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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맨앤월 선운산 투구바위] 그의 몸엔 허튼 살 하나 보이지 않았다

by 白馬 2022. 12. 21.

코리아 강(5.14a) 프로젝트 도전 중인 오경호

 

선운산 투구바위 코리아 강에 붙은 오경호. 그는 수많은 해외 원정을 경험한 등반가다. 몇해 전 고산 원정에 대한 관심을 고난도 스포츠클라이밍에 돌렸다.

 

투구바위 가는 길. 천년 고찰 선운사를 지나면 도솔제가 나온다. 호젓한 풍광이다. 이 모습은 언제봐도 내 마음속에 감동을 일으킨다. 절과 마찬가지로 이곳에서 수 십, 수 백 년 자라온 덩치 큰 나무 사이로 난 오솔길이 다음으로 이어진다. 여기를 걸으면 몸가짐이 절로 얌전해진다. 그러니까 선운산으로 가는 길은 마치 도 닦으러 가는 것 같다.

도솔제에서 700여 m 더 가면 속살바위와 투구바위가 나온다. 바위까지 멀지 않지만 여기까지 이르면 언제나 몸에 땀이 조금씩 밴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땀은 금방 말랐다. 아직 가을이지만 여긴 초겨울이었다. 바위 사이로 부는 바람이 차가웠다. 투구바위는 1994년 개척됐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무수한 등반가들이 투구바위에 흔적을 남겼다. 투구바위엔 100여 개 루트가 있다. 5.14급 코스도 여러 개다. 이곳은 겨울에 더 붐빈다. 습기가 빠져 말라붙은 바위가 등반가들의 완등을 돕기 때문이다. 

 

코리아 강은 강력한 루트다. 초반 몇 마디를 지나면 등반이 끝날 때까지 크럭스가 이어진다. 그는 이날 루트 완등에 필요한 동작을 모두 풀었다.

 

5.14급 루트를 등반하려면 손끝, 발끝 모두에 집중해 정확한 동작을 구사해야 한다. 하나라도 흐트러지면 바로 추락이다.

 

오경호(북한산 클라이밍센터)씨를 보러 왔다. 도착하니 바위 아래엔 그를 비롯해 아내 양윤희씨도 있었다. 그들은 벌써 몸을 풀고 있었다. 부부는 여러 고난도 등반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 지금 목표는 ‘코리아 강(5.14a)’. (코리아 강은 1990년대 중반쯤 강희윤씨가 개척했다. 그때 이름은 ‘헝그리 강’. 초등자는 이윤재씨로 그는 2009년 이 루트를 완등하고 선운산을 떠난 강희윤씨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루트 이름을 코리아 강으로 바꿨다.)

오경호씨는 히말라야 가셔브룸, 파키스탄 히말라야 라톡 북벽, 유럽 알프스 그랑드조라스 북벽 등 고산과 거벽 원정에 많은 시간과 열정을 투자한 등반가다. 2018년 라톡 북벽 원정에서는 눈사태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사고 후 그는 변했다. 해외 원정 대신 고난도 스포츠클라이밍에 눈을 돌린 것이다. 뭘 해도 바꿀 수 없는 등반가의 운명이 그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오경호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다. 5.14의 세계는 아무나 입성할 수 없다.

 

오경호는 수 차례 코리아 강 완등을 위해 몸과 마음을 갈고 닦았다.

 

오경호씨는 따스한 햇빛 아래서 사포로 굳은살을 갈고 있었다. 깡마른 그의 몸에는 허튼 살 하나 보이지 않았다. 조금 전 등반을 시도했다가 손과 어깨를 긁혔다. 피가 보였다. 손에 생긴 상처는 조그만 홀드를 잡으며 발생한 것이지만 어깨 상처는 언제 왜 그랬는지 그조차도 알지 못했다. 5.14급 루트를 오르려면 평상시 엄청나게 훈련해야 한다. 게다가 수년에 걸친 체중조절도 함께 동반해야 한다. 누구나 닿을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5.14 클라이머!’ 이름 앞에 이 숫자를 붙여 그들만의 특권을 누리는 자는 내로라하는 등반가들 중에도 별로 없다.

코리아 강은 초반 몇 마디 지나면 다음부터 등반이 끝날 때까지 크럭스다. 오경호씨는 홀드 하나하나에 정확한 동작을 구사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등반했다. 크럭스 구간에서 디딤발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바로 추락이다. 손끝의 각도 하나하나가 비틀어져도 추락이다. 투구바위 골짜기에 그의 함성이 메아리쳤다. 

 

등반을 마치고 바위 아래 선 오경호. 평상시에는 이처럼 순박한 얼굴을 지녔다.

 

투구바위. 저 울퉁불퉁한 못생긴 바위는 지금 오경호 삶의 원동력이다.

 

잠시 쉬는 시간 양윤희씨가 등반에 나섰다. 그녀는 2015년쯤 등반을 시작했다. 남편 오경호씨의 자일 파트너이기도 하지만 그녀 역시 틈틈이 등반을 즐긴다.

마침내 오경호씨는 코리아 강 루트에서 필요한 동작을 다 풀었다. 완등이 가까워졌다. 그는 다음주에도 투구바위를 찾을 것이라고 했다. 그의 손가락은 또 찢어질 것이다. 루트를 완등하지 못한다면 또 선운산에 올 것이다. 완등을 해도 다른 프로젝트를 찾아 또, 또, 계속 자신을 밀어붙일 것이다. 단순한 삶에서 느껴지는 담백함. 그들에게서 슴슴한 행복의 맛을 느꼈다. 

 

그의 아내 양윤희씨도 등반을 즐긴다. 둘은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자일 파트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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