리다가 2차선으로 차선을 바꿔 지나갔다. 운전자들이 욕을 하는 것 같았다. 양수열 사진기자는 당황했다. 

 

“대충 싣고 차 없는 곳으로 가서 다시 넣자!” 

모퉁이를 돌아 주차장으로 가서 트렁크를 열었다. 좌석을 눕히니까 배낭 3개가 겨우 자리를 잡았다. 다시 차에 올라탔고 우리는 강원도 인제군 남교리를 향해 달렸다.

며칠 전 기획회의 때 나는 ‘살아 돌아온 몰골들’이라는 제목으로 기획안을 제출했다. “이게 뭐지?” 편집장이 물었다. 

나는 답했다. 

“힘든 곳에서 겁나게 고생한 흔적을 보여 주고 싶습니다. 인제 남교리에서 출발해 십이선녀탕, 대승령, 귀때기청을 지나서 중청대피소를 거쳐 천불동계곡으로 내려오는 코스입니다.” 

편집장이 다시 말했다.

“괜찮겠어? 이거 힘들 텐데. 그래, 갔다와! 조심하고.” 

편집장은 별 말 없었다. 나도 별 생각 없었다. 그저 눈 쌓인 설악산 장관이 오랜만에 보고 싶었다.

가기 전에, 설악산 서북주능선을 갖고 ‘서북주능선’이 맞느냐, ‘서북능선’이 맞느냐 하면서 누군가와 옥신각신했다. 나는 “한국에 있는 단일 산이 가진 능선 중 서북주능선만큼 힘들고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코스가 있는가? 그러니까 당연히 능선 앞에 ‘주’자를 붙여야 한다”고 했다. 상대방은 “설악산의 가장 인기 있는 코스는 공룡능선이다. 공룡능선은 또 백두대간 능선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서북주능선이 아니라 그냥 서북능선이라고 부르는 게 맞다”고 했다. 나는 거기에 대고 또 “그렇다고 공룡능선을 공룡주능선이라고 부르지 않지 않느냐”고 맞받아쳤다. 상대방의 말도 맞는 것 같았지만 나는 끝까지 우겼다. 서북주능선에서 ‘주’자가 빠지면 아무래도 밍숭맹숭했기 때문이다. 서북주능선은 맹물 같은 코스가 절대 아니다. 결국 상대방은 물러났다.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뭐.” 

그렇게 나는 서북주능선으로 떠났다. 

 

십이선녀탕 지나 대승령을 향해 오르는 중. 남교리 입구에는 그나마 눈이 있었다

 

설악산 서북주릉 동계초등은 1967년 서울 문리대산악회

한상철씨는 전 주에 설악산에 갔다왔다고 했다. 한계령으로 올라 중청을 거쳐 오색으로 내려왔다고. 그렇지만 또 가도 괜찮다고 했다. 나는 그것이 반가웠다. 궁금한 걸 물었다. 

“서북주능선에 눈이 많던가요?” 

“별로 없어요.” 

눈이 많았으면 싶었는데, 살짝 실망했다.

오전 11시, 설악산국립공원 남교리탐방지원센터에 도착했다. 주차장에는 눈이 좀 있었다. 나는 내 배낭에 있던 식량을 한상철씨와 나눠서 지고 싶었는데, 배낭을 열지 않고 덮어둔 채 그대로 배낭을 멨다. 한상철씨의 배낭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그의 배낭 안엔 내 짐을 나눠서 넣을 공간은 없어 보였다. 슬펐다. 자동차 트렁크 문을 닫고 등산로 입구로 향했다. 

커다란 짐을 멘 우리를 보고 국립공원 직원이 불러 세웠다. 

“선생님들, 어디로 가세요?”  

“대승령으로 갑니다.” 

“지금요? 산에서 야영하실 거예요?” 

“아니오. 대승령으로 갔다가 장수대로 내려갈 거예요.” 

“차는 어떻게 가져가시려고요?” 

“다음날 다시 대승령으로 올라갔다가 서북주릉을 타고 중청으로 갈 겁니다.” 

“네, 시간이 빠듯할 것 같은데. 조심하시고요. 선생님 성함과 연락처, 차 번호 좀 알려주세요.”

나는 이름을 말하고 전화번호, 차 번호를 직원에게 알려줬다. 우리 머리 위엔 감시 카메라가 있었다. 장수대에서 우리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이들은 우리를 잡으러 과연 산까지 쫓아올까? 쫓아오면 배낭을 버리고 도망가야 할까? 도망가도 개인 신상을 알려줬으니 언젠간 잡힐 것이다. 국립공원 안에서 야영은 불가능하다는 소리다.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짜면서 천천히 계곡을 따라 올라갔다.

 

한상철씨의 배낭 무게는 무려 40kg에 육박했다. 그는 그러고도 가파른 길을 잘도 올랐다.

 

계곡은 꽝꽝 얼어 있었다. 고요했다. 땀이 얼굴 타고 내려오는 소리까지 들릴 것 같았다. 계곡을 이리저리 가로지르다가 십이선녀탕이 시작되는 큰 계곡 웅덩이에 도착했다. 한상철씨가 설명했다. “예전에 저 위에서 미끄러진 사람 구해준 적 있어요. 배낭에 있던 자일을 꺼내서 도와줬어요.” 

나는 궁금했다. 

“지금 메고 있는 배낭에도 자일이 들어 있나요?” 

“자일은 없고, 10m짜리 슬링이 있어요.”

놀랐지만 나는 잠자코 있었다. 내 배낭에도 그의 짐을 나눠서 넣을 공간은 없었다. 

우리는 계속 올라갔다. 텅 빈 계곡, 아까운 등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에 여길 처음으로 찾은 사람들이 있겠지? 설악산 대청봉을 500번 오른 한상철씨가 알 것 같았다. 그가 알려줬다. “1967년 1월, 서울 문리대산악회 사람들이었어요.” 

아쉽게도 그들의 등반 자료는 찾을 수 없었다. 우리보다 더 힘들게 코스를 올랐던 게 분명했다. 지금은 할아버지가 됐을 그들, 옛 산악인들을 만나면 인사를 꾸벅 하리라. 우리는 올라가고 올라가고 또 올라갔다. 한상철씨는 한참 전에 200m만 가면 된다고 했다. 나는 또 물어봤다. “선배님, 얼마나 더 가야 하죠?” 그가 말했다. “200m만 가면 돼요.” 그가 생각하는 200m와 내가 생각하는 200m 사이의 괴리가 컸다. 나는 괴로웠지만 그냥 올라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그에게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드디어 능선에 올라섰다.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후드를 뒤집어 썼다. 다리에 쥐가 나서 절뚝이면서 걸었다. 대승령에 도착하니 오후 4시. 전혀 기쁘지 않았다. 찬 바람이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자를 푹 눌러쓴 탓에 예쁜 풍광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서북주릉을 반으로 접어 앞으로 남은 거리를 줄인다면 기분이 좀 나았을까? 우리는 서둘러 장수대로 하산했다.

 

대승령 직전의 한상철씨. 지쳐 보인다.

 

지긋지긋한 귀때기청봉

대승령은 고개가 아니라 봉우리다. 대승령이 아니라 대승봉이라고 불러야 한다. 설악산 대청봉을 500번 이상 오른 설악산 박사 한상철씨는 그 이유를 알까? 물어봤다. 

“조선시대 성리학자 김창흡이라는 사람이 설악산을 좋아했어요. 설악산에서 은둔했죠. 장수대 부근에 살았다고 하고요. 백담사를 찾았던 선비나 스님이 이 학자를 만나러 흑선동계곡을 통해 대승령을 넘지 않았을까요? 봉우리이긴 한데,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목이었으니까 고개라고 했을 거예요.” 

“그분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길래 이 높은 데를 넘나들었을까요?” 

“조선시대 월간산 편집장 정도였지 않았을까요? 당시 지식인들한테 설악산을 알린 사람이니까.”

김창흡이라는 사람이 설악산을 아무리 좋아했대도 우리처럼 이틀 연속 대승령에 오르지는 않았을 것 같다. 나는 그 오르막이 아주 지겨웠다. 얼어붙은 대승폭포도 별 감흥이 없었다. 대승령에 도착하니 새벽 5시 30분이었다. 부지런히 걸어야 했다. 한상철씨가 앞장서서 길을 뚫었다. 러셀이 되어 있었지만 발이 여기저기서 푹푹 빠지는 바람에 진행속도가 빠르진 않았다. 나는 정신이 없었다. 바람이 불다가 그쳤다가 하는 통에 후드를 뒤집어 썼다가 벗었다가를 반복했고 길이 대체로 미끄러워서 잔뜩 긴장했다.

1408봉에 오르자 해가 뜨기 시작했다. 아름답다고 느낄 겨를이 없었다. 앞에 보이는 귀때기청봉이 해결하기 어려운 거대한 ‘문제’처럼 보였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저것보다 덩치가 큰 난관을 만난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귀때기청은 위압적이었다. 어쩌겠나, 계속 가야지. 한숨 한번 푹 쉬고 움직였다.

 

우리를 많이 괴롭혔던 귀때기청봉. 실제로 보면 그 크기가 상당히 위압적이다.

귀때기청봉 너덜지대를 내려가는 중. 내설악과 멀리 중청이 보인다.

 

오르락 내리락, 길이 끝없이 이어졌다. 도중에 한상철씨의 스틱이 망가졌다. 까딱하면 사람도 그 꼴 날 수 있겠다 싶었다. 무사히 봉우리를 몇 개 넘은 끝에 귀때기청 오르막 전, 안부에 도착했다. 우리는 그제야 배낭을 내렸다. 대승령을 출발한 지 약 5시간 30분 만이었다. 우리는 가만히 서서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시간이 멈추거나 여기서 영원히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순간 한상철씨가 “가만히 있는다고 누가 귀때기청까지 데려다 주나요? 얼른 가죠” 라고 했다. 한상철씨가 건네준 ‘에너지젤’을 먹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우리는 다시 배낭을 멨다. 그 후로 귀때기청을 어떻게 올라갔는지 기억이 없다. 그저 고개를 숙이고 발끝만 봤으니까. 오전 11시 30분, 어느새 하늘이 열리고 바람이 몸통을 후려갈겼다. 귀때기청봉 정상이었다. 바람 때문에 오래 있을 수 없어 우리는 곧바로 하산했다. “젠장!” 내려가는 길도 지긋지긋했다. 너덜지대가 길게 이어졌기 때문이다. 아슬아슬하게 바위를 건너다가 틈에 다리가 빠져 ‘뿌지직!’ 뼈가 부러지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다행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결국 너덜지대를 통과했다. 한계령 갈림길에 도착하니 오후 1시가 넘었다. 나는 각자의 몸상태를 체크했다. 

“수열아 몸 괜찮아? 중청대피소까지 갈 수 있겠어?” 

“응, 괜찮아. 갈 수 있어.” 

“선배님 몸 괜찮으세요?”

“네 괜찮아요.

젠장! 한계령으로 탈출할 명분이 사라졌다. 배낭을 고쳐 메고 중청대피소를 향해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저녁 6시까지는 대피소에 도착해야 했다. 한상철씨가 겁을 줬다. 

“헤드랜턴을 켜고 대피소에 들어가면 야간산행했다고 벌금을 물지도 몰라요.” 

이때 한계령으로 그냥 내려가자고 할 뻔했다.

끝청으로 향하는 중. 내설악이 정면으로 보인다. 여기서 공룡능선, 용아장성의 봉우리들을 구경하다가 진행이 늦어질 수 있다.

 

한계령삼거리에서 중청까지는 그나마 쉬워

한계령 삼거리 이후에는 러셀이 잘 되어 있었다. 중간에 다리가 푹푹 빠지는 일이 없었다. 덕분에 속도가 났다. 설악산 대청봉을 500번 오른 프로페셔널 설악 가이드 한상철씨가 우리를 안심시켰다. 

“지금 1.5km/h 속도로 걷고 있어요. 이대로라면 오후 6시 전까지 대피소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번에는 그 말을 믿었다.

중청에서 출발한 사람들이 줄줄이 나타났다. 모두 젊어 보였다. 그들 하나하나 붙잡고 “중청대피소까지 얼마나 더 가야 하나요?”라고 물어보고 싶었는데 참았다. 왜냐하면 커다란 배낭을 멘 내 모습은 그들 눈에 전문가처럼 보였을 텐데, 굳이 그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고 싶지 않았다. 쉽게 말해 멋져 보이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큰 배낭을 멨든 말든 그들은 나를 휙 지나쳤다.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하고 나는 축 처진 채 오르막을 올랐다. 한상철씨는 중간에 자주 멈춰서 쉬었다. 덕분에 나도 자주 멈춰서 쉬었다. 그때마다 내설악 풍경과 귀때기청을 바라봤다. 그제야 좀 속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본 다음 변기 뚜껑을 열어 결과물을 확인했을 때와 비슷한 느낌. ‘저걸 넘었다니. 이렇게 멀리 왔다니!’ 

거리가 꽤 벌어진 나는 또 재빨리 걸었다.

 

중청대피소. 철거 계획이 있었지만 무산됐다고 한다. 한겨울 이 대피소가 없다면 사고 날 가능성이 더욱 커질 것이다.

 

정신 없이 걷다 보니 고비 하나를 넘었다. 한상철씨가 이제 남은 고비는 끝청 오르막뿐이라고 알려줬다. 용기가 생겼다. 마실 물은 다 떨어졌고 간식도 얼마 남지 않았다. 끝청을 무사히 넘을 수 있을까? 의심이 생겼지만 또 ‘못 가면 어쩔 것이냐'라는 반항심도 끓어올랐다. 그렇게 두 마음이 다투는 걸 구경하면서 가니 어느새 끝청에 올라와 있었다. 배낭을 멘 채 털썩 주저 앉았다. 시간은 저녁 5시였다. 

“저것은 점봉산, 그 뒤에 펑퍼짐한 능선은 방태산, 더 뒤에는 계방산과 오대산이에요.” 

한상철씨가 봉우리들을 짚으면서 말했다. 빼곡하게 솟은 봉우리들이 그에겐 감동이었겠지만 나한테는 그것이 과자처럼 보였다. 큰 쟁반 가득 담긴 간식들, 나는 그것들을 손가락으로 집어 입에 털어 넣는 시늉을 했다. 입이 텁텁했지만 마실 물이 없었다. 일어나야 했다. 일어나서 앞을 보니 ’공룡알(중청)’ 이 코앞에 있었다. 양수열 기자가 말했다.

“이제 조금만 가면 돼.”

나도 알고 있었지만 묘하게 힘이 됐다. 어기적어기적 걸어서 중청대피소로 향했다. 저녁 6시 정각, 중청대피소에 도착했다. 

 

서북주릉 종주를 막 마치고 중청대피소 앞에서 포즈를 취한 한상철씨. 그새 얼굴이 몇 년 더 늙었다.

 

“오늘은 20명 정도가 대피소에서 잘 거예요. 자리가 많이 남으니까 특별히 다섯 자리 드릴게요.” 굉장한 서비스였지만 나는 심드렁하게 답했다. “네.” 우리는 침상이 있는 지하로 내려갔다. 배낭을 내리자마자 뻗어버렸다. 한상철씨에게 중얼댔다. 

“중청대피소가 없었다면 우리 어떻게 됐을까요? 이거 없앤다고 했었잖아요.” 

그가 웅얼거리면서 답했다. 

“조금 힘들었겠죠. 중청대피소는 아마 얼마간 없애진 못할 거예요. 반발이 굉장히 심하거든요. 하지만 국립공원 쪽도 이해가 가요. 여기 유지비용이 꽤 많이 들 거예요. 바람이 엄청나게 불잖아요. 대피소 주변에 바람막이를 설치한다는 얘기도 있어요.”

 

중청대피소에서 자다 깬 나와 한상철씨(오른쪽). 전날 피로가 쌓여 얼굴이 부어 있다.

 

나는 다시 침상 위에 쓰러졌다. 중청대피소가 없어지면 사람들은 희운각대피소나 소청대피소로 정말로 굴러서 갈 것이다. 그리하여 환자가 속출하리라. 구조 헬기가 이틀에 한 번꼴로 뜨리라. 따뜻한 곳에 누우니 안도감이 밀려왔다. 다음날은 천불동계곡으로 내려가기만 하면 되니 무척 기뻤다. 양수열 기자가 아쉬워하는 것 같아서 물어봤다. “내일 공룡능선 탈까?”

그가 대답했다. “아니, 잘 가!” 

 

산행길잡이

 

 

설악산 서북주능선 구간을 정하는 기준은 다양하다. 대승령~한계령삼거리, 안산~대청봉 등 어떤 구간만 잘라서 서북주능선이라고 하긴 애매하다. 대체로 대승령~대청봉까지의 능선을 서북주능선이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 따라 어디서 시작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완전한 서북주능선 종주가 목표라면 인제군 북면 남교리에서 시작해도 된다. 남교리에서 대승령을 거쳐 귀때기청봉을 넘은 다음 중청대피소까지 가는 여정은 오래 전부터 ‘힘든’ 코스로 불려지고 있다. 어떤 산악인들은 이 코스를 가리켜 ‘보급형 알파인’ 코스라고도 한다. 그만큼 이 길을 통과하기란 어렵고 힘들다. 코스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능선에서 물을 구하기가 힘들다는 점이 크다. 그 외에 능선을 이루고 있는 자잘한 오르내림이 공룡능선과 맞먹는다는 의견도 있다. 귀때기청봉의 오르막과 너덜지대도 이 코스 난이도를 높이는 데 한 몫 한다. 실제로 국립공원에서 표시한 등산로 난이도 표에는 가장 어려운 ‘검정색’ 실선이 그어져 있다. 그에 따라 한겨울 서북주능선을 통과하려면 적어도 1박 이상 하는 것이 좋다. 능선에 눈이 없다면 무박으로도 갈 수 있겠지만 사고 위험성이 크다.

 

교통
서울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원통공용버스터미널로 출발하는 버스가 시간당 두 대꼴로 있다. 원통공용버스터미널에서 진부령, 백담사입구로 출발하는 5번 버스가 매일 9회 다니는데, 윗남교에서 하차 후 남교리탐방지원센터까지 걸어서 10분 정도 걸린다.

 

맛집(지역번호 033)
남교리로 가는 길목에 맛집들이 많다. 막국수 위주의 식당들이 대다수인데, 팜파스휴게소(435-4447)의 황태해장국이 맛있다. 하산 후 얼큰한 국물이 당긴다면 속초 시외버스터미널 근처의 정든식당(0507-1318-2161)의 장칼국수가 제격이다. 속초시내에 있는 옛장모숯불갈비(632-2085)는 현지인들이 찾는 맛집으로 유명하다. 

 

2박 3일 설악산 서북주능선 종주에 필요한 장비들
우리는 능선에 눈이 많을 것이라 예상하고 2박 3일 일정으로 종주 스케줄을 잡았다. 그에 따라 짐이 많았다. 어떤 것이 필요할까?

 

 

1 클랙식 백패커 한상철씨의 생존 복장
설악산에서 2박3일 동안 그는 이렇게 무장했다.

1 상의 브린제와 아크테릭스 폴라텍을 두 겹 입었고 그 안에 브린제 망사 내의를 입었다. 그는 브린제 내의의 성능을 찬양했다.

2 배낭 그레고리 데날리 프로. 100리터 정도 된다. 당시 배낭의 적정 무게는 23kg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의 배낭 무게는 40kg을 육박했다. 그는 이 배낭의 단점이 없다고 했다. 

3 스틱 컴퍼델 제품. 오래 쓴 것 같은 모양이지만 사용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는 알루미늄 스틱을 애용한다. 카본 스틱보다 튼튼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4 등산화 마인들 히말라야 제품. 등산화의 목이 길어 스패츠를 따로 하지 않았다. 그는 이 등산화가 서북주릉 종주에 딱이라고 했다.

5 매트리스 R밸류가 높은 두꺼운 발포 매트리스를 사용했다. 이 외에도 그는 군용 침낭 커버를 침낭 위에 씌워 하룻밤을 보냈다.

 

2 한상철씨의 배낭에서 나온 기상천외한 장비들
그의 100리터 배낭엔 온갖 장비들이 실려 있었다. 한상철씨는 요즘 보기 드문 BPHBack Packing Heavy(무거운 장비를 지고 백패킹하는 사람) 하이커다. 그의 배낭에 있는 장비들은 자신이 쓰기보다 같이 가는 동료들의 편의를 위한 것이다. 여기 풀어놓은 장비 외에 그의 배낭엔 온갖 무거운 것들이 가득했다.

 

1 눈삽 능선에 눈이 많을 것으로 예상하고 캠핑 사이트 구축할 때 쓰려고 가져왔다. 

2 텐트슈즈 야영할 때 발을 따뜻하게 하거나, 급하게 텐트 바깥으로 나갈 때, 대피소에서 왔다갔다 할 때 유용하다. 

3 비상용 슬링 종주 중 능선 아래로 굴러 떨어지거나 얼어붙은 계곡에서 미끄러졌을 때 구조용이다. 

4 랜턴 텐트 지붕에 달아놓는 용도다. 헤드랜턴을 써도 되는데 굳이 이걸 또 챙겼다. 

5 텐트 펙 모양이 다른 펙을 여러 개 갖고 왔다. 이것 또한 무게가 상당하다. 

6 정수기 눈을 녹여서 식수로 사용하려고 했다. 이것도 무겁다. 7 깔개 텐트 안에 깔고 밥을 먹을 때 사용한다. 크게 쓸모는 없지만 있으면 좋다. 

8 캠핑용 테이블 이번엔 쓰지 않았다. 

9 쉘터 폴대 우리는 널찍한 쉘터에서 밤을 보냈다. 

10 3인용 쉘터 그가 가져온 쉘터는 오래 사용해 낡은 것이었다. 하지만 영하 10°C 기온에서 안락한 대피처가 됐다.

 

 

3 2박 3일 윤성중 기자가 계획한 식단

윤성중 기자가 준비한 2박3일치 식량.

 

1일차
점심
 휴게소 황태 해장국

저녁 밥, 생선구이, 참치캔 1개, 김치캔 1개, 스팸캔 1개, 김자반, 

3분 카레, 믹스커피

2일차
아침
 건조 미역국, 라면, 알파미 2봉지, 믹스 커피 

점심 행동식(빵, 초코바, 에너지젤, 사탕 등)

저녁 밥, 삼겹살(600g), 건조 된장국, 참치캔 1개, 김치캔 1개, 스팸캔 1개

3일차
아침 밥, 삼겹살(400g), 건조 황태 미역국, 믹스커피

점심 행동식

 

4 세 명이 2박 3일동안 마신 물 총 18리터
서북주능선 상에는 식수를 구할 데가 없다. 이 상황을 고려해 출발할 때 우리는 물 8리터를 챙겼고, 대피소에서 10리터를 구입해 다음날까지 사용했다. 2박 3일 우리가 마신 물은 총 18리터다.

5 너덜지대에서 발 지켜준 등산화
테크니카 포지 중등산화는 한상철씨의 마인들 히말라야만큼 좋은 성능을 가졌다. 바위에 잘 붙을 뿐만 아니라 갑피가 단단해 발등과 발가락을 울퉁불퉁한 바위지대에서 확실하게 보호한다. 고어텍스 소재로 만들어져 물이 쉽게 스며들지도 않았다. 2박 3일 동안 내 발은 그야말로 멀쩡했다. 

6 윤성중 기자를 살린 재킷
10여 년 전 선배에게 물려받은 파타고니아 재킷. 제품 이름은 모른다. 안감은 양털로 제작됐고 겉면은 나일론 재질이다. 왼팔 앞쪽에 ‘R’ 마크가 붙어 있다. R은 1999년 개발된 파타고니아의 독자적인 기술력의 상징 ‘R1’을 가리킨다. 우모복의 보온성능과 고어텍스 재킷의 방수력을 갖췄다. 무려 영하 20°C 환경에서도 이 재킷만 입으면 든든하다. 


오늘의 날씨

* 오늘 하루도 즐겁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