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심신 메카니즘
명상을 통해 회피하지 않고 '대응하는' 힘 기르기
아프리카 초원에서 한 무리의 가젤(작은 영양)들이 표범에게 쫓기고 있다. 놀란 가젤들은 표범이 추격을 포기할 때까지 죽어라고 달린다. 일단 위험이 지나가면 가젤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평화롭게 풀을 뜯는다. 이것이 바로 동물의 세계다.
사람을 포함해 동물은 낯선 적이 출현하거나 위협을 감지할 때 심리적·생리적으로 ‘투쟁-도피 반응(fight-or-flight response)’을 보인다. 맞서 싸우거나 도망칠 준비를 하며 거기에 맞게 몸을 최적화시킨다. 자율신경계의 ‘가속기(accelerator)’ 역할을 하는 교감신경계가 주도권을 잡아 근육을 긴장시키고 필요한 에너지를 총동원한다.
그러나 ‘상황’이 종료되면 교감신경계는 뒤로 물러나고 ‘브레이크(brake)’ 역할을 하는 부교감신경계가 나서서 이완·평정·휴식을 제공해 몸을 정상 상태로 되돌린다.
항상 스트레스 속에 살다 보니 육체와 정신은 지치고 생활의 흥미와 기쁨이 사라진다. 에너지는 한도 초과돼 번아웃(burnout·소진) 상태로 간다. 자율신경계 역시 평시와 전시를 구분 못 하고 헷갈리는 반응을 하다가 결국 총체적 부실대응으로 이어져 면역계·신경계·혈액순환계 질병을 불러들이게 된다.
스트레스에 대한 현대인들의 잘못된 대처 양태는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과잉각성(hyper-arousal)이다. 사소한 일에도 마치 호랑이를 만난 것처럼 투쟁·도피 모드로 살아간다. 근육은 늘 긴장하고 공포·불안·격노 등의 강력한 정서가 유발된다. 신경계도 위협이나 순간적 반응에 필요한 아드레날린(에피네프린)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과잉배출한다. 교감신경계의 가속기 페달을 계속 밟으니 심신은 쉴 틈이 없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만성적 각성’에 빠지게 된다. 문명화된 현대사회에서 살지만 심리적으로는 위험한 정글에서 사는 것이다. 이들에게 평온·안정·휴식·행복은 거리가 멀다.
둘째는 감정의 억누름이다. 과잉각성과 정반대로 마치 각성이 되지 않은 척한다. “난 괜찮아" “아무 문제없어"라며 감정을 숨기고 가장한다. 감정의 방어벽을 치고 내재화시킨다. 심리적 압축밸브를 꽁꽁 막아놓는 것이다. 그러나 이유 없는 분노, 적개심, 불편함이 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어쩌다 엉뚱할 때 터져나와 난감할 때도 있다.
정상적인 투쟁·도피 반응의 장점은 스트레스 상황이 끝나면 쉬게 만든다는 점이다. 그러나 위협으로 느끼지도 않고, 인식조차 못하고 있다면 효과적 대응도, 달콤한 휴식도 찾아오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 장기화되면 도대체 내가 무엇을 하는지, 무슨 기분인지도 모른다. 당연히 자율신경계도 헷갈린다.
세 번째는 앞의 과잉각성이나 감정의 억압 상황이 계속 진행돼 만성화되거나, 장기적 스트레스에 방치돼 마침내 심리나 건강이 무너져내리는 상태다. 예컨대 과잉각성은 결국 자신과 타인, 주변 환경에 대해 매사 부정적(투쟁적) 태도를 고착화해 스스로 불행을 자초한다. 반면 감정의 억누름은 어느새 자신을 ‘학습화된 무력감’ 속에 살게 만든다. 무엇을 해도 자신이 없고 기쁨이 없다. “난 할 수 없어" “구제불능이야" “형편없어"란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만성적 우울, 심리적 자원의 고갈 속에서 신체 호르몬계는 오작동하고 에너지는 소진돼 말기암, 자살, 돌연사 등 극단적 상태로 치닫게 된다.
네 번째는 일견 정상적 생활을 영위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불건강한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회피’하는 것이다. 종일 일에만 매달리는 일중독(workaholism)이 대표적 예다. 자기파괴적 회피행동이다. 알코올·니코틴(담배)·카페인(커피)·설탕 등의 과다 사용도 마찬가지다. 과다한 식탐(食貪), 진통제·수면제·신경안정제 등 약물 남용, 코카인·헤로인 등 마약 사용도 그렇다. 이는 즉각적 만족이나 증상 완화를 느낄지는 모르지만 불편함 뒤에 있는 보다 근원적인 문제를 회피하고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마음챙김의 위력은 바로 여기서 발휘된다. 과거의 습관적·자동적·무의식적인 스트레스 ‘반응(reaction)’ 대신 지혜로운 ‘대응(response)’을 하게끔 해준다. 우리는 지금까지 호흡·보디스캔·요가·정좌 명상 등을 통해 △‘지금-여기(now & here)’에 주의력 집중→주의력 이탈 시 알아차림→주의력 복귀의 과정을 반복 수련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주의력(attention)과 알아차림(awareness)의 감각과 마음근육을 발전시켜왔다. 이것이 바로 스트레스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심리적·생리적 힘을 공급해준다. <계속>
▶ 스트레스에 도움되는 시
13세기 이슬람의 신비주의자 시인 루미(Rumi)는 ‘여인숙(Guest House)’이라는 시를 통해 사람의 마음에 찾아오는 온갖 감정을 묘사하고 그들을 잘 수용하고 받아들이라고 충고한다.
‘여인숙’
인간이란 마치 여인숙과 같다.
매일 아침 새 손님을 맞는다.
기쁨, 우울, 비열함
어떤 순간적인 깨달음이
예고 없이 찾아온다.
그들 모두를 받아들여 환대하라.
설사 그들이 슬픔의 무리들로
그대의 집을 가구 하나 안 남기고
몽땅 쓸어간다고 해도,
설령 그렇다 해도 한 분 한 분 정중히 모셔라.
그들이 그대를 비우는지도 모른다.
그 빈자리에 낯모를 새로운 기쁨이 들도록.
어두운 생각, 부끄러움, 악의,
문 앞에서 그들을 보거들랑
미소 지으며 안으로 맞아들이라.
오는 손님 누구에게든 감사하라.
모든 손님은 저 멀리에서 파견된
안내자들이니까.
★오늘의 날씨★
'명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19. 실리콘 밸리 명상 (0) | 2020.05.30 |
---|---|
18. 실리콘 밸리 명상 (0) | 2020.05.29 |
16. 실리콘 밸리 명상 (0) | 2020.05.27 |
15. 실리콘 밸리 명상 (0) | 2020.05.26 |
14. 실리콘 밸리 명상 (0) | 2020.05.25 |