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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막막할 땐 산] “이 선생 글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아”

by 白馬 2022. 12. 26.

계룡산의 위로

잔잔한 계룡저수지가 있어, 계룡산이 더 아름답다.

 

여행에서 우리는 자연을 만날까, 사람을 만날까. 대개 자연을 만나는 걸로 만족한다. 산수에 반하고 풍경에 매료돼 즐거워한다. 그렇게 들뜬 마음으로 사람까지 만난다면 그 여행은 더할 나위 없겠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행은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를 강화하는 쪽으로 진행된다. 낯선 풍경은 받아들이지만, 낯선 사람에겐 마음을 내주지 않는다. 

경우가 다르긴 한데, 사람을 등한시하는 데 대해 묘한 질타를 받은 적이 있다. 수년 전 여행 에세이를 쓰기 위해 시베리아를 횡단했을 적 얘기다. 에세이는 사진과 함께 책으로 엮여 나올 예정이었는데, 주된 부분은 사진이었다. 시베리아 프로젝트에 나를 끌어들여준 사진작가 H선배의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에 이르는 1만 km 여정을 열차로, 비행기로, 도보로 이어갔다. 급할 땐 급하게, 한가할 땐 한가하게 완급을 조절하며 한 열흘 걸렸던가. 여행의 결과는 <끝에서 시작하다 : 시베리아에서 발트까지>란 이름을 달고, 고급 양장의 사진 에세이집으로 출간됐다.  

한겨울의 광화문이었던 것 같다. 출간을 자축하는 술자리가 좁은 골목의 주물럭 고깃집에서 열렸고, 그 자리엔 책을 제작한 눈빛출판사의 L대표님도 참석했다. 자축연에 걸맞은 덕담들이 오갔고, 그중엔 잠깐이나마 내 에세이에 대한 칭찬도 있었다. 그러나 칭찬보다 짧은, 그러나 훨씬 엄중했던 ‘비판’ 하나가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떨어졌다가 바로 사라졌다. 칭찬도 비판도 출판사 대표님의 것이었다. 

칭찬은 날리고, 비판만 복기하면….   

“이 선생의 글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아.” 

집에 돌아와 취한 눈으로 시베리아 사진집을 들추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사진은 풍경과 사물과 사람을 골고루 좇았는데, 에세이는 기껏해야 풍경의 속내만을 좇고 있는 중이다. 러시아를 열흘이나 횡단하면서도 나는 사람을 안중에 두지 않았다. 내 글엔 사람이 없었다.   

 

사랑도 미움도 없는 공간

며칠 전, 집에서 철 지난 영화 하나를 보다가 나의 ‘사람 생략’이 일시적 취미가 아닌 고질痼疾일 수 있겠단 생각에 퍼뜩 겁이 났다. ‘SF멜로’를 표방하는 영화인데 제목이 <이퀄스>(2015년)다. 니콜라스 홀트, 크리스틴 스튜어트, 가이 피어스가 나오는 네이선 파커 감독의 연출작이다. 

지구 차원의 거대 전쟁이 끝난 후의 미래가 배경이다. 절멸의 전쟁 이후 두 개의 국가만이 존재하게 되는데, 이야기는 그중 한 곳에서 전개된다. 그곳엔 ‘감정’이 없다. 감정을 유전적으로 거세해 버린 것이다. 이유는 짐작할 만하다. 인류 멸망의 위기를 초래했던 전쟁은 사람들의 감정에 의해 촉발된다. 타인에 대해, 사물에 대해 무감하고 무심하다면 그래서 누구도 누구를 자극하지 않는다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게 이 나라에선 감정이 질병이 됐다. 마음에 감정이 솟구친 사람은 치료를 받아야 하고(감정을 다시 없앤다!), 때론 안락사에 처한다(감정의 주체를 아예 없앤다!)

스토리는 예상할 만하지만 뻔하지도 않다. 남녀 주인공의 마음속에 사랑이 싹트고, 두 사람은 감정의 보유가 용인되는 다른 나라로 망명을 꿈꾸지만 생각대로 되진 않는다. 와중에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이 형식을 달리해 절묘한 형식으로 되살아나기도 한다.   

중요한 사실은, 모든 감정이 삭제된 영화 속의 시공간을 보면서 내 마음이 너무 편했다는 거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고, 아무도 미워하지 않으며, 서로 간섭하는 일도 없이, 어떤 일에도 무덤덤한 미래의 인간들을 보면서 나는 평온을 느꼈고, 이어 당황했다. 영화 초반에 “맞아, 저렇게 서로 무관심하게 살아가니까 얼마나 좋아”라고 되뇌었던 것이다.   

어느 책에선가 철학자 알랭 바디우가 현대인의 특징을 ‘안락’과 ‘나르시시즘’에 대한 경도로 요약한 걸 봤다. 자기 안에 빠져(나르시시즘) 편안한 걸(안락) 최고로 치는 게 현대인이란 얘기다. 그게 바로 나였다. “이 선생의 글에선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던 출판사 대표님의 한마디는 날카로운 송곳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자신이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개운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나르시시즘은 가끔씩 삶의 편리한 도구가 될지 모르지만, 빠져나와야 할 굴레다. 그런 의미에서 몇 주 전 가족들과 함께했던 공주 여행은 남달랐다. 멀리서 바라본 계룡산의 실루엣은 아침저녁으로 아름다웠다. 그리고 사람을 만났다. 

천년 고찰 갑사에서 멀지 않은 숙소를 예약해 묵었는데, 호스트라 해야 할까, 사장님이라 해야 할까. 숙소를 운영하는 J선생님은 중학교 교장을 하다 퇴직하고, 갑사 부근 야트막한 산에 계룡산과 계룡저수지가 활연하게 보이는 2층의 목조 주택을 마련해 여행객들에게도 내주신다. 

 

해 뜨기 전, 계룡산의 실루엣 위로 하현의 초승달이 외롭다.

 

옥빛 청란에 담긴 두 분의 마음

사흘간의 짧은 인연을 통해 J선생님 부부가 내어준 후의가 두터워, 사람을 꺼리는 고질병에서 잠시나마 해방된 느낌이었다. 

대단한 이벤트가 있었던 건 아니다. 조금은 엉겁결에 J선생님 부부가 거주하는 별채에 내려갔다가 한 시간에 걸쳐, 평범해서 더욱 빛나는 그들의 개인사史를 들었다. 푸짐한 호두와 사과와 피자와 정담情談만으로도 여행이란 게 얼마나 풍성해질 수 있는지…. 풍경과 사람이 한데 섞일 때 일어나는 일들을 설명할 수 있는 건 화학이 아니라 연금술이란 생각이 들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건네주신 옥빛의 조그만 청란靑卵이 얼마나 예뻤는지 모른다.  

못 잊을 일이 또 있다. J선생님은 이튿날 저녁놀이 번질 무렵의 저수지 동반 산책을 수줍게 제안했는데, 다음날 우리 가족이 유야무야로 무산시키고 말았다. 멋진 ‘해설’도 준비하셨을 텐데, 여행의 피로를 핑계로 그 고운 마음을 얻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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