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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한국의 대표적 명찰 품은 산자수려한 명산

by 白馬 2021. 9. 3.

[순천 조계산]
송광사·선암사에 국보 문화재 수두룩… 생태도 뛰어나 유네스코 생물보전지역

 

조계산 정상 장군봉에서 뻗어나간 주능선이 호남정맥 줄기를 따라 사방으로 펼쳐져 있다.

 

조계산의 한 잔 물 曹溪一勺水

천고의 진원에서 내려 온 것이렷다 千古發眞源

텅 빈 연못엔 보물 같은 달이 도장 찍고 空潭印寶月

산문에 들어오는 차가운 달 그림자 寒影浸山門

해질 무렵 숲 속에 메아리치는 범종 소리 僧梵晩林響

깊어가는 황혼의 전각에 내걸린 불등 佛燈深殿昏

초암 속에 있는 늙은 승려 團焦老衲在

나와 마주보며 서로 말을 잊었어라 對我共忘言 

 

조계산 정상 장군봉에는 두 개의 정상 비석이 세워져 있고, 각각 고도가 다르게 표시돼 있다.

 

조선 중기 문신 장유張維(1587~1638)의 <계곡집> ‘송광사에서 옥 상인에게 주다 松廣寺贈玉上人’ 제목의 오언율시다.

조계산曹溪山(888m)은 옛날부터 물이 명수明水였던 것 같다. 얼마나 맑았으면 천고의 진원에서 떠내려온 것이라 했겠나. 지금도 그 물은 맑다. 더욱이 풍부하다. 맑고 많은 물이 계곡 양쪽 송광사와 선암사 방향으로 항상 가득 흐른다. 예로부터 그 산을 찾은 시인 묵객들은 숱하게 많았다. 우화각 내부에 걸린 많은 시들이 그 흔적을 말해 준다.

현대 들어서도 방문은 계속된다. 1926년 육당 최남선이 남도순례 길로 그의 기행문 <심춘순례>에 소개했으며, 1960년대 국내 여행의 선구자격인 이화여대 조필대 교수는 “국내 산길 여행의 제1 번지”라고 언급할 정도로 뛰어난 풍광을 지닌 길이었다. 

 

산길 여행뿐만 아니라 송광사는 조계종의 전통을 잇는 승보사찰로서 보조국사 지눌 등 16국사를 배출했고, 무소유의 법정스님이 송광사 불일암에서 20년 가까이 수행정진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송광사 일주문을 지나 경내에 들어가려면 삼청교(극락교 혹은 해탈교)를 건너야 한다. 일종의 다른 세계로 가는 길목이며, 계곡 아래 물로 마음과 몸을 씻고 청정하게 들어가라는 의미이다. 물은 또한 ‘조계’라는 유래와 직접 관련성을 가진다. 뒷부분에서 자세히 설명하겠다. 삼청교 위 정자가 시인들이 시를 남긴 우화각이다. 계곡을 지나자마자 ‘침계루枕溪樓’라는 누각이 나온다. 계곡을 베개 삼아 머무는 누각이란 뜻이다. 오죽 했으면 침계루라 했을까.

 

조계산 송광사 침계루 옆으로 계곡이 흐른다.

 

물은 계곡이 깊어야 풍부하다. 풍부한 물은 또한 깊은 숲을 만든다. 조계산 정상 장군봉까지 가는 등산로는 햇빛을 가려 주는 숲터널의 연속이다. 정상에 올라서야 조망이 탁 트인다. 중간쯤 돌출된 배바위 정도에서 탁 트인 조망으로 등산객들이 한숨 돌려 쉬기도 한다.

 

깊은 숲과 풍부한 물은 야생동물이 서식하기에 최적의 환경을 만든다. 2018년 7월 조계산과 순천만 일대의 뛰어난 생태계를 인정받아 유네스코로부터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됐다. 생물다양성과 지속가능한 생태계에 대한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또한 뛰어난 산세와 16명의 국사를 배출한 송광사, 선·교종의 중심사찰인 선암사를 품고 있는 조계산 일원을 2009년 12월 국가문화재 명승으로 지정했다.

 

특히 송광사는 불법승佛法僧의 삼보三寶사찰 중의 하나로, 불보의 통도사, 법보의 해인사와 더불어 승보의 송광사로 자리매김하는 유서 깊은 한국 최고의 선禪사찰이다. 자연·생태적 가치뿐만 아니라 문화적 가치까지 지니고 있는 산이다. 국보 42호 목조삼존불감, 국보 43호 고려고종제서, 국보 56호 국사전 등 국보와 보물이 수두룩하다. 선암사에도 보물 400호인 아치형 승선교, 보물 395호 삼층석탑, 보물 1311호 대웅전 등 볼거리가 많다. 이보다 일찍이 1979년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송광사 영산전 안에 보존된 후불탱화도 역시 보물이다.

 

국내 산길 여행의 제1 번지 

물이 풍부하고 계곡이 뛰어나 특히 여름에 많은 사람들이 찾지만 봄·가을에도 그에 못지않다. 가을엔 단풍이 매우 곱다. 피아골·홍골 등의 계곡엔 활엽수들이 군락으로 서식, 만산홍엽의 아름다운 색깔을 뽐낸다. 봄에는 동백과 목련, 벚꽃, 철쭉이 흐드러지게 피어 보는 이들로부터 감탄을 자아낸다. 그 모습이 예로부터 워낙 뛰어나 ‘소강남小江南’이라 불렸다. 소강남은 산과 물이 기이하고 맑은 곳을 일컫는다. 이와 같이 조계산은 산세가 험하지 않아 등산하기에 좋고, 볼거리도 많은 산이다.

 

이렇게 사계절 아름다운 산의 이름은 어디서 유래했을까? 조계산이란 지명유래는 순천시 홈페이지나 관련 문헌에 정확한 내용은 없고 ‘예로부터 소강남小江南이라 불렀으며, 송광산松廣山이라고도 한다’고만 소개한다. 일반적으로 ‘조계’는 구산선문을 통합한 종파를 말한다. 신라 말 혼란스런 상황에서 불교를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즉 선정과 지혜를 함께 수행한다는 정혜쌍수定慧雙修의 선 수행 불교가 제창된다. 선 불교는 몇몇 종파로 분파하면서 구산선문이 생겨난다.

고려시대 들어 원래 활발하던 교종과 중국을 통해 새로 들어온 선종의 갈등이 심해지자 선 중심의 구산선문을 통합하기에 이른다. 그것이 바로 조계이며, 지금의 조계종의 시원이다. 서기 1,000년 전후해서 벌어진 당시 한반도 불교 상황이다. 이후 정혜사→수선사→송광사로 변천하면서 보조국사 지눌과 함께 16국사가 송광사에서 배출된다. 

 

1070년 발행된 <석씨통감釋氏通鑑>에 물과 조계와 관련한 내용이 나온다. 선종禪宗의 효시로 평가받는 달마의 후손인 육조대사 당나라 혜능이 ‘조계산’ 보림사에서 선종의 정통을 계승했다. 그래서 ‘조계’는 곧 선종의 별칭이자 동시에 조계산의 유래가 된다. 여기 일화가 있다. 한 승려가 오대의 고승 법안에게 “무엇이 조계의 한 방울 물이냐? 如何是曹溪一滴水”라고 묻자, “이것이 바로 조계의 한 방울 물이다是曹溪一滴水”라는 대답을 듣고 크게 깨달았다고 전한다. 일반인들은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는 선문답이다. ‘조계의 물’은 이 일화와 관련해서 깨달음과 깊은 관련이 있고, 나아가 조계원이 선종의 총칭이 된 것이다.

 

‘조계’의 그럴 듯한 유래는 또 있다. 육조대사에게 직접 제수를 받은 한 승려가 중국 광동성의 조씨 마을에 이르렀을 때 그곳에 사는 조숙량이 승려의 덕을 흠모해 보림의 옛터인 쌍계원에 절을 짓고 스님을 모셨다고 한다. 이에 그 승려는 감사의 뜻으로 조숙량의 ‘조’와 쌍계원의 ‘계’를 따서 조계산이라 했다고 전한다.

 

 

구산선문 통합한 조계는 한국 선종의 본산

정리하자면, 고려 신종 4년(1200) 보조국사 지눌(1158~1210년)이 송광산 길상사에서 정혜사를 창설하고, 희종(재위 1204~1211년)이 즉위한 다음 산 이름을 송광산에서 조계산으로, 절 이름을 수선사修禪社라고 바꾼 뒤부터 선종 중심의 조계종이 정착됐다. 이때가 구산선문을 통합한 시기와 비슷하게 맞아떨어진다. 정혜사定慧社는 1190년 지눌이 조계종의 시원이 된 선 중심의 수련을 같이 하는 동지를 모은 뒤 그 단체를 칭하고, <권수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을 지은 데서 유래한다. 수선사는 말 그대로 선을 수련하는 단체라는 의미다.

 

그런데 <고려사>에 송광산이란 지명은 소개되지 않지만 송광사란 명칭은 여러 군데 등장한다. 당시 송광사란 지명이 널리 사용됐다는 방증이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도 나오지 않지만 조선시대 들어서는 구체적으로 소개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순천도호부 산천조에 ‘조계산은 부의 서쪽 80리에 있다. 송광산은 부유현 서쪽에 있다’고 나온다. 이어 불우편에 ‘송광사는 일명 대길상大吉祥이니 조계산에 있다. 선암사는 조계산에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목은 이색(1328~1396)의 시에는 ‘높고 높은 수선사 멀리 송광산에 있네. 현판을 대길상이라 썼는데 용이 대들보 사이에 기어 다니는 듯 (후략)’이라는 내용이 있다. 

 

이에 따르면, 애초에 송광산과 조계산은 각각 다른 산이다. 송광사는 조계산에 있으며, 다른 이름은 대길상 또는 수선사이고, 선암사는 조계산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시기가 1500년 전후 상황이다. 이색이 살았던 1300년대에는 송광사보다는 수선사가 일반적으로 사용된 듯하다. 이후 서서히 송광사로 정착된 듯하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조계산은 송광산이 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순천시에서 발간한 <조계산에서 만나는 이야기>에서도 ‘기록에 의하면 산의 이름은 신라 말 선암사가 창건되던 때에는 청량산이었으나 조계산으로 이름이 바뀌기를 반복하다 1825년에 조계산으로 정착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 적어놓고 있다. 청량산이란 생뚱맞은 지명까지 등장한다. 순천시에서 밝힌 내용이 맞는지 고지도를 통해 한 번 살펴보자.

 

 

1500년대 발간된 첫 전국지도 <동람도>에 조계산은 없고 송광산만 표시돼 있다. <동람도>는 따로 발간되기도 했지만 관찬 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별책부록 같이 첨부돼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내용과 차이가 없지만 아쉽게 선암사와 조계산은 표시가 없다.

 

이어 1682년 발간된 <동여비고>에서는 송광사(일명 대길상) 뒷산이 조계산이고, 선암사 뒷산을 송광산으로 나타내고 있다. 명확히 다른 두 개의 산으로 표시하고 있다. 17세기 발행된 고지도에는 산의 연속성, 산줄기를 파악해 나타내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지도에 산만 표시하고 있어 주변 산과의 관계를 파악하기 어려운 점을 고려하면, 당시 실사구시를 중시하는 신흥 학문 실학이 융성했던 상황이 지도제작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어쨌든 불과 100년 전 제작된 <동여비고>와 송광사와 선암사가 조계산에 있다는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내용은 조금 다르게 나타난다.

 

18세기 전기에 발간된 <팔도지도>에서도 송광산과 조계산은 각각 다른 산으로 표기돼 있다. 반면 1700년대 중기에 제작된 <산경표>에서는 조계산이라고 뚜렷이 나온다. 호남정맥이 조계산에서 백운산까지 이어지는 산줄기로 돼 있다. 이후 19세기 전기에 발행된 <여지도>나 <고지도첩>, 1861년쯤 발행된 <대동여지도>에 이어 20세기 초 일제가 한반도 지명을 정리한 <조선지지자료>까지 전부 조계산으로 등장한다. 

 

이로 미뤄 볼 때 송광사와 선암사 창건 당시에는 각각 뒷산을 조계산과 송광산으로 달리 부르다가, 1500년 전후해서 두 사찰은 조계산에 있으며, 송광산은 독립된 산으로 있었던 듯하다. 이러한 기록은 17세기 전반부까지 계속된다. 17세기 중기부터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명확히 파악할 수 없지만 송광산이란 지명은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조계산으로 통일된다. 고지도는 명확히 조계산만 등장하고, 개인문집 등 문헌에 간혹 송광산이 등장하는 정도다. 이후 20세기 초 발간된 <조선지지자료>에 송광산이란 지명은 아예 나타나지 않는다. 완전히 조계산으로 통일된 것이다.

 

 

송광산·조계산 혼용하다 18세기 중반부터 조계산 통일

전체적으로 다시 정리하면, 애초 송광산으로 불리다 구산선문이 조계종으로 통일된 이후 조계산으로 불리는 듯하다가 다시 송광산과 조계산 두 산으로 각각 나뉜다. 그게 1700년대 초기까지이다. 이후부터 송광산은 사라지고 조계산 표기로 통일된다. 송광사는 창건 당시엔 정혜사로 불리다 수선사로 변하고 다시 송광사로 바뀌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선암사는 창건 당시부터 지금까지 명칭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듯하다.

 

따라서 순천시에서 밝힌 조계산의 애초 지명이 청량산이란 부분은 전혀 근거 없는 내용이라는 사실을 옛 문헌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더욱이 이는 지명의 유래를 조금 알면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인데 오류를 범하고 있다. 왜냐하면 청량산은 보통 관음도량의 성지를 상징할 때 명명하는 지명이다. 조계산은 승보사찰, 즉 구산선문을 통일한 한국선종의 총본산으로 자리매김하는 사찰인데, 그 배후의 산을 관음도량의 성지 청량산으로 명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려 말 입만 열면 시가 됐다는 문신 김극기의 시에 ‘적적한 산 속 절이요/ 쓸쓸한 숲 아래의 중일세// 마음 속 티끌은 모두 씻어 없앴고/ 지혜의 물智水은 맑기도 하네// 8천 성인에게 예배하고/ 담담한 사귐은 삼요의 벗일세// 내 와서 뜨거운 번뇌 식히니/ 마치 옥병 속 얼음 대한 듯하네’라고 또 한번 물을 언급하며 선암사를 노래했다.

<연려실기술> 산천의 형승편에 조계산의 송광사를 두고 ‘물과 바위가 깨끗하고 봉만峯巒이 밝고 곱다’고 설명하고 있다. 역시 조계산의 물은 시대를 걸쳐 계속 언급되고 있다. 그만큼 명수였던 것 같다. 물은 선과, 선은 조계와 관련 있으며, 한국 선의 최고 승려로 평가받는 승철 종정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법어와도 그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명불허전 승보사찰이다.

 

조계산 등산로는 사방에서 접근할 수 있어 매우 다양하다. 가장 일반적인 코스로는 ▲송광사에서 송광대피소와 굴목재를 거쳐 선암사로 넘어오는 등산로다. 총 6.5㎞에 3시간 30분 정도 소요. 선암사에서 송광사로 가는 그 역 코스도 많이 이용한다. 송광대피소 근처 ‘최두석 보리밥집’은 조계산의 명물로 꼽힌다. 주말에는 그 넓은 공간에 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 ▲송광사에서 중간 기점인 큰굴목재에서 정상 장군봉까지 가면 편도 1.9㎞ 거리다. 따라서 선암사~큰굴목재~장군봉~큰굴목재~송광대피소~송광사까지는 10.5㎞가량에 소요시간은 5시간 내외. ▲낙안 장안치에서 가는 코스도 있다. 장안치에서 큰굴목재를 거쳐 정상 장군봉 밟고 오두치로 넘어갈 수 있다. 총 11㎞에 5시간 30분 소요. 송광사·선암사 문화재 관람료는 각각 3,000원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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