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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나홀로 걷기] 발로 읽는 수원의 역사… 팔색조처럼 변화무쌍한 길

by 白馬 2021. 8. 19.

수원 팔색길

 

어둠이 짙어지고 조명이 켜지면 수원의 화성은 낮보다 더 아름답다. 불빛을 받은 성벽과 플라잉수원이 기묘하게 어우러진다.

 

문득 가깝고도 먼 수원의 길을 걷고 싶었다. 요즘처럼 날씨 변화가 많을 때는 멀리 가는 것보다 가까운 곳을 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지인들과 수원화성 성곽길 야간 산책을 했다. 야경도 멋지고 역사이야기도 듬뿍 담겨 있고 걷기만 해도 수원화성의 모든 것을 즐길 수 있는 길이었다. 걷기 편한 수원화성 성곽길은 수원 팔색八色길의 한 코스이다. 이름이 예뻐서 더욱 호기심이 생겼다. 

수원 팔색길은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길로 행궁 공방길, 수원화성 성곽길, 지동 벽화마을, 전통시장, 통닭거리, 원천호수 둘레길 등 다양한 특색을 담고 있다. 행운을 상징하는 8의 의미를 담은 총 8개 코스를 걸으며 다양한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전체를 걷고 싶은 욕심을 조금 누르고 정조의 꿈이 담겨 있는 수원화성 성곽길과 숲 내음이 가득한 여우길을 걷기로 했다. 두 코스의 총 길이는 16.4km로 짧지 않은 길이지만 코스가 평이해서 걷기 편하고 대중교통으로 이동하기도 수월해 언제든 여정을 끝내기 편한 장점이 있다.

 

성곽 안팎으로 잔디밭이 조성된 수원화성은 더 없이 좋은 산책길이고 쉼터이다.

 

정조의 꿈, 수원화성에서 만나다-‘성곽길’ 

수원 시내 한복판에 건축된 수원화성은 우리나라 성곽건축의 백미로 꼽힌다. 왕이 나들이 행차 때 머물던 궁이 행궁인데 왕의 휴식처나 능원 참배가 목적이었지만 정세가 혼란스러울 때는 일종의 도피처였다. 행궁으로 건립했던 성으로는 남한산성, 강화산성, 북한산성, 수원화성 등이 있지만 대부분 원형대로 보존되지 못하고 있다. 그중에서 원형에 가장 가까운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수원화성이다.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정조 18년(1794년) 2월에 시작해 2년 6개월 만에 완공한 수원화성은 당시에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기술을 총동원했다고 한다. 처음 축성되었을 때는 8.36km였다고 하는데 복원된 길이는 5.7km이다. 성곽을 따라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다. 수원화성을 즐기는 방법은 다양하다. 효심이 가득했던 정조대왕의 숨결을 따라 걷거나 정약용에 집중해서 수원화성의 다양한 토목건축물과 과학기술에 몰입해도 좋지만 그저 수원 시내를 조망하며 걷고 옛 성곽과 도심의 빌딩이 어우러진 이색적인 모습을 즐기고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잠시 쉬게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낮에도 아름답지만 밤에는 은은한 조명과 더불어 환상적인 야경을 연출한다.

 

수원화성은 문턱이 없다. 성곽의 전망 좋은 정자에 올라 쉬거나 성곽 주변의 잔디에서 맘껏 뛰어놀 수 있고, 성 안팎으로 출입하기 위해 만든 4대문과 5암문은 모두 개방되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수원화성은 주민들에겐 더 없이 좋은 산책길이고 쉼터이다. 아낌없이 모든 것을 시민들에게 내어준 수원화성 성곽길이다. 성곽 곳곳에 작은 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피크닉 장소로도 더 없이 좋다. 마치 백성을 사랑했던 정조가 바라던 수원화성의 모습이 바로 이 모습은 아닐까? 

수원역에선 차로 10여 분이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에 도착한다. 수원화성 성곽길 걷기 여행은 하나로 이어진 길이라 어디에서 시작해도 된다. 팔달산을 끼고 있는 서쪽 성곽길은 경사가 심하지만 구간이 짧고 나머지 지형은 완만한 오르내림이 있는 지형이라 누구나 지루하지 않고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 전체 걷기가 어렵다면  팔달문에서 시작해 남포루, 서장대, 화서문, 장안문을 지나 화홍문과 방화수류정까지 이어지는 코스를 추천한다. 울창한 소나무 숲에 둘러싸인 이곳을 걷노라면 이곳이 수원시내 한복판인 것을 잊게 된다. 

 

수원화성 성곽길을 걷고 수원의 유명한 먹거리 중 하나인 순대볶음을 먹을 욕심에 순대타운인 지동시장이 가까운 팔달문을 들머리로 삼았다. 이곳부터 서남암문까지는 가파른 언덕길. 시작부터 쉽지 않은 길이지만 계단을 오르다 뒤돌아보면 수원 시내가 한눈에 들어와서 조망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구간도 그리 길지 않다. 

 

서남암문부터 서장대까지는 평탄한 길이다. 서장대는 수원화성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다. 성곽 전체를 감시하며 군사를 지휘하는 지휘소의 역할을 수행하는 곳이다. 정조대왕이 이곳에 올라 직접 군사지휘를 했다고 한다. 화성 행궁의 전체 모습이 조망되고 수원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 포인트이기도 하다. 서장대 뒤쪽엔 서노대가 있다. 서노대는 다연발 활을 쏠 수 있는 시설로 서장대를 방어한다. 

 

서장대에서 화서문까지는 내리막이다. 흐르는 강물처럼 유선으로 뻗어 있는 성곽의 아름다움에 잠시 취한다. 그 길의 끝에는 서북공심돈이 있다. 망루와 포루의 역할을 동시에 하는 공심돈은 수원화성에서만 발견된 특이한 건축물로 4곳이 있었지만 현재는 서북공심돈과 동북공심돈만 남아 있다. 

 

수원화성의 정문 역할을 하는 장안문은 그 규모도 웅장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성문으로 국보1호인 숭례문보다 크다. 광교산에서 시작된 물줄기는 수원화성의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인 방화수류정을 끼고 화홍문의 7개 무지개 모양 수문을 통해서 수원화성을 빠져나간다. 

 

수원팔경 중 제7경 화홍관창華虹觀漲(화홍문 수문에 쏟아지는 물보라)이 바로 이곳이다. 방화수류정은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는 뜻을 가진 독특한 지붕형태의 정자로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그 모습이 다르다. 군사시설이지만 평상시에는 주변경치를 즐기는 정자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철쭉이 만개했을 때 방화수류정의 일몰은 더욱 환상적이다. 방화수류정에서 굽이굽이 휘어진 성곽의 모습을 바라보며 망중한을 잠시 즐기고 동장대로 내려선다. 동장대 주변은 널찍한 잔디밭이 펼쳐진다. 예전엔 군사훈련을 했던 곳인데 지금은 국궁체험장이 되었다.

 

창룡문 앞에는 헬륨기구인 ‘플라잉수원’이 있다. 150m 상공에서 수원화성과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플라잉수원과 수원화성 성곽이 기묘하게 어우러진다. 창룡문을 지나 팔달문으로 구불구불 이어지는 수원화성의 성곽 위로 유럽의 고성 같은 웅장한 수원제일교회가 서있다. 수원제일교회의 종탑에는 수원시와 협력해 만든 ‘노을빛전망대’가 있다. 수원화성의 노을을 감상하기엔 더 없이 좋은 곳이다. 창룡문부터 팔달문까지는 비교적 완만한 길이다. 순대볶음을 먹으려는 욕심에 발길이 빨라진다.

 

성곽길 코스 화서문  → 장안문 → 화홍문(방화수류정) → 팔달문 → 수원향교 → 팔달산 → 화서문

 

연꽃이 가득한 원천호수에 드리워진 신도시의 아름다운 반영이 유럽의 소도시를 연상케 한다.

 

진한 풀·흙 내음에 취하다-‘여우길’

수원팔색길 중 4색 ‘여우길’은 예전에 여우가 살았다고 해서 ‘여우골’이라 부른다. 여우길은 광교공원에서 시작해 광교호수공원을 돌아서 다시 광교공원으로 돌아오는 순환코스여서 어디서 시작해도 길 찾기에 큰 어려움이 없다. 총거리는 10.6km로 조금 길지만 오르내림이 거의 없고 도심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풍경을 담고 있어서 지루하지 않다. 

 

시작지점을 광교호수공원으로 정했다. 광교호수공원은 원천호수와 신대호수를 품고 있는 아름다운 수변공간이다. 아파트 사이로 솟은 소나무들이 참 묘하게 어우러진다. 그 풍광 사이로 여름바람이 가을바람처럼 곁을 스친다.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두둥실 떠있는 맑은 하늘은 아니지만 비를 잔뜩 품고 있는 흐린 하늘 덕분에 뜨겁지 않아서 걷기엔 더 없이 좋다. 

 

거대한 빌딩이 반영된 원천호수는 바다처럼 보인다. 갈대는 바람에 몸을 맡긴 채 흔들거린다. 호수 한켠에선 연꽃들이 꽃망울을 조심스레 터트리고 있다. 조금 더 가까이 마주하고 싶어 곁으로 다가선다. 호수 주변을 따라서 놓여 있는 흔들의자엔 모두 커플들이 앉아 있다. 유럽의 작은 소도시에서 느낄 수 있는 평화로움이 느껴진다. 행복이란 단어가 어우러지는 풍경이다. 

호수공원을 벗어나니 하천 산책로. 곳곳에 놓인 징검다리가 참으로 정겹다. 괜스레 건너갔다 오고프다. 천변길을 지나고 경기대학교 캠퍼스로 들어선다. 특이하게도 여우길은 대학캠퍼스를 둘러 가는 것이 아니라 대학 캠퍼스를 가로지른다. 이곳은 오랫동안 다니던 나의 직장. 아주 오래전이라 모습이 많이 변했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추억을 곱씹어 본다. 

 

경기대학교를 벗어나니 여우골 숲길이다. 여우길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숲길 때문이다. 완만한 오르내림이 있는 산자락 길로 빽빽한 숲은 아니어도 초록의 향기가 가득한 평범한 숲에서 초록 내음에 취해서 흙길을 걷을 수 있다. 진한 풀내음과 흙 내음이 가득해서 산속 오솔길을 걷는 기분이다. 살랑살랑 나무들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정겹다. 반딧불다리, 나비잠자리다리, 갈참나무다리, 풍뎅이다리 등 작은 다리들이 연이어 나타나고, 곳곳에 걷는 이들이 쉬어갈 수 있는 정자도 있다. 걷는 길이 피곤하다 싶으면 잠시 정자에 올라 휴식을 취해도 좋다. 

오전에 수원화성 성곽길을 걸었음에도 살아 있는 초록 숲을 걷는 발걸음이 참 가볍다. 그만큼 숲이 주는 즐거움이 크다. 여우골 숲길은 약 2km이다. 생명의 숲길이 끝나니 시작했던 광교호수공원이다. 

 

여우길 코스 광교호수공원 → 여우골 숲길 → 봉녕사 → 광교공원 → 경기대학교 → 광교역사공원 → 광교호수공원

 

완만한 오르내림이 있는 여우골 숲길은 빽빽한 숲은 아니어도 초록내음에 취해서 걸을 수 있는 산자락길이다.

 

빛의 산책로를 걷다

다시 장안문으로 향했다. 수원화성 ‘빛의 산책로’를 즐기기 위해서다. 낮에도 아름답지만, 밤에는 성곽을 비추는 은은한 조명이 환상적이어서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야간 관광 100선’에 들었다. 

 

수원화성의 동쪽 부분은 밤에 더 아름답다. 특히 화홍문부터 용연을 보고 동장대를 지나 창룡문까지는 야경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야간에 조명이 들어오면 동북포루에서 이어지는 성벽은 마치 휘어진 용의 몸통처럼 보인다. 야간의 하늘빛은 온도, 습도 등 그날의 날씨에 따라 매일 매일 달라지니 용의 모습도 매일 달리 보일 게다. 

방화수류정의 연못인 용연의 버드나무에 조명이 밝혀지면 이곳은 멋진 야경의 ‘핫플’이 된다. 수원천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스쳐가며 여름더위를 쓸어간다. 용연이 잘 보이는 자리를 택해서 망중한을 즐긴다. 

 

오늘 하루 걸었던 수원화성 성곽길과 여우길이 수원 팔색길 영화의 예고편으로 지나간다. 오늘 걷지 못했던 다른 코스는 영화 상영까지 남겨놓는다.

 

수원 팔색길

 

수원 팔색길

수원一色 모수길(22.8km 7시간40분 소요)  수원시민과 가까이에서 함께하는 도심 속 생명의 길
수원二色 지게길(5.3km 1시간30분 소요)  광교저수지의 수려한 자연풍경을 연결하는 수원의 대표적인 풍경길
수원三色 매실길 (18.1km 6시간 소요) 연하천과 숲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생태자연길
수원四色 여우길(10.7km 3시간40분 소요) 광교저수지와 원천저수지를 연결한 녹음이 푸르른 길
수원五色 도란길(11.1km 4시간 소요) 영통 신시가지 메타세콰이어길을 연결한 녹음이 풍부한 가로수 길
수원六色 수원둘레길(60.6km 22시간30분 소요) 수원시와 타 지역의 경계가 되는 길로 녹음이 풍부한 길
수원七色 효행길(12.3km 4시간30분 소요) 정조대왕이 부왕(사도세자)의 현륭원을 참배할 때 왕래하던 길
수원八色 화성성곽길(5.7km 2시간 소요) 자랑스러운 수원화성을 거니는 역사·사적길

 

볼거리/즐길거리

화성행궁 소나무 숲이 울창한 화성행궁은 경복궁에 비할 규모는 아니지만 궁궐로서 격식과 기품을 갖추고 있다. 건물이 21채나 될 만큼 조선시대 행궁 중에서 가장 규모가 컸다. 소나무 숲이 울창하고 낮에는 팔달산 기슭의 신록과 어우러진 싱그러운 행궁을, 야간에는 달빛 아래 청사초롱이 밝혀진 아름다운 행궁을 거닐 수 있다.

 

수원제일교회 노을빛전망대 수원제일교회 맨 꼭대기인 13층에 있다. 8층부터는 엘리베이터가 운행되지 않는다. 노을빛 전망대에 올라서면 수원시내가 360도로 펼쳐진다. 해질녘 풍경이 수원에서 가장 아름답다. 

 

화성어차 수원화성의 주요 관광지를 순환하는 관광열차로 순종이 타던 자동차와 조선시대 국왕의 가마를 모티브로 했다. 수원화성 성곽 주요지점과 전통시장을 편안하게 돌아볼 수 있다.

 

플라잉수원 높이 32m 폭 22m, 최대 2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플라잉수원은 150m 상공에서 아름다운 수원화성과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행리단길 신풍동 행리단길은 골목마다 옛 모습을 그대로 지키고 있던 주택, 구멍가게 등이 현대식으로 리모델링되어 이색적인 카페와 식당, 사진관 등으로 모습이 바뀌고 있다. 수원의 핫플레이스  중의 하나로 우리나라 최초 여성 서양화가이자 작가인 나혜석의 생가터 골목도 행리단길에 있다.

 

먹거리

수원갈비 1940년대까지 수원에 있던 전국 최대의 우시장에서 시작한 수원의 대표적인 먹거리이다.

지동 순대타운 1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지동시장만큼이나 역사가 깊은 지동 순대타운의 순대와 곱창은 한 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을 정도이다. 잡채와 선지 등 8가지 재료를 넣어 만든 지동순대는 전국에서 순대 마니아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수원 통닭거리 1970년부터 팔달문 안쪽 수원천을 따라 형성된 통닭거리에선 가마솥에 튀긴 푸짐한 옛날통닭을 푸짐한 양과 부담 없는 가격으로 즐길 수 있다. 영화 ‘극한직업’으로 유명세가 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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